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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55화 (155/390)

155화.

"재무성 장관, 베네치오 슈라이버 네. 저번에 황궁에서 봤었지. 한지훈 라이젠 경."

영주성의 응접실로 가자 나는 한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재무성 장관 베네치오 슈라이버 후작. 황제의 측근이자 이제국의 모든 재정을 다루는 이.

나는 그를 맞이했다.

"제국군 천인장, 한지훈 라이젠입 니다. 설마 베네치오 합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황제 폐하께서 내게 직접 지시 하신 일이네. 당연히 내 직접 와야 지 않겠나."

그는 허허 웃고는, 내게 어떤 서류를 내밀었다.

"황제 폐하의 '선물'들이네. 한번 살펴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읽어나갔다.

내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절로 피어오른다.

"많군요."

"그래. 많지. 몇만이 될지 모르는 피난민을 받아야 하는데 지원이 인 색해서야 되겠나."

서류에 기재된 품목은 꽤나 길고 방대했다.

막대한 양의 물자들.

거주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여러 재료들부터, 피난민들을 먹여 살 릴 식량들. 더해 그들이 사용할 잡다한 집기류와 농기구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원 온 것이다.

"폐하께서는 자네의 영지를 전폭 지원하실 것이네."

베네치오는 품속에서 파이프를 꺼내들어 입에 꼬나물었다.

화륵.

그가 성냥으로 파이프 속 연초를 지지며 말을 이었다.

"부족하면 언제든 말하네. 지금 제국의 자산은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풍족하니. 그대의 영지를 지원 하는 건 어렵지 않네."

"역시 알키온 가문의 재산입니까?"

"그렇다네."

게딘 알키온이 몰락하고, 알키온 가문의 모든 재산은 황실이 회수해 갔다.

그리고 녀석의 재산 중에는 일리 아 상단이 있었다.

이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하던 상단.

지금 내 영지에 도착한 물건들 중 상당수는 녀석의 상단이 보유하고 있던 물자들이리라.

"그리고, 폐하의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지."

후욱. 그가 연초 연기를 내뱉었다. 회색 연기가 뿜어진다.

"한지훈 라이젠 경. 먼저 사과 부터 하지."

"어째서 사과하시는 겁니까?"

"나는 재무성의 장관이네. 재무성 이라는 부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단 말이네."

베네치오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다.

"하지만 아랫것 관리를 잘 하지 못했어. 내 바로 아래 차관이라는 놈이 알키온 가문에 붙어서 여러 개짓거리를 하고 다녔지."

그는 자신의 부하가 저질렀던 실례를 사과하고 있다.

제국 재무성 차관, 엑시포드 루비에 백작. 녀석은 과거 내가 막 이 영지를 발전시키려 할 때 내게 수작질을 걸어왔었다.

베네치오는 재무성의 수장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듯하다.

"그래서 나도 이 '선물'을 전해주는 것이 기분 좋군. 끌고 와라."

"명령을 받듭니다. 장관 합하."

베네치오가 말하고, 밖에서 있던 제국군 병사가 누군가를 질질 끌고 왔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백색 머리카락. 냉철한 눈동자. 점잖게 늙은 노신사의 얼굴.

그 노신사의 얼굴에는 절망과 당 혹이 깊게 어려 있다.

"엑시포드 루비에."

질질 끌려온 인물은 다름 아닌 엑시포드 루비에 백작이었다.

재무성의 차관이었으면서, 게딘 알키온 후작에게 충성하던 이.

녀석은 지금 제국군 병사의 손에 개처럼 끌려나오고 있다.

베네치오가 이어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자네에게 이자 엑시포드 루비에의 '모든 것'을 맡 겼네."

"모든 것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모든 것이지."

후욱. 그가 재차 연초 연기를 뿜 어내며 말했다.

"엑시포드 루비에의 모든 재산, 영지, 그리고 목숨까지. 황제 폐하 께서 자네에게 일임하셨단 말이네."

"한지훈 경!"

털썩!

엑시포드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녀석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저질렀던 실례를 사과하 겠습니다. 모든 재산을 내놓겠습니다. 가문의 영지와 재산을 모조리 드리겠습니다!"

그는 간절한 얼굴로 그리 말해갔다.

