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70화 (170/390)

170화.

비가 그치고 시간이 지났다. 강의 유속이 가라앉았다.

그에 제국군은 본격적인 도하를 준비했다.

"군단은 상륙 준비를 서둘러라."

북부 3군단의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후작.

그는 지휘천막 밖으로 나와 병력을 손수 진두지휘했다.

"참모장. 각 천인대 상륙준비 완료 되는 대로 내게 보고하도록 전 파하게."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보급장, 군수품 수송 준비는 어찌 되었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군단장 각하. 출진 명령만 내리신다면 곧장 도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좋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내게 보고하게. 다음으로…."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잠시 내려 보다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바라 봤다.

"베르겐. 볼로냐 기사단의 상태 는?"

오스카가 바라보는 것은 바로 베 르겐 라 프랜시스 백작. 볼로냐 기사단의 단장인 인물이었다.

베르겐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하 준비를 모두 마쳤네. 전투 마도, 기사들도. 뗏목 위에 탑승했다."

"그래."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베르겐을 바라보던 그가 나직이 입을 연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한지훈이 위험하다."

그가 입에 담은 인물은 다름 아닌 한지훈.

북부 제 3군단에서 가장 유명한 군관이자, 제국의 영웅이 된 인물이다.

오스카의 말이 이어진다.

"녀석은 지금, 혼자서 기사 수백을 막아내고 있는 거다."

그런 오스카의 말에 베르겐은 재 차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베르겐 또한 상황을 전파받았기에 알고 있다.

한지훈 천인장이 기사 수백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음을. 전투마법사 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고 있음을 말이다.

"베르겐 기사단장. 당장 기사들을 이끌고 먼저 도하하게."

오스카는 볼로냐 기사단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것을 지시했다.

그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우리의 영웅나리를 구해주게. 녀석은 절대 이런 곳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인재야."

그는 한지훈의 구원을 바라고 있다.

"자네의 말에 따르지."

베르겐은 시선을 돌려 강가를 바라보았다.

드발트 강. 그곳은 바로 몇 시간 전과는 달리 유속이 잠잠하게 가라 앉아 있었다.

마침내 도하가 가능해진 환경.

"내가 기사단을 이끌고 먼저 상 륙해 한지훈 녀석을 구원하지."

"자네만 믿겠네. 베르겐."

"그래. 맡겨주게."

저벅, 저벅. 베르겐은 발걸음을 옮겨 강가를 향해 갔다. 이미 강가에는 도하를 준비하는 기사들이 모 여 도열하고 있었다.

베르겐은 그들을 향해, 마나 어린 음성으로 크게 외쳤다.

"볼로냐 기사단! 도하 준비!"

그들이 한지훈 천인장을 구원하 기 위해 움직인다.

* * *

"악마를 죽여라!"

적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파앙!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검날이, 이쪽으로 달려오던 적 기사의 갑주와 투구 사이. 그 미약한 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서걱. 놈의 목에서 핏물이 퍽 터 져 나온다.

"꺼억! 꺽…커허…!"

녀석은 제목을 움켜쥐며, 달려 오던 기세 그대로 지면에 머리를 처박았다.

"죽어라! 악마새끼!"

그리고 놈의 뒤를 잇듯. 또 다른 기사 놈이 돌진해온다. 녀석의 무기는 기다란 철제 기병창.

콰앙!

녀석이 기병창을 내찌른다. 퍽 힘이 실린 공격.

나는 놈의 공격을 피해내며, 녀석의 창대 아래를 향해 파고들어 갔다.

"뭣…?!"

당황한 적 기사의 당혹성.

무시하고 검을 위로 치켜 올렸다.

콰직. 내 검신이 놈의 턱 아래를 관통해 정수리까지 닿았다.

검신을 돌려 비틀어버린다.

콰지직. 녀석의 머리통을 완전히 진탕 내버렸다. 질척한 검붉은색 핏물이 흘러 장검의 혈조를 따라 내 린다.

"염병할!"

서걱.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검을 뽑아 회수했다.

"지긋지긋한 새끼들!"

이를 갈며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저 좁은 입구 통로, 바닥에 수없이 널브러져 있는 기사들의 시체 너머.

보인다.

"카렌의 영광된 승리를 위하여 !"

"악마를 죽여라!"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동료들의 죽음에 아랑곳 않고 우르르 진입해오는 후속 기사들.

지금까지 내가 죽인 기사들의 수는 절대적지 않았다.

