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사령마법의 파훼라."
제국 황제 아르테니아. 그는 우 묵한 눈으로 눈앞에 자리해있는 청년, 한지훈을 바라본다.
방금 전, 그는 황제인 자신을 구 해냈었다.
차마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검을 휘둘러 파편들을 모조리 쳐냈다. 갑작스레 등장한 암흑기사들을 돌진해 해치웠다.
"기사단의 지휘권을, 병력을 달라 고…."
그리고 지금, 한지훈은 자신에게 병력을 달라 요청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를 사냥하고 마법진을 파훼한 다며 말이다.
황제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보호하듯 주위에서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황실 기사단."
가슴팍에 달린 것은 영예로운 제국 황가의 문양.
그들의 얼굴에는 황제를 수호한다는 자부심이 그득했고, 전신에는 전의가 일렁여 근육이 맥동하고 있다.
그리고 황제는 볼 수 있었다.
황실 기사단, 그들의 얼굴 표정 으황실 기사들은 이제국에서 가장 엘리트의 길을 걷는 기사들이었다.
혈통, 가문, 실력, 전공.
그 모든 것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황실 기사라는 지위였으니 .
때문에, 황제는 한지훈이 황실 기사들을 지휘권을 요구했을 때 내 심 그들의 반발을 예상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인정한 강자가 아니라면 결코 따르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뢰하고 있다.'
황제는 한지훈을 바라보는 황실 기사들의 시선을 읽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신뢰와 믿음 이 그득했다.
분명 평민 출신임에도, 그리고 '고작' 천인장이라는 낮은 지위임에 도. 한지훈은 그 잠깐 사이 황실 기사들을 온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 대단하군.'
그에 황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평민 출신인 한지훈이 고작 단 한번의 전투로, 그 자존심 드높기 로 유명한 황실 기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을 자연스레 수하 로 두었다.
강렬한 카리스마. 그리고 그 카리스마를 뒷받침하는 강대한 무력. 모두 영웅의 자질이다.
황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군 그래."
황제는 한지훈의 보고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가 그동안 세워왔던 전공을 보았을 때. 그리 머지않아 한지훈이 영웅이 되리라 예상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를 지원했던 것은 그저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에 불과했으니 .
하지만 이토록 빠르게 두각을 드 러낼 줄은 몰랐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제국 천인장, 한지훈 라이 젠 백작. 자네에게 임시 지휘권한을 부여하지. 황실 기사단 3번 전대를 맡기겠다."
황제는 한지훈에게 황실 기사들 의지휘권한을 부여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 하."
나는 척 경례하며 그리 대답했다.
황실 기사단, 임시 3번 전대장 지위를 획득했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에 황실 기사들이 하나둘 자기소개 한다.
"베이어 알크미르. 1번 편대장입 니다."
"자르반 디 포르티아. 2번 편대 장입니다."
"델리 팔링크. 3번 편대장입니다."
"거번트 비 슐레지엥. 4번 편대 장입니다."
"알리 데트랑. 5번…."
방금 전 황제는 내게 일개 전대 를 맡겼다. 그리고 일개 전대는 열 개 편대, 약 백여 명의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제 나는 황실 기사 백여 명을 지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각 편대장들의 얼굴을 외웠다.
"좋아.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지 휘를 따른다."
"알겠습니다. 전대장님."
기사들을 지휘해본 적은 처음이다. 보병대 때와는 다르게 운용해야 할 터.
하지만 잘할 자신이 있다.
'기사 지휘는 이미 질리도록 해 봤으니 .'
게임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대규모 회전 때마다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지휘했던 것이 바로 기사들 이었다.
비록 이 개같은 세상 속에 떨어 진 이후 기사를 지휘한 것은 처음 이지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1번 편대장 베 이어에게 물었다.
"베이어. 우리 황실 기사단 3번 전대의 전력은?"
"기사 일백십하나입니다. 각 편대 장들은 상급 기사이며, 나머지 단원 들은 중급의 경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준수하군그래."
중급 기사라면 다른 기사단에서 편대장을 할 경지다. 헌데 황실 기사단에서는 일반 단원을 중급 기사 로 구성해 놓았다.
그만큼 이들은 엘리트들이었다.
