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한지훈 군단장 각하. 부군단장 베르너 알크미르입니다."
"참모장 직책을 임명받은 엘런 폭스입니다."
"상급참모 빌 맥카시입니다."
"중급 참모나는 감회에 찬 눈으로 바로 앞에서 경례하는 이들을 바라봤다.
모두 하나같이 멋드러진 제복을 잘 갖춰입은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 의 가슴팍에는 하나같이 어떤 약장 이 매달려 있었다.
군단 참모단 약장.
이제 이 뒤랑텅 보급기지에, 내 군단의 일원이 될 이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부군단장이라 밝힌 베르 너 알크미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제 형님께 한지훈 군단장 각하 의 활약은 익히 들었습니다."
"… 잠깐. 베르너 부군단장. 알크미르 가문이라고?"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허어…."
나는 헛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가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어 알크미르의 동생인가?"
베이어 알크미르. 내가 수도에서 지휘했던 황실기사단 1전대의 1번 편대장이었던 이.
내 눈앞에 있는 이. 베르너는 그 베이어의 동생인 듯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제 형님 께서는 검에 뜻을 두어 기사의 길을 걸으셨고. 저는 군직에 뜻을 두어 장교가 되었지요."
제국 수도 전투에서 그토록 충의 를 보였던 베이어의 동생이다. 적어도 모난 이는 아니리라.
그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는, 흡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군단장 각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참모들의 모습 또한 살폈다. 그러자 그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존경.'
지금 내 앞에서 있는 열 명 남 짓의 참모들.
그들의 눈동자에는 경외와 존경 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예외조차 없이, 모조리 말이다.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이토록 젊은 나이에, 심지어 참 모 과정조차 밟지 않고 곧장 장성 이 된 나다.
본래라면 내게 분노나 질시의 감정을 지닌 이가 있기 마련일 터인 데.
헌데 저들 중 그 누구도 내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이쪽이 부담될 정도로 경외의 시선을 내비치고 있을 뿐.
물론 그이유, 나는 알고 있다.
'제국 영웅 칭호. 정말 요긴하게 쓰이는데 .'
눈동자를 굴려 내 가슴팍을 바라 봤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제국 영웅 약장이 보란 듯이 매달려있었다.
지금 제국에서는 전선의 사기진 작을 위한 프로파간다 공작이 한창 이었다.
내가 세운 여러 전공들이 매일같 이마나통신망을 타고 제국 전역에 퍼진다. 한지훈이라는 이름이 전 제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일종의 우상화 작업.
덕분에 나는 막대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내게는 몹시 좋은 일이었다.
"각하의 아래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행운입니다."
이렇듯, 별다른 잡음 없이 지휘 권을 완전히 휘어잡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참모들의 경례를 받으며 하나씩 악수했다.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부군단장 베르너 알크미르부터, 하급참모 자벨 말바니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내 손발이 될 것이다.'
군단. 무려 이만에 달하는 병력 이다. 이런 거대한 덩치를 지닌 집단을 움직이는 것은 결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참모단. 나를 보좌해 군단을 이 끄는 이들.
저들이 있기에 비로소 군단을 움직일 수 있게된다.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나야말로 . 너희들과 함께해서 행운이다."
시선을 돌려 참모들의 배후, 기 지 밖 저 머나먼 능선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뿌연 흙먼지가 일어나 고 있다.
그곳을 바라본다. 그러자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병력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구만 그래."
일렁이는 흙먼지 위, 바람에 따 라 나부끼는 군단기.
천인대 단위로 이루어진 부대들 이 수많은 보급마차를 이끌고, 이곳 뒤랑텅 기지로 행군해오고 있다.
"군단 창설식을 준비해야겠어."
내 군단이 완성되어간다.
뒤랑텅 보급기지에 찾아온 것은 내 휘하 병력들뿐만이 아니었다.
"… 소식 들었다. 듣자하니 군단장 이 되었다고. 축하하오, 백작."
내 영지인 루벤에 있을 드워프 들. 그들이 내 요청에 응해 이곳까지 이동해온 것이다.
나는 씩 웃었다.
"축하 고맙다 드루바. 그래서, 데 려온 드워프들의 수는?"
흑마법사에 대항할 아티팩트를 설계하고 양산하기 위해서는 막대 한자원과 인력, 그리고 기술이 필요하다.
