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한스 님!"
최상급 흑마법사. 아텔라는 다급 히 한스를 찾았다. 그에 고개 돌려 그를 바라보는 한스 요한바르첸.
"왜 그러지. 아텔라. 다음 공격 준비는 아직인가?"
"공격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텔라가 잠시 말끝을 흐리고는, 이어 고해 왔다.
"사령병사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꿈틀.
한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사령병사들이 움직이지 않다니. 그게 무슨소리지?"
"도시를 바라보십시오. 한스 님."
아텔라의 말에 한스는 고개돌려 도시방향을 바라본다.
이곳저곳에서 매캐한 연기가 올라오고, 불길이 치솟는 모습.
그사이사이에는 사령병사들이 자리해있다.
"사령병사들이 정지해 있습니다."
아텔라의 말에 한스는 그들 사자 들의 모습을 살핀다.
사령병사들. 그 수는 무수히 많 았다.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만 단위는 되지 않을까.
헌데 이상하다.
"… 정말 멈춰있군."
사령병사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 있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척을 제국군 병사들이 통과하는데도 말이다.
"방출신호가 교란당하는 것 같습니다. 한스 님."
"교란이 라."
"정체불명의 아티팩트 파장이 이 일대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령병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를 절대 빼앗기면 안된다는 말. 이런 의미였던가."
크라함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지훈을 세계검으로 처 치해 그의 격을 빼앗기 위해.
다른 하나는 마녀 바네사를 죽여 이쪽의 허점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그 허점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듯했다.
"과연. 흑마법 지식을 가진 적이 라. 귀찮은 일이야."
흑마법이란 베일에 싸인 학문. 일반 마법사들은 흑마법을 결코 파훼하거나 무력화시킬수 없다.
하지만 바네사가 적에게 합류한 다면 그런 이점이 사라지고 만다.
반드시 그녀를 죽여 없애야 하리라.
"아텔라."
"네, 한스 님."
"그 사령병사를 무력화시킨 아티팩트. 추적할 수 있나?"
"추적이라…."
아텔라는 잠시 고뇌하고는, 대답했다.
"아티팩트의 파장에 흑마나가 느껴지는군요. 가능합니다. 한스 님. 아티팩트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추적하라."
"명을 따릅니다."
아텔라가 성큼성큼 걸어 시야 밖 으로 사라진다. 이제 그는 휘하 흑마법사들과 연계해, 이 정체불명의 아티팩트 파장을 추적해 그 위치를 밝혀낼 것이다.
한스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분명 그 아티팩트는 한지훈이 지니고 있겠지."
한스는 그리 직감했다.
사령병사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킨 정체불명의 아티팩트. 분명 한지훈 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인 즉.
"아티팩트를 추적한다면 놈의 위치 또한 알게 될 터."
한스는 한지훈을 처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크라 함의 아래에 들어간 이유였기에.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한층 진한 빛을 머금는다.
"곧 놈과 만날 수 있겠군."
한스가 검은색 장검을 뽑아들었다.
- 사령병사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좋아. 놈들은 무시하고 빠르게 움직여. 최대한 빠르게 이 도시를 벗어나, 남쪽 외곽지역에서 합류하는 거다."
-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수정구에서 각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아까 전과 달리 희망이 가득했다.
사령병사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덕분에 병사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도시를 이탈하기 위해 움직이는 상황.
신호교란기를 사용한 덕분이다.
아직 미완성인 아티팩트이기에 그 효과가 영구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도시에서 빠져나갈 때까 지는 사령병사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런 방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쾅!
커다란 소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에 느껴지는 진동. 지하공간에 흙 먼지가 휘날리고, 먼지가 부스스 떨 어져 내린다.
나는 재차 머리 위에 내려않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미친 흑마법사 새끼들. 지들이 무슨 포병인 줄 알아."
"포병이 뭔가요? 한지훈 씨."
"그런 게 있어."
하급 마법사 천 명을 부려 마구 잡이로 갈겨대고 있다.
정확한 타격이 없기에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무시 못 할 화력.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 놈들의 공격이 점차 정밀해지 고 있습니다!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1번 전대장 레벤스턴의 음성.
나는 추측한다.
"아마도, 흑마법사 놈들이 조금씩 이 도시로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이 겠지."
