211화.
"데키타 님! 제국 놈들이 목표지 점에 완전히 도달했습니다!"
초원 위에 지어진 커다란 천막의 안. 간소한 가죽 갑옷을 입은 인물 들이 입을 열어 보고했다.
"제국 놈들의 병력 규모는 도합 다섯 개 군단과 일개 기사단! 일반 병 10만, 기사 일천입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트웨인의 상위전사들이었다.
하위 전사를 이끌며, 보다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 트웨인의 지휘관격인 인물들이었다.
그런 상위 전사들 중 가장 상석에 있는 이. 데키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정말 제국 놈들이 온 것 인가."
그는 이자리에 있는 상위 전사 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에 들린 지도를 바라보고 있을 뿐.
지도는 다름 아닌 제국 북서부, 평야지형의 지도였다.
그들 데키타 군단이 자리해 있는 이곳의 지도.
씨익. 데키타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이어 말했다.
"역시 누르비테 님의 혜안은 대 단하시군. 제국 놈들이 올 것을 미리 예견하실 줄이야."
데키타 군단은 제국군의 이동에 한발 앞서 이곳에 도착, 드넓은 평 원지대를 장악했고, 일만 삼천에 달 하는 대량의 기병들을 미리 매복시 켜 놨다.
모두 누르비테의 명령이 있었기에 한 일이었다.
누르비테는 데키타에게 직접 지시했다.
전사들을 이끌고 북으로 가라고. 가서 남하해 서부전선에 합류하는 것을 지연시키고, 그들의 전력을 소모하라고 말이다.
데키타는 누르비테의 명령을 충 실히 이행했고, 그 결과.
"데키타! 이미 우군 기병대의 매 복은 완성되어 있습니다!"
"전사들이 전투를 원합니다! 당장 출격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지금이 적기입니다!"
"비실비실한 제국 놈들을 쓸어비립시다!"
극도로 유리한 상황을 지니게 되었다.
매복해 기다리고 있던 트웨인의 기병대. 습격지점에 완전히 들어온 제국의 대규모 행렬.
물론 병력의 수만 본다면 오히려 제국군이 훨씬 더 많았고, 데키타는 압도적 열세였다. 무려 10만과 1만 의 차이였으니 .
허나 그들 데키타 군단은 그 막 대한 수적 차이에도 전혀 불리하다 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하다 고 느끼고 있었으니 .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놈들을 유린할 거다. 서부전선에서처럼 말이다."
이미 서부전선에서 놈들과 수없이전투해 보았기에.
제국군은 약하다.
적어도 그들 트웨인 전사들 앞에는 무력했다.
덩치가 크고 느려터진 제국군 보병대. 수는 많으나 지휘권자가 많아 일체된 움직임을 보일 수 없는 제국기병.
놈들은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는 트웨인 기병대의 기동을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때문에 데키타는 이곳에서도 압 도적인 승리를 예상고. 그렇기에,
"전 매복조. 돌진하라. 제국 놈들을 죽여라. 놈들의 보급품을 약탈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데키타!"
"전투명령이 떨어졌다! 각 매복 조는 지금 당장…."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투 시작 명령을 내렸다.
데키타는 씩 웃는다.
'한지훈이라. 네놈이 아무리 천재 적인 지략을 지니고 있든. 우리 트웨인에게는 상대가 안된다.'
한지훈. 놀라운 인물이다.
강대한 무력, 압도적인 지략.
오직 강함과 경험만 있다면 출세 할 수 있는 트웨인과 다르게, 귀족 우월주의가 만연했던 제국에서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저토록 빠르 게 성장했던 인물이다.
그의 전략적인 능력 또한 분명 대단할 터.
허나 그래봤자다.
'일반 보병대를 다루는 것과 기 병을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르단 말이지.'
한지훈이 경험했던 요한바르첸 전쟁과 카렌 전쟁.
두 전쟁 모두 병력의 절대다수는 보병이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기 병을 지휘한 경험보다는 보병대를 지휘한 경험이 많을 터.
허나 그들 트웨인은 기병이 절대 다수다.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 병을 전문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지언데, 과연 한지훈 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놈은 기병을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을 터.'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군관이라 한들. 그 재능을 개 화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경험이 필요하다.
한지훈은 기병을 지휘한 경험이 얼마 없는 햇병아리에 불과하고. 데 키타 자신은 무수히 많은 기병을 거의 평생 동안 다루고 운용해왔던 이.
전략적 역량 또한 자신이 훨씬 뛰어날 것이다. 데키타는 그리 여겼다.
"… 그래. 어서 성과보고를 듣고 싶군."
그는 시선을 돌려 천막의 중앙, 설치되어 있는 비콘을 주시한다.
잠시 후. 저 비콘의 통신망을 타고 여러 보고들이 전해져올 것이다.
전장에서 주도권을 잡아간다는 보고. 제국군 기병을 제압하고, 놈 들의 본대를 타격했으며, 보급품을 약탈했다는 무수한 성과 보고들 말이다.
허나 이게 어찌된 것인지.
