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대법은 어떻게 되었지?"
어둑한 지하 속. 한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음울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그에 대답하는 그의 수하 암흑기 사.
-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한스 님.
"그래."
철그럭, 철컥. 한스는 천천히 지하공간의 한켠으로 걸어갔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한지훈. 놈의 격을 빼앗는다."
한스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쿠르르르르….
지하공간 전체를 그득 메듯, 지면에 커다란 암흑색 마법진이 떠오른다.
한스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피 어올랐다.
* * *
"저기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가는 와중, 황실 기사 하나가 그리 외쳤다. 그에 나는 앞을 바라본다.
이미 도시 동쪽 외곽으로 빠져나 왔기에 가옥들의 밀집도가 떨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들.
그중 하나는 유독 커다랬다.
"알키온 상단의 동수도 물류창고 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을 바라보았다.
정말 커다란 부지를 차지한 건물이었다. 외곽을 둘러싼 담. 그 뒤에 보이는 것은 많은 수의 물류와 마차들.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상단인 알 키온 상단. 그들의 동수도에 위치한 대형 창고다. 당연히 커다란 것이 당연한 일.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돌진!"
"돌진! 돌진!"
내가 외치고, 편대장들이 복창한다.
두두두두두.
전투마가 달려 건물로 쇄도해간다. 나는 말의 가속력을 살려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강렬한 파공성을 울리며 뻗어나 가는 내 검광. 검광은 공기를 베고, 웅혼한 충격파를 터트리며 대문을 타격했다.
콰앙! 철커덩!
그에 대문이 터져나가 입구가 열렸다. 멈추지 않고 진입. 물류창고 의 부지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적이 보였다.
- 놈들이 왔다!
- 죽여! 죽여라!
암흑기사들. 우리가 이곳에 올 것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을까. 놈들은 전열을 갖추고 대문 안쪽에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씨익 웃었다.
"맞게 찾았구만."
놈들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은, 흑마법사의 핵이 정말 이 안쪽에 있다는 이야기다.
눈동자를 굴려 녀석들의 수를 확인해본다.
'암흑기사들의 수. 약 이백여 명.'
놈들의 수는 약 이백. 스무 개 편대 규모였다.
이곳까지 오며 처치했던 삼백의 암흑기사들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수.
후욱, 숨을 크게 내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죽인다.'
검날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화르르르륵!
격렬히 타오르는 청색 불꽃. 검 신에 어린 오러가 선명한 빛을 발 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검을 횡으로 휘두르며 놈들에게 들이닥친다.
콰르르르릉!
- 크하아아악!
- 대형을 짜라!
- 막아!
암흑기사 두셋이 말에 치여서, 내 검날에 베어서 무력화 되었다. 놈들이 뒤로 부웅 날아가 쌓여있는 물건들을 와지끈 부수며 나가떨어 진다.
재차 검을 휘둘렀다.
콰앙!
이번에는 수직베기. 검날이 곧은 궤적을 그리며 적 암흑기사의 머리 통에 쇄도해간다.
퍼억!
내 검날은 암흑기사의 투구를 깨 부수고, 그 내부의 머리와 두개골을 부수며 녀석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렸다.
하하. 문득 웃음이 나온다.
'검. 엄청 좋네.'
파앙! 검을 휘둘러 검은색 핏물을 털어냈다. 오른손에 들린 검을 바라본다.
[카르벨데]
[드워프제 상급 아티팩트 장검]
절삭력 강화, 오러 증폭, 마나회복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라 한다. 황실 기사단장 갈람프가 내게 준 물건.
흡족한 만족감이 올라온다.
"역시 템빨이 짱이야."
새로운 무기 덕분에 전투하는 것 이 훨씬 수월해졌다.
검날에 적은 마나를 밀어 넣어도 이전보다 선명한 오러가 발현되었다. 절삭력이 극대화되어 휘두르는 족족 적이 베어 쓰러졌으며, 더해 약하게나마 마나가 계속 회복되고 있다.
무기하나 바꿨다고 이토록 전투가 수월해지다니. 뭔가, 인생 절반 손해 본 느낌이다.
그렇게 내가 암흑기사들과 전투 하고 있을 때였다.
"전대장님! 가세하겠습니다!"
콰앙! 두두두두!
전투마에 탑승한 후속 기사들이 속속 도착해왔다. 그들이 대열을 갖 춘 암흑기사들에게 들이닥쳐, 합류 하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서걱, 콰직!
황실 기사들 약 천여 명. 그들이 검과 기병창을 휘둘러 암흑기사들을 도륙해갔다. 황실 기사들은 모두가 오랫동안 전장을 전전했던 베테 랑들. 그들은 용맹하고 저돌적이었 으며, 그에 수적 열세에 시달리는 암흑기사들의 진형은 힘없이 부서 져갔다.
그때 문득.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거지?' 갑작스레 떠오른 의문이었다.
지금 이곳, 물류창고 내부를 지키는 것은 고작해야 이백의 암흑기 사들. 반면 놈들을 치고 있는 것은 무려 일천에 달하는 황실 기사들이다.
