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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88화 (188/390)

188화.

놈이 돌진해온다. 공기를 찢어발 기며 다가오는 녀석의 검날.

그것이 붉은색 궤적을 그리며 짓 쳐든다.

너무나 빠른 검격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성장한 만큼 녀석의 능력 또한 증폭되었을 터이니.'

단순한 능력치라면 나와 놈은 서로 비등할 것이리라.

근력, 민첩, 체력, 내구, 마나.

내가 능력치를 상향해 강해진 만큼, 놈 또한 성장해 있다.

녀석은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났 기에. 내가 성장한 만큼 더욱 강해 진 것이다.

하지만 놈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킬.

시스템의 가호를 직접적으로 받는 나와 다르게, 한스에게는 스킬이 없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스킬을 이용한다면. 제아무리 녀석이라 한들 나를 이기지 못할 것 이리라.

그리 생각했다.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콰아아아앙!

푸른색과 붉은색. 서로 다른 이 형의 기운을 품고 있는 양 검이 맞 닥뜨렸다.

커다란 검합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

"커헉!"

나는 충격에 밀려 날아가, 배후 의 건물 잔해에 처박혔다.

콰앙!

등짝이 돌무더기 사이에 틀어박힌다. 부스스 떨어져 내리는 흙먼 지.

"… 염병!"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 키려했다. 하지만 한스는 내게 그 럴 틈을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죽어어어어!"

붉은색 궤적이 내려쳐진다.

수직 베기. 멍 때린다면 대가리 부터 가랑이까지 반쪽으로 갈라진다.

몸을 일으키는 것을 멈추고, 옆 으로 굴렀다.

콰과과과광!

지면이 흔들리고 육중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든다.

다시금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건물 파편무더기.

'말도 안 돼.'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놈은 분명 내가 성장하는 만큼, 나를 대적할 수 있도록 성장한다 들었다.

그 말인 즉 적어도 동률이지, 놈 이 이토록 나를 압도할 수는 없을 터인데.

"죽어! 죽어!"

놈의 검날이 다시금 이쪽으로 짓쳐든다. 집중 스킬로 사고가 가속되 었음에도 너무나도 빠르게 느껴지는 놈의 검격.

다시금 지면을 굴러 피해낸다.

콰아아앙!

흙먼지가 퍽 튀어 오르고, 지면 이 충격에 진동한다.

나는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놈과의 거리를 벌린다.

'어떻게 된 일이지.'

후욱. 숨을 내쉬며 한스의 모습을 주시했다.

검은색 기운, 질척한 핏빛 안광.

보기만 해도 불쾌한 외양과 묵직한 공기.

내 시선이 놈이 쥐고 있는 검은색 장검에게 향한다.

'세계검.'

녀석이 들고 있는 장검. 세계검.

흑마법사들이 만들어낸 격 이상 의 아티팩트다.

그리고 그 세계검에 어려 있는 붉은색 기운.

예사롭지 않았다.

'점점 기운이 격렬해지고 있어.'

저 검은색 장검에서 일렁이는 붉은색 기운은 기세를 점차 키워가고 있었다.

더욱 격렬하게, 보다 강렬하게.

처음에 내 오러와 비슷한 밝기였 던 그것은 어느새 훨씬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마치 한스의 격렬한 감정에 호응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냐!"

녀석이 달려온다.

고작 찰나에 불과한 시간. 하지만 집중 스킬로 인한 사고의 가속 덕분에 생각할 틈은 있었다.

'세계검이 한스의 힘을 증폭시키 고 있다.'

콰아아아앙!

아슬아슬하게 놈의 검날을 피해 냈다.

그러는 와중 놈의 모습을 살핀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한스의 모습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퍼석했던 피부는 이제 아예 말라비틀어져가 고 있다.

눈동자에 어렸던 복잡한 감정은 사라지고, 오직 분노와 광기만이 소용돌이 쳤다.

그에 반해 더더욱 강렬한 기세를 발하는 놈의 검날.

'무언가를 소모해 힘을 증폭시키는 건가.'

쿠우우우웅!

지면에 틀어박힌 검날을 피해 도 약하며 그리 생각했다.

