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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86화 (186/390)

186화.

콰앙!

지면을 밟고 도약했다.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는 배경. 맞바람이 뺨과 이마를 스쳐 지나가고, 내 몸이 앞 으로 나아간다.

멍하니 읊조렸다.

"두 시간이라."

눈동자를 굴려 시야 한켠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님은 시간 : 107: 34]

엘븐 가디언들이 바네사를 안전 한 곳까지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 이 약 두 시간. 그때까지 열심히 흑마법사 놈들의 어그로를 끌어줘 야 한다.

피식 웃었다.

"두 시간이라. 할 만하네."

다른 이들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흑마법사 천을 상대로 두 시간을 버티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내게는 시스템의 보정이, 그리고 130pt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포인트가 있으니까.

나직이 중얼거린다.

"민첩. 20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민첩'을 20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2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 겠습니까?]

[수락/거절]

130포인트를 한번에 갈아넣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 선택할 필요는 없으니까.

상황을 보아가며 포인트를 유동 적으로 사용할 심산이다.

일단은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민 첩을 상향.

"수락."

익숙한 변화를 느꼈다.

신체가 이전보다 빠르게, 더욱 기민하게 움직이는 감각.

발놀림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 경쾌해졌다. 신경의 반응속도가 개선되었다. 더 짧은 시간동안, 더 많은 일을 할수있게 되었다.

[민첩 173]

민첩이 173이라.

역시나 극도로 편중된 능력치가 아닐 수 없다.

다른 대부분의 능력치들은 50선에서 놀고 있는데, 민첩은 무려 세배에 달하다니.

물론 나는 민첩만을 상향시킬 생각이 없었다.

"내구. 20포인트 상향."

- 띠링!

['능력치 : 내구'를 20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2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민첩 능력치가 상승한 만큼, 신체가 그 격한 움직임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내구를 키운다.

"수락."

다시금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음미했다.

피부가, 근골격이, 그리고 내부의 장기들마저 강건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신체가 더 많은 충격을 견 딜 수 있게 진보한다.

민첩과 내구의 상향.

나는 내 전투력이 이전보다도 월 등히 증가한 것을 느꼈다.

쯧 혀를 찼다.

"군단 지휘술. 찍고 싶었는데 ."

지금껏 열심히 포인트를 아낀 이유가 군단 전투지휘술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흑마법사 놈들과 전투하게 된 덕분에 기껏 모아놓은 포인트를 소모하게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투자한 만큼 톡톡히 돌려받아주 마."

이번 전투에서 활약한 만큼,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게 될 테 니까.

콰앙!

지면을 밟아 도약한다. 능력치의상향 덕분에 더 빠르게 움직이는 나의 신체.

고개를 들어올려 전방을 바라본다.

- 놈이다!

- 각 단원들. 내지휘에 따라 공격마법을 준비하라.

- 죽여버려!

반쯤 무너져내린 건물의 잔해 너머 보였다.

지긋지긋한 검은색 로브를 뒤집 어 쓴 수십의 인영들.

흑마법사.

"죽이다니. 누가 누굴."

쾅!

발을 굴려 다시금 가속. 내 몸이 급속도로 놈들을 향해 접근해간다.

웅웅웅웅웅웅!

검은색 기운을 풀풀 피워올리며 공격마법을 준비하는 흑마법사들.

역시나 대부분은 하급인 것일까. 놈들의 기세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기껏해야 저 십 수명을 지휘하는 지휘마법사가 그나마 중급의 격에 달해 있는 정도.

손쉬운 상대다.

스르릉. 검을 뽑아들었다. 내 날카로운 검면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 인다.

"죽어라."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강렬한 파공성이 울리고, 청색 궤적이 허공에 아로새겨졌다.

검은색 핏물이 퍼억 터져나온다.

- 놈을 죽여라!

- 악마를 죽여 볼라바아의 위대 한 힘을 보여라!