암흑기사 놈들이 수적으로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 이 정도로 막대한 전력 차라면, 병력을 뒤로 물려 진군을 지연시키는 것이 합당 할 터인 데.
저 암흑기사 놈들은 어떻게든 버 티려 하고 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황실 기사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내며, 마치 발악하듯이 말이다.
"… 수상해."
수상하다. 놈들이 저토록 버티는 이유. 분명 무언가 있을 터.
그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번쩍! 번쩍!
물류창고 곳곳에서 빛이 터져 나 왔다. 나는 저 빛의 정체를 알고 있다.
마법 발현광. 다만 저 빛들은 일반적으로 푸른색인 발현광들과는 달리 탁한 검은색이었다.
쯧. 혀를 찼다.
"증원이 오는 건가."
번쩍!
내 앞에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무리를 헤치듯 등장한 것은 또 다른 암흑기사들.
암흑기사 놈들은 오백이 전부가 아니었다. 녀석들은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자 다시금 비콘을 통한 초장 거리 도약마법을 발현. 또 다른 원 군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후욱. 숨을 내뱉으며 검을 휘두 른다.
콰앙!
내 검날이 공기를 가르고, 푸른색 궤적을 그리며. 바로 앞에 새로이 등장한 암흑기사의 목을 잘라 내버렸다.
퍼억. 하는 둔탁한 절삭음. 뒤이 어 붕 떠오르는 암흑기사의 목. 녀석의 모가지에서 검은색 핏물이 분 수처럼 치솟는다.
계속해 검을 휘둘렀다.
파앙! 콰앙! 콰직!
검을 휘두를 때마다 푸른색 궤적 이 그어지고, 적 암흑기사가 검은색 핏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놈들의 시체가 물류창고 이곳저곳에 쌓여간다. 황실 기사들과 암흑기사들의 치 열한 접전이 계속됐다.
하지만,
'수가 줄지를 않아.'
놈들의 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황실 기사들과 협력해 놈들을 처치해가지만. 녀석들이 죽는 것 이상으로 많은 수가 이곳에 도착해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암흑기사들과 전투 하고 있을 때였다.
"한지훈 전대장."
누군가가 내 옆에 다가왔다. 바라보니 기사단장 갈람프였다.
그가 우묵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놈들의 증원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 보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속해 마법 발현광을 번쩍이며 도착하는 암흑기사들. 놈들의 수는 어느덧 오백을 넘어서고 있다.
그만큼, 놈들이 도약마법을 발현 해 이곳으로 오는 수가 심상치 않았다.
"자네가 내부로 진입하게."
"…제가 말입니까?"
"그래."
갈람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도 알다시피, 곧 사령마법이 발현된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이곳에서 언제까지 놈들에게 발이 붙 잡힐 수는 없어."
그의 말에, 나는 눈동자를 굴려 시야 속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67: 51]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정말 촉박한 시간이다.
"내가 길을 열겠네. 자네는 3번 전대를 이끌고 저 암흑기사 놈들을 돌파해 안으로 진입하게. 뒤는 내가 지켜주지."
"알겠습니다. 단장 각하."
갈람프가 내게 지시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저 암흑기사 놈 들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 안으로 진입하라고. 먼저 가사령마법진을 파훼하라고 말이다.
그가 나직이 조언한다.
"조심하게 한지훈. 놈들의 원군이 도착하는 것을 보아, 저 안쪽에도 적이 많을 터다. 당장 확인된 적만 흑마법사 백이다."
"백 명의 흑마법사."
게딘 알키온의 머리통을 열어 확인했던 적의 전력이 흑마법사 백, 그리고 암흑기사 오백이었다.
하지만 그 정보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듯, 놈들의 증 원이 도착하고 있으므로.
아마 내부에는 상정한 것 이상으로 많은 적이 있다고 봐야하겠지.
하지만 괜찮다.
수적 열세에서 싸우는 것. 이미 많이 해봤으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나는 검날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화르르륵!
푸르게 빛나는 검신. 오러광이 보다 선명한 빛을 발하고, 검날이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씩 웃으며 갈람프에게 고한다.
"받은 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습 니까?"
지금 내 손에는 아티팩트 장검이 들려있다. 이전보다도 더욱 드높은 무력을 발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크게 외쳤다.
"3번 전대! 주목!"
내 말에 전대원들이 집중한다.
* * *
"수도군단에서 보고입니다! 해당지역 민중의 대피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군 사령관의 보고입니다. 수도 인근 데비텔 기사단과 로트리아 기사단이 증원 오고 있다는 소식입 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약 삼십 분!"
"전선에 나가있던 델루키나 전투 마법단, 그리고 롬비드 전투마법단 의 회신! 초장거리 도약마법의 준비가 거의 끝나간다 합니다! 이십 분 내 도착 예정!"
황궁 알현실. 그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은 이전과 달리 번잡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병사들과 군 관들. 급하게 설치된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각종 통신 수정구와 비콘.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있는 여러 서류들까지.
지금 황궁은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흑마법사의 제국 수도 침공.
