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93화 (193/390)

193화.

"… 여긴."

바네사는 눈을 떴다. 그러자 익숙지 않은 천장이 보였다.

천막일까. 나무로 만들어진 골조 와, 바람에 나풀거리는 천으로 된 지붕. 타닥거리는 모닥불 타는 소리.

그녀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드디어 일어났구만 그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그녀는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한지훈…!"

소문과 똑같은, 독특한 외양을 지닌 사내였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지닌 사내. 전신에서는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고, 눈빛은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타국에서는 악마라 불리며, 흑마법사들에게는 사냥꾼이라 불리는 존재.

제국의 영웅 한지훈.

그가 바로 옆에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그가 웃는다.

"그렇게 기겁할 줄이야. 내가 그리 무섭게 생겼나?"

u n 나름 농이라고 던진 말인 것 같 았지만, 한지훈의 말에 바네사는 무어라 반응할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잠시 침묵하던 바네사는 나직이 물었다.

"당신. 나를 어찌할 생각이지?"

초조한 것일까. 바네사는 잠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이어 물었다.

"죽일 건가?"

그녀의 눈동자에 두려움의 감정 이 차오른다.

한지훈. 그의 위명은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벌써 다수의 최상급 흑마법사들 이 그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 며, 흑마법사들의 계략을 매번 성공적으로 파훼했던 그다.

그런 그가 자신을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리라. 바네사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럴 리가?"

털썩. 한지훈이 의자에 앉아, 이 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너와 대화하고 있지 않았을 거다. 바네 사."

"그러면 어째서 나를…."

"네 능력이 필요해서 말이야."

한지훈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익숙한 물건이었다.

"… 이건."

"그래. 네가 만든 교란기다."

그가 꺼내든 것은 회색 수정구. 바로 다름 아닌 바네사가 만든 신호교란기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크라함에게 복수하고 싶겠지. 내가 도와주마."

[신호교란기]

[파괴되었습니다.]

나는 품속에서 회색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게르도폴에서 요긴하게 사용했던 신호교란기였다.

수정구는 파괴되어 있었다.

표면에 실금이 이곳저곳에 나 반 쯤 깨져있었고, 내부에 일렁이던 기운 또한 완전히 날아갔다.

아직 미완의 물건이었기에. 출력을 견디지 못해 깨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물건, 앞으로 막대한 양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내 눈앞의 인물만 포섭한다면 말이다.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마녀. 아니, 바네사."

시선을 돌려 그녀의 모습을 살핀다.

검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 흑마법사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흑마법사의 붉은색이 아닌, 본래 색인 남청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계수의 수액을 마셔 모든 흑마 나를 잃었기에. 그녀의 신체가 일반인의 그것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어 말한다.

"네가 볼라바아에, 그리고 크라함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건 이미 알 고 있다."

전의 시나리오를 진행했기에 알 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네사는 크라함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이 신호교란기처럼, 흑마법에 대 항할 수 있는 아티팩트 연구를 진행하고 있겠지."

본래 시나리오에서, 그녀는 연합 군에 합류. 무수히 많은 흑마법 대 항 아티팩트를 설계하고, 양산했다.

신호교란기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작게는 전투에 도움이 주는 흑마 나 억제기, 감청과 추적, 좌표 교란 같은 단순한 아티팩트에서부터.

마지막에 세계검이라는, 걸출한 대륙 최고의 아티팩트까지.

모두 그녀의 손길이 닿아있다.

"네 능력은 범상치 않지."

그렇기에 나는 바네사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흑마법사를 대항하기 위한 아티팩트라면, 그녀 이상으로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크라함을 대적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검을 완성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

바네사를 포섭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제안했다.

"바네사. 동맹을 맺지. 나는 네 능력이 탐난다."

처음에는, 부하로 영입하고자했다.

하지만 관뒀다.

그녀의 눈을 보았기 때문에.

