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루벤 방면에 주둔해 있던 제국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알현실 안. 한 군관이 그리고했다.
군관이 입고 있는 갈색 군복은 카렌 왕국군의 것이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옥좌 위의 인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놈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되긴 했지. 지금쯤이면 재정비를 모두 마쳤을 터이니."
그는 다름 아닌 카렌 왕국의 국왕, 라피엘 데이고르 카렌이었다.
젊은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오른 이. 붉은색 머리카락과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정열적인 젊은 지도자.
그의 눈동자가 지도로 향한다.
"놈들은 아마도 우군의 보급로를 노리고 있을 터."
라피엘은 움직이고 있는 제국군 의 목적을 예상했다.
제국 북부 제 3, 4, 5군단의 재정비 및 이동. 그들은 총독령 루벤 방면에서 천천히 서쪽으로 이동. 드 발트 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드발트 강 바로 건너편에 카렌 왕국의 주요 보급로가 자리해 있었으니 .
놈들은 아마도 보급로를 노리리라.
"전쟁부 장관."
"전쟁부 장관 딜라민 레바힐데. 이곳에 있습니다."
"막을 수 있겠나?"
라피엘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막을 수 있겠느냐고.
제국군 6만 군세가 아군의 보급 로를 노린다면 그들을 몰아낼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에 딜라민 레바일데 전쟁부 장관이 대답했다.
"… 힘들 것 같습니다. 전하. 보급 로를 지키는 병력의 수가 그리 많 지 않습니다. 게다가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수가 그리 많지 않 으니…."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다.
지금 카렌 왕국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 전쟁을 치 르는 중이었다.
동부군 8만, 남부군 12만.
도합 20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지금 당장 국외에 투사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이었다.
이 이상의 병력을 전쟁에 동원하 기에는 아무리 한때 열강이었던 카 렌이라 한들 무리였으니 .
쯧. 라피엘이 혀를 찼다.
"계획이 틀어졌어."
사실 이렇게 보급로가 위협당하는 일은 본래라면 없었을 것이다.
동부에서 총독령을 밀어버리고, 남부에서 제국 북부를 친다면. 놈들은 우회해서 이쪽의 보급로를 노릴 틈조차 없었을 것이니.
하지만 그 '틈'이 만들어졌다.
"빌어 처먹을 제국 놈들. 설마 루벤 방면에서 우리 동부군을 전멸 시켜 버릴 줄은… 과연 정복 전쟁 당시 그 성과는 헛것이 아니었는 가."
카렌의 동부군이 루벤 방면에서 대패해버렸기에.
동부군 총사령관 도나드 글리슨 후작이 이끄는 4개 군단이 대패했다. 거의 모든 병사가 죽거나 포로 로 붙잡혔으며. 그들 군단 참모부들 중에 살아 돌아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지휘관들의 죽음. 병력 절대다수의 손실.
완벽한 대패였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제국군 놈 들이 이번에는 보급로를 노리고 있다.
"어쩔 수 없군."
막아야 한다. 라피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했다.
"딜라민. 병력을 충원한다."
"전하. 이전에도 말씀드렸다 시 피, 저희 카렌에는 더 이상 제국에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이 없…."
"내 근위군단과 기사단을 투입하 지."
"… 정말이십니까?!"
딜라민은 놀라 기함했다. 그만큼 라피엘 국왕이 내뱉은 말이 충격적 이었기 때문에.
근위군단과 기사단을 전장에 내 몰겠다니.
"전하! 근위군단은 이곳 왕궁을 지켜야 하며, 근위 기사단은 전하를 보호하여야 합니다. 재고하여 주십 시오!"
물론 근위군단과 근위기사단은 강력한 전력이었다. 이 카렌왕국에서 가장 엘리트만을 추리고 추려 모은 부대들이었으니 .
하지만 그들은 수도에 남아있어 야 한다. 유사시에 이 국가의 주인 인 국왕을 지켜야 하기에.
헌데 라피엘은 그들을 전장, 그것도 수도 인근이 아닌 최전선까지 나가 싸우라 지시하고 있다.
마치 일반 병사들처럼.
피식. 라피엘이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쓰지 않는 검은 무뎌지지. 이 왕국에서 가장 날카로운 검이라 한들. 검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언젠가는 못써먹게 될 거다."
그는 말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전력. 왕실 기사단 과 근위군단. 그들을 어째서 안 쓰는 것이냐고.
아무리 강력한 전력이라 한들 전 장에 나서지 않다면 그 실력이 무 뎌질 것이라고 말이다.
