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거리는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치고 빠지기. 히트 앤 런. 일격 이탈.
동서고금 육전과 해전, 그리고 공중전을 막론하고 항상 쓰여 왔던 전술이다.
그야말로 지구의 전쟁사 내내 사용되어왔던 가장 기초적인 전술.
이 고루하기 짝이 없는 전술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우측 고지대! 놈! 악마입니다!"
"… 제기랄!"
그만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금 등장하자, 적 기사 들이 한껏 긴장한다. 그들의 불안에 찬 눈빛이 이쪽으로 향했다.
"1번 전대! 놈을 추격하겠습니다! 전대, 나를 따르라!"
"2번 전대도 가세한다. 가자!"
놈들이 이쪽으로 돌진해온다.
벌써 일곱 번에 걸쳐 놈들을 농 락했다. 그동안 나는 백에 달하는 기사들을 참살했고, 다수의 편대장 놈들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좀 더 먹음직 스러운 놈들을 처치하고자 한다.
'전대장.'
무려 일백의 기사를 지휘하는 상급 지휘관이다.
놈들을 처치한다면 기사단 단위 의 연계와 지휘를 흔들 수 있다.
나는 고지대 위에서서 놈들의 배치를 주시했다. 기사들의 대열이 보인다.
놈들의 움직임은 꽤나 느려져 있었다.
며칠 밤낮을 새우며 카렌 수도 부터 이곳 제국 북부지방까지 내달려 왔다. 보급로에 도착한 이후에도 무려 일곱 번이나 나를 상대로 한 전투기동을 펼쳤다.
지칠 수밖에 없었을 터.
반면 나는 전투마를 교체해가며 급습과 후퇴를 반복했다. 체력포션 과 마나포션을 무제한 섭취하며 전력하락을 최대한 억제하기도했다.
덕분에 이쪽의 컨디션은 그리 나 쁘지 않은 상황.
피식 웃었다.
"이쯤 되면 할 만한데."
그동안은 전대장 놈들을 노리지 못했다. 놈들은 상급 지휘관. 주변 의 경계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놈들의 경계에도 구멍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
"먼저, 1번과 2번 전대장부터 처 치해볼까."
전대장 놈들을 처치할 때다.
나는 말을 박차고 놈들을 향해 돌진해갔다.
"전대! 나를 따르라!"
카렌 왕실 기사단의 1번 전대장, 데이론은 앞으로 질주해갔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전방으로 향한다.
그러자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벌써 여러 번이나 보아왔기에 퍽 익숙한 외양이었다.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를 지닌 제국군 천인장.
"한지훈…!"
증오스러운 적이 아닐 수 없다.
놈이 첫 등장한 이후, 일곱 번의 전투를 거치는 동안 일백에 달하는 기사들이 죽거나 무력화 당했다.
그리고 전사한 기사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자신의 1번 전대에서 나 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 기에, 지금 태양은 점차 올라서고 있었다.
그는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한지훈은 그야말로 쉼 없이 등장해 기사단의 진군을 지연시켰다.
각 전투는 그리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고작 몇 분에서 십 여 분 정도.
하지만 각각의 전투 이후, 부상자를 치료하고 전사자의 시체를 수 습하는데 전투 그이상의 시간이 요되었다.
때문에 지금 기사단은 예정보다 도 훨씬 더 느린 속도로 진군하고 있었다.
으득.
데이론 전대장이 이를 갈았다.
'놈만 없었다면. 지금쯤 모든 상황이 끝났을 터인데.'
만약 놈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왕실 기사단이 예정대로 진군했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쯤 선발대 를 완전히 정리하고, 드발트 강 유 역을 완전히 점거했을 터다.
하지만 한지훈이 계속해 급습과 퇴각을 반복하는 통에 이쪽의 진군 이 극도로 느려져 있는 상황.
이대로 놈에게 휘둘려 시간을 소모한다면. 그들은 결국 제국군의 증 원을 막을 수 없게 되리라.
때문에 데이론 전대장은 결심한다.
'내 휘하 기사들 태반을 잃는 한 이 있더라도. 놈을 죽여야 한다.'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놈을 처치하기로.
왕실 기사단의 전대장 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왕국에 대한 충성심, 인품과 실력, 전공, 그리고 뛰어난 혈통을 지 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대장 자리.
