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마나포션은 여기 두겠습니다, 천 인장님."
"그래. 수고했다."
병사들이 고지대 위, 봉화탑 옥상 전망대로 물자들을 옮겨왔다.
옮긴 물건들은 별것 없었다.
포션. 마나포션과 체력포션. 그리고 예비용 장검들과 번쩍번쩍한 전신갑주.
멍하니 중얼거렸다.
"전신갑주. 입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동안 나는 항상 제국군 보병대 전투복에 경갑차림이었다. 내 소속 이 보병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신갑주를 입 게 되었다.
'방호력이 필요하니까.'
일 층에서 적 기사 수백 명을 막 아내야 한다.
물론 입구가 좁기에 한번에 상대 하는 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방호능력을 키우는 것이 보다 유리할 터.
때문에 나는 전신갑주를 준비했다. 뒤랑텅 보급기지에 있던 기사용 갑주였다.
그것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그래. 준비는 다 해놨나?"
"제피르 단장 각하."
제피르가 천천히 걸어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나포션과 체력포션, 그리고 여러 잡다한 물자들을 옮겨왔습니다."
"흐음."
제피르는 시선을 돌려 쌓아놓은 물자를 바라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포션이 더럽게 많군."
"이것도 나름 일부입니다만."
"그러겠지. 12만 카렌 왕국군에 게 가야 할 마나포션과 체력포션이 니. 네 녀석, 참 호화롭게 싸웠어."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내가 이미 소모한 마나포션 과 체력포션의 양은 정말 많았다. 그야말로 포션으로 배를 채우는 수준이다.
평소였다면 결코 그토록 많은 포 션을 가지지도, 사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각각 더럽게 비싼 물건들 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적의 보급품이다. 꺼릴 것이 있겠는가.
제피르는 쯧쯧 혀를 차고는 말한다.
"이놈. 그러다가 내성이 올 수도 있다."
"내성이 라니."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약물은 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포션도 약물이지. 마나 포션도, 체력포션도 사용하면 사용 할수록 그 효과가 점차 떨어진단 말이다."
현대 지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긴했다.
처음에는 잘 듣던 약물이나 의약 품이, 점차 몸이나 질병이 적응해 그 효과가 떨어진다고.
그래서 오래 투병한 사람들은 약 의 종류를 바꾸거나, 보다 많은 양 의 약을 처방한다 하던가.
제피르가 지금 말하는 것은 그 내성을 말하는 것 같다.
"너무 포션을 남용하지 말게. 그러다간 나중에 포션으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없게 될 수 있으니 ."
"음…."
하지만 포션을 물처럼 마셔댔음 에도, 지금 내게 내성이 생겼다는 체감은 없었다.
체력포션이든 마나포션이든 언제나 동일한 효능을 발했다.
내 날카로운 감각이라면 포션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놓칠 리 없는데도.
잠시 나를 바라보던 제피르가 의아한은 한쪽 눈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 네 녀석, 신체구조 가 뭔가 다르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마나회로, 그리고 신체구조. 잘 보면 너무 잘 만들어져 있어."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주물 렀다.
안마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시원했다.
"근육. 밀도가 상당히 높군. 이상 할 정도로 말이야."
그가 미약한 마나를 일으킨다. 제피르가 운용하는 마나는 은은히 내 신체 속으로 파고들어 마나회로 를 읽어간다.
그가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나회로도…."
"안 좋은 겁니까?"
"아니. 좋지. 너무 좋지. 그래서 문제다."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내 근육과 마나회로의 성능이 좋다는 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저리 찜찜한 표정을 짓는단 말 인가.
그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네놈이 가진 근육과 마나회로.
너무 이상적인 구조다. 근육의 밀도는 일개 기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고, 마나 회로도 그 구성과 배치가 너무나 이상적이다. 마치…."
제피르는 내 어깨에서 손을 때고 는, 쯧 혀를 찼다.
"마치 누군가가 설계해서 만든 것 마냥 말이다."
찔리는 것이 있긴했다.
'포인트로 능력치를 높여서 그렇 겠지.'
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퀘스트를 클리어 했고, 포인트로 능력치와 스킬을 향상시켰다.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전혀 다르 게 성장했으니 . 내 몸의 구조도 자연스럽지 않을 터.