내 입에서 크라함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바네사의 눈동자 속에서 어떤 감정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격렬한 증오와 복수심.

저 정도로 또렷한 목적이 있는 인물이다. 부하로 수동적으로 행동 하게 하는 것보다는, 동맹으로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 한지훈. 제국의 악마."

내가 해치려는 의도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한 것인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적갈색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꽃 처럼 정열적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수락하기에는 걸 리는 것이 있는지.

그녀가 물었다.

"동맹이라니. 당신이 그럴 권한과 힘이 있나? 가지고 있으나 남작에 불과하고, 군의 지위 또한 천인장이 고작이라 들었는데 ."

"소문이 느리구만."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그 좁고 어둑한 지하공방에 처박혀 하루종일 연구만 진행했을 바네사다. 내 소문을 아직 못들은 것이 당연하리라.

나는 내 정복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화려한 약장들과, 계 급장이 달려있었다.

"나는 군단장이다."

"…군단장이라고?"

"그래. 작위 또한 백작위를 지니 고 있지."

"말도 안 돼… 그 나이에 어떻게…."

차마 믿기지 않는 것인지,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쉽게 믿기는 힘들 것이다. 고작 이십 대중반. 명문가의 자제라 한들 이토록 젊은 나이에 군단장에 오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게는 시스템의 보정이 있었고. 그동안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워 진급을 거듭했다. 군단장이 되었다. 백작위를 취하고, 제국 영웅의 칭호 를 하사받았다.

물론 내가 가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강대한 세력이 있다."

세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다.

물력, 인력, 무력, 정치력, 명성.

현재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만족한 상태였다.

먼저 물력.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영지 루벤에서는 수많은 병장기와 아티팩트, 각종 아이템들이 생산되어 제국 전 역에 퍼지고 있다. 막대한 재화를 쓸어담고 있다.

인력 또한 마찬가지.

루벤에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정착시키고 있다. 그들은 농업과 제 조업에 종사하며. 적지 않은 수가 영지군으로 유입되었다. 막대한 수 의사람들이 내 영향 아래에 놓이 게 되었다.

더해 내 무력 또한 출중하다.

내 개인의 무력은 이미 대륙에서도 최상위권에 이르르며, 더해 군단 장이 되었다. 일개 군단의 최고지휘 관이 되었다.

게다가 영지군 또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팽창하고 있는 상황.

정치력은 어떠한가?

당장 황제에게 신임을 얻어냈으 며, 친황파 귀족들 또한 모두 우호 적인 관계를 이루었다. 상대 파벌인 귀족 우월주의를 궤멸시켜 제국 내 정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명성이야 말로 나를 따 라잡을 이가 없다.

줄곧 전쟁에 종군하며 각종 공훈을 세웠으며, 제국 영웅 칭호까지 받은 나다. 나는 제국의 영웅으로서 황제 다음가는 명성을 지니고 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세력을 일구었고. 내 세력 은 강하다.

씩 웃었다.

"바네사. 너는 아직 모를 거다."

내가 얼마나 드높은 위치에 있는 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지금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기회 인지.

"내 이상 가는 동맹은 없다."

만약 있다면 황제, 혹은 연방의 통령 정도일 것이다.

"네가 크라함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마."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은, 하물며 흑마법사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아티팩트를 설계하고 양산하는 것은 막대한 품이 든다.

당연히, 일개 전직 흑마법사에 불과한 바네사는 그 모든 것을 감 당할 수 없다.

하지만 나라면 그 모든 것은 온 전히 감당 할 수 있다.

"재화와 희귀자원이 필요하나? 주겠다."

금화와 희귀금속. 루벤의 창고에서 그득히 쌓여 썩어 넘치는 것들 이다.

"인력이 필요하나? 드워프를 붙 여주지."

영지의 드워프 장인들이 함께한 다면 작업시간을 극도로 단축시킬 수 있다.