- 제국 기병 놈들의 움직임이 심 상치 않습니다!
-제국 놈들이 후방으로 진입한다고?! 이게 무슨! 이쪽의 퇴로를 막 으려 하는 건가!
- 퇴각! 퇴각해! 느낌이 심상치 않다! 돌진 중지하고 뒤로 빠져!
전장에서 들려오는 보고내용들은 자신이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 뒤! 뒤를 잡혔다!
- 4번, 5번 습격조! 난전에 돌 입!
- 제국 놈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퇴각하겠습니다!
- 조장이 당했다!
데키타는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 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 * *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이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 로 상향 되었습니다!]
내 전투지휘술 스킬이 상향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킬의 바뀐 점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홀로그램의 변화.
내 시야 한켠에 떠올라 있던 미니맵과 부대 현황창이 일변했다.
먼저, 미니맵의 크기가 보다 극 대화 되었다.
천인대 전투지휘술일 적에는 어디까지나 '전술' 규모의, 국지적인 전투상황만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 다면.
군단 전투지휘술의 미니맵은 과거 내가 보았던 전략창에 상응할 정도로 커다래졌다.
너무나 넓은 영역이 보인다.
무려 십 수만이 모여 전투를 벌 이는 이제국 북서부 일대 모두가 표기될 정도로. 미니맵 홀로그램의 크기가 커다래진 것이다.
다음으로, 부대 현황창.
[제국 북부 제 13군단]
[군단장 한지훈]
[총원 : 21,321] (중상 : 0)
[임시합류 : 10,214] (중상 : 0)
[군단의 상태] (이상 : 기습으로 인한 혼란.)
(이상 : 행군으로 인한 약간의 피로 누적.)
(지휘체계에 이상은 없습니다.)
(사기는 '보통'입니다.)
(병사들의 정예도는 '다소 높음'입니다.)
(모든 보급품이 풍족합니다.)
(현재 군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본래 내부대 현황창에는 그리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총원이 몇 명이고, 중 상자나 전사자는 몇 명이었는지 정도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전투 중 신속하게 현 황을 파악하기 위해 있는 것이 바로 부대현황 정보창이었으니 .
허나 군단 전투지휘술 스킬부터는 표기되는 정보량이 훨씬 방대해 졌다.
군단의 이상에는 무엇이 있고, 사기는 어떤지. 휘하의 정예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보급품의 부족 여부와 부대의 장악상태 같은, 다소 세세한 내용들까지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스킬 상향으로 인한 변화는 그저 홀로그램으로 그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사실 그리 대단한 지식들은 아니었다. 기존에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었으니 .
어찌해야 군단을 더욱 정교하게 운용해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한 다면 이 군단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지 같은.
기존에 어렴풋이나마 이미 알고 있던 지식들.
그 희미한 지식들이 보다 명확하게 정리되어 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병법과 용병 술을 연구했던 학자처럼. 머릿속에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어 자리하 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의 기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군단장.
하나의 군단을 움직이는 자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것일까.
온몸의 존재감이 상승해간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턱이 올라 가고, 허리는 곧게 펴졌다. 목소리에 보다 진한 기운이 머금어진다. 본래 지니고 있던 카리스마가 증폭 되어 주변을 완전히 장악해갔다.
하지만 저 변화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과거 십인장에서 백인장이 될 때, 그리고 백인 장에서 천인장이 될 때 이미 겪었 던 일들이니.
허나 마지막 변화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감각이 달라졌어."
이것을 뭐라고 형용해야 할까.
전장이 읽힌다.
후우우. 심호흡하며 주변을, 시야 를 그득 메우는 드넓은 평원을, 전 장인 이 장소를 바라본다.
그러자 많은 정보를 깨닫게 되었다.
비가 내린 지 오래라 느껴지는 건조한 공기. 북서풍을 타고 흐르는 선선한 바람. 막 정오 무렵에 이른 태양의 위치. 퍼석한 흙바닥과 부드러운 초원의 풀들까지.
고작 주변이 아니다. 이전장, 이 드넓은 초원 전체가 내 심상 깊숙 한 곳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마치 대지 그 자체를 느끼듯이.
피식 웃었다.
"시스템이 생각한 완벽한 '군단 장'이란. 이 정도 수준인가."
참 기가 찬다.
자신의 군단 현황과 전장 전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나아 가 전장이 되는 대지 그 자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니.
나는 쯧쯧 혀를 차고는, 재차 미소 지었다.
"하지만. 덕분에 쉬워졌어."
이전에 비해 내 역량이 극도로 상승한 것을 느낀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간다.
과거 엘리스와 세계수의 가호로 잠깐이나마 느꼈던 전능감. 그 편린 이 지금 느껴지고 있다.
나직이 읊조렸다.
"참모장. 그리고 부군단장."
"네! 군단장 각하!"
그들이 척 경례하며 자세를 바로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방금 전, 내 분위기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바뀌었기에 놀란 것인 지. 그들의 얼굴에는 진한 긴장이 어려 있다.
