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80화 (180/390)

180화.

"모두 주목."

나는 각 사관들을 모아 천인장 막사에 불러들였다. 그들의 면면을 살핀다.

엘락을 필두로 한 각 백인장들. 그리고 각각 백 명의 기사를 이끄는 세 명의 전대장들까지.

이들이 이번 게르도폴 원정에 참여할 이들이다.

나는 지휘봉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 쓰던 것과 전혀 다른 지휘봉 이었다.

'군단장 지휘봉.'

기존의 투박한 목제로 이루어진 영관급 지휘봉이 아닌, 금속으로 만들어져 섬세한 장식이 달린 장성급 지휘봉.

군단장이 되니 이런 작은 것에서 도 차이가 난다.

나는 지휘봉으로 지도를 짚었다.

"우리는 게르도폴로 간다."

게르도폴. 카렌 본토 내에 자리 해있는 도시.

"임무는 중요인물 구출과 회유."

그곳에 '마녀' 바네사가 있다.

그녀를 아군으로 포섭한다면 흑마법사들의 전력을 억제하고, 세계 검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이쪽으로 회유해야 한다.

"군단장 각하."

누군가가 손을 들어올렸다. 1번 백인장 엘락이었다.

녀석이 묻는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지. 그곳에 사령마법으로 되살아난 수많은 사자들이 도사리 고 있을 테니까."

게르도폴은 본래 십수만 인구가 사는 도시였다. 그곳에 사령마법이 발현되었으니 지금쯤 그곳에는 무 수히 많은 사자들이 도시를 배회하고 있을 터.

위험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 으음. 승산은 있는 겁니까?"

그에 다른 인물이 손을 들어 올려 묻는다. 다시 시선을 돌려 바라 보니 이번에 질문해온 인물은 기사 전대장이었다.

'레벤스턴이라 하던가.'

볼로냐 기사단 1번 전대장 레벤 스턴 베 딜랑트. 베르겐이 부단장 다음으로 신뢰하는 인물이라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전력으로는 승산이 그리 많진 않지."

"그렇습니까…."

"아무리 기사가 삼백이나 있다 한들, 오러를 무제한 사용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기사. 확실히 강력한 존재다. 오 러를 운용한다면 일순 전장에서는 거의 무적에 준하는 무위를 떨칠 수 있으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절삭해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오러 총량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본격적인 전투에 돌 입한다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오러 를 10분 정도밖에 발현하지 못하 니.

"노획한 마나포션과 체력포션은 넉넉히 챙겨갈 것이지만. 그 포션조 차 섭취하지 못하고 싸울 상황에 처한다면 이쪽이 위험해지겠지."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 상황에 처하기 쉬워진다.

도시에 도사리고 있는 사자들의 수가 무려 십수만이다. 단숨에 포위 당해 힘겨운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높다.

"군단장 각하. 그렇다면 다른 증 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증원이라. 예를 들면?"

"라브리에 마법 전투단이라든지 말입니다."

마법전투단이 있다면 확실히 훨씬 쉽게 진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라 브리에 마법전투단은 이곳에 주둔 해야 한다. 언제 놈들의 주력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지금 카렌의 전력은 무려 수십만에 달한다. 그들이 한번에 남하해온 다면 전투마법사 없이 막아낼 수 없을 터.

그렇기에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다. 내 소규모 작전보다는 본대의 안전이 최우선 이니.

"그렇군요…."

"뭐, 걱정하지 마라.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은 없지만. 그이상으로 대 단한 증원군을 불렀으니까."

"다른 증원이 있는 겁니까?"

"그래. 들어와라, 니디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펄럭, 천막을 걷으며 들어오는 세 명의 인영.

그들을 소개한다.

"엘프의 지원을 받았다. 엘븐 가디언 니디아, 타냐, 마게브의 원조 를 받아 작전을 진행할 거다."

"잠깐! 엘프라니?! 그게 무슨…."

"엘프와 제국이 연합한 겁니까?!"

천막 안에 자리해있던 이들이 당황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엘프들 이 다른 대륙에서 목격된 것마저 극히 드문 일인데 하물며 엘븐가디 언이 제국을 돕겠다고 하니.

"흑마법사는 모든 지성체의 적이 에요. 제국 군관 나리들."

터벅터벅 걸어와 내 옆에 선 니 디아. 그녀가 주위 군관들을 살펴보 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희 엘프는 흑마법사와 대적하는 것에 한해 그 언제라도 힘을 빌 려줄 거예요."

