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맙소사."
파보나는 경악한 눈으로 바로 앞을 바라본다. 그러자 이쪽으로 쇄도 해 오고 있는 적이 보인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지닌 사내. 한지훈 라이젠. 제국 의 전쟁영웅.
파보나는 검을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놈의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한지훈의 소문. 그저 헛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일개 병사에서 대륙 최고 의무력을 지니게 되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 않는가.
때문에 파보나는 한지훈을 제국 이사기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거짓 영웅이라 여겼다.
허나 아니었다.
놈의 검날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오르는 오러광은 너무나도 선 명했다. 주위를 장악하는 기세는 위압적이었으며, 시선을 마치 자신의 영혼을 꿰뚫듯 강렬했다.
파보나는 한지훈의 오러를 보는 순간. 자신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 그래! 네놈은 강하다! 하지만!"
화르르륵!
파보나가 한지훈의 공격에 대응 하기 위해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의 검날에 푸른색 불길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아는 법!"
적의 압도적인 무력을 간접적이 나마 체감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파보나가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그의 오러 서린 장검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한지훈에게 쇄도한다. 날카로운 검날이 기다란 궤적을 그 린다.
강대한 힘을 품은 일격. 파보나는 자신의 검술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한지훈에게 있어서는 그리 위협적인 일격이 아닌 듯했다.
"느리잖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비틀어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리는 한지훈. 그가 파보나의 간격 안으로 파고든다.
"오러의 출력은 나름대로 훌륭하 지만. 몸이 너무 느려."
파보나는 한지훈의 말에 이를 악 물고,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제 이격. 사선베기.
콰아아아앙!
그의 검날이 우측 상단에서, 좌 측 하단으로. 길게 사선을 그렸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단숨에 어깨 부터 옆구리까지 반으로 갈라졌을 공격.
하지만 상대는 한지훈이었다.
카앙!
한지훈이 검을 휘둘러 그의 공격을 쳐냈다. 파보나의 장검이 청아한 쇳소리를 내며 힘없이 튕겨나간다.
"크윽…!"
주춤. 반발력에 파보나의 자세가 무너졌다.
무너졌다 한들, 너무나도 작은 빈틈이었다. 일반 기사들은 결코 파고들지 못하는 미약한 틈.
허나 한지훈은 그런 미약한 틈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게 연방 기사들의 수준인가?"
자세를 낮추고, 더욱 가까이 파고 들어오는 한지훈. 그의 장검 첨 단이 날카로운 빛을 반짝인다.
"별것 없네."
한지훈이 그리 읊조림과 동시.
퍼억.
파보나의 목에 검날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파보나는 내 돌진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쪽의 민첩이 놈의 그것을 아득히 상회했기 때문에.
"대충 이 정도인가."
파보나의 목에 박힌 검신을 비틀었다.
우드득, 하고 들려오는 놈의 목 뼈가 박살나는 소리. 놈은 결국 제대로 된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힘없이 털썩 쓰러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쉬워."
너무 쉽다. 한스와 전투할 때와 비교한다면, 그저 거저먹는 수준.
콰앙!
나는 재차 자리를 박차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적 기사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다, 단장 각하!"
"놈을 막아라!"
"단장 각하의 복수를!"
그에 기사들이 하나둘 오러를 돋 우고, 검을 치켜들어 내 돌진에 대응하려 한다.
하지만 느리다.
너무나도.
파앙! 서걱, 콰직.
사선으로, 수평으로.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재빨리 놈들의 간격 안으로 파고 들어가 목을 베었고, 옆구리를 긁었다.
모두 전신갑주의 이음새 사이 취 약점을 노린 공격이었다.
"커헉…!"
"쿨럭!"
기사 둘이 거의 동시에 피를 토 하며 쓰러졌다. 철커덩, 울리는 놈 들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
"망할! 이 개자식!"
"죽어라!"
그 틈을 노리고 또 다른 연방의 기사들이 공격해온다. 놈들의 푸른색 불길이 번들거리는 공격이 쇄도 해온다.
역시나 느리다.