때문에 나는 가능한 많은 드워프 들을 데려오기를 바랬고. 드루바는 그런 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가 여유롭게 미소짓는다.
"일천을 데려왔소."
무려 일천에 달하는 수의 드워프 들.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고도로 숙련된장인들이 었으니까.
물론 아무런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약조한 대로, 희귀자원과 기술이 전은 확실하리라 믿겠소."
"당연하지. 드루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약속을 어길 정도로 찌질하지 않아."
"하긴 그렇지. 괜한 염려였군."
드워프 부족에게 다소의 희귀자 원들, 그리고 바네사가 지니고 있을 제작기술의 양도가 그것이었다.
그가 시선을 돌려, 내 뒤에서 있던 여성을 바라보며 묻는다.
"저자가 그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흑마법사인가."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전' 흑마법사이지만 말이야."
"정말 기술을 우리에게 줄 것인 가'?"
나는 고개 돌려 내 뒤에서 있던 인물을 바라봤다. 그러자 검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한 여성이 보인다.
바네사. 한때 흑마법사였으나 지금은 모든 흑마나를 잃은 일반인.
그녀가 흔쾌히 그녀가 고개를 끄 덕였다.
"기술 따위 얼마든지 주죠."
기술이전.
본래 꽤나 민감한 사안이었다.
모든 마법사는, 그리고 마법학파는 독자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제피르가 이끄는 라브리에 전투 마법단이 폭렬폭풍 마법을 대표로 삼듯. 각 마법사들이 저마다 장기로 삼고, 기존의 것을 보완하거나 혹은 새로이 개척한 영역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학파나 마법사들보다 더욱 진보한 자신만의 독자마법. 소중할 수밖에 없다.
허나 그녀는 단숨에 수락했다.
그이유야, 당연하게도.
"크라함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크라함을 죽이고자 하기 때문에.
그녀의 행색은 이전과 달리 잘 정돈되어 있지만. 눈동자 속에서 일 렁이는 증오의 감정은 한 치도 수 습되지 않았다.
바네사가 품속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살펴보니 두터운 책이었다. 척 보기에도 꽤나 오래 쓴 것처럼 모서리가 다 낡아있는 책.
"살펴보세요."
바네사가 그것을 드루바에게 건 넨다.
드루바는 그녀가 건넨 책을 받아 들어 살펴보고는, 표정을 찌푸렸다.
"엿같이 어렵군."
"힘들 것 같나? 드루바."
"그래. 흑마법 관련 아티팩트라 들어서 예상은 했지만, 완전히 혼돈 이로군. 잘도 이딴 식의 수식을 가지고 마법을 발현하다니. 흑마법사 란 녀석들은 참 신기해."
흑마법이란 광기와 혼돈, 그리고 타락을 양식으로 발현하는 마법. 그 개념은 일반 지성체들이 이해하기 너무나도 난해하다.
반쯤 미쳐있어야만 이해하고 운용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흑 마나였으니 .
"하지만. 흥미는 생기는군."
턱. 드루바가 책을 덮었다.
그가 씩 웃었다.
"우리 드워프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목을 매지. 그게 흑마법에 관한 것이라 한들. 달라질 건 없다."
난해한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드루바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긴. 본래 기술과 지식에 끝없는 탐욕을 가진 이들이 바로 드워프다. 그런 그들이 좀처럼 보기드문 신기술을 얻게 되었으니 . 의욕적이 게 될 수밖에.
나는 쯧 혀를 차며 당부했다.
"드루바. 의욕적인 건 좋은데 조심해야 해. 잘못하면 정신이 오염될 수도 있다."
흑마법 지식은 그것을 취한 것 만으로도 정신에 악영향을 끼친다. 단련되지 않은 일반인이 아닌 드워프이니만큼,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겠지만. 그것도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런 내 우려를 미리 예상했다는 듯. 드루바가 씩 웃었다.
"그건 충분히 대비했으니 걱정 말게. 한지훈."
쩔그럭. 그가 옷 아래에 있던 목걸이를 꺼내보였다.
별다른 공예가 들어가지 않은, 작고 밋밋한 펜던트였다.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하지만 그 광택이 범상치 않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철제 펜던트 같지만. 자세히 본다면 녹색 빛깔이 은은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드루바가 뽐내듯 이어 말한다.
