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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201화 (201/390)

201화.

카렌 왕궁의 알현실. 방금 전까지 패전의 침통함으로 축 가라앉아 있던 공간.

그곳에 이변이 일기 시작했다.

번쩍!

갑작스레 섬광이 터져 나왔다. 시야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찬란한 섬광이었다.

섬광은 고작 하나만 터지지 않았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무수히 많은 섬광이 터지고, 이 능이 발현되었다. 공간이 출렁인다. 빛무리를 헤치고 수많은 인영들이 건너오기 시작한다.

초장거리 도약마법의 발현.

"정말, 연방이…."

라피엘은 차마 믿기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연방이 정말 나를 구하기 위해…."

연방은 라피엘을 구출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했다.

번쩍이는 전신갑주를 갖춰 입은 기사. 그리고 전신에 푸른색 기운을 휘감고 있는 전투마법사들.

당장 등장한 이들만 해도 무려 수백 가량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가 이곳에 등장하려 하는 것일까.

그렇게 라피엘이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카렌의 국왕, 라피엘 데이고르 카렌이십니까."

훤칠한 키를 가진 기사가 여유롭 게 걸어 라피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철컥.

그가 투구의 바이저를 열었다. 그러자 기다란 황색 머리카락이 드 러난다.

"연방 통치국 직할 렉시턴 기사단의 단장. 파보나 림볼랜드입니다."

척 보기에도 강력한 기세를 지닌 사내였다.

눈동자에 일렁이고 있는 것은 전사의 패기. 허리는 꼿꼿했고, 분위기는 신사적이었으나 정체 모를 위 압감을 휘감았다.

그가 이어 말한다.

"한 시간 뒤. 귀하를 모실 초장 거리 도약 마법진의 구축이 끝납니다."

그와 거의 동시.

웅웅웅웅!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현했다.

바닥에 커다란 청색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웅혼한 빛을 발하 기 시작한다.

라피엘을 연방으로 이송하기 위해,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파보나가 이어 말한다.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시지요. 곧 연방으로 향할 수 있올 것입니다."

라피엘이 마법진의 완성을 기다 린다.

"통령 각하."

한적한 집무실. 그곳에서 한 군 관이 입을 열었다.

잘 다려진 장성용 제복. 가슴팍 에는 무수한 약장과 훈장을 패용하고 있는 이.

통령은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무슨 일인가. 발쿠롬 정보사령 관."

통령의 집무실에 방문한 것은 다름 아닌 발쿠롬 정보사령관이었다.

결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임무들을 주로 다루는 이. 연방의 암부.

그가 러셀 통령에게 찾아온 이유 를 밝혔다.

"의문이 생겨서 말입니다."

"의문이라. 뭐가 그리 궁금하지?"

"카렌의 국왕 라피엘. 그자를 어째서 받아들이시려 하는 것입니까?"

발쿠롬은 통령의 결정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라피엘 데이고르 카렌. 카렌 왕국의 군주이자, 이번에 러셀이 받아 들이고자 하는 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카렌 국왕은 이제 아무런 세력도, 그리고 이용 가치도 없을 터인데."

확실히 그의 의문은 합당했다.

수도가 거의 함락당한 이상, 카 렌의 멸망은 확정되었다. 라피엘은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모든 세력과 실권을 잃어버렸다.

전혀 효용가치가 없는 인물.

그를 구출하기 위해, 어째서 통 치국 직속 기사단과 전투마법사들 까지 동원하는 것인가.

발쿠롬의 의문에 러셀 통령은 피 식 웃어 보인다.

"발쿠롬. 내가 자네에게 지시했었 지. 한지훈의 약점을 쥐고 회유하거 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제거하라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각하."

발쿠롬 정보사령관이 고개를 끄 덕여 긍정한다.

발쿠롬은 이미 연방 통령의 명령을 따라, 정보국의 요원들을 제국과 카렌에 잠입시킨 상태였다.

통령이 이어 말한다.

"자네도 알다시피. 한지훈은 그리 쉽게 이쪽으로 회유되지 않을 거다. 이쪽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겠지."

한지훈이란 인물의 행보를 본다 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자는 쉽사리 제국을 배반할만 한 인물은 아니었다.

아마도 대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터.

"그래서 나는 미리 대비하고자 한다."

"대비라 하신다면."

"놈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을 모아, 녀석을 압박하게 할거다."

부스럭. 통령이 테이블 위에을 려져있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조사를 잘 했군. 발쿠롬."

"송구합니다. 각하."

발쿠롬 정보사령관을 치하하는 러셀 통령. 그의 시선이 서류로 향 한다.

서류는 다름 아닌 한지훈에 대해 조사한 내용. 그것도 그에게 원한을 지닌 이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녀석은 그리 만만한 적이 아니지."

펄럭. 러셀이 서류를 넘겨 내용을 읽어나간다.

