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암흑기사가, 끝도 없이 밀려옵니 다…!"
한 황실 기사단원이 그리고했다. 그에 기사단장 갈람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이는군."
그의 우묵한 눈동자가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참혹 한 광경.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시체들. 어떤 것은 암흑기사의 시체였고, 또 어떤 것들은 황실 기사들의 시체였다. 그들이 흘린 질척한 핏물이 지면을 적시고 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철그럭. 그가 피칠갑이 된장검을 들어 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한지훈이 지하로 내려가고, 갈람 프는 계속해 이곳을 사수했다. 그의 뒤를 지켰다.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다면, 한지훈이 흑마법사의 마법진을 파괴할 것이라 믿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점차 끝에 달하고 있다.
콰직!
"크하아악!"
암흑기사의 검날이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황실 기사의 목을 베었다. 그가 붉은색 핏물을 흩뿌리며 주저앉는다.
퍼억.
"아악! 아아아악!"
또 다른 황실 기사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돌려 그곳을 주시하 자, 심장이 꿰뚫린 황실 기사가 바닥을 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남아있는 황실 기사들의 수는 고작 이백여 명 남짓. 이어진 연전에, 그리고 끝없이 몰려드는 암흑기사들의 무리에. 전력이 반의반 으로 줄어들었다.
'기껏해야 십 분쯤 더 버틸 수 있겠군.'
으득. 갈람프는 이를 갈며 오러 를 운용한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푸른색 불길. 허나 미약하다. 그의 마나는 거의 고갈 직전이다. 그만큼 많은 적을 베었기에.
손이 떨린다. 머리가 휘청인다.
시야가 격하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갈람프는 오러를 운용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지훈 전대장의 뒤를 지켜줘야 하기에. 그가 뒤를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콰앙!
갈람프는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푸른색 검광이 번뜩이고, 암흑 기사의 목을 베었다. 검은색 핏물이 치솟았다.
'한지훈!'
암흑기사가 쓰러짐과 동시, 그 빈자리를 메꾸듯 밀려들어오는 적.
그는 최후를 직감했다.
서걱! 콰직!
암흑기사들이 공격이 파고들어왔다. 암흑색 검날이 그의 뺨을, 팔다 리를 난자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시뻘건 핏물이 흐른다.
'부디, 임무를 완수해다오. '
그럼에도 버틴다. 발악한다. 오직 한지훈 전대장이 임무를 완수하기 를 기원하면서.
하지만,
- 갈람프 단장 각하. 곧 증원이 도착합니다.
그의 최후는 아직이었다.
품속 수정구에 들려온 통신.
목이 빠져라 기다려왔던 지원 소식이었지만, 갈람프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미 늦었다.'
암흑기사들의 수가 너무 많다.
이자리에 기사와 전투마법사가 도착한다 한들, 저 끝없이 밀려드는 암흑기사들을 막아낼 수는 없을 터다.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그의 그 자조 섞인 생각은 곧 사라졌다.
- 증원군의 수는 세 명.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졌기에.
- 엘프들이 저희 제국을 지원합니다. 엘븐 가디언 세 명이 그쪽으로 향할 겁니다.
"엘프라니?! 그것도 엘븐 가디언?! 그게 무슨…."
갈람프가 되물으려 하는 그때.
쿠르르르르릉!!
중후한 굉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창고의 천정이 와지끈 파괴되고, 환한 달빛이 비쳐 들어왔다. 하늘에 녹색 마법진이 떠오른다.
저 연녹색 마법진. 갈람프는 알 고 있다.
"정말, 엘프의 마법…!"
자연력을 진하게 머금은 녹색 마법진. 오직 엘프만이 다룰 수 있는 다른 계통의 마법이다.
직후, 이변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릉!
마법진에서 세 줄기의 벼락이 내려쳤다. 시야가 순간 하얗게 물들고, 매캐한 후폭풍이 밀려온다.
갈람프는 억지로 눈을 떠, 갑작 스레 일이난 이변을 주시한다.
방금 전 벼락이 내려친 장소. 후 폭풍에 일어난 매캐한 먼지로 가려 진 그곳에는, 어느새 세 명의 인영 이 서 있었다.
"제국 수도라. 정말 오랜만이네 요. 그렇지 않아요, 타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녹색 머리칼을 가진 엘프 여인이었다.
정령사인 것일까. 그녀의 주위에는 다수의 정령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은은한 자연력의 파장이 주위를 장악해간다.
"… 나는 수도에는 처음 온다만."
뒤이어 그녀의 목소리에 답하는 것은 타냐라 불린 붉은색 머리의 엘프 여인. 그녀의 허리춤에는 기다란 장검이 패용되어 있었다.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흑마나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엘프 남성. 그는 마법사인 것인지, 짙은 청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세 명의 엘프 들. 그들이 웅혼한 기세를 흩뿌리며 자리했다.
