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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92화 (192/390)

192화.

내 몸을 감싸던 황금색 광휘가 점차 사라져 갔다.

끓어오르던 힘도,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전능감도. 순식간에 소멸해간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 엘리스의 권능이 사라진 건가."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한스의 시신이 보인다.

내가 방금 전 죽였던 대적자.

놈은 마침내 죽었고. 더 이상 미 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놈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너무하셨어요. 한지훈 씨."

비척. 니디아가 일어섰다.

퍽 아팠던 것인지. 그녀가 한 손 으로 복부를 감싸 쥐며 표정을 찡 그렸다.

"그렇게 한스를 죽이고 싶으셨나요? 저희는 나름대로 동맹이었는데 . 이렇게 대적하면서까지 한스를 처치하시다니."

나는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신, 눈동자를 옮겨 시야에 떠오른 홀로그램들을 바라본다.

[서브 퀘스트 - '마녀 구출'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40pt]

[추가 정산 포인트 : 20pt]

[대적자 NPC를 처치했습니다.]

[업적 달성!]

[업적 : 대적자 NPC 처치(3)'를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수여 포인트 : 10pt]

보이는 것은 퀘스트 완료창과 업 적창.

한스와 전투하는 와중 니디아는 마녀를 안전한 곳까지 이송했고, 그리하여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더해 한스 또한 처치했기에 대적자 처치 업적을 세워 포인트를 얻 을수도 있었다.

나직이 중얼거려 본다.

"내 정보."

한스가 세계검으로 나를 베었었다. 그에 능력치가 얼마나 하락했을 지, 확인해야만 한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한지훈][북부 제 13군단장]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상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50]

[민첩 167]

[내구 77]

[체력 64]

[마나 134]

(남은 포인트는 70pt 입니다.)

쯧 절로 혀가 차졌다.

한스를 처치했기에, 어느 정도의 능력치는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빼앗겼던 모든 능력치가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소의 포인트가 완전히 사라지 게 되었다.

'염병할 세계검.' 능력치를 빼앗는 아티팩트라니.

경계해야 한다.

"한지훈 씨."

화르륵.

내 옆까지 다가온 니디 아가 정령을 불러들였다. 그녀의 배 후에서 불구슬들이 이글거리며 타 오른다.

물론 그녀의 그런 행동은 나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정령들이 불을 토했다. 그에 한스의 시체가 붉은색 불길에 휩싸여 불타오른다. 매캐한 연기가 일렁였다.

불은 정화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리고 한스는 흑마법에 의해 되살 아난 부정한 생명체.

지금 니디아는 한스의 오염된 시 신을 불태워 정화시키고 있다.

니디아가 한스의 시신을 태우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리 무리해가며 한스를 죽인 거였죠? 한스는 아군이 될 수도 있었어요. 보다 수월하게 시나리오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요."

니디아의 책망하는 듯한 어투.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니디아. 나는 멍청하지 않아."

시선을 돌려 니디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정령을 부려 한스의 시체를 불태우는 한편, 시선은 이쪽으로 향 하고 있다.

이어 말한다.

"너희 엘프가 한스를 전향시키려 한 이유."

물론 새로운 대적자의 등장을 막고, 보다 수월하게 시나리오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사실이다.

하지만 저토록 격렬하게, 엘븐 가디언들로 하여금 나와 전투하게 해가면서까지 놈을 살리려 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내 능력치를 앗아간 놈을 어째서 엘프들이 살리려 했는가.

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내 능력치 또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당연히 엘리스라면 알고 있을 터인데.

그이유. 대충 알 것도 갔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억제할 일종의 보험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나?"

"… 뭐."

니디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녀의 의뭉스러운 반응에 쯧 혀를 찼다.

"너희 엘프도, 여왕 엘리스도. 마음속 깊숙이에선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어."

검증과정은 이미 끝냈다고 생각했다.

과거 포트 갈레이에서도, 굴라덴에서도, 제국 수도에서도. 그동안 나는 수없이 흑마법사의 세력과 전투했으며. 그때마다 놈들을 몰아내승리했다.

하지만 아직 엘프는, 그리고 그 들의 여왕 엘리스는 내 이전 시나리오에서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었다.

흑마법사와 협력해 대지를 불사 지르고 대륙을 오염시키던 이전 시나리오의 나. 제국의 황제 한지훈을 말이다.

"이미 내 사상검증을 끝내 전폭 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음에도. 혹여 나이전 시나리오처럼 흑마법사의 세력에 합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엘리스는 한스를 죽이 지 않고, 아군으로 만들고자했다.

만약 내가 엘프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혹은 흑마법사의 세력으로 전향했을 때 나를 억제할 한 수로 사용하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엘프의 감시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 머리위에 붙어있는 요정 들.

그네들 또한 엘프들이 내 동향을 살피기 위해 붙여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수상한 낌새를 보였을 때 곧장 대응할 수 있도록 감시자를 붙여둔 것이다.

엘리스가 한스를 살리고자 한 것 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세계검을 사용할 수 있는 '대적 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었으니 . 만약의 사태 때 내 억제책으로 효과적이라 여겼을 터.

"솔직히. 불쾌하더군."

그렇기에 불쾌했다.

완벽한 동맹이라 여겼다. 하지만 뒤로는 나를 의심하며 감시하고, 지금에 와서는 만약의 대비책마저 만들려 하고 있으니 .

"불쾌할 수도 있었겠네요. 하지만,"

물론 엘프 측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희 입장도 헤아려 주셔야 해 요 한지훈 씨. 엘프는, 그리고 이 대륙은 당신에 의해서 멸망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왕께서도 당신을 살리 기 위해 격을 희생했죠. 세계수도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요. 엘프라는 종족 그 자체가 약해졌어요. 만약 이름 없는 별, 당신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게 된다면… 저희 엘프는 막을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한스를 살려 나를 견제 하고자 했다?"