적다면 수십, 많다면 백에 달할 정도로 많은 수. 하지만 그럼에도 놈들은 기세등등하게 꾸역꾸역 밀 고 들어왔다.

그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놈의 오러가 고갈되어간다!"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악마를 죽일 수 있다!"

그랬다. 지금 내 마나는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오러의 세기를 낮게 운용하고, 마나의 전투소모를 최대한 억제했 음에도.

그럼에도 적들이 너무나 많았다.

숨을 고르며 손에 들린 장검을 바라봤다.

내 장검에 어려 있는 오러광은 처음과 달리, 그 기세가 현저히 희 미해져 있었다.

마나 소모로 인한 오러 출력의 저하. 지금 내 기세는 명백히 약화 되어있다.

후욱, 심호흡했다.

'기사 놈들의 갑주와 무기는 절삭할 수 없다.'

강한 출력의 오러는 그 무엇이든 절삭할 수 있다. 기사들이 강화해 운용하고 있는 갑주든, 그들이 휘두 르는 무기든. 그 무엇이든지.

하지만 지금 내 오러 출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많은 마나를 소모했기에 더 이상 강한 세기의 오러를 유지할 수는 없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놈들의 갑주 사이, 이음매를 노 린다.'

눈깔을 굴려 방금 전 내게 죽어 나간 기사 놈들의 시체를 바라봤다.

아까 전 죽어있던 기사 놈들과 달리. 방금 전 죽은 놈들은 하나같 이 갑주와 무기가 멀쩡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오직 놈들의 갑옷 이음매 사이만을 노려 검을 휘둘렀으니 .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미세한 갑주 사이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검날을 밀 어 넣다니 말이다.

허나 나라면 가능하다.

검술 스킬과 집중 스킬을 지닌 나라면, 막대한 민첩 능력치를 가지 고 있는 나라면.

시스템의 보정과 운명을 타고난 나라면!

"돌진! 돌진하라!"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적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놈들이 제 아군의 시체를 밟으며, 우악스러 운 금속음을 울리며. 창칼을 앞으로 들이밀고 돌진해온다.

나직이 읊조렸다.

"덤벼라. 허접쓰레기 새끼들아."

나는 피 칠갑 된장검을 다시 들어올린다.

* * *

"… 대단하군."

하보크 단장대리는 그리 읊조리 며 앞을 바라봤다. 그는 저 좁은 통로 너머, 전투하고 있는 한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이 거의 지쳤다! 몰아 붙여!"

"으아아아아!"

편대단위로 달려드는 기사들. 그 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돌진해가, 놈에게 창칼을 내찔렀다.

"카렌 새끼들, 다 죽여버린다!"

그런 기사들을 마주하는 것은 한지훈. 제국의 악마.

확실히 놈의 모습은 처절했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촛불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는 오러광. 몸짓은 굼 떠졌고, 근육은 피로해져 간간히 경련했다.

명백히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놈의 모습.

"… 정말 대단해.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한지훈을 바라보며 하보크 가 나직이 읊조렸다.

본래라면 한지훈은 찰나를 버티 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져야 할 것 이었다.

기사와 기사의 전투에서 오러의 출력은 절대적이었기에.

한지훈의 마나는 거의 고갈되었고, 그렇기에 오러의 세기는 형편없었다.

놈의 오러는 그 세기가 약해 기사들의 방호를 뚫을 수 없다.

반면 기사들은 녀석의 공격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으니 .

이쪽이 승리하는 건 당연할 일이 었을 터.

허나 그렇지 않았다.

콰직, 서걱.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다수의 인영이 핏물을 흩뿌리며 나 자빠지는 광경이 하보크의 시야 속에 들어온다.

쓰러지는 것은 모두 카렌의 기사 들이었다.

"갑주 사이 이음매만을 노려 검을 휘두르다니. 말도 안 되는 검의 조예로군."

한지훈의 검술 능력은 결코 하찮 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대륙에서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심후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쾌검이 발현되었다. 섬뜩한 궤적이 그어지자 기사들의 목에서, 허리에서, 복부에서 핏물이 치솟았다. 그들의 비명과 고함소리가 탑 안을 웅웅 울렸다.

으득. 그는 이를 갈았다.

'놈의 검이 보이지 않는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지훈은 명백히 지쳐있다. 오러는 고갈되어 맥아리가 없었고, 근육 또한 혹사당해 경련하고 있다.

