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62화 (162/390)

162화.

두두두두두.

전투마를 몰고 달려 나갔다. 점차 놈들의 모습이 시야 속에 커다 랗게 다가온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왕실 기사 놈 들의 모습. 그 수가 대략 팔백.

놈들 중 가장 선두의 인물이 크 게 외쳤다.

"저놈! 제국의 악마입니다!"

내 모습을 확인한 것인지. 녀석 이 입에 담은 것은 다름 아닌 내 별명이었다.

제국의 악마.

내적들이 나를 칭하는 호칭.

피식 웃었다.

"그래. 제국의 악마가 왔다."

사실 그리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었다.

악마라니. 불길하지 않은가.

하지만,

"맙소사, 제국의 악마라니?!"

"정말인가?!"

내 별명을 듣자, 급격히 긴장하는 적 기사들을 보아하니. 그 불길한 이명이 마음에 들 것도 같다.

두두두두두.

말의 배를 박차고, 계속해 달려 나간다. 놈들의 모습이 점차 가까워 진다.

나는 고삐를 쥐고 앞으로 향하는 와중. 나직이 읊조렸다.

"기마술. 상향."

- 띠링!

['스킬 : 기마술(중급)'을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5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떠오르는 홀로그램.

언제나 그러했듯,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수락."

- 띠링!

['스킬 : 기마술(중급)' 이 '스킬: 기마술(상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놈이 이쪽으로 돌진해옵니다!"

"무슨…'?!"

카렌 왕국의 왕실 기사단장, 킬 리언 린드하르트. 그는 믿기지 않는 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무모하게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적의 모습. 놈은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그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제국의 악마!'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일치하는 외양.

다닥다닥 박혀있는 약장들. 천인장 계급장. 더해 혼자서 팔백이라는 대군을 상대하면서도, 날카롭게 번 들거리는 그의 기세까지.

놈이 바로 제국의 악마, 한지훈 이리라. 그리 확신할 수밖에 없는 적의 모습이었다.

스르릉. 킬리언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검날이 노을빛을 받아 번 쩍였다.

"놈을 죽여라!"

킬리언은 오러를 끌어올린다.

화르르륵! 검신을 타고 오르는 청색 불길. 그가 뽑아 올린 오러광 은 퍽 선명했다.

"1번, 2번 전대는 놈의 배후를 막아라! 3번과 4번 전대는 내 뒤를 따르라! 녀석을 죽여버린다!"

"명령을 따릅니다, 단장 각하!"

"가라!"

화륵, 화르르륵!

기사들이 하나둘 장검을, 기병창을 들어 올렸다. 그들이 오러를 운 용한다. 이곳저곳에서 푸른색 화염이 일렁이며 강렬한 기세를 발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던가.

그 말대로. 킬리언은 고작 일개 군관을 상대함에도 병력을 운용하 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바로 '그' 한지훈이 었으니까.

수많은 고위 군관과 기사들을 장사지낸 강자다. 결코 방심하지는 않는다.

두두두두두두.

1번 전대와 2번 전대가 양익을 이루며 달려나간다. 중앙에서는 킬리언이 돌진.

한지훈과 킬리언이 점차 가까워 진다. 어느덧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 백 보 가량. 곧 격돌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때.

화르르르륵!

한지훈이 뽑아든 검에서 청색 화 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 킬리언조차 난생 처음 볼 정도로, 선명하고, 격렬한 오 러광이었다.

* * *

왼손으로는 말의 고삐를, 오른손 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꽉 쥐고.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기사 놈들의 모습.

"놈을 죽여라!"

"포위해!"

"1번, 2번 전대! 녀석의 측면을 점하라!"

"각 편대! 나를 따라 기동!"

나를 철저히 죽여버리기 위해 돌진해오고 있는 적 기사들의 모습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하다.'

놈들은 절대 약하지 않다.

기사. 그것도 가장 엘리트들이 소속되는 왕실 기사들이다. 분명 카 렌 왕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무력을 가진 이들.

그들의 수가 무려 팔백이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수의 폭력 앞에 순식간에 죽어 스러질 것이니.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내 목표는 놈들의 전멸이 아닌 지연.'

놈들을 굳이 죽여버릴 필요는 없다. 그저 나를 상대하느라 기력과 심력을 소모시키고, 시간을 지연시키기만 한다면 족하니.

무리할 필요 없다.

후욱, 숨을 들이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화르르르륵!

검신에 푸른색 오러광이 번들거리며 피어오른다.

장검의 첨단을 앞으로 겨눴다.