하긴, 그렇기에 황실 기사단에 입단할 수 있었을 터이니.
나는 베이어에게 지시했다.
"기사라면 전투마를 가지고 있겠지. 다들 승마를 준비하라. 내가 탈 말도 구해놓고."
"기사용 전투마로 구해놓습니까?"
"그래."
전투마의 효용은 이전에도 한번 경험해봤다. 굳이 뚜벅이로 다닐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시선을 돌려, 황실 마법단 장 델티먼을 바라봤다.
"델티먼 마법단장 각하."
"그래. 한지훈 천인장. 아니, 이제는 한지훈 전대장이라고 불러야 겠군."
델티먼이 앞으로 나서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흑마법사들의 위치, 그리고 저 마법진의 핵. 특정할 수 있으십니까?"
"…흑마법사들의 위치라"
내 물음에, 델티먼은 표정을 찌푸리며 부정했다.
"그건 내게 불가능한 일이군 그래. 백마법과 흑마법은 그 계통 자체가 너무나도 다르다. 만약 바로 인근에 있었다면 마나의 흐름을 읽 어 시전자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겠지만…."
델티먼이 고개를 들어 올려 밤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에는 여전히 검은색 마법진이 광오한 기운을 일 렁이며 자리해있다.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저건 그 범위가 너무나 넓군. 놈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나, 그이상 범위 를 좁히지는 못한다."
"그렇군요."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저 마법은 그 범위가 제국 수도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마법진이다. 시전자의 위치가 너무나도 멀기에 추적은 곤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시. 일단은 제 나름대로 추적 해야겠군요."
"놈들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
"나름대로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금 밤하늘을 시야에 담았다.
"흑마법사. 마법진의 핵. 모두 저 '달'이 알려주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당장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말이다.
다시 시선을 내려, 델티먼을 바라봤다.
"그럼 마법단장 각하께서는 정보 추출을 부탁드립니다."
"정보 추출이라니. 설마…."
델티먼의 눈이 저 연회장 샹들리 에에 깔려있는 게딘에게로 향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여 긍정했다.
"맞습니다. 게딘 알키온. 저 개자 식이 흑마법사와 협조했습니다. 놈 의 머리 속을 털어본다면 뭔가 쓸 만한 정보가 나오겠지요."
"… 한지훈 전대장. 게딘 알키온은 고위귀족이다. 게다가 지금 그가 흑마법사와 협조했다는 확실한 증거 가 없지 않은가."
델티먼의 말은 합당했다.
사실 그가 흑마법사와 협조했다는 것은 반쯤 내 억지에 불과했다. 있는 것이라고는 흑마법사의 공격 전, 놈이 연회장을 빠져나가려 했다는 정황증거밖에 없었으니 .
하지만,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은 그딴 세세한 걸 따질 때 가 아니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지면에 털었다. 암흑기사의 검은색 피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당장 제국 수도가 흑마법사 놈 들에게 유린당 할 상황입니다. 가능 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지요. 놈 들의 수, 위치, 목적 말입니다."
"만약 게딘이 정말 무고했다면?"
"그때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물론 책임질 일 따위는 없을 터다. 놈이 흑마법사에게 협조했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 알겠네."
델티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게 딘에게 다가갔다.
"서, 설마! 델티먼 경! 정말 저 미친 애송이의 말만 믿고, 내게 추 출마법을 사용할 셈인가?!"
"사태가 사태다, 게딘. 그리고… 자네의 행동이 확실히 수상하긴 했어."
"무슨…!"
"일단계 방벽, 파훼."
우우우웅….
델티먼이 마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마법진이 게딘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크아아아아아!"
게딘은 고통에 눈을 까뒤집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 머지않아 놈의 정신방벽을 모조리 깨부숴, 적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게, 한지훈. 무언가 정보 를 얻게 된다면 통신으로 알려주지. 통신수정구는 가지고 있겠지?"
"네. 가지고 있습니다. 마법단장 각하."
"그럼 어서 가보거]
. 시간이 촉박 하다."
나는 델티먼의 말에 고개를 끄덕 이고는, 시야 속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엑스트라 퀘스트]
[수도 어딘가에 있을 사령마법진을 찾아내, 발동 전 파괴하라.]
