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삼십 분."
파보나 림볼랜드. 연방 통치국 직속 기사단, 렉시턴 기사단의 단장 인 인물.
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작해야 삼십 분 남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을 터."
파보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연방의 전투마법사들이 초 장거리 도약 마법을 구축 중이었다.
앞으로 삼십 분이면 초장거리 도 약 마법진이 완성될 것이고, 라피엘을 연방으로 이동시켜 임무를 완수 할수있을 것이다.
쯧. 그가 혀를 차며 읊조렸다.
"하지만 아쉽군. 그 한지훈이라는 놈과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
그가 오러를 일으킨다.
화르륵!
타오르는 청염. 푸른색으로 번들거리는 불길이 화려한 보검을 타고 올라 존재감을 과시한다.
연방의 강자 중 하나인 파보나.
그는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통령께서도 이해가 안 되는군."
화륵.
파보나는 오러를 꺼트렸다. 그가 심장 속 마나를 갈무리하며 이어 말했다.
"한지훈이라. 그래봤자 제국의 일 개 군관에 불과한 인물인데. 그자를 그토록 신경 쓰시다니."
파보나는 지금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임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지훈. 연방 밖에서 도는 소문을 들었기에 파보나는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지닌 이. 제국의 악마 한지훈.
놈은 막강한 무력과 뛰어난 지휘 능력을 가지고 있어, 과거 병사일 적부터 군단장이 된 지금까지 수많 은 전공을 세워 활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개 군관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하나. 그래봤자 개인에 불과하 그런 그를 연방의 통령이 직접 신경 쓰고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파보나였다.
"…하지만, 그래도 맡은 임무. 일단은 집중해야겠지."
파보나는 시선을 돌려 알현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지도를 펼쳐놓고, 여러 군관들이 병력을 지휘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다.
- 천인대 이동 중입니다.
- 대로를 봉쇄하고, 방어군을 배치했습니다. 충분히 오랜 시간 지연 실수 있을 겁니다.
- 남아있는 기사들을 타격대로 운용하겠습니다.
- 연방에서 파견나온 전투마법단 들이 현장에 합류했습니다!
- 방어진 형성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카렌은 새로이 합류한 연방 의 병력과 연합. 지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려 이천의 기사와 삼백이 전투 마법사들이 카렌을 지원하고 있다. 그에 카렌은 점차 통제를 복구하고 있으며, 지금은 수도의 중앙구획에 모여 항전을 준비하는 상황.
파보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 덕였다.
"쉽군."
쉬운 임무가 아닐 수 없다.
그저 한 시간 동안만 버티면 되는 임무. 방어선은 견고하며, 적의 세력은 강대하나 시간적 여유는 없다.
그리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파 보나는 라피엘을 안전하게 연방으로 이동시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 -13번 천인대! 공격받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빗나간 듯했다.
거의 동시에, 통신을 맡고 있던 군관들이 당혹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21번 교차로! 적 기사 등장! 약 200기, 2개 전대 규모입니다!
- 마법! 대규모 광역 마법이 매 복 중이던 아군에게 직격했습니다! 4번 천인대 증발!
- 맙소사…. 적 기병대가 사방에서!
- 부 수도사령관,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여러 이변 들.
파보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지도를 주시한다.
"… 뭔가 이건."
방금 전까지는 여유로웠던 전선 이었다.
병력의 통제를 가다듬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 방어진을 꾸렸다. 이곳저곳에 병력을 매복시켰다. 여러 대로를 봉쇄해 제국 놈들의 진군을 지연시키고자했다.
임무가 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 21번 천인대 전멸! 18번 대로 를 적에게 빼앗겼습니다!
- 기사단이 측면에서 공격받았습니다. 대열이 반파됩니다!
- 막을 수 없습니다!
- 안 돼… 안 돼!
갑자기 상황이 일변했다.
분명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매 복시켰던 병력이 마법에 당해 단숨에 증발했다. 이동 중이던 보병대가 급습당해 전멸했으며, 현장을 지원 하기 위해 달려가던 기사단 또한 측면에서 공격받아 치명적인 피해 를 입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파보나는 크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의 흔들리는 동공이 지도를 훑 는다. 지도의 모습은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푸른색 표식들. 아군의 병력을 의미하는 그것들이 사라지고, 적의 병력을 의미하는 붉은색 표식들이 우수수 올라온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 파보나는 추측한다.
"설마, 한지훈! 놈이 저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건가!"
이토록 대단한 지휘능력을 가진 지휘관이라. 파보나는 단 한 명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한지훈. 제국의 악마.
그가 군대를 몰아 왕궁으로 쇄도 해오고 있다.
전략이라는 거. 사실 그리 복잡 한 것이 아니다.
적의 수를 한발 앞서 생각하고, 그에 대한 최선의 수를 놓는다면.
그것이 전략이고 전술이다.
"볼로냐 기사단. 3번, 4번 전대. 좌측으로 기동하라."