모든 걸 주겠노라고. 자신의 영지, 재산, 그밖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줄 테니,

"부디!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말이다.

피식 웃었다.

"재밌네."

재밌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녀석이 이 영지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 그래, 눈치챈 건가. 과연 대단 하구만, 한지훈 라이젠. 설마 마법을 간파할 줄은 몰랐어.

내게 한 개수작이 들켰음에도, 오히려 뻔뻔한 낮짝을 들이밀었던 이.

- 한지훈. 자네 생각보다도, 이제국에서 알키온 후작가의 영향력 은 크다.

- 자네는 영지를 지켜내지 못할 거다. 모든 것을 잃을 바에, 적당한 이익만 얻고 나머지는 후작께 바치는 게 좋을 걸세.

알키온 후작가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이쪽을 압박해왔던 이.

그 녀석은 지금.

"제발, 제발 목숨만은…."

이렇게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시선을 돌려 베네치오에게 물었다.

"정말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래.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게."

"그래도 직속 부하인데 취급이 험하시군요."

"나는 저런 부하를 둔 적이 없네. 엑시포드는 나를, 그리고 폐하 와 제국을 섬기지 않았어. 알키온 후작가를 섬겼지."

"하긴. 그렇지요."

잠시 턱을 괴고 생각했다.

사실, 녀석을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다. 죽여버린다 한들 놈의 재산은 모조리 내가 가지게 될 것이니.

하지만 아깝다.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을 텐데.'

재무성 차관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기에 놈은 차관까지 올라선 것일 터.

나는 고개 돌려 베네치오에게 물었다.

"이 녀석. 일은 잘 합니까?"

"창고부터 지어야 겠군."

드워프 드루바가 마차 행렬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재무성 장관 베네치오가 끌고 온 마차는 정말 많았다. 그야말로 수만 단위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분량.

나는 드루바에게 물었다.

"자, 건축 재료는 다 해결되었 지?"

"저 정도로 많은 양의 재료들이 있다면 가능하다. 난민들의 주거공 간을 만드는 데는 문제없겠군."

"그럼 건설작업은 잘 부탁한다."

"그러지."

드루바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시선을 돌려, 옆에서 마차행렬을 바라보고 있던 행정관 헨리에게 물었다.

"행정관. 목록은 다 확인했겠지. 어떤가?"

"확실히… 이 정도 수량이라면. 피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헨리는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 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를 바라봤다. 이번에 지원 온 물 량들이 기재되어있는 서류였다.

그가 문득 물었다.

"헌데 영주님께선, 어떻게 황실의 지원을 이끌어내신 겁니까? 이 정도의 물량이라면 황실에서도 선뜻 내주기 힘들 터인데…."

물론 내가 수도를 구원해냈기에 받은 지원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소식이 이곳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헨리는 내가 수도를 구해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뭐. 나중에 알게 될 거다."

하지만 굳이 그걸 내 입으로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 .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뒤에서 있는 인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엑시포드."

"… 네. 각하."

엑시포드가 고개를 내리깔며 대답했다.

나는 결국 엑시포드를 죽이지 않고, 노예로서 다루게 되었다. 녀석 의 행정 능력이 탐났기 때문이다.

녀석은 재무성 차관까지 올랐던 인재. 놈을 부린다면 랑스와 헨리의 부담이 훨씬 덜어지리라.

헨리가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재무성 차관까지 올랐 던 사람이 노예라니. 폐하께서도 정말 단호하시군요."

"그럴 만도 하지. 놈은 역모를 모의한 세력에게 붙었?으니까."

사실 제국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였다. 오직 노예로 만드는 것은 반역이나 국가전복 등 중죄를 저지를 이들만을 노예로 다룰 뿐.

물론 반역세력에 붙었음에도 '고작' 노예형 정도로 끝난 건 엑시포 드에게 있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헨리에게 당부했다.

"헨리. 엑시포드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이미 한번 수작을 부린 전적 이 있는 놈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엑시포드를 살린 것은 반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곧 내 영지에 수만의 피난민이 들이닥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날 것이고, 언젠가는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도시 가 될 터.

고작 1만 인구를 다루던 내 영지 의 행정 능력으로는, 그 막대한 양의 행정처리를 소화할 수 없을 터.