그리고 제피르는 눈썰미 좋게도 그런 내 상태를 간파한 듯했다.
물론 그는 시스템의 존재를 모르 고 있었다.
"하여간 부럽군그래. 네놈의 마나 회로가 내게 있었다면, 내 마법수양 이 삼십 년은 진보했을 텐데."
그저 부러워할 뿐.
나는 씩 웃었다.
"제 마나회로. 그렇게 좋습니까?"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 마나탱 크를 뽑아서 내꺼와 맞바꾸고 싶은 심정이야."
참고로 마나탱크는 심장이다.
"섬뜩한 말하지 마십시오."
"농담이다."
전혀 안 웃긴 농담이다.
"그나저나…."
그는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시선을 돌려 전망대 밖 보급로 방향을 바라본다.
적이 쳐들어오는 널따란 길. 그곳을 통해 이만이 넘는 대군이 들 이닥칠 것이다.
그가 중얼거린다.
"네 녀석을 처음 볼 때가 생각나 는군."
"처음 볼 때라면…."
"거점 방어전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때와 상황이 퍽 비슷하긴했다.
대로를 따라 밀어닥치는 적의 대군. 거점에 자리를 잡고 적에게 화력을 투사하는 전투마법사.
다른 점이라면 그때와 달리 시야 한켠에는 커다란 강이 보였고, 마법사가 배치된 곳이 적의 진군로와 가까이 자리해있다는 것 뿐.
피식. 제피르가 웃는다.
"뭐. 네 녀석은 그때랑 다르게 많이 성장했지만."
나는 마저 웃었다.
확실히. 이전과 달리 나는 성장 해 있었다. 능력치를 키웠고, 스킬을 성장시켰다. 보다 많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점차 전쟁의 주역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 .
"자, 저기 오는군."
제피르가 문득 그리 읊조렸다. 그에 나는 시선을 돌려 보급로를 바라본다.
그러자 보인다.
저 멀리, 깃발을 들고 밀어닥쳐 오는 적의 군세. 카렌 왕국군 2만, 그리고 7백의 기사들.
놈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제피르가 그리 읊조린다. 그에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나머지 마법사 백여 명이 하나둘 마나를 끌어올린다.
그가 읊조렸다.
"합동마법을 준비하라. 언제나 그렇듯, 폭렬폭풍이다. 가볍게 50중첩 부터 가지."
이제 곧 마지막 전투다.
"곧 뒤랑텅 보급기지입니다."
군단 참모장이 보고해온다. 그에 딜라이 군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곧이군."
"각하. 아뢸 것이 있습니다만…."
참모장이 잠시 주저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가 의아한 기색을 한껏 담아 물었다.
"어째서 기사단을 후속에 배치한 것입니까?"
딜라이 군단장은 근위군단을 선두로, 왕실 기사단을 후열로 배치했다.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적에게는 기사가 없습니다. 차라리 기사단을 선행돌격시켜 적영을 휘젓는다면, 보다 수월하게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온데."
그들이 상대할 제국군에는 기사가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단 한 명 있긴했다.
한지훈. 제국의 악마.
하지만 기사는 놈 혼자였다. 그리고 적이 마지막 방어진을 꾸리고 있는 상황이니. 더 이상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을 터.
녀석은 이전처럼 일격이탈하며 이쪽을 괴롭힐 수 없다. 곧 마지막 거점이기에.
7백의 기사들이 있다면 적진을 뒤흔들고, 더해 증오스러운 한지훈 까지 처치할 수 있다.
그러니 먼저 기사단을 투입시키는 것이 좋을 터인데.
헌데 그럼에도 딜라이 군단장은 기사단의 후속배치를 명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
그런 참모장의 물음에, 딜라이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한 군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참모장. 자네는 들을 자격이 충분하지. 절대 발설하지 말도 록."
"네.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심각한 말을 하려는 것을 눈치챈 참모장이, 우묵한 얼굴로 딜라이 군단장을 주시한다.
군단장이 입을 열었다.
"적에게 마법사가 있는 것 같다."
"마법사라 하신다면…?"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필시 놈들 이겠지."
참모장의 얼굴에는 경악 대신 의 아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게 말이 안 되는 소리 였기 때문이다.
그가 반박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보통 전투 마법사들이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시간은 필요합니다."