엘프는 흑마법사를 대적하기 위해적극적으로 대륙정세에 개입해 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카렌의 혹마법사 세력을 뿌리뽑는 것.

나는 씩 웃었다.

"엘본 가디언 셋, 기사 삼백, 그리고 병사 일천이다. 이 정도면 십 수만 사자를 돌파할 만한 전력이지. 안 그러나?"

인원수는 겨우 이천이 채 안되지 만. 이 이상으로 호화롭지 못할 구성이다.

크라그 연대마저 격파한 정예 보병대인 아펠도른 천인대. 북부의 베 테랑 기사단인 볼로냐 기사단 기사 삼백. 그리고 엘프들 중 최강의 무력을 지닌 엘븐 가디언 셋까지.

이 정도 전력이면 배 이상의 병력을 상대하게 된다 한들 압도적으로 승리할 자신이 있다.

"자, 이 정도면 할 만하지?"

"확실히, 엘븐 가디언이 함께한다 면…."

"정말 무리 없이 게르도폴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다."

군관들이 하나둘 표정을 폈다.

엘븐 가디언의 합류에 한층 안심 하는 그들이다.

탁탁, 지휘봉으로 지도를 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집중해라. 진군 경로와 퇴각 경로를 알려줄 테니까. 제대로 숙지해."

나는 지휘봉으로 지도를 긁으며 브리핑을 진행했다.

곧 우리군은 게르도폴로 향한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마녀' 바네사를 구출하라.]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 * *

카렌 왕궁의 알현실. 본래는 수 많은 대신들이 자리해 북적거리고 있었을 크고 화려한 공간.

그곳은 적막했다. 들리는 것이라 고는 흑마법사들이 두런두런 말하는 목소리들 뿐.

문득 크라함이 나직이 읊조린다.

"제국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군."

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수정구 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있는 수정구. 그곳의 위에는 붉은 색 점들이 수없이 빽빽하게 박혀있었다.

"놈들이 향하는 곳은 게르도폴 방면."

크라함은 무수한 혹마법을 활용 해, 한지훈과 제국의 군대를 관찰하고 있다. 덕분에 그들이 어디로 향 하는지, 무엇을 노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필시 그곳에 바네사가 있을 터다. 한스."

"예. 크라함 님."

크라함의 부름에, 한스 요한바르첸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부복했다.

피식 웃는 크라함.

"받아라."

그가 로브 안쪽에서 검은색 검을 꺼내들었다.

한스의 눈동자가 커진다.

"이건…."

"이전보다 더욱 진보한 세계검이다. 인간 십만 명의 격을 갈아넣은 물건이지."

한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흑마법사들은 희생자들을 소생시 켜 사령병사로 부리지만은 않았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세계검 제작에 소모되었다.

세계검. 시스템의 간섭을 절삭할 수 있는 고위 아티팩트.

그들은 이 단 하나의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 하위 지성체들의 수많 은 목숨을 갈아 넣었다.

"한지훈을 베어라. 놈의 격을 빼 앗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이것으로 한지훈을 벤다면, 놈의 격을 일순 빼앗을 수 있다.

한스는 우묵한 눈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명령을 따릅니다. 크라함 님."

흑마법사의 세력이, 그리고 한스요한바르첸이 게르도폴 방면으로 향한다.

우리 군은 진군했다.

일천의 병사, 삼백의 기사, 그리고 엘프 셋.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와중 통신 수정구를 쥐어들었다.

"각 척후대. 보고해."

- 1번 척후대. 정찰결과 이상 없습니다.

- 2번 척후대. 이상 없습니다.

- 3번 역시 이상 없습니다. 이 계곡은 안전한 것 같습니다. 군단장 각하.

수정구에서는 미리 보내놨던 척 후병들이 차례로 보고해온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전진한다. 각 척후대는 후 속부대와 교대해 계속 전진하고."

- 명령을 따릅니다. 군단장 각하.

수정구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문득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손발이 척척 맞는데 ."

아펠도른 천인대도 볼로냐 기사단과 오랫동안 나와 손발을 맞췄던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군의 호 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별다른 불협화음도, 분란도 없이 평화롭게 전진한다. 퍽 흡족한 행군 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군단장 각하. 12번 척후대입니다. 척후 결과 보고드리겠습니다.

"보고해."

- 진군로 전방. 사령병사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쯧. 혀를 차고는, 시선을 돌려 시야 속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미니맵에 떠올라있는 수많은 녹색 점과 세 개의 푸른색 점.