"미스릴 목걸이다. 정화의 기운을 담고 있는 이것을 착용하고 작업에 임한다면, 정신 침식 따위 두렵지 않게 되지."
납득해 고개를 주억였다.
미스릴은 마나와 자연력을 증폭, 가속시키며, 부정한 기운을 억제한다.
하물며 저 목걸이는 드워프제일 테니 그 효능은 확실할 터.
정신침식에 관해서는 안심해도 좋으리라.
내가 그렇게 드루바의 펜던트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한지훈. 오늘 저녁 무렵 군단 창설식을 거행한다고 들었는데 ."
"소문을 들었나 보네. 맞다. 오늘 창설식과 임명식을 할 거다."
"창설식 이전에, 검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드루바가 운을 띄운다. 그에 나는 시선을 내려 내가 차고 있는 장검을 살펴봤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드워프제 제국군 보급 장검]
[루벤 조병창]
"만들어준 내가 할 말은 아니지 만. 자네의 검, 솔직히 겉보기엔 볼 품없지. 실제 품질은 둘째 치고 말이야."
드루바가 그리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계속해 내 장검을 살 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제국군 보 급 장검.
하지만 그 투박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래봬도 일반적인 보급장검의 품질을 아득히 뛰어넘은 물건이다.
질 좋은 철광석을 잘 제련해 만든 훌륭한 강철. 연성과 강성 둘 모두를 잡아 구현한 절삭력과 내구 성. 사용하기 편한 완벽한 무게배분 까지.
지금까지는 이 장검에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가끔 부족함을 느끼긴 했 지만,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바른 말이지만 말이다.
"나는 이 검이 편해."
막 이 세계에 끌려들어 왔을 때 부터 군단장이 된 이때까지, 나는 항상 제국군 보급 장검을 써왔었다.
그만큼 익숙했기에 다른 검에 대한 욕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것보다, 다소 투박하게 생겼더라도 속이 알찬 것이 좋지. 안 그러나? 드루바."
때문에 나는 가급적 지금 사용 중인 보급 장검을 계속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장비에 너무 의존하고 싶지는 않아."
편리함은 몸을 좀먹는다.
압도적인 성능을 지닌 아이템을 남용하다보면, 몸이 그것에 적응해 발전 속도가 둔화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실력이 퇴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굳이 아티팩트 장검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쯧…."
하지만 그런 내 대답이 별로였던 것인지. 드루바가 혀를 찼다.
"한지훈. 네 상승을 위한 자세는 훌륭하다. 장비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태도. 우리 드워프제 무기에 침을 질질 흘리는 멍청이들 따위보다 훨씬 낫지."
드루바의 눈이 순간 퍽 진지해졌 기에. 나는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한지훈, 그대는 이제 군단장이다."
허나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제국의 영웅이자, 일개 군단의 수장이라는 인물이. 일개 병사처럼 투박한 보급장검을 사용한다면 휘하 부하들이 어찌 생각하겠는가? 일반 장교들도 화려한 장검을 쓰는 놈들이 많은데 말이다."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드워프제 제국군 보급 장검.
익숙하긴 하지만, 장성이 된 지금 사용하기에는 심히 모양이 안 나오는 것은 사실.
장성이 된다면 그만큼 위엄과 카리스마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그래야 보다 수월하게 권위를 보여, 차질 없이 병력을 지휘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마침 군단 창설식이 있지. 좋은 기회로군. 가져와라."
씨익. 드루바가 웃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고, 저 멀리서 드워프 둘이 기다란 상자를 운반해왔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드루바. 저건 뭐지?"
"그대가 군단장이 된 기념 선물 이다. 한지훈 군단장."
덜컹!
상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나는 그것을 잠시 바라봤다.
크고 고급스러운 목제 상자였다.
꽤나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는 것 인가. 상자는 섬세한 장식들이 조각 되어 있었으며,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퍽 고급스러운 포장.
"분명 만족할 걸세. 이것이 내 최선이니까."
드루바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 워보인다.
과연 뭐가 들어있기에, 저토록 자신감 넘치는 얼굴표정을 짓는 것 일까.
나는 상자를 열었다.
끼이익.
경첩소리를 내며 열리는 목제 상자.
"… 이건."
내 눈이 크게 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