집중 스킬을 운용중인 내 눈에는 놈들의 공격이 마치 멈춘 것처럼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발자국을 옮기고, 상체를 비틀어 놈들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보낸다. 녀석들의 공격은 내 옷깃조차도 스 치지 못했다.
직후 바로 반격.
콰직! 서걱.
검으로 옆구리를 쑤시고, 박혔던 검을 뽑아내며 또 다른 기사의 목을 그었다. 붉은색 핏물을 철철 홀 리며 두 기사가 쓰러진다.
나는 놈들이 쓰러지는 것조차 보 지 않고 계속해 달려갔다.
"막아! 막아야 한다!"
"놈이 전열을 돌파지 못하도록 해!"
하지만 기사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를 막기 위해 수십의 놈들이 빽 빽하게 몰려들었다. 민첩만 믿고 돌파하기에는 다소 힘든 것이 사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민첩뿐만 이 아니다. 나에게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그리고 드루바가 만들어준 절호의 아티팩트 가르강이 있다.
"후욱."
잠시 자리에 멈추고, 검날을 허리춤 부근에서 늘어트린다. 근육을 긴장시킨다.
오러를 쥐어짜냈다. 보다 진하게 타오르는 푸른색 불꽃. 곧 내 오러 광이 점차 하얗게 변해간다.
극도로 응축된 대량의 마나. 마나는 곧 증폭되어 무시무시한 기세 를 일렁인다.
웅웅웅웅웅웅!
검날이 오러에 공명했다. 나는 나직이 읊조린다.
"몰려오면 오히려 상대하기 쉽거 드"
원래 청소란 모아 놨다 한번에 해야 제 맛이지 않나.
나는 검을 횡으로 길게 그었다. 하얀색 검광이 기다란 반월 모양을 그린다.
직후,
콰르르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내게 육박해오 던 수십의 기사들이 모조리 잘려나 갔다.
그래. 말 그대로 잘려나갔다.
놈들은 달려오는 와중, 허리가 모조리 끊어져 바닥에 철퍼덕 쓰러 진 것이다.
우르르 쓰러진 연방의 기사 수십. 녀석들이 사방에 흩뿌린 대량의 피와 오물 덕분에 고약한 냄새가 확 올라온다.
"좋아."
철그럭. 검을 회수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전투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맙소사…."
"저것이 정녕 인간의 무력이란 말인가…."
내 주위에 있던, 가까스로 살아 남은 연방의 기사들. 그들은 차마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춤주 춤 물러서고 있다.
하기야. 단 한번의 검격으로 수십을 쓸어버렸는데, 감히 덤빌 수 있는 간 큰 녀석이 그리 흔하진 않 으니까.
"기사들은 거의 정리했습니다."
"마법사가 마법을 완성시키지 못 하게 해!"
"화살을 쏴!"
엘프들은 기사들을 거의 제압하고, 이제는 저 멀리서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들을 공격하는 중.
그에 마법사들은 어쩔 수없이 도약마법을 포기하고, 방호마법을 운용하기 시작한다.
나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기사 들의 시체들 너머. 내가 죽여야 할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라피엘."
저놈만 죽인다면. 카렌이라는 나라는 이제 사라진다.
"죽을 준비는 됐나?"
오러를 꺼트렸다. 굳이 오러마저 운용해가며 죽일만큼 강한 무력을 지닌 녀석은 아니기에.
"목 내밀어. 수급은 깔끔하게 취 하고 싶으니까."
철퍽, 철퍽. 피웅덩이를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황금옥좌에 점차 가까워진다.
그에 라피엘은.
"으! 으으으으으!"
경기를 일으켰다.
입가를 일그러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벌벌 떤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지 못하고 발작 하는 모습.
일국의 국왕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꼴불견이라니.
"나는!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단 말이다!"
놈이 벌떡 일어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도망치지 못 하게 어깨를 붙잡아 눌러, 억지로 옥좌 위에 앉게했다.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군주로 태어났으면 군주로 죽어 라. 라피엘."
"그게 무슨 소리…!"
"뒈져도 이 염병할 옥좌 위에서 뒈지란 말이다."
퍼억.
녀석의 모가지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놈의 몸이 크게 요동친다.
"라피엘 데이고르 카렌."
