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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83화 (183/390)

183화.

무수한 사령병사들을 돌파해, 마녀가 있는 저택으로 향하는 것.

정말 엿같이 힘든 일이었다.

시야를 그득 메운 사자들. 놈들은 흉측한 외양을 지녔고, 역겨운 냄새를 풍겨댔으며, 그 수가 빌어처 먹게 많았다.

하지만 약했다.

그리고 우리는 강했다.

"밀어붙여!"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내 검날이 푸른색 오러의 궤적을 그리며, 다수의 사령병사들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콰드드드드득!

후드득 쓰러지는 사자들. 놈들의 시체를 밟으며 내 몸이 앞으로 나 아간다.

물론 전투에 임하는 것은 나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옆구리 조심하세요. 한지훈 씨."

화르르르륵!

엘븐 가디언 정령사, 니디아.

그녀는 정령을 부려 마법을 발현했다.

쏟아져 내리는 불덩이들. 자연력 으로 만들어진 그 불덩이들은 순식간에 이쪽으로 육박해오던 사령병 사들을 불살랐다.

"… 후읍!"

타냐가 검을 휘두른다.

번쩍! 하고 점멸하는 시야. 찰나에 수십 합의 검격이 발현되고, 사령병사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법의 준비가 거의 다 됐습니다."

엘븐 가디언 마법사, 마게브.

그 또한 마법을 캐스팅하며 우리 를 뒤따라온다. 여차할 순간, 그는 듬직한 화력이 될 것이다.

완벽한 돌파였다.

나와 타냐가 검을 휘둘러 앞을 뚫고, 니디아가 정령을 부려 측후방을 엄호했다. 그리고 마게브는 예상 외의 상황에 대비해 마법을 준비.

고작 네 명이서 수없이 많은 사령병사들 사이를 돌파했다.

분명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우리가 아닌 기사들이 돌파를 시도했다면, 반절도 채 못가 놈 들에게 포위되어 압사당했을 것이다.

기사들의 오러 운용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빽빽이 들어찬 놈들을 돌파하는 것은 나와, 엘븐 가디언들이었다.

명실상부 대륙 최상위의 무력을 가진 구성원들. 그들과 함께하기에 돌파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본다.

"거의 다 왔다!"

보이는 것은 이층짜리 저택. 저택은 반쯤 무너져 내려 있었고, 불 길에 휩싸여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저 저택 지하에 마녀가 있다.

"… 누가, 온 건가?"

바네사는 눈을 떴다. 그리고 청각을 돋워 밖의 소란소리를 좀 더 자세하게 듣고자했다.

그러자 들린다.

- 거의 다 왔다!

목소리였다. 그것도 분명 혹마법에 오염되지 않은, 멀쩡한 인간의 목소리.

바네사의 눈이 크게 떠진다.

- 타냐! 마게브! 너희들은 저택 입구를 막아줘! 니디아! 나와 함께 지하로 진입한다!

퍽 가까이 온 것일까. 목소리는 꽤나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누가…."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온 듯하다. 그것도 처음 듣는 목소리를 지닌 사내가 수많은 사령병사들을 돌파해가며 말이다.

하지만 바네사는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더 이상 신경 쓸 수 없었다.

키메라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콰직!

키메라가 그녀의 옆구리를 물었다. 송곳같이 날카로운 이빨이 복부에 파고들고, 내부 장기를 난도질하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크윽…!"

그녀는 이를 악물고 흑마법을 운 용한다.

화르르륵.

검은색 불길이 솟구쳤다. 곧 키메라는 불타 재로 화한다.

하지만 키메라는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콰직. 콰드드득!

다른 키메라들이 달려들어 그녀 의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와 가슴 팍마저 물어뜯었다. 바네사는 혹마 나를 운용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하 려했지만 무용.

그녀는 힘없이 쓰러졌다.

콰직. 우드득.

그런 그녀의 육신에 키메라들이 이빨을 박은 채 흔들어댔다. 상처가 벌어지고 뼈가 부서졌다. 대량의 핏물이 흘러나온다.

"… 아."

바네사는 얼굴을 지면에 박은 채,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감각이 사라져갔다.

피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 도. 전신의 근육이 끊어지는 감각 도. 심장 뛰는 소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문득 바네사는 생각한다.

' 누굴까.'

분명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누군 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게 누구일까.

자랑은 아니지만. 그녀는 결코 누군가가 구해줄 만한 인간은 아니었다.

대량의 인간을 참살했다. 수없이 많은 키메라를 양산했다. 저주와 사령마법을 부려 괴기스러운 존재를 만든 경험 또한 적지 않다.

