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황실 기사단 3번 전대, 1번 편대 장, 베이어 알크미르.
그는 바로 앞에서 있는 인물의 모습을 바라본다.
'한지훈 전대장님.' 검은색 머리와 암흑색 눈동자는 언뜻 불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마법사나 암흑기사를 떠올릴 법 한 외양.
하지만 그가 품고 있는 분위기는 결코 불길하지 않았다.
눈빛은 빛바램 없이 또렷한 총기 를 머금고 있다. 꼿꼿이 선 허리는 당당했고, 전신에 맥동하고 있는 근육은 강인했다.
더해 그의 장검에서 일렁이고 있는 오러는, 화르르르륵!
황실 기사인 그조차도 처음 볼 정도로 진하고 선명한 오러였다.
강렬한 기세를 발하고 있는 푸른색 불꽃. 그것은 청염을 일렁이며, 장중한 파동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다.
무시무시한 존재감. 그 무엇이든지 절삭해버릴 것 같은 강렬한 기 세가 사방을 울렸다.
그리고 베이어는 들었다.
'흑마법사.'
인간의 혼과 지성을 타락시키는 괴물. 부정한 기운을 다루는 사악한 이들. 인류의 적.
한지훈은 말했다. 이제 곧 흑마법사와 전투하게 될 것이라고. 아직 도 백에 달하는 적 흑마법사가 남 아있다고 말이다.
"포트 갈레이에서도, 굴라덴에서도, 공국 수도에서도. 흑마법사 놈 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장담했다.
"이곳 제국 수도에서도, 흑마법사 놈들은 나를 이기지 못할 거다."
"흑마법사는 내적수가 아니다."
놈들은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이 라고.
"놈들을 모조리 쳐 죽여버린다."
"나를 믿고 따라라. 그렇다면 승리를 가져다주겠다."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노라 고. 자신을 믿고 따른다면 승리하게 해주겠노라고 말이다.
다른 이가 저런 말을 입에 담았다면 그저 근거 없는 허장성세로 여겼을 것이다. 그만큼 흑마법사란 괴기하고 강력한 적이었으니 .
허나 베이어는 눈앞의 한지훈이 하는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제국 영웅. 한지훈이다."
그만큼 그의 태도가, 표정이, 자세가 알려줬으니까.
흑마법사를 이길 수 있다고. 이 신성한 제국 수도를 어지럽히는 악 적들을 모조리 멸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울컥.
문득, 베이어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꼈다.
저 믿음직한 이가 임시직이지만 바로 자신의 상관이다. 헌데 그의 부하란 이가 흑마법사의 등장에 겁을 집어삼켰었다니.
콰득. 베이어는 오른손에 들린 장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말한다.
"믿고 따르겠습니다. 전대장님."
그 순간. 베이어는 자신이 한지훈에게 마음속 깊이 복속한 것을 깨달았다.
저자 한지훈이 내린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르리라. 그만큼 그는 믿음직한 상관이었으니까.
피식. 한지훈이 싱겁게 웃었다.
"이 쫄보 새끼들. 드디어 간장을 떨쳐냈구만."
한지훈이 저벅 걸어 지하로 향하는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자, 이제 가자. 흑마법사 새끼들 의 모가지에 검날을 쑤셔박아 주자 고."
"명령을 따릅니다. 전대장님!"
베이어를 비롯한 황실 기사들이 그의 뒤를 따른다.
그들의 얼굴에 어렸던 긴장과 공포는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황실 기사들을 이끌고 계단을 타고 내려와, 지하에 도달했다.
지하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습한 공기. 소수의 마나등에 의지해 보는 좁은 시야. 음산하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 더해 피부에 직접 느껴질 정도로 농밀한 흑마나까지.
후욱.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폐부 깊숙이 눅눅한 공기가 저며 든다.
음울하고 기분 나쁜 공간. 그곳을 기사 구십여 명을 이끈 채 전진 한다.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황실 기사들.'
내가 이끌고 온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은 제대로 떨쳐냈다.'