"당장 근위군단, 그리고 왕실 기사단을 뒤랑텅 보급기지에 급파하라. 놈들이 보급로를 가로막게 두지 마라."
"… 명령을 받듭니다. 국왕 전하!"
전쟁부 장관, 딜라민 레바힐데는 척 경례하고는 알현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라피엘은 옥좌 위에 앉아 턱을 괴었다.
"제국 놈들."
그가 시선을 돌려 알현실 한켠에 걸려있는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는 다름 아닌 대규모 전략지 도였다. 제국령 전체를 표기한 커다란 지도.
지도에는 온갖 화살표들이 어지러이 얽혀 있었다.
붉은색 화살표는 제국군의 것. 초록색 화살표는 본국인 카렌 왕국의 병력. 그리고 파란색 화살표는 아군인 협상동맹의 것이었다.
그리고 각 화살표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제국 측이 밀 리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그렇다 한 들 예상보다도 굳건한 모습.
"잘도 버티는군. 과연 그 제국인 가."
동쪽의 람셀, 서쪽의 트웨인, 남부의 코르자카, 북부의 카렌까지.
무려 네 개의 전선이다.
다른 국가들이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보급망, 행정능력, 병력동원, 민심장악 등 그 어떠 한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결판이 났을 터다.
하지만 제국은 버티고 있다. 무려 네 개의 전선에 꾸역꾸역 병력을 밀어 넣고, 보급망을 유지하며, 민심을 추스르고 있으니 말이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남부 대륙의 패자인 제국이 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을 거다."
라피엘이 지도에서 제국령, 그중에서도 제국 북부를 바라봤다.
본래 카렌의 것이었던 땅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국의 영토가 된 곳이다.
"복수해주지."
그는 과거 카렌의 영토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아니, 되찾는 것을 넘어, 저 제국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없애버리기를 원한다.
라피엘이 지도를 노려본다.
* * *
우리는 재정비를 마친 뒤. 이동 하기 시작했다.
무려 3개 군단의 이동이었다.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무수히 많은 마차들의 행렬이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며칠이나 걸었을까.
"저기가 드발트 강이다."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다.
드발트 강. 카렌 왕국에서부터 흘러 제국령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강줄기.
그곳을 바라봤다.
꽤나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강의 수면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이곳저곳에 새들이 날아다녔다. 바람이 후욱 불어올 때마다 시원한 공기가 폐부를 그득 메웠다. 살짝 비릿한 물냄새가 났다.
탁 트인 경관. 온화한 자연풍경.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될 것만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자리에 흐르고 있다.
멍하니 중얼거린다.
"곧 개판이 되겠지만."
이 온화한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자리에서 전투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드발트 강을 바라본다.
폭이 꽤나 넓은 강. 저기를 도하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까.
공성전만큼 힘겹고 위험한 것이 바로 도하 작전이다.
강을 건너는 와중에는 거의 저항 이불가능하며, 머리 위로는 화살 세례와 마법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 릴 터이니.
저 강은 그리 머지않아 지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천인장님."
누군가가 내 옆에 다가왔다.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1번 백인장 엘 락이었다.
녀석이 척 경례하며 고했다.
"막사 설치를 끝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너도 들어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천인장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엘락은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 추고는, 잠시 주저하더니 물어왔다.
"어떤 소문을 들어서 말입니다."
"소문이라. 뭐지?"
"혹시 천인장님, 수도를 구원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십니까?"
피식 웃었다.
'소문이 퍼진 건가.'
사실 예상하긴 했었다.
내가 수도를 구원했다는 것. 물론 천인장 계급을 비롯한 상위 군 관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통신수정구를 개개인이 들고 다니니 비교적 정보를 얻기 쉬웠으니까.
하지만 백인장에 불과한 엘락이 알고 있을 정도니. 아마 나에 대한 소식은 군단 전체에 퍼졌다고 봐도 좋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수도에서 흑마법사의 세력 과 전투했고, 놈들의 사령마법진을 파훼했지."
"오오…!"
엘락이 감탄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본다.
녀석의 반응을 보건대, 워낙 놀 라운 소식이라 저 스스로 반신반의 한 듯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자 비로소 감탄하고 있는 것이고.
녀석이 재차 물어왔다.
"그렇다면 황실 기사단을 직접 지휘하셨다는 소문도 사실입니까?!"
"잠깐이지만. 뭐, 그랬지."
전대장 노릇을 잠시 하긴했다.
황실 기사 녀석들.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엘락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피식 웃었다.