흑마법사들이 마법을 발현한다. 발현된 마법은 마탄 세례. 검은색 궤적 수십, 수백여 개가 마치 산탄 처럼 쏘아진다.

콰가가가각!

지면을 휩쓰는 검은색 마탄 무더 기들. 건물의 파편이 부서져 가루가 되고, 흙먼지가 충격에 솟구친다.

하지만 마탄은 명중하지 않았다.

"느리다. 허접쓰레기들아."

이미 한지훈은 사선을 지나, 흑마법사들의 바로 코앞까지 접근해 왔기에.

- 놈을 죽여…!

중급 흑마법사는 말을 미처 끝낼 수 없었다.

퍼억!

한지훈의 장검이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울컥 흘러나오는 암흑색 핏물. 흑마법사는 버둥거리지만 곧 그는 죽어 회색 재로 화한다.

화르르륵.

한지훈의 전신에 푸른색 광휘가 아른거리며 피어올랐다.

오러. 기사들이 다루는 힘.

지금 한지훈은 오러를 운용해가 며 흑마법사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 죽어어!

중급 흑마법사가 죽었지만, 아직 그를 따랐던 하급 흑마법사 십여 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흑마나를 끌어올리고, 재차 마법을 발현하려 한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의 공격이 명중하는 법은 없었다.

콰앙! 콰과과광!

다수의 공격마법이 허공을 가르고, 한지훈에게로 쇄도한다. 그리고 한지훈은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무력화시켰다.

폭발계열 마법은 재빨리 자리를 이탈해 회피했다. 저격술식은 오러서린 검격을 내질러 파훼했다.

번쩍이는 검광. 그때마다 흑마법사가 죽어나간다.

- 어찌 저리 빠르게 움직이는 것 인지…!

흑마법사들이 경악한다.

한지훈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발을 구를 때마다 족히 십여 미터는 도약했다. 공격마법을 번번히 피하고 무력화시켰으며, 빈틈을 파고들어 흑마법사를 죽여 나간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강렬한 파공 성이 공기를 뒤흔들고, 흑마법사의 검은색 피가 치솟는다.

흑마법사들이 발악했다.

- 막아라! 놈이 더 이상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해!

이곳 게르도폴에 당도한 흑마법사의 수는 무려 일천에 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뭉쳐있지 않았다. 제각기 십여 명단위로 쪼개져 포 위망을 구축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지훈은 그리 쉽게 몰아 넣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이전보다도 훨씬 빠르고 민 첩해졌으며, 보다 강력한 무력을 지 니게 되었다.

콰르르르릉!

한지훈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흑마법사들이 죽어나간다.

"한스 님."

최상급 흑마법사 아텔라가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부름을 받은 한스가 응답한다.

"그래. 아텔라. 놈은 몰아넣었는 가."

"그것이…."

아텔라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는 검은색 수정구를 주시했다.

수정구의 표면에는 붉은색 점 하나가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는 붉은색 점은 지금 한지훈 의 위치였다.

그는 어느새 도시의 서쪽 방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며 깊숙이 진행 한 상황.

"포위망을 형성해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만…."

"쉽게 몰아넣지 못하고 있겠지. 당연한 일이다."

분노하리란 예상과 달리. 한스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무려 천여명에 달하는 흑마법사 들로 포위가 더딤에도. 그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쉽게 수긍한 것이다.

"놈은 약자가 아니니까."

그가 으득, 이를 갈며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진다.

한스 요한바르첸. 그는 이전 공국전쟁 시기부터 한지훈과의 악연을 쌓아왔다.

접경지대에서도, 침공로 고지대 거점에서도, 갈레이 요새에서도.

한스는 여러번이나 한지훈과 조우해 전투했고, 그때마다 패배했던 것은 한스였다.

시스템의 보정을 받아 짧은 시간에 드높이 성장하는 이가 바로 한지훈이다. 그런 그이니, 지금은 이전보다도 훨씬 강대한 무력을 지니 게 되었으리라.