검날을 비틀었다. 콰직, 하고 목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모두 자초한 일이다."
제국을 침공하지 않았다면. 아니, 흑마법사와 손을 잡지 않았다면.
놈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핏물이 주르르 흘러 놈의 화려한 제복과 화려한 황금 옥좌를 적셔갔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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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이 멸망했다.
- 통령 각하. 보고드립니다.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연방 통령, 러셀 베티스 사인 펠드는 와인으로 입술을 적시고는 대답한다.
"보고하도록. 듣고 있다네."
- 임무를 실패했습니다. 렉시턴 기사단은 전멸. 단장인 파보나 또한 전사했으며, 라피엘의 망명 또한 저지되었습니다.
"그런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러셀 통령.
그가 손에 들린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말한다.
"임무 성공가능성을 반반이라고 봤다만. 역시나 실패했군. 한 시간 이라는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잘도 왕궁까지 진출했어."
홀짝. 러셀은 와인잔을 기울여 다시금 입을 축이고는, 이어지시했다.
"전투자료를 받았겠지. 그걸 보내 주게."
-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 십시오, 통령 각하.
직후 수정구에 푸른색 빛이 일렁이며, 어떤 화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번 연방의 개입. 사실 목적은 라피엘을 연방에 망명시키는 것뿐 만이 아니었다.
"한지훈이라는 녀석의 능력. 제대로 볼수 있겠군."
러셀은 한지훈의 능력을 확실히 파악하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연방의 기사단을 보내며 영상 수정구까지 가지고 가도록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수정구의 영상. 그것은 기사들이 지니고 있던 영상 수정구에서 보내왔던 영상들 이었다.
곧 영상이 재생되고.
"… 으음. 과연."
러셀은 감탄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한지훈의 모습. 너무나도 대단했다.
파보나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한지훈. 그 가 목덜미에 검을 꽂아 넣을 그때 까지, 파보나는 한지훈의 털끝조차 베지 못했다.
너무나 민첩한 움직임.
하지만 한지훈이 그저 민첩하기 만 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 콰르르르르르릉!
수정구가 뒤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나온다. 직후 보이는 것은 하얀색 반월을 그리는 웅혼한 일격.
기사 수십이 단번에 허리가 잘려 바닥에 우르르 쓰러진다.
너무나 강대한 힘.
"굉장하군."
러셀은 수정구를 꺼트리고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자리해 있는 서류들을 짚었다. 정보국에서 보고 해온 한지훈의 이번 전투기록이었다.
서류를 훑어보는 그의 입가에 가 느다란 미소가 지어진다.
"정말 탐이 나는 인재야."
한지훈의 능력은 단순한 무력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보국에서 조사한 한지훈의 지휘내용. 그 또한 대단했다.
적의 반응을 예측해 미리 군을 움직였고, 압도적인 교전비로 카렌의 군대를 녹여갔다. 취약점을 사정 없이 파고들고 반면 아군의 약점을 결코 노출하지 않았다.
그 혼자서 전장 전채를 지배했다.
군단장이 된 뒤 첫 전략단위의 지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을 넘어 신기에 가까운 지휘능력.
"이런 인재가 우리 연방이 아닌 제국에 있다니. 하늘도 참 야속하 군."
러셀은 상상해본다.
자신의 휘하에, 한지훈 같은 인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떨까.
달칵. 그가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한지훈같은 인재가 내게 있었다 면. 지금 당장 남부 대륙을 침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쉽구나, 아쉬 워."
인재욕이 많은 그는 한지훈이 제국에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쉬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인재라 한들, 적에게 있다면 부숴버려야 하지. 철저히 말이야."
그가 수정구에 손을 뻗어 지시했다.
"발쿠름 정보사령관. 공작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
러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카렌의 왕궁이 불탄다.
우르르르.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건축물. 대리석 기둥이 흐트러지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흙먼지가 혹 솟 구치고 굉음이 청각을 자극한다.
불타는 카렌의 왕궁 앞 정원. 나는 왕궁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속이 시원하네."
제국과 전쟁을 벌이던 4개의 국가 중 하나가 무너졌다. 놈들의 군 주를 죽였고, 왕궁을 불태웠다.