"네가 만든 아티팩트들이 전장에서 활용되기를 원하나? 내가 직접 사용해주지. 필요하다면 황제와 군 상부를 포섭하겠다."

만들기만 하고 사용하지 못한다 면 의미가 없는 법. 아티팩트를 군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로비할 것이다.

황제를 설득하고, 주위 군관에게 정치력을 행사한다면. 양산된 아티팩트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잡아라."

나는 손을 뻗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투박한 손으로 향한다.

"동맹을 맺는 거다. 그렇다면 크 라함의 복수를 도와주지."

그녀는 잠시 내 손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돌려 이쪽을 주시했다.

어느새 감정을 정리한 것인지. 덤덤한 얼굴을 한 그녀가 말했다.

"저. 감당 가능하세요? 제가 이래봬도 좀 많이 비싼 인력이라."

"당연히 가능하지."

"그럼, 뭐… 잘 부탁해요."

그녀는 내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마녀 바네사가 내 세력에 합류한다.

* * *

"13군단 편성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제국 북부 야전군 사령관, 데이 비드 컴벨 하비에르 공작.

그가 전투마에 탑승한 채 입을 열었다. 그에 그의 곁을 보좌하던 인사 참모가 대답했다.

"뒤랑텅 보급기지에 집결중입니다. 오늘중으로 병력과 물자이동이 끝나고, 내일 군단 창설식과 군단장 취임식을 진행한다 합니다."

"으음… 그래. 내일인가."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바라봤다. 서류는 한지훈과 자신이 두었던 도상연습과정을 기록해뒀던 기보였다.

그가 중얼거린다.

"마침내 군단장이라."

그의 눈동자가 기보를 훑었다.

과연. 다시 보아도 천재적이다.

마치 상대편의 진형을 꿰뚫어 보는 듯 움직임은 정교했고, 쓸데없는 지휘는 극히 적었다. 시종일관 그가 전장을 압도했다.

"기대되는군."

데이비드의 입가에 어렴풋이 미소가 그려졌다.

무수한 전략경험을 지닌 자신마 저 압도했던 한지훈이었다. 그런 그 가 마침내, 군단 병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과연 한지훈은 어떤 지휘를 보일 까.

그리하여 전쟁사에, 제국의 역사 와 대륙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남 길까.

그에 절로 기대하는 데이비드였다.

그가 그렇게 도상연습 기보를 살 피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 각하."

또 다른 참모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에 데이비드는 시선을 돌려 말을 걸어온 참모를 바라본다.

이번에 말을 걸어온 참모는 작전 참모였다.

그가 보고했다.

"포위가 완전히 완성되었습니다.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바스락.

데이비드는 서류를 잘 접어 품속에 넣어둔 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장의 모습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바람에 휘날리는 무수히 많은 깃발들. 그 깃발들 아래에, 마치 대지 를 뒤덮듯 도열해 있는 제국군. 물 경 십 수만에 달하는 막대한 수의 병력이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전군."

데이비드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마나 어린 목소리가 웅혼하게 뻗어나간다.

보급이 끊긴 카렌의 침공군 주력 은 데이비드의 북부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

그가 이어지시했다.

"전진하라. 카렌의 병력을 궤멸시켜 제국의 강대함을 보여라."

"전진! 전진!"

"기수! 깃발 올려!"

붉은색 깃발이 우수수 솟아오르고, 부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대군이 움직이 기 시작했다.

데이비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음 전투는 카렌 본토에서인 가."

카렌의 정규 침공군은 이로써 전 멸한다.

이제 데이비드는 북부 주력군을 이끌고 전진. 뒤랑텅 보급기지에서 한지훈과 오스카를 비롯한 선발 군단들과 합류한 뒤 카렌 본토를 향 해 북상할 것이다.

데이비드는 미소 지었다.

"한지훈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겠군."

한지훈의 군단 창설식이, 그리고 카렌 본토 침공이 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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