하긴. 천인장 지휘술과 군단장 지휘술의 간극은 너무 커다랬다.
당장 내 몸을 휘감은 카리스마가 이전에 비해 무지막지해졌으니 .
저들 입장에서야 너무나도 갑작 스러운 일이었을 터다.
그들에게 지시한다.
"지금부터 나는 기병대들을 집중 지휘할 거다. 너희들은 보병대 지휘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그들이 기합을 주며 씩씩하게 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이유. 별것 없다.
그저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기 에. 그리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 으로 이전장을 느끼고 싶었기에.
눈을 감아도 미니맵 홀로그램은 여전히 보였기에.
"3군단 1번부터 13번 기병연대.
서쪽방향에 있는 적 기병대 후방으로 돌진. 전속력이다."
까만 시야 속 오연히 떠오른 홀로그램창을 보며 군을 운용해본다.
"동 군단 14번부터 20번 연대는 전방 돌진. 트웨인 놈들을 포위하라."
"12번 군단 기병연대 전부 후방 으로 퇴각. 적이 반격을 노릴 것 같은데. 무리하게 버티다 손실을 입 느니 차라리 놔줘야겠지."
군을 운용하는 것은 이전과는 달 랐다.
그 밀도가 한없이 농밀해졌다고 해야 하나-이전의 내지휘가 그저 평면적이 고 냉정했다면, 지금은 전장에 선 적아의 감정마저 추론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미니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렴풋이 느껴 졌다.
전투중인 적과 아군의 병사들. 그들의 심리와 사기가 어떠한지. 얼마나 지쳤고, 얼마나 더 활동할 수 있는지.
덕분에 지휘가 한없이 정교해졌다.
"13군단 18번 기병연대. 바로 앞 적 조장부터 처치해. 놈은 당황해있 으니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10군단 전기병연대에게 전파. 적 병력이 측면돌파를 시도할 거다. 방어를 굳히고, 돌파당하도록 놔두 지 마라."
적의 감정을 읽고, 빈틈을 파고 들었다. 내 기병대가 놈들을 몰아쳤다.
"3군단 11, 12, 13기병연대. 트 웨인 기병 놈들이 생각보다 강해서 좀 쫀 것 같은데. 약간 뒤로 빠져 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재출격하라. 마음 제대로 다잡고. 연대장 놈 들은 부하들 독려 제대로 해. 사기 를 잃으면 안된다."
"13군단 4번 기병연대장. 너무 흥분했다. 머리 식히고 주위를 살 펴. 부하들과 군마가 지친 것이 안 보이나 ? 적당히 속도 낮추고 한동안 견제 위주로 기동해."
"7군단…."
아군의 감정을 읽고, 그들을 조율했다. 흥분해 무리하는 지휘관을 나무라고 겁먹은 아군을 후방으로 뺐다.
미니맵에 떠올라 있는 적아의 배치가 시시각각 변화해간다.
우왕좌왕 흔들리던 푸른색 점들 이 점차 체계를 바로잡고, 대열을 갖췄다. 그들이 움직여 전장의 적을 하나하나 제압해간다.
반면, 붉은색 점들이 흔들린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기세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송곳처럼 날카 롭던 타격점은 점차 무뎌진다.
전황이 변화해간다.
적은 잇따른 실패에 점차 사기가 하락하고 움직임이 굼떠졌다. 반면 아군은 혼란을 수습하고 기세를 돋 워가고 있으니 .
그리 머지않아 이전장의 주도권 올 이쪽이 쥐게 될 것이다.
나는 미소 지었다.
"군단 전투지휘술이라. 정말 대단 해."
똑같은 지휘였지만. 모니터 너머 블랙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차원 이달랐다.
그저 숫자와 상황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감정과 흐름마저 엮어 지휘하게 되다니.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휘에만 매진할 수는 없었다.
"… 잠깐만."
미니맵에 이변이 일었다.
갑작스레 전장에 등장한 새로운 적 부대가 등장했다.
놈들은 심상치 않았다.
무시무시한 속도. 압도적인 존재 감. 녀석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 지만, 놈들이 등장한 방향에서 적의 사기가 급격히 치솟는 것이 느껴진다.
확신할 수 있다.
"적 수장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 한 건가."
뒤늦게 전장에 난입한 새로운 부대. 분명 적 수장이 이끄는 정예들일 터다.
예상과 달리 우리 제국 기병대가 선전하고 있으니 . 이 흐름을 바꾸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겠지.
나는 눈을 뜨고, 나직이 읊조렸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적의 수장이 직접 나서 전투에 참여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여기 본대에서 뒷짐이나 지고 있을 생각 은 없다.
직접 나서 놈을 제압할 것이다. 내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적 지휘관의 목을 딴다면 전세는 완벽하게 이쪽으로 기울 터.
스르릉. 검을 뽑아들며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볼로냐 기사단 호출해. 그들과 함께 출격하겠다."
지휘능력으로는 놈을 압도했으니 . 이제는 무력으로 압도할 때.
파앙!
나는 전투마의 배를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