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콰아아앙!
한지훈의 몸이 충격에 날아가 배 후의 잔해더미에 처박혔다. 굉음이 울리고, 흙먼지가 확 솟구쳤다.
"…하하."
한스 요한바르첸. 방금 전 한지훈을 검으로 베었던 이.
그가 나직이, 질척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은 곧 광소로 화했다.
한스는 검은색 장검. 세계검을 드높이 치켜들었다. 붉은색 광휘가 사이한 빛을 번들거리며 그 존재감을 발했다.
그가 크게 외친다.
"이것이! 네놈이 강한 이유였어!"
한스의 눈동자에 어렸던 붉은색 안광이 더더욱 진해져 갔다.
방금 전 한스는 한지훈을 베었다. 세계검이라는 격 이상의 아티팩트를 사용해, 유저인 한지훈을 베 고. 그의 살갗을 그어 피를 흘리게했다.
그러자 이변이 일었다.
한스의 존재감이 강해졌다. 그의 전신에 어렸던 날카로운 기세는 한층 묵직해졌으며, 검날에 어려 있는 핏빛 오러는 더더욱 격렬해졌다.
능력치의 흡수.
그는 한지훈을 세계검으로 베어, 격 일부를 흡수했다.
"시스템의 가호…!"
그가 고개를 내려, 저기 건물잔 해 무더기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구덩이를 바라봤다.
방금 전 한지훈이 튕겨나가 충돌했던 공간.
놈은 저곳에서 충격에 빠져 뒹굴 거리고 있을 것이리라.
한스는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공기가 찢겨나가는 굉음이 울렸다. 그의 세계검이 기다란 핏빛 궤 적을 그리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밀려 날아가는 흙먼지. 시야가 환해졌다. 덕분에 한스는 볼 수 있었다.
"한지훈!"
건물 잔해 무더기 사이에서 비척거리며 일어서는 한지훈의 모습.
과연 제국의 영웅이라는 것인가. 그는 일격을 허용했음에도, 충격에 입가에서 핏물을 질질 흘리고 있음 에도. 그의 눈동자에 어린 전투의지는 전혀 죽지 않았다.
마치 언제까지나 싸울 수 있다는 듯,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한지훈의 검은색 눈동자.
철그럭. 한지훈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장검에서는 푸른색 오러 광이 격하게 타오르고 있다.
한지훈의 고개가 올라가, 한스와 마주쳤다. 검은색 눈동자와 붉은색 안광이 서로를 주시한다.
한스가 큭큭 웃었다.
"네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한스가 자세를 낮췄다. 돌진 자세. 어께를 내리고, 하체를 긴장시킨다. 검날은 전방으로. 시선은 정면.
그는 한지훈에게 돌진해, 다시금 공격하고자 한다.
"네놈의 세력, 목숨, 그리고 영혼 과 그 격까지!"
화르르르륵!
그의 몸뚱이에 일렁이던 검은색 기운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뒤 이어 더욱 진한 빛을 발하는 검날 의 오러.
그가 검날을 당긴다.
"모조리 내가 차지할 것이다!"
한스는 한지훈을 죽여버리고자 한다.
자신이 그의 대적자이기에.
조국의,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완수해야 하기에. 그리고 그의 격을 빼앗아 다 끝나가는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한스는 운명을 받아들였고, 세계 검을 손에 쥐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한지훈에 게로 향한다.
"죽어라."
콰아아아앙!
한스가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신영이 붉은색 잔상을 남기 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격통에 시달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놓쳐 바닥에 뒹굴고 있던 검을 쥐어들고, 간신히 앞을 바라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시야의 일부를 좀먹듯 자리해 있는 홀로그램.
[능력치 '민첩'이 12하락합니다.]
능력치가 하락했다고 한다.
으득 이를 갈았다.
"세계검이 내 격을 빼앗는다는 말. '이런' 의미였나."
설마 능력치를 빼앗을 줄이야.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 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충격에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네놈?을 죽여 모조리 취할 것이 다!"
적의 광오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 렸기 때문에.
나는 시선을 홀로그램 너머, 목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을 바라본다.
그곳에 적이 있다.
"한스."
나의 대적자. 한스 요한바르첸.
녀석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흉흉 한 기세를 발하고 있다.
"네놈의 세력, 목숨, 그리고 격과 영혼, 시스템의 가호까지!"