"하급 흑마법사들 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

때문에 한스는 애당초 흑마법사 들로 한지훈을 처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무력이 하찮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허나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는다.

"네놈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한지훈."

쿠르르르르….

그가 기운을 돗웠다.

장중한 파동이 일며 주위의 공기 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직후 한스가 쥐어든 검은색 장검에서 일렁이는 이형의 기운.

"네놈에게 시스템의 보정이 있다 면, 내게는 세계검이 있다."

한스가 시선을 내려 자신이 쥐고 있는 장검을 바라본다.

세계검. 시스템의 간섭조차 절삭하는 고격의 아티팩트.

화르르륵.

그의 장검에서 붉은색 광휘가 피 어오른다.

- 커헉….

검날을 흑마법사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내 앞에 자리해있는 놈의 면상을 주시했다.

기괴한 외양이다.

얼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는 검은색 문신들. 붉게 물들어 있는 눈동자. 수분기 하나 없이 퍼석한 피부까지.

절로 혐오감이 든다.

콰드득.

손목을 돌려 검날을 비를었다. 놈의 장기와 피륙이 난자되는 감촉 이 손잡이를 타고 느껴진다.

검날을 빼냈다.

털썩. 힘없이 쓰러지는 흑마법사.

"후우…."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주변에는 약 십여 명의 흑마법사들이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 전 격파한 놈들의 분견대였다.

짙은 혈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징글징글한 새끼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 냈다. 후드득 지면으로 떨어지는 검은색 액체.

"도무지 포기할 줄을 몰라."

계속해 도시의 서쪽을 향해 달려 갔다. 그 와중 수십의 적을 처치했다. 놈들을 죽여 가며 전진했다.

시선을 돌려 시야 속 홀로그램을 바라본다.

[남은 시간 : 42: 17]

어느덧 남은 시간은 고작 42분에 불과한 상황.

조금만 더 놈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내가 그리 홀로그램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 찾았다!

- 죽여버려!

흑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피부에 느껴지는 흑마법의 파장.

나는 자리를 박차고 도약했다.

콰콰콰콰쾅!

직후 방금 전 내가 서있던 자리에 틀어박히는 다수의 공격마법. 지면이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

"확실히 나를 추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파앙! 지면을 내달리며 그리 중얼거렸다.

흑마법사 놈들의 출현빈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때까지 놈들은 넓은 영역에 수 많은 흑마법사 분견대를 흩뿌려 내 움직임을 제한하려 했다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추격해오며 이쪽을 압 박해오는 것이다.

때문에 내 움직임은 더욱 기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광!

발을 멈춘다면, 놈들의 마법 세 례에 직격당하니까.

달려가며 고뇌한다.

'놈들은 나를 몰아넣고 있다.'

미니맵을 주시한다면 곧장 깨달을 수 있다.

녀석들이 동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에서 등장해오고 있다. 그에 나는 하염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며 가로막는 소수의 흑마법사 들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오직 서쪽 방향만이 놈 들의 저항이 약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그이유는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었다.

'몰이사냥 하려는 것이겠지.'

지금까지 마주친 흑마법사 놈들은 대부분이 하급, 간간히 중급이 섞여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본다면 이상한 일 이었다.

무려 천 명의 흑마법사들이다.

그토록 많은 적이 있는데, 오직 하급과 중급밖에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놈들 중 최소한 수십은 상급과 최상급의 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갈 곳에 놈들의 주력이 있을 터.'

지금 놈들은 세 방향에서 압박해 나를 서쪽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쪽에는 놈들의 주력인 상급 과 최상급 흑마법사들이 자리해 있을 터.

'굳이 함정에 빠져줄 필요는 없지.'

하급과 중급 흑마법사들의 협공 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회피할 자신 이 있다. 놈들은 마법을 운용하는 속도가 느리고, 그 위력도 보잘 것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급과 최상급은 다르다.