나는 그런 면에서 꽤나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눈동자를 굴려, 시야 속 미니맵에 펼쳐진 지형과 적아의 배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훤히 읽혔다.
내가 병력을 움직인다면 놈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녀석들이 어디에 병력을 밀어 넣을 것이고, 어떤 조 합으로서 공격해올 것인지.
"이제 적은 기사단을 운용할 거다. 11번 대로를 타고 내려오는 루트가 유력하지. 그쪽 방향이 다른 구역을 지원하고 후퇴하기에 용이 할 테니까."
미래를 추측하고.
"볼로냐 3, 4번 전대. 한 블록 더 가면 적 기사단 놈들이 대로를 따 라 이동 중일 거다. 옆구리를 쳐서 놈들의 허리를 끊어버려."
병력을 움직인다.
- 명령을 받듭니다. 한지훈 군단 장 각하!
수정구에서 믿음직스러운 음성이 들려온다. 볼로냐 기사단 전대장들 의 목소리였다.
볼로냐의 전대장들과는 이미 안 면을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과거 바네사를 구출하러 갈 때 같이 동행했었으니까.
그들은 나를 신뢰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기사들을 수월하게 지휘할 수 있었다.
- 적 기사단 측면을 타격, 놈들 의 반수를 처치했습니다. 손실은 경 미.
"좋아. 적당히 놈들 좀 괴롭히다 가 슬슬 정신 차릴 때쯤 빠져. 타이밍은 알아서 판단할 수 있지?"
- 맡겨만 주십시오.
과연 기사들의 기동성과 돌파능력은 대단했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 손처럼, 빠르게 기동해 적의 취약점을 찔러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내가 가진 특수전력은 볼로 냐 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제피르."
- 그래. 말하라. 한지훈.
제피르가 이끄는 라브리에 마법 전투단. 그들 또한 내지휘를 받고 있다.
나는 수정구를 쥐어들고 그들에게 지시한다.
"13번 대로 옆, 기다란 담장이 둘러쳐진 대저택이 보일 거다. 확인 했나?"
- 그래. 보이는군 그래.
"거기를 폭렬폭풍 마법으로 날려버려. 그저택 안쪽에 적 병력이 매복해 있을 확률이 높아."
-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처리하고 알려주지.
직후 콰르르릉 울려 퍼지는 폭 음. 불길이 일고, 미니맵에 자리해 있던 대저택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 쓸려 날아간다.
잠시 후 통신이 들어왔다.
- 자네 말대로였어. 안에 적 보병 일 개 천인대가 숨어있더군. 어떻게 안 거지?
"나라면 그곳에 매복했을 테니까."
적의 행동을 추측하려면 어찌해 야 할까.
답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적 지휘관이라면 병력을 어찌 운용할까. 어찌해야 더 적은 손실로, 더 오랜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을까.
"적은 다행히도 멍청이가 아니야."
오히려 멍청이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모한 지휘를 하기에, 예상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상대방이 제정신 박힌 지휘관이라면. 오히려 훨씬 쉽게 놈의 행동을 예측해낼 수 있다.
"좋아. 이제 놈들의 방어선은 거의 붕괴되었고."
고개 돌려 시야 속 미니맵을 바라본다. 그러자 절로 여유로운 미소 가 올라온다.
미니맵에는 온통 푸른색과 녹색 점 투성이었다.
대로에서도, 교차로에서도.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방어 거점에서도.
그 모든 곳을 나와 내 아군들이 점거하고 있다.
"남은 건…."
시선을 위로 올려, 북쪽을 바라 본다. 그러자 유일하게 푸른색 점이 없는 장소가 미니맵 속에 드러난다.
씩 웃었다.
"카렌의 왕궁."
놈들이 아직 점거하고 있는 유일 한 공간.
저곳에 라피엘이, 그리고 라피엘을 후송하기 위해 도착한 연방군 놈들이 있을 거다.
"군단장 각하. 병사들을 진입시킵니까? 다수의 병력이 왕궁 근처까 지진출했습니다. 명령만 하신다면 출격시킬 수 있습니다."
문득 부 군단장 베르너가 내게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왕궁 안에는 기사 놈들이 있을 거야. 일반 보병대나 기병대를 투입해봤자, 이쪽이 불리해."
"그럼 볼로냐 기사단을 투입합니까?"
"볼로냐 기사단은 전대 단위로 흩어져 있어서 모이는데 시간이 걸려. 즉각 투입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찌합니까? 왕궁 내부 로 투입할 전력이 없습니다."
베르너가 눈가를 찌푸렸다.
이것도 안된다 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니 답답했을 터다.
나는 픽 웃었다.
"아니. 왕궁 내부로 갈 만한 전력은 있어."
"그게 누구입니까?"
"왜, 내가 데려왔던 뾰족귀들 있잖아."
"… 아!"
멍청이. 척 보아하니 엘프 전사 들의 존재를 잊어먹은 듯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엘프라는 놈들이 처음 접전 빼고는 코뼤?보이지 않으니 잊어먹을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이제 그 들이 활약할 차례가 되었으니까.
