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내 영지, 루벤은 그리 큰 영지는 아니었다.
인구수 일만이 채 안 되는 작은 영지. 주 산업은 농업이었으며, 제국 본토가 아닌 식민지 총독령 외 곽에 있기에 유동인구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루벤은 그렇지 않았다.
"…대단한데."
도약마법 직후. 마을을 둘러보며 절로 흘러나온 감탄이었다.
이곳은 내가 수도에 가 있던 그 잠깐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이곳저곳에 올라가고 있는 여러 건물들. 마을 외곽에는 커다란 조병 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넓은 대로가 여기저기에 나있다.
내게 영지를 안내 중이던 랑스가 입을 열었다.
"한지훈 님께서 수도에 계시는 동안, 드워프들이 계속해 합류해 왔습니다. 덕분에 저희 영지의 드워프수는 이제 이천에 달하지요."
"이천이라…."
많은 수가 아닐 수 없다.
장인의 종족 드워프. 그들은 고 품질의 무기를 몹시 빠르게 생산할 수 있으며, 여러 고급 아티팩트들을 손쉽게 만드는 막대한 공업적 능력을 지녔다.
그런 그들이 무려 이천이나 합류했다. 내 영지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
물론 영지의 발전은 거기서 그치 지 않았다.
"한지훈 님! 저기를 보십시오."
랑스가 가리킨 마을 외곽 어딘가 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지군이네."
저 멀리서, 영지군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펄럭이는 것은 나의 가문인 라이 젠 백작가의 문양이 박힌 깃발. 군 기가 제법 잡힌 것일까. 그들의 발걸음은 절도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가장 선두에서 전마에 탑승해 있는 인물의 이름을 읊 조렸다.
"마이."
마이사 슈베츠. 그녀가 영지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녀의 외양은 이전과 퍽 달라져 있었다. 물론 나이가 어려 애송이 같은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머리카락이 제법 자라 그럴듯한 소녀 티 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는 계속해 말과 영지군을 몰 고는 이쪽으로 다가와, 내 앞에 정지했다.
그녀가 말 위에서 씩 미소 지었다.
"한지훈. 드디어 돌아왔나."
"그래."
나는 마이사의 뒤에 있는 영지군 들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마이. 영지군의 수가 꽤 늘어난 것 같은데."
"그렇다. 그대의 지시대로, 영지 군의 수를 오백까지 늘렸었지. 지금은 영지 외곽의 마물들을 청소하고 오는 길이다."
마이사는 뿌듯한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이곳 루벤이 라이젠 백작령이 되기 전부터 있던 영지군은 백여 명에 불과했던 작은 집단이었다.
이제는 그 수가 무려 오백에 달했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이제 치안과 마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
오백의 영지군은 이 백작령 전체 의 치안을 지키고, 마물의 습격을 방어하는데 충분한 수다.
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모든 것이 완벽해."
광산과 조병창이 문제없이 잘 굴 러가고 있다. 영지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영지군을 확충해 치안과 마물 방위 능력을 다졌다.
모든 것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랑스와 마이사 를 바라봤다.
"둘 다 내가 없는 동안 잘 해주었다."
영지의 내정을 책임진 랑스. 그리고 영지군을 증원하고 훈련시킨 마이사.
저 둘이 내가 없는 동안 훌륭히 이 영지를 관리해 왔다.
앞으로 내가 영지에 없다 한들 그리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랑스, 마이. 영주성으로 가자. 앞으로 이 영지의 발전 방향을 짚 어주지."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꼴 같구 만."
영주성에 온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내가 수도에 있는 사이 드워프들 이 영주성을 지어 놨다. 나는 그 모습을 잘 살펴보았다.
외곽에는 기다란 석재 장벽이 빙둘러쳐 있고, 내부에는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정원이 자리해 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자리한 3층짜리 성.
저것이 내 영주성이다.
물론 제국의 황궁처럼 무지막지 하게 커다란 성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변경지역 영주들에게 필요할 법 한 '적당한' 성.
하지만 그 적당한 성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해 빌빌거렸던 예전을 생각하면 급격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자. 다들 왔나?"
나는 영주성 내부 회의실에 내 측근들을 모아놓고는 입을 열었다.
시선을 돌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영주대리 랑스. 영지군을 지휘하는 마이사. 그리고 드워프들을 통솔 하고 있는 드워프 드루바와, 수석 행정관 헨리 돌턴까지.
나는 그들에게 고했다.
"먼저. 이 영지에 피난민들이 들 이닥칠 거다."
"피난민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 십니까?"
내 말에 반응한 것은 헨리 돌턴 수석 행정관이었다.
그가 말을 잇는다.
"이곳 루벤은 성공적으로 카렌의 공세를 막아냈습니다. 총독령에는 피난민들이 그리 많지 않을 터입니 다만."
그의 말대로였다.
다른 전선에서는 계속 패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곳 루벤 방면은 카렌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피난민들이 있을 리 없을 터.
하지만 저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내가 황제 폐하와 협의해 제국 북부전선의 피난민들을 이곳 루벤에 수용하기로했다."
"그, 피난민을 수용하신다니… 몇 이나 말입니까?"
나는 잠시 헨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색을 읽어 보건대 그리 많은 피난민들이 오지는 않을 것이 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 이었다. 이곳 루벤과 북부전선은 그리 가깝지 않으니까. 와봤자 고작 수천에 불과하리라 여기고 있을 터.
나는 대답한다.