그리고 그는 왕실 기사단의 전대장. 왕국과 왕실, 그리고 조국 카렌을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가 희생할 것에는 부하 들과 본인의 목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크게 외친다.
"각 편대장! 놈을 몰아넣는다! 1번부터 3번 편대장은 내 뒤로 붙는 다! 4번, 5번 편대장은…!"
데이론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검은 머리의 군관을 뒤?았다.
'몰아넣어서, 죽인다!'
한지훈. 확실히 강력한 적이다.
그 신묘한 기마술, 더해 강렬한 무력이란. 오러의 길을 걷는 기사 데이론으로선 절로 감탄할 만한 것 이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 반면 데이론 은 무려 일백의 기사를 이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확신했다.
'죽일 수 있다!'
놈을 처치할 것이라고.
편대 단위로 놈을 포위압박한 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유인, 이후 휘하 기사들과 협공한다면.
제아무리 제국의 악마라 한들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 그리 확신한 것이다.
허나 그런 그의 확신은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말았으니 .
"전대장님! 놈이…!"
한지훈의 기마술이 데이론의 예상보다 훨씬 출중했다.
"놈이 포위망을 넘어갑니다!"
콰앙!
울리는 도약음. 놈을 포위하던 기사들 사이에서 흙먼지가 후욱 일어나고, 하나의 커다란 신형이 허공에 튀어 오른다.
적의 전투마. 그 위에 타있는 것은 검은 머리의 군관.
"… 맙소사."
데이론은 경악했다.
한지훈은 달려오던 전투마를 도 약시켜 순식간에 기사들을 뛰어넘 은 것이다.
쿠웅!
그가 지면에 착지하고, 계속해 달려온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검은색 눈동자. 데이론은 그제야 깨달았다.
'놈이 노리는 것은 나다!'
그동안 여러 기사들과 편대장들을 처치했던 것으로는 성이 안 찼던 것일까.
놈, 한지훈은 마침내 전대장인 자신을 노리고 있다.
스르릉. 그가 검을 뽑아든다.
"어림없는 짓이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휘하 기사들 이 도열해있다. 그 수가 무려 십 수명.
녀석은 이곳까지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리라. 그는 그리 여겼다.
하지만,
"악마가 이쪽으로 옵니다!"
한지훈의 돌파능력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콰르르르릉!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백의 검 날 파편이 비산해 쇄도해온다.
그리고 붉게 치솟는 피보라.
"끄아아아아아!"
앞에서 자신을 호위하던 기사 다수가 폭발에 휘말려 쓰러졌다.
"전대장님! 피하십시오!"
전대 부관이 앞으로 달려나간다. 전대장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두두두두두.
놈이 달려온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맞바람에 휘날리고, 쥐어든 장검에서 오러광을 번들거리며.
데이론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말을 몰고 질주한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맞바람에 휘날리는 앞머리 너머, 적의 모습이 보인다.
[데이론 허트먼][왕실 기사단 1번 전대장]
번쩍거리는 전신갑주. 놈의 가슴 팍에는 전대장 계급이 양각되어 있고, 투구 위에는 지휘관을 싱?징하는 붉은색 장식이 자랑스레 박혀있었다.
철컥. 검을 들어 올린다.
"전대장이라."
화르르륵.
오러를 돋웠다. 푸른색 광휘가 번들거리며 피어오른다.
"어디 한번, 얼마나 잘 싸우나 볼까."
다름 아닌 왕실 기사단의 전대장 이다. 저런 조잡한 편대장 놈들보다는 훨씬 잘 싸울 것이다.
물론 놈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대장님을 보호해라!"
"막아! 막아!"
"놈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내가 전대장을 노린다는 걸 파악 했는지, 놈의 호위 녀석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피식 웃었다.
"멍청이들."
검날을 위로 치켜들었다. 허리 부터 손끝까지, 우측 상반신의 근육을 한껏 긴장시켰다.
"내 상대가 안된다는 건 충분히 확인했으면서."
검을 내리긋는다.
사선베기.
콰르르르르릉!
"끄아아아악!"
검날이 적 기사의 가슴팍을 깊게 베었다. 녀석이 비명을 내지르며 낙 마한다.
"무모하게 막아내려 하다니."