하지만 엑시포드와 놈의 가문 행 정관들이 합류한다면 보다 수월하 게 영지를 운영할 수 있게 될 터이 니.

나는 엑시포드의 어깨를 두들겼다.

"너와, 너의 가족, 그리고 가신들 까지 살려줬다. 고마워해라. 엑시포 드."

물론 모조리 노예행이었지만.

아무튼 내 덕분에 목숨만은 건졌다. 고마워해야 하리라.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이어 강조했다.

"하지만 만약 또다시 개수작을 부린다면. 그때는 정말 재미없을 거야."

엑시포드의 주억거림이 좀 더 빨 라진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잘 해보라고. 네가 정말 열심히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다면 기존 영지를 돌려줄 수도 있다."

"그게 정말입니까?!"

엑시포드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녀석의 물음에 수긍했다.

"그래. 물론 기존 백작위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훈작사나 명예귀족 정도라면. 내가 황제 폐하께 부탁해 다시 작위를 받게 해줄 수도 있다."

"오"!"

엑시포드의 눈동자에 의욕이 돌 기 시작한다.

사실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엑시포드에게 영지를 돌려준다니.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자 비를 배풀려 하는 것은 아니다.

'노예 상태로만 있다면 그리 의욕적으로 일하지 않겠지.'

놈은 재무성 차관에 합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자신의 것 도 아닌 다른 귀족의 영지를 관리 하는데 의욕이 날 리 있겠는가.

당연히 태만하게 작업하리라.

하지만 놈에게 미래가 있음을 알 려준다면. 그리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남작위에 불과하나마 다시 귀족 계급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을 알 려준다면.

그렇다면 노력할 수밖에 없을터.

"제 모든 능력을 끌어내, 이 영지를 관리하겠습니다."

"그래."

엑시포드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괴고 천천히 생각했다.

'이제 영지의 모든 관리는 끝났다.'

측근들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했고, 발전 방향을 짚어줬다. 황실의 물자지원을 수령했다. 쓸 만한 노예 도 얻었다.

더 이상 영지에는 볼일이 없는 상황.

"이제 부대로 돌아가야겠지."

다시 전선으로 나설 때다.

"왔군. 한지훈 '전대장'."

요새로 복귀한 직후. 군단장 오스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 소리였다.

나는 픽 웃었다.

"전대장이라니. 소식을 들으셨나 보군요."

"그렇지. 수도에 그런 큰일이 있었는데 . 모를 리가 있나. 아마 천인 장급 이상 장교들은 대부분 자네가 수도에서 한 일을 알 것이다."

나는 경례하며 안쪽으로 들어서 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스카가 연초를 꺼내 물었다.

"이미 들어서 알겠지만. 이제 군단의 정비는 완료되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황궁과 영지에 머무는 사이 군단의 정비가 완벽히 끝났다.

이제는 진군해야 할 때.

"제국 국방성에서 명령이 하달되었다."

오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집무실 한켠에 걸려있는 커다란 전략지도.

그가 지휘봉으로 어딘가를 짚으 며 말했다.

"우리는 제국 북부전선으로 향한다."

"역시. 북부전선입니까?"

"그래. 가장 인근에 자리한 전선 이니 말이다."

이미 이곳, 루벤 방면의 카렌 왕국군은 전멸한 상황.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다른 전선을 지원해야 할 때.

"우리 3, 4, 5군단은 이곳 드발트 강을 건널 것이다."

지익. 그가 지휘봉을 움직여 지도를 가로질렀다.

드발트 강. 카렌 왕국에서 제국 북부까지 이어져있는 굵은 강줄기.

"이 드발트 강을 건너면 바로 놈 들의 보급로가 자리해있지. 우리 군단의 임무는 이놈들의 보급망을 완전히 끊어놓는 것이다."

그 어떤 군대라 한들, 보급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다.

제국 국방성에서는 우리가 카렌 놈들의 보급망을 끊어버리길 바라 고 있다.

"드발트 강도하, 상륙, 그리고 적의 보급로 차단과 놈들의 보급기 지 파괴. 이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다음 전투는 도하 작전이다.

"자네가 최선봉이다. 이번에도 활 약해다오. 한지훈 천인장."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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