"제국 북부의 모든 피난민들을 수용할 거다. 최소한 몇만, 많다면 십만을 훨씬 넘을 수도 있겠지."
"… 맙소사!"
헨리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어렸다.
물론 그가 굳어있는 것은 잠깐에 불과했으니 .
헨리는 다급히 나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영주님! 그토록 많은 피난민을 받아들일 여유가 저희에겐 없습니다!"
피난민. 전쟁으로 터전을 잃어버 린 불쌍한 이들.
그들 개개인은 비극을 겪은 안타까운 존재들이었으나, 위정자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영지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수용 공간도 부족하며, 식량과 물자 또한 모자랄 것이고, 치안도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당장 그들을 받아들인다면 여러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생필품의 수가 달릴 것이고, 거 주 공간 또한 부족해진다. 더해 불안정해지는 치안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나와 내 측근들에겐 저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으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 드워프 드루바 에게 물었다.
"드루바. 영지에 있는 드워프들의 수가 약 이천이라고 했지?"
"그렇다. 한지훈."
"그들 중 절반 정도를 거주 공간 건설에 투입할까 하는데 ."
이전에 드워프들을 시켜 요새를 건설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드워프들은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로 요새를 축성했고, 덕분에 카렌의 군세를 물리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들에게 건설 작업을 시킬 생각이다.
드루바가 되물었다.
"거주 공간이라 한다면. 집을 지 어달라는 건가?"
"그렇지. 품질은 조금 조악하더라 도, 사람처럼 살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집들을 최대한 많이 건설해 줘."
이 시대. 모든 재산을 잃고 고향 까지 잃어버린 난민들은 떠돌이 화 전민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마물이 출몰하는 위험 지역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간신히 비루 한 삶을 연명한다.
그런 그들에게 조잡하지만 그럼 에도 번듯한 집을 지어준다면, 나름 대로 만족하리라.
"알겠다. 드워프들을 차출해 집을 최대한 많이 지어보지. 위치는 어디 로 하겠는가?"
"모두 루벤 마을에 수용할 수는 없으니까. 비어있는 평야지대에 적당히 만드는 게 좋겠지."
"재료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 목 재가 부족하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우수한 기술자이자 건축가였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마법을 부려 집을 짓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지어야 할 것은 몇만이 살아갈 만큼 많은 수의 집들.
정말 대량의 재료가 소모되리라.
물론 방법은 있다.
"재료는 곧 도착할 거다."
"도착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 가?"
"그건 나중에 설명해 주지. 어쨌든, 다음으로… 마이."
나는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 봤다. 그녀 또한 회의실 자리 한켠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마이. 지금의 너라면 영지군을 몇까지 지휘할 수 있지?"
"지금의 나라면이라. 솔직하게 말 해도 되나?"
"그래."
그녀가 대답한다.
"솔직히 천 명까지는 문제없을 것 같다."
"천 명이라."
처음 마이사가 영지군을 지휘했을 때 그녀는 서툴렀다. 지휘 능력 은 일천했고, 자주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성장해 있었다.
오백의 영지군 병력을 무리 없이 지휘하더니, 지금은 천 명까지도 괜찮다 말할 정도라니.
나는 그녀에게 지시했다.
"좋아. 그럼 일단 천 명까지 영지군을 증원하지. 나머지 오백은 피 난민들 중에서 뽑아라."
"피난민들 중에서?"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루벤은 피난민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피난민들이 몰려온다면 그들은 실의에 빠질 것이다. 자신의 터전을 모조리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니.
자연스레 자포자기 하는 이들도 많아질 터.
"하지만 그들을 영지군으로 받아 들여 차별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주거 공간과 일자리를 지원해준다 면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나는 영지에 단순히 인구만 늘어 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영지에 정착하고, 일하며, 도움이 되는 이들을 원한다.
"피난민이 오는 수에 맞춰 계속 해 영지군을 증원해. 일단은 천 명을 목표로 잡지."
대략 천 명 정도의 영지군이 있다면, 영지 인구 십만까지는 치안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랑스를 바라봤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겠지.
녀석에게 지시한다.
"랑스. 너는 손이 남는 영지민들을 차출해 농토를 개간했으면 하는데 ."
"농토 개간이라. 피난민들에게 농 지를 빌려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내 영지, 라이젠 백작령에는 남 아도는 비옥한 토지가 꽤 많았다.
물론 그동안에는 그 땅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영지군의 능력이 일천했고 그 수 또한 부족했기에, 마물을 몰아내 새로운 토지를 개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영지에는 무려 오백의 영지군이 있는 상황.
마물을 사냥하고 새로운 농지를 확보하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
"랑스와 마이는 서로 협력해라. 마이는 영지군을 움직여 마물을 몰 아내고, 랑스는 영지민들을 이끌고 개간 작업을 지시해."
"알겠습니다. 한지훈 님."
내지시에 랑스와 마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저들은 서로 협력해, 새로운 땅을 일구어 내리라.
"자, 그럼 다음으로는…."
내가 계속해 그들에게 지시하려 할 때였다.
덜컹!
회의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인영이 나타났다. 비콘을 지키고 있던 통신병이었다.
그가 내게 알려왔다.
"영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병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째서일까. 병사의 얼굴에는 딱 딱한 긴장이 자리해 있었다. 그만큼 범상치 않은 인물이 찾아왔다는 이야기 겠지.
곧 나는 손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재무성 장관, 베네치오 슈라이버 합하께서 대량의 마차를 이끌고 오 셨습니다!"
황제의 선물. 도착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