가장 선두의 여인, 니디아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타냐, 마게브. 우리의 주인공을 도울 준비는 됐나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엘프 남녀.
싱긋, 니디아가 웃는다.
"일단, 이곳의 잔챙이들부터 쓸어 버리고 들어가자고요. 마게브?"
"알겠습니다."
엘프 마법사가 오른손의 지팡이 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파직! 파직! 파지지직!
허공에 청색 전광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강렬한 소음을 일 렁이며 그 기세를 늘려갔다.
마게브라 불린 엘프 마법사가 읊조린다.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그가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파지지지지직!
푸른색 뇌전이 사방천지를 뒤덮 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번개들이 공기를 태우고, 섬뜩한 소음을 울리 며 암흑기사들을 도륙해간다.
쿠르르르릉….
소음이 울렸다. 이곳 지하공간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지하의 천정을 바라봤다. 방금 전 충격 때문에 지하가 크게 흔들렸다. 천장의 흙먼지 가 부스스 떨어져 내린다.
이 굉음은 엘프들이 이곳 제국수 도에 도약해오는 소음이리라.
- …엘프님들이 바로 위 지상에 도착하셨어. 지금은 암흑기사들과 전투중이야.
"엘프들이……"
지상에는 황실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 뒤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황실 기사들에게 가세, 암흑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듯하다.
"엘프 이 고마운 놈들."
녀석들은 주로 중앙 대륙에 기거 한다. 그런 녀석들이 이곳 남대륙 제국 수도까지 왔다.
일이 일어나고 고작 몇 시간 만에 말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 한지훈. 엘프님들과 합류한 다음에 움직이는 게 어때?
요정이 제안해왔다.
합당한 제안이었다.
엘븐 가디언들. 그들은 개개인이 무지막지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합 류한다면, 흑마법사 놈들을 쳐죽이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터.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없어."
나름대로 여유가 있었다면 엘본 가디언들과 합류해 움직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시선을 돌려 시야 속 홀로그램을 주시한다.
[남은 시간 : 19: 57]
20분 남짓에 불과한 남은 시간.
합류하느라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다.
"계속해 전진한다."
때문에 나는 엘프들과의 합류를 기다리기보다는 계속해 전진하는 것을 택했다.
철컥, 철그럭, 철컥.
계속해 전대를 지휘해 지하공간 안쪽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더 이상 암흑기사 놈들을 마주하지는 않았다.
하긴. 이 지하공간에서 벌서 삼 백에 달하는 암흑기사들을 격파했다. 아직도 놈들이 남아있을 가능성 은 적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지하통로의 끝. 커다란 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꽤나 커다란 문이었다. 문짝에는 기기괴괴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벽에는 피라도 발랐던 것인지 붉게 물들어 있다.
직감했다.
"이 안에, 흑마법사 놈들이 있다."
문 안쪽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 섣불리 다 가가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농밀 한 흑마나의 잔향.
화르륵.
오러를 돋웠다. 푸른색 불길이 일어나고, 내 주위를 잠식해가던 혹 마나가 사그라들어 소멸해간다.
"놈들을 죽여버린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굉음을 울리며 터져나가는 문짝. 터져 나오는 흙먼지.
나는 거침없이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저벅, 저벅.
걸어가며 슬쩍 뒤를 바라봤다. 내 뒤를 따르는 기사들의 얼굴이 보인다.
1번부터 10번까지 각 편대장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이 제각각 지휘하고 있는 편대원들.
그들은 긴장하는 한편, 아직도 굳은 믿음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전대를 묶은 유대감이 여전히 존재 하고 있다. 그들의 눈동자 속 신뢰 가 살아있다.
녀석들과 함께라면 흑마법사 놈 들 따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으리라.
저벅.
계속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점차 흙먼지가 가라앉고, 방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은 지하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게다가 바닥에 자리한 커다란 마법진이란.
시야를 넓게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마법진 위 정중앙. 한 명의 인영이 보였다.
- 네놈이 한지훈인가. 어서 오게, '주인공'. 용케도 시간 안에 도착했 군.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인영이었다.
- 나는 타켈. 볼라바아의 최상급 흑마법사.
놈이 이쪽을 바라본다. 붉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타켈]
[최상급 흑마법새놈의 기색은 음험했다. 전신에는 암흑색 기운이 질척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눈동자는 핏빛 안광을 번들거렸다.
기분 나쁜 새끼.
- 과연… 듣던 대로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라. 아주 마음에 드는 외형이야.
흑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놈의 음울한 목소리가 지하공간을 은은 히 울린다.
- 역시, 탐이 나는군.
녀석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쿠르르르르….