전신에 일렁이던 검은 기운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화했다. 안광은 진 해졌고, 적색 오러광은 보다 격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놈은,
"모조리 내가 차지할 것이다!"
놈은 돌진자세를 취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처럼.
나는 위기를 감지했다. 그렇기에 대비했다.
자세를 낮추고, 하체에 힘을 주었다. 근육을 긴장시켰다.
언제든지 회피하기 위해서.
"죽어라."
한스가 그리 읊조린 직후.
콰아아앙!
놈이 지면을 박차 이쪽으로 돌진 해왔다.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마치 바람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쇄도해오는 놈. 놈의 움직임은 직전 보다도 훨씬 빨라져 있었다.
대략 민첩 능력치 12정도만큼.
내 능력치를 온전히 흡수한 거다.
"염병."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옆으로 도 약했다.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장소에, 붉은색 궤적이 틀어박힌다.
콰콰콰콰쾅!
커다란 충격이 일었다. 굉음이 울리고, 장엄한 파동이 공간을 뒤흔 들었다.
지랄같이 강하다.
놈의 공격을 피해낸 것은 순전 스킬 덕분이었다.
만약 내게 집중 스킬과 전투분석 스킬이 없었다면. 나는 방금 전공격으로 순식간에 심장이 꿰뚫려 절 명했으리라.
집중스킬로 가속된 사고 속.
가열차게 고뇌했다.
'한스는 강하다.'
놈은 본래 강했다. 내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덕분에, 내가 강해지는 만큼 놈 또한 강해졌다.
'그리고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지금 놈은 그 강함이 절 호조에 이른 상태다.
세계검이라는, 격 이상의 아티팩트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놈은 내 신체를 베어 격을 훼손 하고, 내 능력치를 흡수하고 있다.
'앞으로도 강해지겠지.'
더해 놈의 성장은 아직까지도 끝 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녀석에게 공격을 허용 한다면. 그때마다 나는 능력치를 잃을 것이고, 놈은 내가 잃은 능력치 를 온전히 흡수해 보다 강해질 것 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몸을 던져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는 와중, 입을 열었다.
"민첩. 30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민첩'을 30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3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아직 내게는 90pt에 달하는 여유 포인트가 있다.
나는 그 포인트를 모조리 사용해 버릴 심산이다.
"내구. 15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내구'를 15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15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 겠습니까?]
[수락/거절]
홀로그램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지금은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므로.
솔직히, 포인트는 상황을 보아가 며 소모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한지후우우운!"
당장 모든 포인트를 갈아 넣지 않는다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 될 테니까.
콰르르르르릉!
녀석의 검격이 스쳐 지나갔다. 몸을 비틀어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집중 스킬을 극성으로 운용, 사고를 극도로 가속했기에. 그리고 전투분석 스킬의 도움을 받아 녀석의 움직임을 미리 읽어냈기에 가능한 회피였다.
후욱, 숨을 내쉬며 이어 읊조린다.
"체력. 15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체력'을 15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15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사실 숙고해서 결정한 포인트 분 배는 아니었다.
능력치 하나하나의 효율을 따져 가며 상향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직감에 의지해, 놈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가며. 모든 포인트 를 소모해버린다.
"마나. 30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마나'를 30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3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마지막 홀로그램이 떠오르는 그때.
"죽어어어!"
한스가 검을 휘두른다.
콰콰콰콰쾅!
지면이 부서지고, 장대한 충격파 가사방천지를 휩쓸었다. 붉은색 궤 적이 그어진 곳을 따라 공간이 일 그러진다.
놈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모두 수락."
내 능력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다.
[남은시간 : 05: 24]
가진 포인트를 모조리 소모했지만, 이것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일단 최대한 발악해볼 생각이다.
검을 휘둘렀다.
청색 궤적과, 붉은색 궤적이 서로 격돌했다.
"이름 없는 별."
모든 엘프들의 지도자, 세계수와 완전감응하는 유일한 지성체. 엘프 여왕 엘리스.
"아직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의 바로 앞에 자리해 있는 영물을 바라본다.
세계수.
이 세계의 모든 마나와 자연력을 순환시키는 거대한 영물. 모든 지성 체들의 어머니. 엘프와 요정족이 수 호하는 격 이상의 아티팩트.
"세계수여. 당신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란 거. 아실 거예요."