급속도로 한스의 신체가 무너져 가고 있다. 아니, 놈의 눈동자를 보 건대 어쩌면 정신까지도 피폐해지 고 있을지 모른다.

추측하건대 저 세계검은 한스의 무언가를 소비해 힘을 증폭시키는 게 아닐까.

생명력이라든지 , 흑마나라든지 .

혹은 영혼이나 격이라든지 말이다.

"예전부터 네놈은 그랬지!"

놈이 소리 지르며 이쪽을 향해 돌진해온다.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 를 쥔 채, 허리를 비트는 녀석.

크게 휘두르려는 것 같다.

나는 자세를 낮췄다.

"항상! 내 앞에서 도망만 쳤어! 겁쟁이새끼!"

녀석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마치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것처럼. 아주 크게 말이다.

거대한 반월 모양의 궤적이 그려 진다.

콰콰콰콰콰콰쾅!

장엄한 충격파에 땅이 갈아엎어 지고, 흙먼지가 솟구쳤다.

단순한 검풍만으로 지면을 갈아 엎어버릴 정도의 힘이라니.

명백히 비상식적이다.

놈이 크게 소리친다.

"정정당당하게 붙어라! 한지훈!"

세계검이라는 사기템을 들고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다니.

양심이란 게 있는지.

"죽어어어!"

녀석이 재차 공격한다. 좌하단에서 우상단을 가르는 붉은색 궤적.

사선 베기다.

콰아아아앙!

검신을 들어 올려 간신히 막아냈다. 내 몸이 충격에 밀려 위로 부 웅 떠오른다.

잠깐의 부유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그리고 그때, 한스 놈은 그 능력이 얼마나 증폭된 것인지 날아가는 내 바로 코앞까지 돌진해온 상태였다.

'틀렸다.'

나는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죽어!"

녀석의 검날이 쇄도해온다.

나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피해 내고자했다.

당연하게도 피해낼 수 없었다.

서걱!

"크윽!"

가까스로 치명상은 피했지만 왼 팔을 베였다.

어째서일까. 집중 스킬이 발현되어 있음에도 강렬한 고통이 올라왔다.

그 가공할 만한 고통에 절로 이 가 악물렸다.

느껴진 것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 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영혼이 베인 것만 같은, 피부나 장기의 아픔이 아닌 이형의 고통이 내 심상을 그득 메웠다.

촤악!

붉은 핏물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그리고,

- 띠링!

[능력치 '민첩'이 12하락합니다.]

난생 처음 보는 홀로그램이 떠올 랐다.

* * *

엘븐 가디언 니디아. 그녀는 바 네사를 들쳐 업은 채 남쪽으로 향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이곳저곳이 부서져 있는 도시의 경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불길이 치솟는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사이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사령병사들.

파앙!

그녀는 사령병사들을 무시하고 나아갔다. 그것들은 아티팩트에 의 해 무력화된 상태였기에 굳이 상대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녀의 앞길을 막아서는 적 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엘프 년이다!

- 공격마법을 운용하라! 마녀를 빼앗아야해!

이곳저곳에서 흑마법사들이 나타나 공격마법을 펼친다.

일렁이는 검은색 기운. 놈들이 마법을 캐스팅하고, 곧다수의 공격 마법이 완성되어 쏘아졌다.

콰과과과광!

검은색 궤적 수십, 수백여 개가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는 하급 마법에 불과했 지만, 저토록 많은 수의 마법을 직 격당한다면 무사하지 못할 정도의 공격.

그러나 니디아는, 그리고 그녀가 둘러메고 있는 바네사는 무사했다.

"피라미 놈들이!"

니디아를 호위하는 다른 엘븐 가디언들이 있었기에.

번쩍!

타냐가 검을 내리그었다. 오러서 린 강렬한 검격에 순식간에 파훼되는 흑마법사들의 공격마법.

허공에서 검은색 궤적들이 퍽퍽 터져나간다.

"방벽을 걸어드리지요."

직후 마게브가 마법을 발현했다.

푸른색 방벽이 생성돼 엘븐 가디언들에게 씌워졌다.

콰콰콰콰쾅!

타냐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공격 마법들은 방벽에 가로막혀 폭발한다.