소음이 울린다. 그리고 놈의 배 후에 검은색 기운이 어지러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 네놈은 이곳에서 죽는다.
죽는 건 네놈이다.
- 크라함 님께서, 네놈을 잡는다 면 그 육체를 키메라 합성에 사용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때 가 기대되는군….
지랄도 정도껏.
- 정말… 탐나는 육체야. 그 강 인한 신체! 진보한 '격'! 아쉽게도 네놈의 혼과 자아는 크라함 님의 것이기에, 내가 건드릴 수 없지만. 부디 그 육체만이라도 이 몸이 연구하게 해다오…!
쿠르르르르르!
놈이 지팡이를 드높이 치켜세웠다. 그러자 녀석의 배후에서 하나둘 암흑색 연기를 흩뿌리며 인영들이 등장한다.
'흑마법사들.'
놈의 배후에 등장한 것은 흑마법사들이었다. 그 수가 무려 백.
어려운 상대다. 단순한 흑마법사 조차 힘든 상대인데, 그 수가 백에 달하다니.
하지만 괜찮다.
- 띠링!
나에게는 스킬이 있으니까.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대량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흑마법사의 배치, 이 방의 구조 같은 굵직한 정보부터. 놈들의 시선, 움직임, 자세 같은 다소 섬세한 정보들까지.
모조리 내 뇌리로 파고들어왔다.
- 조심하도록. 귀중한 샘플이니. 가급적 육신의 손상이 적도록… 그래. 저주마법이 좋겠군.
놈들이 하나둘 지팡이를 이쪽으로 겨눈다. 나는 뒤를 바라봤다.
굳은 얼굴로 서 있는 황실 기사 들. 그들을 향해 말한다.
"돌진 준비해."
"… 전대장님."
"놈들이 마법을 갈길 때. 기회는 그때다."
녀석들은 내 몸을 큰 손상 없이 취하고 싶어 한다. 덕분에 놈들은 마탄 세례같은 광역공격은 자제하 려 하는 듯하다.
나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부하 기사들의 손실을 줄일 수있으니까.
쿠구구구구구…!
놈들이 혹마나를 끌어올린다. 음 울한 목소리가 울리고, 검은색 기운 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놈들의 모습을 살폈다.
'흑마법진의 핵.'
마법진의 핵을 찾기 위해서.
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타켈.'
자신을 타켈이라고 밝힌 흑마법사. 놈 스스로가 마법진의 핵이었다. 녀석을 죽인다면, 이거대한 사령마법은 정지한다.
철그럭.
장검을 굳세게 쥐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시선을 내려 장검의 모습을 살폈다.
[카르벨데]
[드워프제 상급 아티팩트 장검]
갈람프가 내게 준 아티팩트 장검. 카르벨데.
새삼 고급스러운 장검이다. 검신에 유려한 광택이 번들거리고, 마나 회로는 오밀조밀하게 새겨져있다. 더해 섬세하게 각인된 여러 장식들 까지.
갈람프. 무사하려나.
무사했으면 좋겠다.
- 정신침식 마법을 발현하라. 목표는 저자, 한지훈과 그 수하들! 황 실 기사들이다. 저자들 또한 좋은 피실험체가 될 것이다.
후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감각을 돋 웠다. 정신을 날카롭게 벼렸다. 온몸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전 근육이 맥동했다. 온몸의 혈류가 더욱 가속되었다.
화르르륵.
검신에 일렁이는 푸른색 불길이 그 세기를 늘려갔다. 환한 오러광이 어둑한 시야를 밝힌다.
나는 돌진 자세를 취했다.
어깨는 낮게. 시선은 전방. 검을 쥔 양손은 허리 깊숙이 당긴다. 하체에 힘을 주어, 언제든지 달려 나 갈 수 있게 준비한다.
- 놈을 타락시켜라!
흑마법사가 그리 외치고.
쿠르르르르르르!
암흑색 기운이 나를 향해서 쇄도 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은색 파도였다. 사악한 저주가 뭉쳐서 만들어진 덩어리. 그것이 내 몸을 집어삼키기 위해 우르르 밀려온다.
검은색 파도는 이쪽으로 다가오 며 온갖 것들을 침식해갔다.
기운이 맞닿은 공기가 썩어 보랏 빛으로 화했다. 스쳐지나간 지면이 삭아 문드러져, 시커멓게 죽어갔다.
저것의 정체. 잘 알고 있다. 과거 게임 속에서 자주 '운용'했던 혹마 법이었으니까.
'부패의 장막.'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기운. 저 저주마법의 정체였다. 저것에 잡아 먹힌다면 나 또한 흑마나에 정신이 침식당해 광인이 될 것이다.
파앙!
나는 지면을 박차고 전방으로 달 려 나갔다. 저 괴기스러운 검은색 파도를 향해서.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