녹색 점은 내가 직접 지휘하는 아펠도른 천인대와 볼로냐 기사들 의 병력이었고, 푸른색 점은 동맹인 엘븐 가디언들이었다.

그리고 미니맵에 자리해있는 것은 오직 녹색과 청색 점들뿐만이 아니었다.

'붉은색.'

미니맵의 외곽, 시야가 닿는 아슬아슬한 거리. 붉은색 점들이 빽빽 하게 들어차있다.

적이다. 아마도 살아 움직이는 시체. 사자들이리라.

정찰병이 보고한다.

- 그 수는 약 이천 내지 삼천.

고개를 끄덕였다. 미니맵에 보이는 붉은색 점들의 수와 일치하기에.

"이천 내지 삼천이라. 그리 많은 수는 아닌데."

수적으로는 아군을 압도하지만. 질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우위.

그리 어려운 적은 아니다.

- 어떻게 합니까? 군단장 각하.

"척후조는 정찰활동을 지속하라. 우리본대는 놈들을 격파하며 계속 전진하지."

- 사자의 수가 무려 수천입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우회 하시는 것이….

"아니. 우회할 곳 따위는 없다."

흑마법사들은 멍청하지 않다.

우리가 이곳으로 진군해 올 것을 예상했기에 수천의 사자들을 배치 했을 터.

다른 우회로 또한 마찬가지일 터다. 만약 군을 돌려 우회한다 한들, 다른 사자들이 증원을 시간을 벌어주는 꼴밖에 안 되니.

돌파하는 것이 옮다.

"그리고 어차피 숫자만 많은 놈 들이다. 그리 큰 위협은 못된다. 별다른 손실 없이 돌파할 수 있어."

꼭두각시 시체들이다. 그저 숫자 를 채우기 위해 급조한 병력.

포위되지만 않는다면,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천인대 전진. 기사단은 양익배치다. 전투시 포위되지 않도록 유의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군단장 각하."

"신호기 올려!"

펄럭! 펄럭!

깃발이 하나둘 드높이 올려진다. 붉은색 깃발이 휘날리고, 병사들이 창칼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 군단장 각하! 저길 보십시오!"

척후병들이 사자무리를 발견했던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사람입니까?"

사자무리를 비로소 육안으로 확인했기에.

"… 역겹군요."

"그래. 역겹지."

병사들이 헛구역질하고, 군관들은 표정을 찌푸렸다. 나 또한 혀를 차 며 앞을 바라보았다.

진군로를 가로막듯 자리해있는 수천의 사자무리.

그들의 외양은 너무나도 흉측했다.

뚝뚝 흐르는 썩은 핏물. 겉면의 피부는 부패하기 시작해 흘러내렸 으며, 이토록 멀리에서 관찰하고 있음에도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여러모로 거북한 외양.

거의 좀비나 다름없다.

"저게 흑마법사에게 지배당한 인간들의 말로야."

흑마법사. 인간을, 지성체를 오직 실험체와 혹마법 재료로밖에 안 보는 족속들이다.

카렌은 그런 흑마법사들에게 나라 전체가 집어삼켜졌고. 결국 일반 민중들은 죽어 시체로 부려 먹히는 처지로 추락했다.

"… 염병."

문득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눈앞의 시체들이 거북했기에 나 온 욕설은 아니었다.

잠시 과거를 되돌아보니, 내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나온 욕이었다.

[크라함]

[흑마법 학파 '불라바아' 의 종주]

["한지훈 각하. 더 많은 시체를 모은다면 보다 상위의 흑마법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제게 대도시 세 개만 맡겨주십시오. 그렇다면 위대한 흑마법을 발현시켜 연합군의 서부전선을 망가 뜨려 보이겠습니다."]

잊으면 안된다.

나는 한때 게임 속이긴 했지만. 저런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말 그대로 수도 없이 말이다.

[크라함]

[흑마법 학파 '불라바아' 의 종주]

["한지훈 각하. 병력이 부족하십 니까? 그렇다면 사령술사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시체를 이용한 언데드를 만든 다면 손쉽게 병력을 확보할 수 있지요."]

["나약한 놈들입니다만, 단순한병사들을 상대하는 데는 쓸 만할 것입니다."]

일반 시민을 희생해 언데드로 군대를 꾸렸다. 수십만 목숨을 희생해 전략단위 마법을 갈겨댔다. 도시를 불사르고 대지를 오염시켰다. 수많 은 피를 흘렸다.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이미 저지른 실수. 바로잡을 것 이다.

스르릉, 검을 뽑아들었다.

"저들에게 안식을 줘라."

병사들이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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