한지훈과 헤어진 뒤 벌써 수십 번이나 일어났던 일이었다.

바네사를 무사히 남쪽으로 옮기 려는 엘븐 가디언들.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흑마법사의 무리.

나타나는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그 격이 하급에 불과했으나, 간간히 상급이나 최상급 또한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긴장을 풀 수 없는 그들이었다.

엘븐 가디언들은 쏟아지는 흑마법사의 공격을 돌파한다.

"…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니디아는 그리 외치며 속도를 높였다. 그녀의 뒤를 따라 타냐와 마게브가 붙는다.

한지훈과 헤어진 지 두 시간이 거의 다 되었고, 그동안 그들은 계속해 이동해 어느새 도시 외곽을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안전한 도시 밖에 도착하고, 바네사를 제국군의 손에 넘겨주기만 한다면, 맡은 임무를 완료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계속해 움직이고 있는 그때였다.

- 니디아.

목소리가 들렸다.

온화하고도 따스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높은 위엄을 두른 기품 있는 목소리.

모든 엘븐 가디언들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여왕님."

엘프들의 여왕 엘리스.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통해 연락해온 것이다.

엘리스가 말했다.

- 니디아. 이름 없는 별이 대적자와 전투중이에요.

"… 역시. 그렇나요."

- 네.

엘리스의 말에 니디아는 표정을 굳혔다.

대적자 한스 요한바르첸.

니디아와 엘프들은 이전부터 그 를 경계해왔었다.

- 운명이, 세계의 각본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어요. 세계검이 한지훈 씨의 격을 훼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가 세계검을 다루기 때문에.

흑마법사 크라함이 수많은 인명을 갈아 넣어 만든 아티팩트.

마나도, 자연력도, 시스템의 간섭 도. 어쩌면 운명마저 절삭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티팩트다.

대적자인 한스가 세계검을 운용 한다면, 이 세상의 주인공인 한지훈 이라 한들 위험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여왕님?"

니디아는 초조한 얼굴로 그리 물었다.

어찌해야 하냐고. 세계검을 운용 하는 한스에 맞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고 말이다. 그에 엘리스가 대답한다.

- 바네사를 제국군에게 넘긴 뒤 곧장 이름 없는 별에게 가세요. 니 디아의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는걸요."

- 위치는 곧 알 수 있어요.

엘리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

쿠구구구….

장엄한 소음이 들렸다.

그에 니디아는 소음이 울린 방향을 바라봤다. 도시의 서쪽, 한지훈 이 갔던 방향.

"… 맙소사."

그곳에는 검은색 기운이 솟구치 고 있었다.

마치 암흑색 기둥처럼. 지상에서 저 머나먼 천상에 이를 정도로 드 높이 말이다.

- 니디아.

그 장대한 광경에 니디아가 멍한 눈을 하는 것도 잠시.

- 저는 안대를 풀었어요.

"여왕님?!"

니디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급히 되물었다.

"정말 봉인을 푸신 거예요?!"

- 네.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왕 님이…!"

- 필요한 일이에요. 니디아.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엘리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 결정 한 듯. 단호하기도 하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제목숨과 격이 위험해진다 한 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여왕님…."

- 이름 없는 별을 여기서 잃을 수는 없어요. 그는 이 세상의 주인공인걸요.

니디아는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곧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 또한 필요한 일인 것을 알 고 있으므로.

- 이름 없는 별의 격이 완전히 훼손되는 것만은 막아야 해요.

엘프 여왕 엘리스는 한지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봉인했던 격을 해방할 생각이었다.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한다면 그녀의 목숨이, 심지어 영혼이나 격과 같은 목숨 이상의 것마저 사라질 수 있다.

니디아는 나직이 대답했다.

"…여왕님. 부디 무사하세요."

- 네. 니디아도요.

통신이 끊겼다.

니디아는 고개 돌려 도시 서쪽, 검은색 기둥이 치솟은 곳을 바라본다.

"한지훈 씨…."

저곳에 한지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검을 운용하는 한스 요한바르첸과 격렬한 전투를 하고 있으리라.

그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서 임무를 마치고 한지훈에게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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