그녀는 세계수의 뿌리를 향해 다 가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안대를 푼 엘리스의 눈동자는 황금색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성스럽고도 화려한 안광.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제게, 그리고 이름 없는 별 한지훈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그녀는 한지훈을 돕기 위해 자신 의 봉인을 해제했고, 세계수의 힘을 빌리려 하고 있다.
엘리스가 권능을 발현했다.
번쩍!
세계수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그녀의 눈동자처럼 타오르는 듯한 황금빛이었다.
이형이 기운이 중앙대륙, 엘프의 숲에서 솟구친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스킬을 운용했다.
사고가 극한으로 가속되고, 시야 속 적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전투분석의 힘을 빌렸다.
녀석의 움직임을, 시선을, 근육의 맥동을 읽어 나아갈 검로를 간파해냈다. 한스의 움직임을 한 발자국 앞에서 읽어 대비했다.
집중스킬과 전투분석 스킬이 있었기에. 그리고 막대한 양의 포인트 를 갈아 넣었기에.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점차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느리다! 너무나도 느리다! 한지훈!"
콰아아앙!
녀석이 검을 휘둘렀다. 놈의 검격은 이전보다도, 방금 전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품고있었다.
보다 빠르게, 더욱 정교하게 뻗 어져 나오는 붉은색 궤적.
뒤로 물러나 피해내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녀석의 민첩이, 내 그것을 아득 히 상회했기 때문에.
이미 여러 번이나 녀석에게 공격을 허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걱!
놈의 검날이 내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간다. 붉은색 핏물이 피슉 튀어 올랐다.
"크윽…!"
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끔찍한 고통이다.
역시나 단순한 신체적 고통은 아니다. 마치 영혼이 뭉텅이로 베어져 나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이해 못할 상실감이 심상을 그득 메운다.
- 띠링!
[능력치 '마나'가 7하락합니다.]
뒤이어 떠오르는 능력치 하락 홀로그램. 이미 수없이 보았다.
이번에 빼앗긴 것은 마나였다.
"한지훈!"
놈이 내 이름을 외치며 검날을 반전시킨다. 이번에 노리는 것은 옆구리.
방어하기 위해 검날을 세웠다. 하지만 역시나, 막아낼 수 없었다.
콰직!
녀석의 검격을 막을 정도의 능력치가,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쿨럭!"
장기를 베였다. 핏물이 울컥, 식 도를 타고 올라왔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다.
반격해본다.
파앙!
검을 휘둘렀다.
내 검격은 이전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도, 공간을 수놓는 선명한 푸른색 궤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능력치를 놈에 게 빼앗겼기 때문에.
내 무력은 이전에 비해 보잘 것 없어진 상태였다.
"그 잘난 시스템의 가호가 사라 지는 느낌이 어떠나!"
한스가 가볍게 내 공격을 피해내며 그리 이죽였다. 그에 나는 분노 를 느꼈다.
놈의 저 무력.
저것은 본래 내 것이었다. 내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포인트를 획득해, 능력치에 투자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스는 세계검으로 내 능력치를 손쉽게 빼앗고 있다.
분하다.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른다.
파아앙!
조금 더 강한 힘이 실린 일격.
내 검날이 미약한 오러를 품은 채, 녀석을 향해 쇄도해간다.
하지만 역시나. 내 공격이 녀석 의 살을 베는 일은 없었다.
채애앵!
녀석이 손쉽게 내 검격을 튕겨냈다. 그 반발력에 오히려 이쪽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아무리 발악해봐야, 네놈이 죽는 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차마 부정할 수 없다.
나 또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한스의 강대한 무력. 포션을 섭 취할 시간 따위는 없고, 지원해줄 동료 또한 이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믿고 있었던 내 능력치와 포인트 들은 이미 적지 않은 양이 한스에 게 빼앗긴 상황.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은 강해지고 있고, 나는 약해져갔다.
끝이 다가온다.
"순순히 죽어라."
퍼억!
녀석의 검날이 빈틈을 파고들어 내복부를 베고 지나갔다.
"…크으윽!"
다시금 예의 강렬한 고통이, 그 끔찍한 상실감이 신체와 영혼을 뒤 흔들었다.
[능력치 '내구'가 8하락합니다.]
능력치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기가 생겼다. 놈이 손쉽게 내 모든 능력치를 빼앗게 놔둘 수는 없다.
발악했다.
"오오오오오오!"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악을 지르며 텅 빈 심장 속 한줌에 불과한 마나를 쥐어짜냈다.