놈들은 거대한 사령마법진을 제국수도에 설치. 수도에 살고 있는 인간 전체를 언데드화 시키려 한다. 그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제국 황실 이었다.
황제, 아르테니아가 차갑게 가라 앉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수도군단. 교전이 일어나는 해당 지역 민중은 완전히 대피했는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수도의 치안을 확립하라.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라 있다. 민중들이 불안에 떨고, 소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 대로 요소요소에 병사들을 배치해 불의 의사태에 대응하라."
"명령을 이행합니다, 황제 폐하!"
"델루키나 전투마법단과 롬비드 전투마법단. 이십 분 내에 도착이라 고?"
"그렇습니다. 폐하."
"늦다. 언제 사령마법이 발동될지 모르니. 부스터를 섭취하도록 지시 하라. 단 일 분이라도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도록."
"명령을 따릅니다. 황제 폐하."
"데비텔 기사단과 로트리아 기사단. 수가 몇이라 했지?"
"두 기사단 모두 합쳐 약 천오백 명 규모입니다."
"그래. 당장 도움이 되는 수준이 군. 도착하자마자 전투마를 교체하고, 바로 전투에 투입하라."
"알겠습니다, 폐하!"
황제는 황금옥좌 위에 앉아 상황을 통제했다.
수도군단을 움직여 전투장소의 민중들을 대피시키고, 수도의 치안을 다졌다. 기사단을 호출했다. 마법사를 불러들였다. 각 장군들을 소 집했다.
그가 시선을 돌려 알현실 밖, 커다란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그러자 보인다.
제국 수도 상공에 등장한 커다란 마법진. 흑마법사들이 발현한 사령 마법진이다.
으득. 황제가 이를 갈았다.
"흑마법사…."
흑마법사. 놈들은 인류의 적이었다.
인간을 소모해 마법을 발현하는 부정한 존재들. 녀석들은 영혼과 자 아를 바치고, 악신을 숭배해, 강함 과 영생을 얻었다.
황제가 나직이 읊조린다.
"흑마법사 토벌. 그토록 철저하게 했거늘, 그럼에도 저토록 강대한 세력을 이루었을 줄이야."
흑마법사 놈들은 과거 정복 전쟁 당시, 남부 대륙이 혼란에 빠졌을 때 그 세력을 키웠었다. 흑마법사를 양성하고, 기사를 납치하거나 회유 해 암흑기사의 수를 늘려왔다. 남부 대륙 곳곳에 거점을 만들고 비인도 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때문에 아르테니아가 황제위에 등극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흑마법사의 토벌이었다.
대륙 곳곳, 온갖 오지에 기사단 과 전투마법사를 파견해 흑마법사 의 수를 줄여갔다. 놈들을 제압했고, 도시를 해방했으며, 민중을 구 원했다.
제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 흑마법사 토벌이 장장 오 년에 걸쳐 이 뤄졌다. 그에 흑마법사들이 활동하는 빈도가 크게 떨어졌고, 결국 나중에는 놈들이 거의 절멸했다 여겼 었는데 .
"숨어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군."
놈들을 절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 제국 수도를 직접 침공해올 정도로 세력을 키워왔다.
황제의 눈동자가 사령마법진으로 향한다.
기분 나쁜 마법진. 저것이 발현 된다면, 이곳 제국 수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백만이 넘는 막대한 인구가 언데드화 되어 타락한다.
놈들의 수작을 막아야 한다.
황제는 무거운 눈으로 사령마법 진을 주시한다. 반드시 없애버리겠 다는 듯이.
그가 그렇게 창밖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화, 황제 폐하!"
한 군관의 당혹성이 번잡한 알현실을 울렸다. 그 직후, 웅웅웅웅웅웅!
마나의 파동음이 공간을 채워가 기 시작했다.
"마나통신망이 간섭당하고 있습니다!"
"비콘의 통제가 듣질 않습니다!"
"뭣…?! 무슨! 어디서 간섭해오는 건가!"
통신을 맡은 군관들이 하나둘 당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마나통신망의 간섭, 더해 비콘의 통제권 탈취.
황제가 묻는다.
"흑마법사의 수작인가?"
"아닙니다! 이건 흑마나에 의한 간섭이 아닙니다! 오히려…."
군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레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기에.
- 안녕하세요, 제국 황제.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가녀리고도 섬세한 목소리.
- 위급사태이기에 실례 좀 했어 요.
"… 누구지. 흑마법사인가?"
- 어머! 실례예요. 저를 그런 기분 나쁜 놈들과 비교하다니 말이에 요.
뒤이어 울리는 여성의 웃음소리. 통제권이 탈취당한 비콘에서 그녀 의 말이 이어 들려온다.
- 저는 엘프예요.
엘프. 인간들 사이에서는 오직 중앙 대륙에서만 활동하며, 세계수 를 수호하는 신비의 종족.
그들이 타 대륙에 간섭해오기 시작했다.
- 저희 엘븐 가디언이 귀국을 돕 고자 하는데, 허락해주시겠어요? 제국의 황제님.
니디아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알현실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