흑마법에 귀의한 뒤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바네사.

허나 지금 그녀는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흑마법 학파와 적대하고 있다.

인류에게도 , 흑마법사 세력에게도 배척당하는 존재.

그런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올 인물 따위 바네사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네사는 곧 자신을 구하러 온 인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오고, 지하의 천 정이 무너져 내리며 한 명의 인영 이 떨어져 내려왔다.

매캐한 흙먼지 너머 바네사는 흐 릿해져가는 시야로 간신히 인물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검은 머리.'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이었다.

자신이 가진 검청색의 어중간한 검은색이 아닌, 완전한 암흑색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

'검은 눈'

더해 그 눈동자 또한 난생 처음 보는 혹안이었다.

마치 흑요석을 박아 넣은 듯 또 렷하면서 신비한 광택을 발하고 있는 눈동자.

바네사는 저런 외양을 지닌 인물 의 정체를,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한지훈…?'

제국의 악마 한지훈.

그것이 그녀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인물의 얼굴이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중얼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굉음을 울리며 공간을 난자하는 내 검날. 오러 서린 검풍이 주변을 휘감는다.

지하공방 이곳저곳에 자리해있던 늑대형 키메라 반절을 순식간에 갈 아내버렸다.

물론 이자리에 있는 것은 나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늦지 않기는요. 늦은 것 같아 보이는데요?"

콰앙!

니디아가 불러들인 정령이 이능을 발현했다. 얼음송곳 세례가 혼비백산한 키메라들을 덮쳤다.

콰가가가각!

나머지 반절의 키메라 무리가 완전히 쓸려나간다.

퍼억 튀어 오르는 피 안개, 짙은 혈향, 검은색 핏물과 키메라시체의 파편이 지하공방의 벽과 천정을 오염시킨다.

"아니. 늦지 않았어. 아직 목숨은 붙어 있잖아."

파앙! 검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그리 대답했다.

천천히 걸어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바네사의 모습을 살핀다.

산발한 채 길게 늘어져있는 검청 색 머리카락. 얼굴은 본인과 키메라 의 피가 엉켜 지저분했으며, 흑마나 와 혈액의 고갈로 안색은 창백했다.

더해 몸 이곳저곳에 입은 치명상 까지.

아직 목숨은 붙어있지만 말 그대로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다. 언제 생명의 불꽃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니디아가 다가오며 묻는다.

"포션으로 살릴 생각인가요?"

"글쎄."

나는 대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알 거 아냐. 흑마법사들은 일반 포션으로 살릴 수 없어."

"뭐. 그건 그렇지요."

니디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암흑기사나 흑마법사처럼, 흑마나 를 다루는 존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전용 포션이 필요하다.

그들의 심장이, 그리고 마나회로 가 일반 생명체와 그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흑마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저 주하는 사악한 기운.

그 흑마나를 다루는 그들의 심장 과 마나회로는 포션의 재생효과에 반응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이자리에서 포션을 바네사에게 먹인다 한들, 그녀의 근육과 사지만 회복될 뿐. 심장과 마나회로는 회복되지 않아 절명할 것 이다.

"그러면 어떡하죠? 지금 보아하 니 이 여자, 전용 포션도 모조리 다 써버린 것 같은데."

그리고 바네사는 전용 포션을 모조리 써버린 상황. 딱히 치유할 방법이 보이진 않는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품속에서 어떤 유리병을 꺼내보였다.

"괜찮아. 이게 있잖아."

내가 꺼낸 유리병에는 녹색 액체 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맙소사. 한지훈 씨."

그에 경악하는 니디아.

그녀가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으로 이쪽에 시선을 던진다.

"정말 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세계수의 수액을 사용할 생각이에 요'?!"

"그래. 필요한 일이니까."

"그건 저희 엘프가 한지훈 씨를 위해 드린 물건이에요."

"그리고 나는 내 물건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거지."

"맙소사."

니디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세계수의 수액이라는 귀물을, 저런 처음 보는 흑마법사에 게 사용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다.

"니디아. 엘리스에게 말을 들었겠 지만, 마녀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다."

바네사가 없다면 흑마법사의 사령병사 억제도, 전쟁의 승리도, 세계검의 완성도 없다.

시나리오 클리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재. 구하기 위해서 아이템을 아껴서는 안된다.

그 아이템이 귀하디귀한 세계수 의 수액이라 한들 말이다.

니디아는 체념한 듯 한숨 쉬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말 안해도 그리 할 참이었다.