다음으로는 수평베기.
콰아아앙!
검날이 기다란 반원을 그린다.
청색 검광이 번뜩이고, 서걱.
하는 절삭음이 울리며, 적 기사 의 목이 떨어져나간다.
후드드득.
놈의 핏물이 촤악 뿌려졌다. 뺨에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닿는 감각 이 썩 불쾌하다.
손등으로 핏물을 닦아내며, 다시 금 검을 휘두른다.
파앙!
이번에는 가볍게. 허나 신속하게. 서걱.
또다른 기사의 목덜미가 잘렸다. 녀석 또한 핏물을 한껏 뿜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두두두두두.
나는 계속 앞으로 전진하며 기사 놈들을 베어버렸다.
"전대장님을 보호…."
"아악!"
"놈을 막아라!"
어떤 이는 평기사였고, 어떤 이는 편대장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베 어버린 녀석은 전대 부관이었다.
놈들을 모조리 처치한다.
퍼억, 콰직. 서걱. 검을 휘두르는 소리, 그리고 놈들을 베어버리는 절삭음이 고막을 두드린다.
녀석들은 분투했다. 제 상관인 전대장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단칼에 죽어버 리는 것에 불과했으니 .
다시 앞을 바라본다.
'전대장.'
1번 전대장, 데이론이 보인다.
"… 네놈!"
내가 마침내 자신의 앞까지 도달 하자. 녀석은 분노 어린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휘하 측근들을 죽여버렸으니 분노하는 것도 당 연.
하지만 그래봤자다.
"죽여버린다, 악마새끼-!"
놈이 외치며 돌진해온다.
과연 전대장이라는 것인가. 녀석 의 돌진기세는 퍽 강렬했다. 검신에 번들거리는 오러는 결코 조잡하지 않았고, 지쳤을 터인 그의 눈동자는 또렷했다.
최소한 상급의 막바지, 혹은 최상급의 초입에 달했을 무력. 꽤나 젊어 보인다는 걸 감안한다면 퍽 준수한 능력이었으니 .
허나 그래봤자다.
녀석의 기세는 강렬했으나 날카 로움은 없었고, 오러는 농밀했으나 몸이 재빠르지 않았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반면 나에게는 집중 스킬이, 그리고 막대한 능력치가 있었으니 .
녀석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퍼억!
전대장의 가슴팍에 검날을 쑤셔 박아 버린다.
돌진하는 와중이었기에, 녀석의 몸이 말에서 튕겨 나와 붕 떠오른다.
마치 꼬챙이로 낚아챈 것처럼.
"컥… 쿨럭…!"
그 와중에도 녀석의 몸통은 내 검에 제대로 박혀있는 상황.
놈은 허공에서 사지를 펄떡거리며, 각혈하고 있었다.
"일단…"
부웅.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전대장의 몸이 철퍽 지면에 떨어졌다. 붉은 핏물이 질척한 흙바닥을 적셔나간다.
나직이 읊조렸다.
"1번 전대장은 처치했고."
시선을 돌려 전장을 둘러보았다.
"전대장님…!"
"… 맙소사! 전대장님께서 전사하 셨다!"
"부관, 부관은 어디 있나?!"
"부관도 전사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혼란에 빠진 1번 전 대의 기사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들을 지휘해야 할 전대장, 그리고 그의 부재시 대신 지휘해야 할부관 그 모두가 순식간에 사라 졌으니 .
물론 놈들의 혼란은 그리 길지 않았다.
"… 전대! 전대장님의 원수를 갚 는다!"
"5번 편대 모여! 놈을 추격한 다!"
"개새끼, 죽여버린다!"
놈들이 추격해온다.
방금 내가 죽인 전대장의 평소인망이 괜찮았던 것인가. 놈들의 분노는 퍽 매서웠다. 아까만 해도 잔뜩 쫄아서 움츠러들었던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아온다.
물론 녀석들은 나를 추격할 수 없다.
"굼벵이 새끼들."
그들이 타고 있는 전투마가 지쳐 있었기 때문에.
파앙!
말의 배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놈들은 나를 추격하려 하지만 그 주력은 결코 빠르지 않았으니 .
다시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본다.
"2번 전대장은 어디 있나."
나는 전투마를 몰고, 적 전대장을 차례로 죽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