"됐고, 어서 가서 푹 쉬어라. 내일 아침 도하할 텐데 최대한 피로 를 풀어둬야지."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엘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 아 막사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강을, 정확히는 그 건너편을 바라본다.
강폭이 워낙 넓기에 건너편이 잘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카렌 왕국.'
저 강 너머에 놈들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쪽이 도하하는 걸 영격하 려 하리라.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 저 강 위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핏물을 흘리 며 가라앉으리라.
나는 그리 생각하며 강 너머를 바라본다.
그때였다.
- 북부 제 3군단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리게스 후작이다. 군단 내 모든 천인장 이상 지휘관들에게 전 파한다.
갑작스레 품속에 넣어왔던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스카 군단장의 목소리였다.
그가 고한다.
- 예기치 않은 이변이 발생했다. 당장 군단장 막사로 오도록.
나는 통신을 받은 직후, 곧장 군단장 막사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곳 에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휘관 들이 자리해있었다.
오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왔군. 브리핑을 시작하 지."
그가 지휘봉을 들어올려, 막사 한켠에 설치되어 있는 지도를 겨눴다.
지휘봉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드발트 강. 우리가 도하해야 할 강이다.
오스카가 말한다.
"제국 국방성에서 알려준 첩보에 따르면, 놈들의 병력이 증원되었다 고 한다."
"증원이라니요? 카렌 놈들에겐 더 이상 병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한 천인장이 그리 되물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카렌은 거의 대부분의 전력을 쥐어짜내 제국 침공을 준비했다. 중원이 올 병력 따위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기획한 것이 바로 도하작전이었다. 놈들의 주력은 북부전 선에 묶여있으니 . 비교적 무방비 상태인 녀석들의 보급로를 친다는 것 이 바로 제국 국방성의 계획이었으니 .
하지만 그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카렌의 근위군단과 왕실 기사단 이 급파됐다 한다. 이미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와중이지."
"근위군단… 그리고 왕실 기사단 이라니."
자리해 있는 지휘관들이 하나둘 표정을 찌푸렸다.
그 어떤 국가라 한들, 지도자의 최 측근에는 가장 믿음직하고 강한 전력을 두는 법이다. 그것은 카렌도 다를 게 없어서 그들의 근위군단과 왕실 기사단은 놈들의 최정예였다.
그런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고 한다.
전혀 예상 외의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녀석들도 완전 멍청이는 아니니까.'
보급로를 빼앗긴다면 침공군이 말라죽으리란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다. 당연히 보급로를 사수하려 할터.
하지만 그저 전선의 병력을 일부 빼내어 방어하는 것이 고작일 줄 알았는데 . 설마 수도의 전력까지 불러올 줄은.
"때문에. 상륙 시점을 더 앞당겨 야 할 것 같다."
오스카는 미리 예정되어 있던 시간보다도, 더욱 빠른 상륙을 감행하 고자 한다.
문득 한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야간 도하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야간 도하.
말 그대로, 야심한 밤에 도하하는 것.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밤에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니. 당연히 병력을 통솔하는 것조차 힘들 터.
그에 오스카가 긍정한다.
"그래. 놈들의 지원군이 온다면 우리는 아예 도하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겠지. 아직 놈들이 도착하지 않은 지금이, 그나마 수월하게 상륙 할 수 있으니 ."
강은 천연의 성벽. 강을 건너서 적을 공격하는 것은 공성전만큼 큰 위험이 따른다.
전력이 이쪽이 압도하는 지금도 꺼려지는데, 놈들의 증원이 온 뒤라 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리라.
"한지훈 천인장."
오스카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 본다. 나는 주먹을 심장에 얹으며 화답한다.
"아펠도른 천인대장 한지훈 라이 젠입니다. 군단장 각하."
"자네에게 명령을 하달하지."
그가 고개를 주억이고는, 내게 지시했다.
"자네에게 이번 도하 작전의 지휘권한을 부여하지. 천인대 다섯 개 를 주겠다. 먼저 상륙해 적을 배제 하고, 후속 부대가 올 때까지 상륙 거점을 사수하라."
그가 내게 지시한 일은 두 가지였다.
상륙 후 적의 처치, 그리고 후속 부대인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거점 사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병력을 이끄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더해 상륙해 전투 후 거점을 지키기까지 해야 하니.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리라.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내게는 시스템의 보정이, 그리고 스킬의 보조가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를 받듭니다. 군단장 각하."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1. 상륙 후 거점을 청소하라.]
[2. 거점을 사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