지하로 진입하기 전, 나는 아군의사기를 높이기 위해 일장 연설을했다.
뭐. 별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는 강하다. 이미 흑마법사 여럿 죽여봤다. 그러니 이번에도 놈들을 죽일 것이다. 닥치고 내 명령에 따라라….
초등학생이라도 할 수 있을 법 한, 유치한 개소리의 나열에 불과했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사들의 얼굴에는 이전에 떠올 랐던 긴장과 공포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지휘관인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치솟는 의지뿐.
덕분에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스킬 : 전대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전대 지휘술. 휘하 기사들을 완전히 장악했기에 얻은 스킬.
사실, 그 효과를 아직까진 체감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천인대 전투지휘술과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 던 것이다.
분명 기존 스킬과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을 터인데도.
'뭐. 전투해보면 알겠지.'
철그럭. 손아귀에 쥔 장검을 굳 세게 쥐었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없지만, 막상 전투에 진입한다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때는 곧장 찾아왔다.
"전방에 암흑기사 발견! 수 약 오십!"
휘하 황실 기사단원이 그리 외쳤다. 그에 나는 정면을 노려봤다.
적이 보인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방패와 창칼을 쥔 암흑기사들이 종대를 이루어 접근하고 있는 모습. 놈들의 잘 통제된 발걸음이 이쪽으로 향한다. 분명 우리의 접근을 막 기 위해 온 암흑기사들이리라.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전대. 전투 준비."
스르릉, 철컥.
황실 기사들이 하나둘 병장기를 들어 올려 앞으로 겨눈다.
나 또한 장검을 들어 올렸다. 기 세를 끌어올렸다.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화륵, 타오르는 푸른색 오러광.
입을 열어 크게 외친다.
"돌진! 놈들을 쳐부숴라!"
파앙!
내가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도약 했고, 그 뒤를 황실 기사들이 뒤따 랐다.
"1번 편대! 전대장님의 뒤를 따르라!"
베이어는 그리 외치며 앞으로 달 려 나갔다. 그에 뒤따라오는 편대원 들.
화르르륵.
그는 오러를 끌어올렸다. 검신에 푸른색 기운이 환한 빛을 머금는다.
베이어가 검을 휭으로 그었다.
콰앙!
공기를 터트리는 듯한 굉음. 그 와 함께 푸른색 궤적이 긴 사선을 그리며 적 암흑기사에게 내리꽂힌다.
퍼억!
묵직한 절삭음. 베이어는 검날을 뽑아 재차 휘두르며, 시선으로는 어떤 인물의 모습을 ?았다.
한지훈 전대장. 가장 먼저 돌진 한자신의 상관.
그의 시야 속 한지훈의 모습이 들어오자, 베이어는 속에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암흑기사들이 더 이상 공포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언제 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모조리 쳐 죽일 수 있을것만 같다.
그는 계속해 검을 휘두른다.
콰앙!
검이 공기를 가르고 적의 모가지에 틀어박혔다. 검날을 비틀었다. 콰드득, 하고 꺾이는 암흑기사의 모.
심장이 맥동하고, 혈류가 가속되었다. 두근거리는 박동음을 따라 그는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그리고 전투하는 와중 베이어는 느낄 수 있었다.
'전대장께서 원하시는 것.'
베이어는 전투하는 와중에도 틈 틈이 자신의 상관, 한지훈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행동과 표정을, 그리고 시선을 읽었다.
그러자 한지훈 전대장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른쪽의 취약점.'
한지훈 전대장의 우측이 비었다. 베이어는 1번 편대를 이끌고 그곳을 틀어막는다.
'후방의 경계.'
뒤이어 가세해온 4번과 5번 편 대. 그들이 한지훈의 배후를 보조한다.
'적의 빈틈.'
암흑기사들의 전열에 빈틈이 생 겼다. 그곳을 7번 편대가 파고들어 갔다.