"네. 맞아요."

니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한지훈 씨. 엘프는 당신을 믿고 있어요. 저희 여왕께서 격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당신을 살린 것을 잊지 마세요."

그녀의 말대로 엘프들은 나를 살 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보험을 찾고 있었을 뿐.

"아무리 동맹이라 한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나요?"

만약의 사태.

내가 배신할 때를 뜻한다.

"지금까지처럼 적극적으로 흑마법사와 적대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을 거예요."

니디아는 그리 말하고는 정령들을 돌려보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한스의 시체를 바라봤다.

놈의 시신은 완전히 불에 타 회색 잿더미로 화해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직이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온다. 놈의 잿가루가 날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흑마법사 놈과 손을 잡을 일. 절대 없을 거니까."

전투가 끝났다.

우리는 제국군 본영으로 귀환했다.

"무사히 돌아왔군. 한지훈 군단 장."

귀환한 직후. 나는 군단 막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해 있었다.

오스카를 비롯한 여러 단장급 장 성들.

그중 가장 선두에서 있던 오스카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꽤 격렬하게 싸웠다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와 전투했고, 죽을 뻔했다. 엘리스와 엘프들의 조력으로 가까 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내 능력치를 희생했다.

피해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보병대는 절반이 전사하거나 중 상을 입어 전력에서 제외. 기사들 또한 약 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능력치의 하락, 엘프의 약화, 그리고 제국군 병력의 손실.

큰 피해였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값어치는 있었다.

"마녀는 회수했다."

마녀 바네사. 그녀를 마침내 구출해냈고, 이쪽에서 보호하게 되었다.

덕분에 흑마법사를 좀 더 유리하게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 한지훈 군단장. 그 마녀라는 인물, 그자가 정말 저 흑마법사들의 마법을 억제할 수 있는 건가?"

"그래."

하지만 오스카를 비롯한 군단장 들은 차마 믿기지 않는 모양. 그들 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고작 일개 전직 흑마법사 하나가 그토록 커다란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여기긴 힘들 터이니.

허나 두고 보면 될 일이다.

나는 수정구를 집어 들어 통신을 연결했다. 통신하고자 하는 곳은 나 의 영지, 루벤.

- 한지훈 님. 랑스입니다. 어인 일이십니까?

영주대리 랑스와 연결되었다.

곧장 지시한다.

"랑스. 드워프들을 보내줘. 만들어야 할 것이 있다."

바네사와 드워프들이 협력한다면, 흑마법사 놈들을 억제할 아티팩트 를 만들 수 있다.

드워프들이 이곳, 뒤랑텅 보급기 지로 향한다.

- 여왕님. 몸은 괜찮으시나요?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엘븐 가디언 니디아의 목소리였다.

그에 엘프 여왕 엘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몸은 괜찮아요. 격의 손실은 컸지만,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네 요."

대답하는 그녀는 예전과 똑같이 안대를 착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 있었다.

"말 그대로 목숨만 부지했지만 말이에요."

그녀는 손을 더듬거리고, 주위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 거동하고 있었다.

똑같이 안대를 착용했음에도, 이전에는 별다른 보조 없이 수월하게 움직였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다른 모습.

"저는 모든 권능을 잃었어요."

한때 모든 지성체들 중 정점에 이르렀던 그녀의 격은 완전히 하락 해 있었다.

한지훈을 구원하기 위해, 무리하 게 권능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기에 엘리스는 모든 힘을 잃은 상태였다.

하늘을 바라봐 시나리오와 운명을 살피는 것도, 세계수와 교감하는 것도, 모든 엘프들과 연결되는 것 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은 시력까지 완전히 잃어, 다른 엘프들의 보조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니 .

그녀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니디아. 제게 더 이상 여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마세 요."

- …여왕님.

"저는 자격을 잃었어요."

엘프의 여왕은 그저 여왕으로 추 대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수와 교감하며, 모든 엘프들 중 가장 드높은 격을 지닌 존재.

그것이 바로 엘프 여왕이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격을 상실해, 일반 지성체의 그것으로 추락했으니 . 여왕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 게 된 상황.

그녀는 더 이상 여왕이 아니게 되었다.

엘리스가 문득 말했다.

"니디아. 그대는 이제부터 여왕대 리예요."

- 여왕님. 그게 무슨 말씀….

"니디아가 다른 모든 엘프들 중 가장 높은 격을 지니고 있어요. 한지훈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나리오를 따라간 덕분이겠지요."

여왕 엘리스가 격을 잃은 지금. 니디아가 가장 높은 격을 가지게 된 상황.

그렇기에 엘리스는 니디아에게 말하고 있다.

"공백인 여왕의 자리를 대신해, 엘프들을 이끌어주세요."

모든 힘을 잃은 자신 대신 나머지 엘프들을 이끌어 달라고. 여왕 대리의 자리를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그에 니디아는 수정구 너머에서 침묵했다.

여왕대리라니. 그녀로선 감히 생각도 해본적도 없는 일이었다.

여왕이란 고귀하고도 성스러운 존재. 일개 엘프들중 그저 정령술로 대성한 것에 불과한 니디아로서는 까마득히 먼 자리였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엘프가 약화되었으며, 엘리스는 격을 잃었다. 세계수 또한 대부분의 힘을 소모했다.

명실상부 종족의 위기인 상황.

누군가가 정점의 자리에 올라서 그들의 종족을 이끌어야 한다.

엘리스가 싱긋 웃는다.

"엘프를, 그리고 세계수와 중앙 대륙을 잘 부탁해요. 니디아 여왕대 리."

이제부터 엘프 전체가 니디아의 명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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