이제 남은 것은 전투처리뿐.
시선을 돌려, 정원의 한켠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창 소란이 벌어 지고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저는 일반 행정관료에 불과합니다!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았습니
"부디 목숨만은…!"
병사들에게 제압당해 끌려나온 관료와 대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나같이 나이 지긋한 노인이거 나중년인인 이들. 그들이 바닥에 무릎 꿇어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들의 목숨구걸이 이어진다.
"제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모든 재산을 빼앗아가도 좋습니다!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솔직히 말해, 측은한 모습이긴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 무릎 꿇고, 병사들에게 손이 발이 되어라 빌고 있으니 .
그 와증 내가 다가온 것을 확인 한 것일까.
"… 각하!"
한창 빌고 있던 그들이 퍼뜩 고개를 조아린다.
"위대하신 한지훈 군단장 각하!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전쟁에 관여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내 이름과 직책을 들어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게 포로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는 권한이 있다는 것 또한 알 고 있을 터이니. 열심히 목숨을 구 걸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글쎄. 살려주고 싶지 않은데."
나는 저들을 살려줄 생각이 조금 도 없었다.
그에 눈을 크게 뜨는 관료들.
그들이 발악하듯 외친다.
"어째서입니까! 저는! 전쟁에! 관 여하지 않았습니다!"
"너무한 처사입니다! 카렌의 모든 귀족과 관료들을 처형할 생각입 니까!"
그들의 말에 나는 묻는다.
"당신들. 어디 소속이지?"
소속을 묻는 내 말을, 전쟁 관련 부처가 아니라면 살려주는 것으로 알아들은 것일까. 그들이 옷에 달린 표식까지 내보이며 소리친다.
"저는 재정부 소속입니다!"
"외무부입니다! 전쟁부 소속이 아닙니다!"
"공업부입니다!"
"살려주시는 겁니까?!"
응 아니야.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들 하나하나를 지목했다.
"그러니까. 저기 재정부 관료는 전쟁에 쓰일 재원을 확보했고, 외무 부관료는 타국과 연계해 제국침공을 계획했으며, 여기 공업부 관료는 전쟁에 쓰일 병장기들의 수급을 관 장했네. 맞지?"
"뭣…'?!"
내 말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 달은 것일까. 그들이 표정이 까맣게 죽어간다.
"억지입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 자면 모든 관료들이 전쟁에 관여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설마!"
스르릉. 철컥. 철그럭.
병사들이 눈치껏 창칼을 뽑아들 어 처형 준비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
"악마! 네놈은 악마다! 신께서 너 를 저주…!"
그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서걱! 콰직.
병사들이 관료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이 맥없이 쓰러져 정원의 풀 바닥에 몸을 뇌였다. 핏물이 흘러나 와 흙을 적셔간다.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도망친 관료 놈들이 더 있을 거다. 모조리 잡아 끌고 와서 처형해."
"명령을 따릅니다! 군단장 각하!"
"당장 움직여."
병사들이 부대 단위로 흩어져 수 색을 시작한다. 이제 저들은 왕궁 인근을 뒤져 관료들을 색출, 처형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태양이 지고, 석양이 내리깔리고 있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앞으로 어찌되려나."
제국과 전쟁 중이던 네 개의 국가, 협상동맹의 일원이던 카렌이 완전히 멸망했다. 덕분에 제국군은 숨 통이 트이게 되었다.
4개의 전선에서 3개의 전선으로 줄어든 것이니까.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본다.
동부의 람셀, 서부의 트웨인, 남부 코르자카, 북부 카렌.
이중 북부 카렌이 무너졌다. 이제 제국 북부군은 기수를 돌려 다른 전선을 지원하게 될 터.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아마도 동부 람셀, 혹은 서부 트 웨인이 될 터다. 그곳이 이곳 북부에서 그나마 가까운 전선이니까.
뭐, 사실 어딜 가게 되든 상관없다.
"그 어떤 전장이든. 모두 헤쳐 나갈 수 있다."
이미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내가 멸망시켰던 국가들이다.
다시 멸망시키는 것 따위.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멍하니 석양이 드리워진 하늘을 바라본다.
제국 북부가 완전히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