전투마법사가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운용하는 데는 막대한 연산력 과 마나가 소모된다.
시공을 비틀어 공간과 공간을 붙 여,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이다. 절대 쉬울 리 없다.
전투마법사가 발현할 수 있는 마법들중 최상위의 마법이었으니 .
"그리고 폭우 때문에 마법의 난 도가 훨씬 높아졌을 터. 적 마법사 가 도약해오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 의 여유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초장거리 도약 마법은 기후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바람이 심하거나 눈, 비가 내린 다면 그 준비기간은 훨씬 늘어난다.
그리고 밤새 폭우가 내렸었다.
때문에 카렌 전쟁부에서는 마법사가 도약해오기까지 적어도 몇 시간의 여유가 남아있으리라 여겼다.
"적에게는 마법사가 없을 것입니다. 군단장 각하."
때문에 참모장은 확신했다.
제국 놈들에게 마법사가 없을 것 이라고. 놈들에게는 오직 일만을 간신히 넘는 조잡한 병력과, 유일하게 오러를 다루는 한지훈. 그것이 적의 전력 전부라고 말이다.
하지만 딜라이 군단장은 그리 믿지 않았다.
"아니. 놈들에게 마법사가 합류한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갑작스러운 방어선의 후속배치는 말이 되지 않는다."
딜라이 군단장의 성격은 전혀 낙 관적이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제국군의 후퇴와 재편성의 이유를 추측했고. 곧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은 정복 전쟁시절부터 활약했던 베테란 전투 마법사들이다. 필시 다른 전투마법 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구축했겠지. 놈들에게는 마법사가 있다."
"… 허어."
"전혀 믿지 않는 것 같군. 뭐, 되었다."
딜라이 군단장은 쯧 혀를 차고 는,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곧 알 수 있게 될 거다."
그는 일반 보병대를 선두로, 그리고 기사단을 후열로 두었다.
만약 적에게 정말 마법사 전력이 있다면. 그렇다면 먼저 보병대 전력을 소모케 하기 위해서.
'마법사가 있다면 기사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보병대는 전투마법사들의 밥일 뿐이다. 마법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서는 기사들을 운용해야 하니.
딜라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지시 한다.
"계속 전진하라. 곧 적의 방어선 이다. 그곳에 간다면, 무언가 반응 이 있겠지."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참모장이 대답하는 그때, 문득.
- 쿠르르르르르….
장중한 소음이 울렸다.
마치 영혼까지 울리는 듯한 묵직 한 소음. 딜라이는 이 소음의 정체 를 알고 있다.
"…거 봐라."
그는 나직이 읊조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인다.
붉은색으로 떠올라 있는 커다란 마법진. 그것은 계속해 중첩되어가 며 그 기세를 늘려가고 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다."
딜라이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제국 놈들에게는 마법사가 있었다.
"참모장. 아직도 내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나?"
"…."
참모장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멍한 얼굴로 하늘에 떠올라있는 마법진을 주시할 뿐.
"당장 기사단에게 알려라. 적 마법사들의 위치를 파악해, 제압하라 고."
그가 그리 지시하는 그때.
- 번쩍!
찬란한 섬광이 허공에서 터져 나 왔다.
하늘에서 수백, 수천 개의 붉은 색 궤적이 떨어져 내렸다.
폭렬폭풍 마법. 라브리에 전투마 법단이 장기로 삼는 광역 폭발 마법이다.
붉은 궤적 하나하나가 강렬한 힘을 품고 있는 폭렬구였다. 그것들이 사정없이 지상으로 낙하해, 지면을 때린다.
콰과과과과과과광 !
울리는 것은 커다란 폭음.
무수히 많은 폭발이 일고, 불길이 일어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차마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폭 렬구가 진군하는 왕국군 사이에 틀어박혀 폭발한다.
"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병사들이 후폭풍에 휘말려 날아 갔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은 지면을 뒤덮었고, 보급마차와 병사들을 불태웠다.
핏빛처럼 붉은 불길이 퍼져나간다. 보급로에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 불바다가 펼쳐진 대지 위, 말을 타고 달려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
"… 빌어먹을! 마법사! 제국 놈들에게는 마법사가 없는 것이 아니었 나?!"
카렌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지금은 전사한 킬리언 기사단장을 대리해 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이. 하보크 림펠시안.