"퍼엉."

나직이 읊조리고, 콰아아아앙!

검신이 터져나갔다. 수백 개의 검날 파편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앞 으로 쇄도해간다.

퍼버버버벅!

"끄아아아악!"

"아악! 뭐, 뭐야?!"

"아티팩트인가?!"

내 바로 코앞까지 달려왔던 기사 세 명이 오러폭발에 휘말렸다. 놈들 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지면에 나자 빠진다.

"1번 편대의 진형이 무너졌습니다!"

"2번 편대, 바로 빈틈을 메꿔라!"

"명령을 받듭니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순식간에 공백을 비우듯 난입해오는 다른 기사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단련되어있어.'

과연 왕실 기사들이란 건가.

놈들의 행동은 기민했고, 움직임 또한 유기적이었다.

"놈이 진로를 바꿉니다!"

"5번 전대! 우회기동하겠습니다!"

"허가한다. 놈의 진로를 틀어막아!"

내가 진로를 틀었음에도 금세 따라붙는다. 각각의 편대는 서로의 빈 틈을 보조하고 있었고, 놈들은 내 빈틈을 만들기 위해 서로 공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파앙!

검을 휘두른다. 시퍼런 궤적이 허공에 그려지고, 서걱.

미약한 절삭음이 울렸다.

"커헉……"

내게 목이 베인 기사는 핏물을 흩뿌리며 낙마했다.

적 기사들 사이를 누비며 계속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콰직. 퍼억.

핏물이 쉼 없이 터져 나온다.

"무슨…!"

"3번 편대장이 전사했습니다!"

"빈틈을 메꿔!"

그리고 다시 그 빈틈을 채워가는 적 기사들.

지금 나는 놈들의 사이를 누비고, 추격해오는 적 기사들을 뿌리치 며. 하나하나 놈들을 처치해가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단신으로 적 기사단 사이를 누비 다니. 다른 기사들이었다면 결코 불가능할 일. 무모한 자살행위에 불과 한 일이었을 터다.

허나 나라면 가능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

"상급 기마술. 역시 대단한데."

상급 기마술 스킬이 있었으니까.

하급 기마술을 다뤘을 때는, 일반 기병대를 농락할 수 있었다. 중급 기마술을 다뤘을 때는 적 기사 편대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급 기마술 스킬을 다루는 지금은, 혼자서 기사단의 추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

물론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기마술 스킬뿐만이 아니었으니 .

- 띠링! 띠링! 띠링!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그동안 여러 역경을 견뎌낼 수 있게 해줬던 다양한 스킬들. 그것들을 활용한다.

전투지휘술의 미니맵을 보고 적의 배치를 확인했다.

전투분석 스킬로 놈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집중 스킬을 운용해 적을 제거해 갔다.

게다가 내 강점은 스킬들뿐만이 아니었다.

"제기랄! 놈이 너무 빠릅니다!"

"포위! 포위하라고!"

"4번 편대장 전사!"

놈들은 지쳐있었다.

카렌의 왕궁이 있는 수도부터, 이곳 제국 북부까지. 쉼 없이 행군 해와 간신히 도착한 것이 바로 지금 저들 왕실 기사단원들이었다.

당연히 피로 때문에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터. 놈들은 평소보 다도 훨씬 굼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쪽은 비교적 쌩쌩했다.

전투마는 기지에 고이 묶여 충분 한 휴식을 취했으며, 나 또한 긴 밤 동안 체력을 만전으로 회복했다.

퍼억!

지쳐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죽여 간다.

"커헉!"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 쓰러지는 적 기사.

놈의 시체는 뒤따라오는 다른 전투마들에 의해 밟아 짓이겨졌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 내고는,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빠져나갈까."

놈들의 전열에 난입해 전투한 건 고작 십여 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십여 분 동안 나는 적 기사 이십여 명을 처치했고, 편대장 셋을 제거했다.

이제 귀환해야 한다. 내 목적은 놈들의 어그로를 끌고, 진군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 놈들과 결판을 내려 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슬슬 위험하기도 하고."

눈동자를 굴려 기사들을 바라본다.

전열에 난입해 실컷 휘저었다. 적 기사들을 죽였다. 놈들을 흐트러 트렸다.

하지만 어느새 놈들은 대열의 혼 란을 회복했고, 이제는 포위기동을 펼치며 이쪽을 몰아넣으려 하고 있으니 .

빠져나가려면 지금이다.

고삐를 돌리고, 말의 배를 박찼다.

두두두두두.

전투마가 급선회하며 다른 방향 으로 향한다.