[남은 시간 : 174: 21]
지휘권을 받고, 전투마를 준비하는데 무려 6분이나 소요했다.
남은 시간 약 174분. 이 시간 안에 흑마법사 놈들을 찾아내, 놈들을 처치하고, 흑마법진의 핵까지 파괴 해야만 한다.
나는 1번 편대장 베이어에게 물었다.
"내 전투마. 준비됐나?"
"네! 연회장 밖에 대기 중입니다."
"좋아. 그럼 이제 출발하지."
나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려, 황실 기사단장 갈람프 디 브리기테 를 바라봤다.
"잠시 휘하 기사들을 빌리겠습니다. 단장 각하."
"그래. 먼저 선행하라, 한지훈 임시 전대장. 나는 나머지 황실 기사 들을 모으는 대로 뒤따라가겠다. 흑마법사 놈들을 추적할 수 있다는 자네의 말, 허언이 아니길 바라네."
"네. 확실히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럼 됐다. 어서 가라! 감히 이제국의 수도를, 황궁을 유린한 놈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라."
"명령을 받듭니다, 단장 각하."
척! 경례하고 뒤돌았다.
"가자."
황실 기사들을 받았고, 게딘의 머리통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흑마법사 놈들을 쳐 죽여버리고 마법진을 파괴하는 것 뿐.
나는 성큼 걸어 황궁 연회장 밖으로 향한다. 황실 기사들이 내 뒤 를 따른다.
"황제 폐하. 이제 옥체를 피하시 지요."
한지훈이 연회장 밖으로 나간 뒤. 황실 기사단장 갈람프가 그리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지금쯤이면 근위군이 피신 준비 를 모두 마쳤을 것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황제 폐하."
갈람프는 황제에게 피신을 권유했다.
그의 권유는 합당했다.
만약 흑마법사의 마법을 막지 못 한다면 이 수도 내 모든 인간들이 언데드화 되고 만다. 황제마저 그 참사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는 법.
그러니 피해야 한다. 적어도 제국의 주인인 황제만큼은.
허나,
"아니. 나는 수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겠다."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어 갈람프 의 제안을 거절했다.
"… 폐하. 어째서."
"이 수도가 멸망한다면 어차피 제국의 앞날은 없다."
황제는 시선을 돌려 연회장 밖, 드넓게 펼쳐진 황궁의 정원을. 그리고 그 정원 너머 자리해있는 커다란 황궁을 바라봤다.
"수도 오르페이아는 우리 제국의 중심지다. 이곳을 잃는다면, 제국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지."
제국 수도 오르페이아. 이곳은 인구 백만이 넘는 거대도시였으나, 그저 커다랗기만 한 도시는 아니었다.
이곳은 제국의 중심지. 제국의 모든 기능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수도는 그저 황궁이 있는 곳이 아니다. 국방성, 내무성, 국무성, 재 무성, 마법성, 법무성… 모든 국가 조직이 이곳에 있지. 이곳을 잃는다 면 제국 그 자체가 붕괴하는 것이다."
수도는 그 자체로 거대한 행정체 계를 지니고 있다. 제국의 모든 비콘과 마나통신망은 이곳으로 연결 되며, 거의 전부에 달하는 행정명령 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수도가 사라진다면 제국은 멸망 한다. 다른 도시들은 이거대한 국가의 행정을 도무지 감당 할 수 없었기에.
"그러니 나는 이곳에 남겠다. 어 차피 제국 수도가 소멸한다면 제국 은 멸망할 것이니."
"폐하."
"어차피 멸망할 것이라면. 수도와 함께 죽는 게 좋지 않겠는가."
황제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방금 전 한지훈이 나갔던 연회 장 출구를 바라본다.
"그리고, 어떤 직감이 들더군. 한지훈 경은 반드시 이 임무를 성공할 것이라는. 그래서 이 수도를, 제국 그 자체를 구원할 것이라는 직 감이 말이야."
"하오면."
"나는 황궁에 남아 중심을 잡겠다."
황제는 몸을 피하기보단 이자리에서 상황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지시한다.
"당장 중앙군사령관, 그리고 수도 군단장과 근위군단장을 호출하라. 한지훈 백작 혼자서 흑마법사를 상대하게 할 수는 없으니 ."
본격적인 흑마법사 추적섬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