"한지훈은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차고 넘치게 증명해냈다."

확실히 탐나는 인재였다.

압도적인 무력, 강렬한 카리스마.

더해 이번 전투에서는 탁월한 전 략적 소양까지 지니고 있음을 보였다.

일국의 군주로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인재.

"허나 회유되지 않는다면. 부숴버 려야겠지. 확실하게 말이야."

한지훈이 아군이라면 어여삐 여기겠으나. 적이라면 철저하게 부숴 야 한다.

러셀은 이전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한지훈을 아군으로 만들지 못한 다면, 추후 연방의 남부대륙 진출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라피엘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녀석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을 모아, 대적하게 할 것이다."

복수.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

통령은 그에게 복수를 원하는 이들을 거둬들여 차근차근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한지훈이라는 인간을 완벽히 몰아넣기 위해서.

"…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 아닙니까? 각하."

허나 그런 통령의 말에, 발쿠롬 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한지훈의 능력이 출중한 것은 조사한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만. 그래봤자 일개 군관에 불과합니다."

그가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그래봤자 일개 군 관에 불과하니.

연방의 통령이라는 거물이 직접 신경쓸만한 이는 아니다.

그에 피식 웃는 러셀.

"발쿠롬.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내 직감은 꽤 좋은 편이라네. 한지훈을 견제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해 서는 안 되네. 그리고…."

그의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재밌지 않나? 이런 뒷공작, 나는 아주 좋아해."

러셀의 미소는 천진했다.

마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3번, 4번 천인대는 자리를 이탈. 대로를 따라 북상하라."

- 명령을 따릅니다! 군단장 각하."

"9번부터 12번 천인대는 동쪽 뒷골목을 따라 우회기동. 21번 사거 리를 확보하라."

- 알겠습니다!

나는 병력을 지휘했다.

가장 먼저 운용하는 것은 전장 이곳저곳에 진출해 있는 보병들.

그들을 운용해 진출할 경로를 장 악하고, 시야를 확보한다.

"다음으로, 각기병 연대장들 주 목."

물론 내가 지휘하는 것은 보병대 뿐만이 아니었다.

내 북부 제 13군단에 소속된 기 병연대의 수는 20개. 약 이천여 명의 기병들.

그들을 활용한다.

"1번부터 5번 기병연대는 3번 도로를 타고 돌진. 4번부터 6번 연대는…"

기병들을 다양한 경로를 따라 신 속하게 전진시킨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카렌의 국왕인 라피엘을 잡기 위해서는 보다 신속한 기동능력이 필요할 지어 니.

그에 나는 기병대의 기동성을 최대한 활용할 심산이다.

눈동자를 굴려 미니맵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곳에는 다양한 정보가 보인다.

보병대와 기병대가 기동하며 시야를 밝혔다. 기기괴괴 얽혀 복잡한 골목길들과, 뻥 뚫린 대로, 아군과 적의 위치까지.

그것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병력을 어찌 움직여야 보다 전투 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 그리고 제시간 안에 왕궁에 도달해, 라피엘을 처단할 수 있을 지.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는 와중 이었다.

- 한지훈! 이게 무슨 일이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통신수정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에 나는 수정구를 들어 올려 대답했다.

"데이비드 북부사령관 각하."

- 갑작스럽게 군을 급하게 기동 시키는군. 상황을 설명하게, 한지훈 군단장.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데이비드 사령관이었다. 그는 전장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 하고 있었고. 곧 그리 어렵지 않게 내 군단의 이변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에게 알린다.

"데이비드 사령관 각하. 타 세력 이 이번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 타 세력의 개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

"연방이 참전했습니다."

아직 데이비드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이어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사령관 각하. 연방이 이번 전쟁에 개입, 병력을 보냈습니다. 지금 카렌 왕궁에는 놈들의 전투마법사 와 기사들이 도착. 초장거리 도약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엘프에게 계속 보고받았기에. 그 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어째서일까. 연방에서는 라피엘을 자국으로 망명시키려 한다. 그것도 한창 전투중인 이곳 카렌 수도에, 무리하게 병력을 투입해가며 말이다.

- 연방이… 라피엘을.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던 것일까. 데이비드는 잠시 으음, 하는 신음을 내며 침묵했다.

나직이 입을 열어 말한다.

"각하. 계획을 바꿔야 합니다."

본래 계획은, 성벽이 무너졌고 전력은 압도적이었으니 . 가급적 안정적으로 병력을 운용하며 손실을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놈이 도주할 때까지 그리 많은 여유가 있진 않습니다. 라피엘이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빠르게 왕궁을 쳐야 합니다."

눈동자를 굴려, 아직도 시야 속에 떠올라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남은시간 : 48: 31]

남은 시간은 채 50분도 안 되는 상황. 절로 초조함의 감정이 올라와 입술을 씹게 된다.

그때 문득.