첫 공격 때는 그 정확도가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흑마법사들 대다수가 하급의 경 지에 불과했기에. 그리고 공격하는 거리가 너무나도 떨어져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조금씩 접근하고 있다. 그에 공격의 정확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는 상황.
빠르게 도시를 이탈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이쪽의 전력이 전멸하게 될 터다.
"그럼,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하지 요? 한지훈 씨."
내가 생각하고 있는 와중 니디아 가 그리 물어온다.
"어느 방향으로 도주할지. 생각은 해두셨나요?"
이미 도주하리라 결정한 상태다.
남은 것은 어디 방향으로, 어떤 경로를 따라 도시 밖으로 도망칠 것인지뿐.
시선을 돌려 미니맵을 주시한다.
각각 백인대와 편대 단위로 흩어져 움직이는 내 병력들. 그들은 주로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저희도 남쪽 대로를 따라 후퇴 해야겠지요? 흑마법사들은 북서쪽에서 오고 있으니까요."
내가 병력을 주로 남쪽과 동쪽으로 보낸 이유가 이것이었다.
흑마법사 놈들은 도시의 북서쪽에서부터 밀고 들어오고 있다. 그쪽 으로 간다면 언젠가 흑마법사 놈들 과 마주칠 터다.
무사히 도주하기 위해서는 동쪽 과 남쪽이 무난하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
"니디아. 나는 서쪽으로 가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단 해야 할 조치는 모조리 끝 냈다.
병력을 잘게 쪼개 도주시키고 있다. 신호교란기 아티팩트를 사용해 사령 병사들까지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주가 성공적 이란 보장이 없다.
"흑마법사 놈들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흑마법사 놈들이 점근중이다.
마법 일제공격과 이동을 반복하 며. 마치 포위망을 좁혀오듯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병력이 무사히 후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흑마법사 놈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놈들을 유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나는 유인에 이골이 나있 으니 .
나라면 놈들을 유인할 수 있다.
"니디아. 마녀를 맡길게."
"네'?"
"너희 엘븐 가디언들은 바네사를 합류지점까지 운반해줘."
지금 바네사는 니디아가 안아들 고 있다.
엘프 중에서도 최상위의 무력을 지닌 그들이다. 그런 엘븐 가디언들 이라면 필히 바네사를 합류지점까지 안전하게 옮길 수 있을 터.
"아마 놈들은 이 아티팩트의 신호를 추적하고 있겠지."
손아귀에 들린 회색 수정구를 들어올린다.
신호교란기. 지금 사령병사들을 무력화시킨 아티팩트.
흑마법사 놈들은 이 아티팩트의 파장을 추적해 위치를 알아내 파괴하고자 할 것이다.
"이걸 역이용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아티팩트를 계속 소지하고 있어야한다.
엘븐 가디언들은 바네사를 안전 히 옮겨야 하므로 제외. 다른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흑마법사들이 추 격한다면 단숨에 죽어나갈 것이므 로 불가능.
남은 것은 나뿐이다.
이 교란기를 쥐고 서쪽으로 달린 다면 사령병사들의 무력화와 흑마법사들의 유인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지훈 씨 혼자서 적 흑마법사들을 유인하겠다고요?"
"그래."
"그건 미친 짓이에요."
염려되는 것일까. 니디아가 걱정 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적 흑마법사 대다수가 하급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 수가 천 명이에요. 혼자서 천 명을 유인한다 니. 절대 살아나올 수 없어요."
그녀의 말 대로였다.
하급이라 한들 흑마법사. 그 수 가 일천에 이른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결코 살아나올 수 없다.
그래.
'지금' 내 능력으로는 말이다.
"니 디아."
"네?"
"나는 이름 없는 별이야."
주인공의 운명을 타고났다 한다.
그러니 이번에도 굴러서, 시나리오를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공은 개고생하는 법이니까.
"내 정보."
나직이 읊조린다.
- 띠링!
[한지훈][북부 제 13군단장]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상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50]
[민첩 153]
[내구 54]
[체력 54]
[마나 128]
(남은 포인트는 130pt 입니다.)
떠오르는 정보창 홀로그램. 그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130포인트라…."
포인트가 무려 130pt나 있다.