놀랍게도 한지훈 전대장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묵 묵히 적의 전열로 돌진해가, 암흑기 사들을 베어 죽여나가고 있을 뿐.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진형을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어디를 밀고 들어가 보조해야 하는 지. 어떤 적을 우선적으로 베어버려 야 하는지.
그저 시야 속 한지훈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기묘한 일체감이었다.
마치 커다란 강을 따라 흐르는 느낌. 자연스럽지만 확실하게 어떤 흐름에 이끌리는 듯한 움직임.
베이어는, 그리고 3번 전대의 모든 기사들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지훈이 자신을 이끌고 있다고. 그의 아래에 하나 되어 싸우고 있다고 말이다.
황실 기사들이 적을 유기적으로 몰아쳐 간다.
* * *
'대단한데.'
검을 휘두르며 그리 생각했다.
적 암흑기사의 목을 베고, 심장을 가르며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4번 편대! 앞으로 간다!"
"2번 편대. 후측방을 보조하겠습니다."
"적 전열에 빈틈! 돌진!"
황실 기사들이 적 암흑기사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퍽 대단했다.
빈틈이 생기면 찔러들어갔고, 아 군의 취약점은 다른 편대원들이 자 발적으로 보좌했다. 계속해 배치를 바꿔가며 적의 전열을 효과적으로 뭉개갔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기사들이 이토록 유기적으로 움직이다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배치 전환, 완벽한 타이밍의 협공, 편대의 유기적인 공세와 퇴각.
너무나도 이상적인 움직임이었다. 마치 정교한 전쟁기계가 된 것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는 각 편대들.
본래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저기사들이 아무리 정예이고, 오랜 기간 훈련했다 한들. 실전에서 저토록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니.
하지만 저들, 내 휘하 황실 기사 들은 해내고 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읽고 있다.'
전투에 진입한 뒤. 나는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기사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 냈다.
내 동작을, 시선을, 그리고 기색을 감지해서. 한발 앞서 내려질 '명령'을 추론하고, 수행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마치 저 구십의 기사들과 혼연일 체가 된 것 같은 느낌. 나 자신이 곧 전대 그 자체가 된 느낌이다.
입을 열어 지시하지 않고도 휘하 병력이 내 의도를 깨닫고 움직여준 다니.
전대의 모든 기사들과 일체된 것 만 같은 고양감이 느껴진다.
피식 웃었다.
"이게 전대 전투지휘술 스킬의 힘인가."
황실 기사들. 저들은 엘리트다. 개개인의 무력 또한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런 그들을 내가 완벽히 '장악'했다. 이제 저들은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을 넘어, 내가 원하는 명령을 한발 앞서 알아차려 수행하고 있다.
우측의 방어가 미흡하다 여기자 그곳에 새로운 편대가 지원을 왔다.
좌측의 암흑기사들이 거슬리다 생각하자, 또 다른 기사 편대가 그곳을 찔러들어가 붕괴시켜갔다.
정면으로 돌진해야겠다 생각하자, 두 개의 편대가 동시에 앞서나가 내 진로를 확보해준다.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저기사들이, 내 몸의 일부가 된 것 마냥 자연스레 움직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서로가 연결된 것만 같다.
나직이 중얼거린다.
"가능해."
염병할 흑마법사 새끼들과 암흑 기사들을 쳐 죽여버리고, 마법진의 핵을 파괴해 수도를 구원하는 것.
가능하다.
환실 기사들과 전대 지휘술이, 그리고 내 무력이 있다면 말이다.
물론,
- 한지훈.
내 아군은 황실 기사들로 끝나지 않았다.
- 엘프님들이 올 거야.
"엘프?"
요정에 말에 되물었다.
엘프. 전시나리오에서는 적이었 으나, 이 세상에서는 내 아군이 된 이들.
그들이 오고 있다고 한다.
- 하이엘프님들. 엘븐 가디언. 그분들이 오실 거래.
"… 언제?"
- 곧.
쿠르르르르릉!
굉음이 울렸다.
니디아를 비롯한 엘븐 가디언들 이 이곳, 제국 수도로 도약해오는 소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