나는 유리병을 개봉한 뒤, 정신을 잃은 바네사의 입가에 액체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이변이 일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그녀의 몸에서 수증기가 일고, 신체가 급속도로 회복해갔다.

전신에 아로새겨진 온갖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부서진 뼈가 맞 춰진다. 비틀린 관절이 제자리를 찾 았으며, 혈색 또한 급격히 호전되었다.

정말 가공할만치 즉각적인 효과.

과연 세계수의 수액이다.

"… 한지훈 씨. 아시겠지만 저 여자, 더 이상 흑마법을 다루지 못하 게 될 거예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세계수의 수액은 오염된 심장과 마나회로마저 회복시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부정한 상태로 회복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태초의 깨끗한 그 상태로 회복하겠죠."

즉 마녀 바네사가 지금껏 축적해 왔던 흑마나와, 흑마나 회로가 완전히 사라지고. 평범한 인간의 그것으로 회귀한다는 소리다.

나는 씩 웃었다.

"괜찮아. 더 이상 흑마법을 사용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필요한 건 바네사의 지식이 지, 그녀의 실력이 아니다.

"그리고 바네사 본인 또한 그걸 기뻐하지 않을까."

시나리오 내내 자신이 흑마법을 익혔단 사실을 저주했던 인물이다.

내가 아는 그 바네사라면, 오히려 혹마법을 못쓰게 되어서 더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

"좋아. 이제 모두 회복했다."

시선을 내려 바네사의 모습을 살 펴본다.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 달리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 생생한 혈색이 도는 뺨, 온전한 팔다리.

건강해 보인다.

그저 정신을 잃고 있고, 입고 있는 로브 이곳저곳이 찢어졌으며, 온통 피칠갑이 되어있지만 않았다면.

모르는 사람이 봤을때는 평범하 게 낮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보이 리라.

그녀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확인 하자.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서브 퀘스트 - '마녀 구출'을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30pt]

[추가 정산 포인트 : 1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90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130pt입니다.)

"130포인트라."

홀로그램을 확인한 뒤 그리 중얼거렸다.

꽤나 많은 포인트가 모였다.

고개를 끄덕여 흡족한 감정을 드 러내본다.

"이제 스킬을 높일 수 있겠어."

사실 그동안 나는 가급적 포인트 를 아껴왔었다.

어떤 스킬을 상향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전부터 언젠가 군단장 계급에 이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군단장이 된다면 필히 상향시켜야 하는 스킬이 있었으니 .

"지휘술 스킬."

전투지휘술 스킬은 등급이 높으 면 높을수록, 보다 지휘에 필요한 요소들을 강화시켜준다.

미니맵에 표현되는 정보의 양과 질, 휘하 부대의 정보, 그리고 부대 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위엄까지.

그 모든 것에서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계급은 군단장이 었으나, 전투지휘술 스킬은 고작해 야 천인장 수준에 불과한 상황.

상향이 시급하다. 천인대 전투지 휘술 스킬로는 군단을 완벽하게 지휘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결정한다.

"전투지휘술 스킬. 상향."

전투지휘술 스킬을 상향하기로.

- 띠링!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을 '스킬 : 군단 전투지휘술'로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10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 겠습니까?]

[수락/거절]

무려 100pt나 먹는 스킬이다.

하지만 군단장이 된 지금 반드시 필요한 투자. 수락하기 위해 지체없 이 입술을 열려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 한지훈 님.

품속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저택 지상에서 사령병사들을 막고 있을 마게브의 음성이었다.

-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평온한 어조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이나마 긴장의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가 고한다.

- 흑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흑마법사라면."

- 이쪽을 사냥하기 위해. 놈들이 대규모 전력을 동원한 겁니다.

쿠르르르르.

저택 지하 밖에서 장중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아마도 마법을 운용하는 소리.

이 질척한 기운을 보건데. 분명 흑마법이었다.

- 한지훈 님. 당장 도주해야 합니다. 놈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많다면 어느 정도지?"

- 최소한 오백…아니.

후욱. 하고 수정구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 일천. 확실합니다. 천 명은 되 어보입니다.

"미친. 말도 안 되는데 ."

정말 말도 안 되는 규모였다.

천 명의 마법사 전력.

일국의 모든 전투마법사를 모아 야 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수다.

- …놈들이 대규모 마법을 발현합니다. 한지훈 님, 몸 낮추십시오.

마게브의 경고. 나와 니디아는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직후, 콰콰콰콰콰콰콰쾅!

커다란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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