그 검격의 속도가 줄어들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하보크는 한지훈의 검격을 제대로 포착조차 할 수 없었다.

하보크 그 자신 또한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상위의 강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만큼 한지훈의 검격은 하보크 의 수준을 아득히 능가하는 것이다.

그는 직감했다.

'이번이 놈을 죽일 수 있는 유일 한 기회다.'

이토록 몰려있는 상황에서조차 저런 실력을 보이는 놈이다.

그런 이가 만전의 상태로, 단독 이 아닌 휘하 부하들과 함께 카렌 의 영토를 휘젓는다면?

재앙이다. 왕실 기사단조차 농락 한 그다.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 리라.

만약 이번 기회에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다음에 죽는 것은 카렌의 수많은 군관과 장성들일 터.

이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반드시.

"벽을 뚫었다!"

"들어가! 놈을 포위해!"

카렌 기사 놈들이 석탑의 벽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벽까지 뚫을 줄이야."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쥐새끼마냥 벽을 뚫어가면서 까지 진입해을 줄이야.

저 두꺼운 벽을 뚫다니, 아무리 기사들이라 한들 어지간한 노력으로 힘든 일이었을 터인데.

"포위해서 죽여버려!"

전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그리 외쳤다. 그에 입구에서, 그리고 구멍을 타고 탑 안으로 쇄도해오는 기사 놈들. 녀석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온다.

너무나도 많은 수.

철그럭, 철컥, 철컥, 철컥!

놈들이 내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놈들의 포위가 순식간에 완성 되어간다.

"죽여라!"

"우오오오오!"

직후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카렌의 기사 놈들.

나는 검을 휘둘러 저항했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검날. 본래였다면 내 검은 순식간에 적 기사의 목을 치고, 질척한 핏물에 적셔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쩌엉!

내 검날은 적 기사에게 가로막혔다.

"죽어어어어어!"

그 틈을 노리고, 적 기사 놈이 악을 내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강렬한 오러광이 일렁이는 검날. 그것이 공기를 가르고, 공간을 양단 하며. 이쪽을 향해 쇄도해온다.

방어해야 한다.

나는 검격을 막기 위해 검날을 곧게 세웠다.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아귀 힘을 꽉 주었다. 하체를 긴장시켜 단단히 지지했다.

이제 곧 놈의 검격은 내 검신에 튕겨져 나갈 것이리라. 그리 여겼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도 마나의 고갈이 심각했던 것일까.

스적.

내가 들고 있던 검은 적의 검격을 막지 못하고, 가볍게 잘려나가 반 토막이 되었다.

물론 적 기사의 검격은 그저 내 검날만을 베고 지나가지 않았다.

질척.

갑작스레, 가슴에 이질감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 바라보니 내 전신 갑주에 희미한 균열이 나있다.

"… 망할."

그런가. 이제 놈들의 검을 막을 정도의 마나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인가.

울컥, 울컥. 베인 가슴팍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고통은 없었다. 집중 스킬이 활성화 되어 고통이 소거되었기에.

다만 기분이 엿같을 뿐.

나는 왼 주먹으로 녀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퍼엉 녀석은 머리통이 찌그러져서 저 멀리 날아갔다.

쿵! 철그럭, 철퍽!

쇳소리를 내며 지면을 구르는 기사.

기절한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 인지. 놈은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제발 뒈졌기를 바란다. 나를 벤 놈이 살아있으면 하진 않으니까.

"놈의 마나가 완전히 고갈되었 다!"

"죽여! 악마를 죽여라!"

"단원들의 복수를!"

나를 포위한 기사들이 공격해온다. 사방에서 오러 서린 여러 공격 들이다채로운 궤적을 그리며 쇄도 해왔다.

이제 놈들의 공격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내 마나가 완전히 고갈되었기에.

하지만, 막을 수 없다면.

'회피하면 될 뿐.'

파앙!

적 기사의 검격을, 허리를 비틀 어 피해냈다.

직후 놈에게 달려들었다. 반 토 막 난 검신을 녀석의 투구 안쪽, 눈이 있을 자리에 쑤셔 박았다.

퍼억!

"끄아아아아아아아!"

놈이 째진 비명을 내지르며 발광했다.

바닥을 굴러 아무렇게나 널브러 져 있는 적의 장검을 재빨리 주워 들었다.

예비용 장검을 모두 소모해버렸 기에. 이제부터는 놈들의 검을 주워 서 써야 한다.

파앙!

측면으로 도약. 직후, 콰직!