나는 도주했다.

* * *

"기사단장 각하. 평기사 스물하 나, 편대장 기사 셋이 전사했습니다."

킬리언은 부단장의 보고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우묵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제국의 악마라."

그의 주변에는 전사한 기사들의 시신들이 수습되어 있었다.

아니. 이것을 수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사들의 시신 꼴은 말이 아니었다. 목과 옆구리 등급소가 크게 베어져 있었으며. 말발굽에 짓밟혀 완전히 넝마쪼가리가 되어있다.

킬리언은 중얼거린다.

"정말 악마 같은 솜씨로군."

사실 그들 왕실 기사단이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사 스물넷의 전사. 그들의 수 가 무려 팔백에 달하는 것을 생각 해보면, 정말 사소한 피해에 불과했 으니 .

"그자 혼자서 우리들을 완전히 농락했어."

하지만 그 일을 벌인 이가 단 한 명에 불과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자, 한지훈은 단신에 불과했다.

반면 킬리언이 이끄는 왕실 기사단 의 단원 수는 무려 팔백에 달했으니 .

한지훈은 혼자서 기사단 대열에 난입. 대형을 휘저으며 단원들을 처 치하고, 포위기동을 펼친 기사단을 농락하듯 이탈해 도주해버린 것이다.

으득. 킬리언이 이를 갈았다.

"한지훈…!"

킬리언은 한지훈의 모습을 떠올 린다.

과연 소문은 헛된 것이 아니었는 가. 그의 실력은 대단했다.

신들린 듯한 기마술을 보여 모든 공격과 추격을 회피해버렸다. 강렬 한 검격을 가해 가로막는 기사들을 처치했으며, 진형을 유린하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그야말로 완벽한 농락.

물론 변명할 거리는 많았다.

카렌 수도부터 밤낮을 새가며 행 군했기에 전투마와 기사들의 피로 가 극에 달했다.

폭우로 인해 노면이 젖어 전투기 동을 펼치기에 불리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돌진이었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변명거리를 대봐 도, 놈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으니 .

"… 부단장."

"네! 단장 각하. 하명하십시오."

킬리언은 부단장을 호출했다.

그는 결심한 듯 말했다.

"놈을 죽여버릴 거다."

킬리언은 한지훈을 죽이리라고 결심했다.

그가 분노 어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반드시! 놈을 반드시 잡아, 죽여버릴 거란 말이다!"

기사단장 킬리언. 그 또한 여러 전장을 전전했던 이. 당연히 승리할 적도 많았지만, 패배할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치욕적인 패배는 처음이었다.

단 한 명에 의해 휘하 단원들을 잃다니. 그것도 이쪽이 수적으로 훨씬 압도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때문에 그는 결심한다.

"녀석이 다시 나타날 때 내게 알 려라. 내 직접 상대하지."

직접 한지훈을 죽여버리겠노라고.

그의 분노 어린 시선이 남쪽, 뒤랑텅 보급기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지금쯤이면 엄청 빡쳤겠지."

나는 마나포션을 벌컥벌컥 들이 키며 말을 몰았다.

대열에 난입했고, 적 기사를 스물 넘게 처치했다. 놈들을 조금이나 마 지체시켜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화날 것이다.

"팔백이서 나 하나를 못 잡았으 니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본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팔백의 기사가 단 한 명을 놓치다니 말이다.

자연히 적 기사들의 자존심에 사정없이 흠집이 날 터. 게다가 그들은 왕국의 가장 정예인 왕실 기사단이다.

분통이 터질 일.

"내게 집착해줬으면 하는데 ."

말을 천천히 몰아, 숲속에 숨겨진 장소로 향했다. 보급로 외곽에 있는, 음영이 져 눈에 잘 안 띄는 장소.

그곳에 도착한 직후. 나는 말에서 내려왔다.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는다.

"수고했다. 이제 쉬어라."

히히히힝!

말이 투레질을 한다.

나는 시선을 돌려, 한 나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또 다른 전투마가 메어져 있었다.

"이제 선수 교체야."

이것이 내가 생각한 방법이었다.

전투마를 계속해 갈아타며 놈들을 몰아치는 것.

녀석들은 기나긴 행군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전투마도, 기수도 한계에 달해있는 상황.

하지만 이쪽은 갈아탈 전투마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체력포션과 마나포션도 풍족하게 가지고 있어 전투력 하락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으니 .

피식 웃었다.

"계속해 괴롭혀주지."

끝없이 놈들의 앞에 등장해, 진군을 방해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전투마에 올라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