그는 이를 악물고 전투마를 몰았다.
두두두두두!
그의 전투마가 달려 나간다. 그런 부단장을 단원들이 뒤따른다. 그의 배후에서 달려오고 있는 기사들 의 수는 무려 7백.
기사들은 대열의 후방에 배치되 었기에, 다행히도 마법공격으로 인 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보크 부단장이 크게 소리친다.
"우리 왕실 기사단은! 적 마법사 놈들을 찾아 제압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금세 묻혀버리고 말았다.
콰과과과광!
그의 인근에 폭렬구가 떨어져 내 렸기 때문에.
후욱, 충격파가 밀려온다. 뜨거운 열기가 전신갑주를 데웠다. 그의 전투마가 순간 균형을 잃어 휘청인다.
그는 억지로 고삐를 당겨 전투마 의 균형을 되찾고는, 계속해 달려나 갔다. 기사들이 힘겹게 따라온다.
"마법사 놈들은 저기, 저 고지대 위! 봉화탑에서 화력을 투사하고 있다!"
떨어져 내리는 붉은색 궤적을 본 다면 알 수 있다.
마법사 놈들은 고지대 꼭대기에 자리해있는 탑에서 마법을 갈겨대 고 있다.
위치를 알아냈으니 , 이제는 가서 그들 마법사를 제압해야 할 때.
"놈들을 죽여버린다! 왕실 기사단! 나를 따르라!"
"명령을 받듭니다!"
기사들이 달려간다.
콰앙! 쾅! 콰과과광!
그들의 주위로 폭렬구가 떨어져 폭발한다. 열기가 온몸을 휘감고, 충격에 날아가는 기사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그들이 죽어나가는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기사. 오러로 몸을 보호 한다면, 폭렬구에 직격당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가혹한 환경인 것은 사실.
으득. 그가 이를 갈았다.
'마법사.'
강력한 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근접하기만 한다면. 처치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렬구가 날아 와 폭발하고 있다. 허나 그 정확도는 형편없었다.
광역 마법이니, 그럴 수밖에. 덕분에 그들 기사들은 간신히 폭발의 잔해를 해치고, 화마와 연기를 뛰어 넘어. 산의 오르막을 타고 달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왕실기사단 은 탑의 앞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하보크가 소리 친다.
"전원, 하마!"
철컥, 철컥!
기사들이 전투마에서 내리고 탑 앞에 붙었다.
탑에 근접했기에, 더 이상 마법 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놈들은 다시금 본대의 일반 보병들을 향해 마법을 갈겨대고 있을 뿐.
후욱. 그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 며 심호흡 한 뒤. 주위 기사들에게 묻는다.
"남아있는 단원들의 수는?"
"…대략, 육백 정도입니다."
"백이 낙오한 건가."
상정 이내의 손실이다.
육백. 이 정도의 기사들이 살아남 았다면, 일단 근접한 이상적 마법사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
그는 지시한다.
"돌입! 탑 안에 있을 제국 놈들과 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여라!"
"명령을 따릅니다!"
콰앙! 철컥, 철컥, 철컥!
기사들이 문을 박차고 탑 안으로 진입한다. 진입하려했다.
하지만 그들은 탑 안쪽으로 진입 하는 와중, 우뚝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너는..!"
익숙한.
아니, 증오스러운 얼굴이 보였기 에.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가 입고 있는 것은 피에 절어 붉게 물들어 있는 경갑과 전투복이 아닌, 번쩍거리는 전신갑주였다는 사실.
"악마! 한지훈!"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
그가 탑 입구의 안쪽에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녀석이 웃는다.
"우글우글. 떼지어 잘도 몰려왔 구만 그래."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어째서긴."
철컹. 그가 기사용 전신갑주 투 구의 바이저를 닫았다. 한지훈의 검은색 눈동자가 가려진다.
"네놈들을 막기 위해 여기서 대기 타고 있었지."
하지만 구멍 뚫린 바이저 안쪽으로는, 그의 안광이 희미하게 번뜩이 고 있었다.
명백한 전의.
"자, 덤벼라."
한지훈이 검을 들어 올렸다.
화르르르륵!
그의 검신에서 푸른색 불길이 솟 구쳐 일렁인다.
"몇 명이든 죽여주마."
하보크의 눈동자가 공포로 떨리 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