하지만 역시나,
"쓸모없는 발악을!"
역부족이다.
피슉. 놈의 공격에 허벅지를 베었다. 핏물이 솟구친다.
[능력치 '민첩'이 18하락합니다.]
내 몸이 더욱 느려진다.
느려지는 건 고통에 몸이 굳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능력치를 놈에게 빼앗겼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하하하하!"
녀석이 광소하며 가열차게 검을 휘둘러 왔다. 붉은색 궤적들이 수평 을, 수직을, 사선을 그린다.
[능력치 '근력'이 5하락합니다.]
내 몸에서 핏물이 솟구친다.
여려 유려한 궤적이 허공을 난자 하고, 내 몸 곳곳을 갈랐다.
[능력치 '체력'이 7하락합니다.]
놈은 너무 강했다.
막을 수 없다. 피해낼 수도 없다. 내 몸에 크고 작은 자상들이 아로 새겨져갔다. 입고 있는 군복이 완전히 피에 절여진다.
[능력치 '근력'이 5하락합니다.]
검을 휘둘러 발악하는 와중. 문득, 정신이 아득해져감을 느꼈다.
피를 많이 흘린 것일까.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서늘한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능력치 '내구'가 9하락합니다.]
팔다리가 굼뜨게 움직였다.
[능력치 '마나'가 23하락합니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 끝이다. 놈."
한스가 그리 읊조리며 검날을 밀 어넣었다.
퍼억!
녀석의 세계검이 내복부를 꿰뚫었다. 내장이 모조리 끊어지는 것 같다.
[능력치 '민첩'이 11하락합니다.]
능력치가 끝없이 빠져나간다.
콰드드득.
한스가 검날을 비틀어 내내장을 난자했다.
끔찍한 고통이 척수를 타고 오른다.
비명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떨?다.
"하하하하!"
놈이 광소하며 검날을 뽑았다. 그러자 내 몸뚱이가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뻥 뚫린 복부에서는 핏물이 하염 없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드디어!"
한스가 검을 들어 올려, 이쪽으로 겨눈다.
이제 곧 녀석은 검을 밀어 넣을 것이고, 내 모가지에 검날이 들이박 할 것이다.
"드디어 네놈을 이겼다!"
나는 멍한 눈으로 바로 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한스 요한바르첸. 게임 속에서도, 이곳에서도 내 대적자인 이.
놈은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고 있다.
하긴, 여태껏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놈이 난생 처음으로 나 를 무릎꿇렸다.
즐기고도 싶겠지.
' 패배.'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이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뒤. 나는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가진 능력과 포인트를 소모해 난관을 헤쳐 나갔다.
그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한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승리와 영광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상황에서는 도무 지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한스는 내 대부분의 능력치를 모조리 흡수했다.
녀석은 너무 강했다.
끝까지 발악해 노력했음에도, 이 길 수 없다.
"그동안 즐거웠다."
놈이 검날을 내 목에 가져다 댔다. 검은색의, 금속조차 아닌 이상 한 감촉이 목덜미에서 느껴진다.
"네 격은 내가 제대로 활용해주 마."
콰드드득.
놈의 검날이 목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뜨거운 핏물이 분수처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제국도, 네놈의 세력도, 인류도! 네 격을 이용해 모조리 부숴주지."
시야가 완전히 까맣게 물들었다. 그와 함께 온 감각이 소멸해가는 것이 느껴진다.
"볼라바아를 위하여 ."
눈이 멀고,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 촉각 또한 느껴지지 않다. 생각 이 이어지지 않는다.
의식이 진창 아래로 가라앉아간다.
나는 내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 띠링!
분명 청각이 완전히 나갔을 터인 데, 익숙한 알림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내 영혼을 울리는 것처럼 깨끗하고도 선명한 소리.
그와 동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둑한 시야 속.
[세계수의 가호'이 발현되었습니다.]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 띠링!
['엘프 여왕의 권능'이 발현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 까.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음이 줄지어 울리고,
[세계수의 축복'이 '엑스트라 스킬 : 집중'과 반응합니다!]
['세계수의 축복'이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과 반응합니다!]
['세계수의 축복' 이 '능력치 : 근력'과 반응합니다!]
['세계수의 축복' 이 '능력치 : 민 첩'과 반응합니다!]
…
무수히 많은 수의 홀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