이 포인트들을 갈아 넣는다면, 흑마법사 놈들을 유인하는 것 따위.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할 것이다.
"자, 그럼 무슨 능력치를 상향시 켜볼까."
이번에도 열심히 굴러보자.
- 띠링!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마녀 바네사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질 때까지 적을 유인하라.]
[남은시간 : 120: 00]
서브퀘스트가 부여되었다.
한스 요한바르첸.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 이미 멸망한 요한 바르첸 공국의 후계자.
그는 우묵한 눈으로 도시를 주시 한다.
콰르르르릉….
흑마법사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이 발현한 공격마법이 건물을 부수고, 멍하니 서 있는 사령병 사들을 날려버렸다.
터져 오르는 불기둥과 그 여파로 일렁이는 두터운 흙먼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는 중얼거린다.
"한지훈의 추적은 아직인가."
철그럭. 그가 오른손에 쥐어든 장검을 들어 올린다.
완전한 암흑색으로 물든 장검이었다.
빛조차 반사하지 못할 정도로 새 카만 장검. 그 검은 사악하고도 흉 험한 기운을 일렁이고 있었다.
흑마법사의 세계검.
한지훈의 격을 빼앗기 위해, 크 라함과 불라바아 학파가 심혈을 기 울여 만든 아티팩트.
한스는 한지훈의 목덜미에 이 검을 박아 넣을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그가 파괴되고 있는 도시를 주시 하고 있을 때였다.
"한스 님."
저벅. 누군가 다가와 한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티팩트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다가온 인물은 최상급 흑마법사, 아텔라였다.
사령병사들을 무력화시킨 아티팩트를 추적하고 있던 이.
그의 보고에 한스는 흡족한 듯 질척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드디어 찾아낸 건가."
사령병사들을 무력화시킨 아티팩트. 그것을 들고 있는 것은 분명 한지훈일 터다.
그 말인 즉 지금 아텔라의 말은 한지훈의 위치를 찾아냈다는 것과 진배없었으니 .
"좋아. 놈의 위치는 어디지?"
한스는 주저 없이 그의 위치를 물었다.
지금 이자리에 있는 것은 무려 천여 명의 흑마법사들. 죄다 하급에 불과한 덜떨어진 전력이지만, 이 정도의 전력을 집중시킨다면 한지훈을 몰아넣어 사냥하기에 충분하다.
곧 놈을 사냥할 생각에 절로 기 세가 끌어오르는 한스였다.
그에 아텔라가 대답한다.
"아티팩트의 위치는 도시 서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쪽이라… 필시 우리를 유인하 고자 하는 것이겠지."
이미 제국 측 병력 다수가 도시 의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파악한 한스였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니. 그 말인 즉 전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본 병력을 안전 하게 보전하겠다는 소리다.
피식. 그가 싱겁게 웃는다.
"기꺼이 어울려주지."
한스는 과거 거점탈환전을 떠올 린다.
공국의 제국 침공 당시. 한스는 수백의 병사를 이끌고 거점을 장악 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때 한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한지훈이 자신을 도발해 병력을 유인했기 때문에. 마법사가 도착할 때까지 거점을 빼앗지 못했던 것이다.
한지훈은 그때처럼 한스를 유인 하고 있었다.
어디한번 잡아보라고. 주 임무를 방기하고 증오스러운 자신을 죽여 보라고 말이다.
"이번에 승리하는 것은 네놈이 아니라 나다. 놈."
허나 상관없다.
바네사? 놓쳐도 상관없다. 그런 쓸모없는 것보다는 한지훈을 죽이고, 그의 격을 빼앗는 것이 훨신 더 중요한 일이니.
그가 그리 미소 짓고 있을 때였다.
"… 한스 님."
아텔라가 갑작스레 굳은 얼굴표 정을 보였다. 그에 그를 바라보는 한스.
"무슨 일이냐?"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한스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제대로 설명하라. 아텔라."
"한지훈. 그자가… 저희 흑마법사 들과 조우했습니다."
"조우했다면. 놈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말을 멈춘 아텔라.
그가 숨을 고르고는 이어 말한다.
"놈이 우리 흑마법사들을 죽여 가며, 강행돌파하고 있습니다."
한지훈은 단순히 유인만 할 생각 이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