적 기사 옆구리의 빈틈, 갑옷의 장갑 사이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커허어억…!"

검날을 비틀어 장기를 난자했다. 놈이 경련하며 쓰러진다.

지체하지 않고 검날을 회수, 또다시 다른 방향의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서걱.

투구와 목 보호대 사이.

그 미세한 빈틈 사이로 검날을 밀어 넣었다. 녀석의 목울대가 순식간에 베어나간다.

"컥, 커헉…!"

제목을 붙잡고 휘청거리는 기사.

푸화아악!

동맥을 제대로 그어버린 것인지, 피가 분수처럼 거세게 뿜어진다. 놈 의 피가 후드득 떨어져 내 갑주를, 그리고 주위 지면을 적셨다.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번뜩이는 검광. 나아가는 쾌검. 직후 이어지는 절삭음과 핏물이 치 솟는 소리.

철컹, 철커덩!

기사들이 죽어 나자빠진다. 나는 계속해 억지로 몸을 움직여가며. 놈 들을 죽여갔다.

하지만 놈들은 포위한 채 공격해 왔으며, 반면 나는 혼자에 불과한 상황.

내 몸에 상흔이 하나둘 아로새겨 져가기 시작했다.

퍼억.

적 기사의 검격이 내 옆구리를 베었다. 핏물이 흩뿌려지고, 내 자세가 무너진다.

콰직.

또 다른 기사의 검날이 왼쪽 어깨에 박혔다. 어깨가 너덜너덜하게 흔들린다. 팔을 움직일 수 없다.

쾅 다른 기사가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전신갑주가 쿠킹호일마냥 우그 러지고, 내다리도 기괴하게 구겨졌다.

종아리뼈가 완전히 박살났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발악하듯,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다시 다수의 기사들을 베어 넘겼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어느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몸 이 절로 휘청인다.

이불쾌한 감각. 예전에 한번 경험해봤기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과다출혈.'

다름 아닌 과다출혈로 인한 산소 의 부족.

나도 어지간히 핏물을 바닥에 홀 려댄 듯하다. 머리가 어지럽다. 균형을 잡기 힘들다. 사고속도가 느려 져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앙!

검을 휘둘러 적을 죽인다.

"미친놈! 저 꼬라지로 끝까지…!"

"독한 놈! 이만 뒈져!"

죽음은 거절한다.

만신창이 상태에서도 끝까지 검을 쥐고 적 기사들을 베어나갔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 직전의 발악에 불과 했을까?

싸움의 끝이 찾아왔다.

퍼억!

"커헉!"

적 기사가 지른 장창이 내복부 를 완전히 관통했다. 내 몸이 힘없이 무너진다. 고개가 절로 아래로 축 늘어졌다.

덕분에 지금 내 몰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피식, 쓰게 웃었다.

'참 엉망이네.'

번쩍거리던 갑주는 어느새 넝마 처럼 너덜너덜. 내 피인지, 적 기사 의 피인지. 온통 피 칠갑이 되어있다.

직감했다.

'끝인가.'

다리에 힘주어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만큼 피를 많이 흘렸기에.

아마 이대로 둔다면, 금세 내 목숨은 끝나버릴 터.

하지만 적들은 여유롭게 내가 절 명하는 걸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놈을 제압했다!"

"죽여! 목을 잘라 죽여버려!"

"단장 각하의 원수를 갚는 거 적 기사가 칼을 높게 치켜든다. 저 검이 내려쳐질 때, 그 순간이 내 목과 몸통이 분리되는 순간이리라.

죽음을 직감했다. 눈을 감았다. 정신이 조금씩, 희미하게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때.

"한지훈 천인장!"

두두두두두두두!

환청이라도 들린 걸까.

익숙한 우렁찬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 무수한 말발굽 소리도.

나는 눈을 다시 떴다.

"잘 버텼다!"

두두두두두.

아니.

환청이 아니었다! 이 대지를 진동케 하는 말발굽 소리, 분명 지척에서 들려오고 있다.

내가 눈을 크게 뜬 그때.

콰앙!

전투마에 탑승한 제국 기사들이, 놈들이 뚫어놨던 구멍을 통해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내게 맡기게! 한지훈 천인장!"

그들의 가장 선두에는 베르겐 기사단장이 있었다.

- 띠링!

[서브 퀘스트 - '상륙거점 사수' 를 '훌륭하게' 완수했습니다!]

퀘스트 완료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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