놈들은 흑마법에서 나름의 경지 를 이룬 이들. 그런 이들이 합동마 법이라도 운용해 이쪽을 노린다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다.

피하는 것이 상책.

나는 진로를 틀어, 남쪽 방향으로 달려가고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마치 내가 진로를 틀기를 기다렸 다는 듯, 다수의 마탄 세례가 퍼부 어 졌기 때문에.

퍽 강력한 화력이었다. 하나하나는 약한 마법이었지만. 그런 하급 공격마법이 무수히 많은 수가 떨어 져 내린 것이다.

자칫 무모하게 진입하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위력.

어쩔 수없이 진로를 틀어 다시 금 서쪽 방향으로 내달린다.

'포위망이 견고해져 있다.'

내가 흑마법사 놈들과 첫 교전을 마친 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 렀다.

그동안 놈들은 그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동안 내 위치를 파악하고, 경 로를 읽어, 견고한 포위망을 구성해 놨을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돌파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피식 웃었다.

"이래서야 그물에 잡힌 물고기 꼴인데."

이대로 서쪽으로 하염없이 간다 면 나는 적의 주력을 조우할 것이고. 그렇다면 힘겨운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마치 급류에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나는 놈들의 저항이 약한 서쪽을 따라 하염없이 전진해갈 뿐.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 놈을 몰아 붙여라!

- 거의 다 왔다! 선임들께서 놈을 처리하실 것이다!

- 포위망을 좁혀!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의 흑마법사 놈들의 목소리였다. 허나 놈들의 목소리는 그동안 내가 해치웠던 녀석들의 것들과는 달리, 전의가 충만했다.

다 이긴 싸움이라 이건가.

"쯧."

절로 혀가 차진다.

하나하나는 약해빠진 것들이 숫자만 믿고 덤벼드는 꼴이란.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 지훈!

목소리가 들렸다.

적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군의 것이었으니 .

- 위험해!

항상 내게 붙어있던 요정들. 그 들이 하나둘 입을 열어 알려오는 것이다.

- …격 이상의 힘이 느껴져.

- 한지훈! 도망쳐야해!

- 여기는 위험해!

자연력과 마나에 민감한 요정족 인 덕분일까. 그들은 무언가 위험을 감지한 듯하다.

그리고 나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 공기가 무거운데."

파앙!

달려가며 주위 경관을 둘러봤다.

어째서 일까.

분명 아직도 태양이 하늘에 떠올 라 있을 터인데, 대기가 거뭇해져 있었다. 후각은 탄내와도 같은 기분 나쁜 냄새를 감지했고, 피부에 맞닿는 공기는 질척해 불쾌했다.

저벅.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주위 경관의 변화.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도 같다.

"세계검이라. 대충 이런 느낌인 가."

게임 속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나 도 다른 경관이다.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 속 세계검 은, 일단 그 효력을 발휘한다면 사방천지를 찬란한 빛으로 뒤덮었다. 강대한 힘은 대지를 요동케 했고, 장엄한 광휘는 위엄을 지녔다.

하지만 이 꼴은 무엇인지.

마치 짙은 저주가 이 주변 공간을 장악한 것 같다.

엘프와 드워프가 아닌, 흑마법사 놈들이 만든 세계검이라 그런가.

내가 그렇게 주변 경관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서쪽에서 들려왔다. 고개 돌려 그쪽을 바라본다.

"한지훈…."

저벅. 또다시 들리는 발 소리.

이제는 거뭇한 걸 넘어, 검은색 안개로 화해 있는 공기 저편. 한 인영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붉은색 안광이 번들거리며 그 존재감을 발한다.

"오랜만이군."

놈이 천천히 걸어오며 그리 말한다.

저 중후하면서도 메마른 목소리. 나는 그 정체를 알고 있다.

"그래. 오랜만이야."

검은색 공기를 젖히고, 등장하는 인물.

"이번에도 목이 잘리고 싶어서 왔나? 한스 요한바르첸."

다름 아닌 나의 대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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