나는 수정구를 집어 들고, 나직 이 말했다.
"타냐. 전투 준비해."
라피엘 목 따러 갈 거니까.
나와 엘프 전사들이 왕궁으로 향 한다.
* * *
"미쳤군."
렉시턴 기사단의 단장. 파보나 백작은 그리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정면의 군사지도로 향한다. 그러자 파보나의 얼굴 표정 이 극도로 경직된다.
"정말. 미쳤어."
한지훈. 그 지휘능력이 비범하다는 소리는 수없이 들어왔다.
그렇기에 파보나는. 그리고 주변의다른 지휘관들 또한 방심하지 않았다.
항상 팽팽한 긴장을 가지고 병력을 다루었고, 일선 부대를 세심하게 조율했다. 쉴 새 없이 현황을 파악 하고 군을 지휘했다.
헌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대부분의 대로를 빼앗겼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향하는 길이 뻥 뚫 려있습니다!"
"모든 정찰대에서 연락이 단 절…."
"시야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증원할 수 있는 병력은 더 이상 없나?!"
"망할! 아직도 이십 분은 더 버 텨야 한단 말이다! 병력을 더 투입 해야 해!"
완패였다.
카렌의 지휘부는 병력을 중요 거점에 배치해 방어태세를 다졌고, 여러 기습타격 부대를 절묘한 매복지 점에 배치했다.
놈들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지연 시키기 위해. 그리하여 라피엘과 카 렌의 고위 귀족들이 무사히 연방으로 망명하기 위한 분투였다.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
한지훈의 지휘는 너무나도 정확 했고, 정교했으며, 치명적이었다.
병력을 이동시킨다면 측면에서 공격받았다.
매복시킨다면 어김없이 마법이 날아와 전멸했다.
후퇴한다면 포위되어 학살당했다.
산개시킨다면 사방에서 몰아쳐오는 기병대에 의해 사냥당했다.
말 그대로, 그 어떤 선택을 한다 한들 상대는 그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왔다.
마치 이쪽이 뭘 할지. 어떻게 움직일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한 움직임.
으득. 파보나는 이를 갈았다.
"한지훈…!"
파보나는, 그리고 카렌과 연방의 장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지훈의 지휘 역량은 그들을 아 득히 능가했다.
그야말로 , 상대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병력의 수 차이를 제외한다 해도 이토록 일방적인 패배라니. 본래라 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제기랄."
파보나는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리고는, 직접 기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남은 기사단 단원들이 몇이나 있지?"
"일천 정도입니다. 단장 각하."
"왕궁 정도는 방어할 수 있는 수다. 각 전대, 왕궁의 통로를 나눠 방어하겠다. 1번 전대는 북쪽, 2번 전대는…."
파보나가 왕궁의 각 입구와 통로 들에 기사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왕궁의 몇몇 내부 통로는 좁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에 대규모 병력이 몰려온다 한들, 그 공격력이 온전히 투사되지 못할 터.
천 명의 기사들로도 남은 시간을 수월하게 지연시킬 수 있다. 그리 여기는 파보나였다.
그렇게 파보나가 병력을 배치하고 있을 때였다.
- 단장 각하! 적습입니다!
수정구에서 휘하 기사의 보고가 들려온다.
적이 등장했다는 보고.
마침내, 제국군은 이곳 왕궁 안 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드디어 왔군. 제국 놈들."
그에 파보나는 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륵.
타오르는 푸른색 검광. 강렬한 기세가 치솟아 선명한 존재 감을 과시한다.
파보나는 오러를 전신에 두른 채 수정구를 향해 물었다.
"침입한 적의 수와 방향은? 상세 하게 보고하라."
- 적이 침입한 방향은 남문 통로! 놈들의 수는… 아니! 저건!
이어진 기사의 말에, 파보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엘프! 엘프입니다!
전혀 예상 외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되물었다.
"엘프라니! 그게 무슨 소리이 지?!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기사!"
- 저 귀! 확실히 엘프입니다! 엘프가 왕궁에 침입했습니다!
"어째서 엘프가 우리 카렌을 친 다는 건가?! 그놈들은 중앙 대륙에 있을 터인데!"
- 저희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엘프들입니다! 저놈들 이 저희 기사들을…!
기사의 보고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대신,
- 퍼억! 털썩.
심상치 않은 소음이 수정구에서 흘러나왔다.
분명 검날이 기사의 목을 가르고, 그의 육신이 힘없이 바닥을 구 르는 소리였다.
"기사! 무슨 일인가! 기사!"
파보나는 기사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 네놈이 적 지휘관인가.
수정구에서는 기사의 것이 아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묵직한 중저음인 한편,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목소리.
그가 나직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 나는 제국 북부 제 13군단의 군단장. 한지훈이다.
"… 한지훈!"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한지훈이었다.
북부 제 13군단의 군단장. 제국에서는 영웅이라, 타국에서는 악마 라 불리는 이.
- 거기서 목 닦고 기다려라. 금방 죽여주지.
마침내 그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