- 한지훈 군단장. 하나만 물어보 지.

데이비드 사령관이 내게 질문했다.

- 자네, 라피엘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각하."

- 어째서인가? 이미 이전쟁은 우리 군이 이겼다. 카렌이라는 나라는 이제 무너진다. 저 라피엘이 도 주해 목숨을 이어간다 한들. 카렌이라는 나라는 이미 우리 제국의 것 이 된다는 말이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사실 라피엘이 죽든, 혹은 살아 연방으로 망명하든. 이미 카렌 영토 가 제국에 합병된다는 것은 기정사 실이었다.

놈들은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했 으며. 우리 제국은 승리했다. 그들 의 수도까지 장악했다.

설혹 라피엘이 살아남는다 한들. 카렌의 멸망과 제국의 승리라는 결과는 바뀌지 않을 터.

- 그냥 라피엘이 도망치도록 놔두는 게 어떤가?

때문에 데이비드 사령관은 내게 제안했다.

그냥 라피엘이 연방으로 망명하 도록 놔두는 것이 어떠냐고. 굳이 손해를 감수하고 놈을 처치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각하. 라피엘은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고개 돌려 내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반파 상태의 도시가 보인다.

파괴되어 무너져 내린 성벽. 대로 이곳저곳에 죽어 널브러져 있는 카렌의 병사들. 피로 젖은 대지와, 퀴퀴한 혈향,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놈은 제국을 침공한 전범입니다."

전쟁을 일으켰다. 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자신이 통치 하던 국가를 패망의 구렁텅이로 처 박아버렸다.

그뿐만이었다면, 무능하지만 욕심 많은 군주에 그쳤을 터다.

하지만 놈은 그저 무능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라피엘은 흑마법사의 세력까지 전장에 끌어들였습니다."

놈은 크라함과 손을 잡았다. 무 수한 국민의 생명을 바쳐 대량의 사령병사와 키메라를 만들었으며, 세계검을 만드는데 협력했다.

"녀석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인간입니다."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면서, 인의를 버리고 흑마법사와 협력 한 인류의 배신자라.

직감했다.

라피엘은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놈이다. 만약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언젠가 시나리오에 악영향을 끼 치게 되리라.

그렇기에 나는 요청했다.

"데이비드 북부 사령관 각하. 제 가 라피엘을 죽이는데 힘을 보태 주십시오."

병력을, 그리고 지원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미리 예상했던 것일까.

- 역시. 한지훈 군단장, 자네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 자네는 언제나 그랬지.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킨다면, 쉽게 승리 할 수 있을 것을. 완벽한 승리를 위해 수고와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 어.

일반적인 장성들과는 다른 모습 으로 비춰질 것이다.

이미 확정된 승리. 라피엘이 도 주하는 것만 허용한다면, 더 이상의 손실 없이 카렌이라는 국가를 집어 삼킬 수 있다.

다른 대부분의 장성들은 라피엘 이 도주하는 것을 허용했을 것이다.

라피엘 하나를 처치하기 위해 그 강력한 연방의 군대와 싸우는 것은 꺼려지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왕궁을 칠 것을 제안했다.

-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그런 내 행동 이 썩 만족스러운 듯했다.

- 제국의 군인이라면 그런 기개 가 있어야지. 비록 상대가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세력을 가진 연방이라 한들. 우리 제국의 군대 또한 강하다.

연방은 강하다. 제국 또한 강국 이지만, 대륙 전체를 통일한 연방에 비해 손색이 있는 것은 사실.

- 그리고 이곳, 남부 대륙은 우리 제국의 텃밭이다. 저기 동부 대륙 촌놈들이 활개 치게 놔둘 필요는 없지.

하지만 연방은 동부 대륙에 있다.

이자리에 있는 연방의 전력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건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

- 한지훈. 자네에게 볼로냐 기사단과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을 맡기 지.

순간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볼로냐 기사단. 그리고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오랜 시간 나와 호흡을 맞춰온 이들이다.

- 자네가 그들을 지휘하게. 이 수도전투 한정으로, 그들에 대한 모든 지휘권을 한지훈 그대에게 이양 하지.

데이비드는 나에게 그들의 지휘 권을 넘겼다.

과거 정복 전쟁부터 지금 협상동 맹과의 전쟁까지, 무수히 활약해왔 던 엘리트 전력의 무제한 지휘권을.

그 말인 즉. 어디 한번 마음대로 활개 쳐보라는 이야기.

"… 감사합니다. 데이비드 북부사 령관 각하."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반드시, 라피엘을 죽이고 연방의 개들을 몰아내겠습니다."

볼로냐 기사단, 그리고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있다면. 몹시 쉽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씩 웃었다.

"놈들의 수급을 기대하십시오."

연방.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지겹도록 싸워왔던 놈들이다.

덕분에 나는 놈들의 지휘스타일 과 군의 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압도적으로 이겨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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