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로 앞을 바라본다.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 입합니다.]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 입했다는 홀로그램 문구.
으득. 이를 갈았다.
'시스템 관리자.'
그 지랄 맞은 새끼가 어째서 조 용하나했다.
그동안 시스템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입했다는 홀로그램이 떠오 를 때마다 무언가 이변이 생겼었다.
공국의 침공이 앞당겨졌다. 내가 죽였던 한스가 되살아났다. 흑마법사들이 전쟁에 개입, 요새를 습격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무언가 수작질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후우. 한숨을 내쉬며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통신 수정구였다.
통신을 연결한다.
"랑스. 거기 있나?"
- 네, 한지훈 님. 무슨 일이죠?
통신을 연결한 곳은 내 영지, 루 벤 지방이었다. 그곳의 관사에서 자리를 지키던 랑스가 통신을 받았다.
녀석에게 묻는다.
"영지 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나?"
- 한지훈 님? 심상치 않은 일이 라 하신다면….
"수상한 인간들이 목격되었다든 가, 혹은 마물의 수가 갑작스레 폭 등했다든가. 아무 거나 눈에 띄는 변화가 있냔 말이야."
나는 영지에 이변이 생겼는지 알 아보고자 한다.
그에 랑스가 대답했다.
- 전혀 없습니다. 영지의 운영은 순조롭습니다. 드워프들도 계속 합 류하고 있고요.
"그래. 무언가 수상한 일이 생기 면 곧장 알려줘."
나는 통신을 끊고, 다른 곳으로 회선을 연결했다.
- 아펠도른 요새, 천인장 대리 엘락 빌레펠트입니다.
"엘락. 천인장 한지훈이다."
이번에 연결한 것은 아펠도른 요새였다.
녀석에게 곧장 묻는다.
"요새에 뭔가 수상한 기색이 있나?"
- 천인장님? 수상한 기색이라니 요?
"적 부대가 관측되었다든가, 흑마법사가 발견되었다든가. 수상한 일 이라면 뭐든지."
- 전혀 없습니다, 천인장님. 지금 군단은 순조롭게 재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입니다. 병력과 보 급품도 충원되었고요.
"그래서.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다는 소리지?"
- 그렇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엘락."
통신을 끊었다. 나는 계단의 난 간을 붙잡고 고뇌했다.
'영지와 내 휘하 병력. 그 모두에게는 이상이 없다.'
직접 그곳에 가본 것이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당장 수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직접나를 노리는 건가."
시선을 돌려 다시금 정면을 주시했다. 그러자 연회장에 들어찬 사람 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중 몇몇은 의아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계단을 내려 오던 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무언가 통신을 하고 있으니 의아하 게 여길 수밖에.
'이곳이 제일 수상하다.'
영지도 부대도 내 모든 기반세력 은 멀쩡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직접 나를 노리는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 나는 연회장에 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연회장 안에 들어차 있다.
후욱.
숨을 내쉬며, 멈췄던 발걸음을 움직였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그 와중, 나는 '집중'했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시야가 점차 느려지고, 감각이 날카롭 게 벼려진다.
한 발자국씩 계단을 타고 내려가 며, 시선을 전방에 두었다. 가속된 시야 속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 인다.
연회를 즐기고 있는 귀족들, 그 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과, 음악을 연주 중인 악단. 더해 외곽 곳곳에 자리 잡고 서 있는 황실 기사들까지.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수상한 놈을 찾기 위해.
'황실 기사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황실기사 들. 이자리에서 유일하게 무장한 이들이다.
녀석들의 자세를, 그리고 눈빛을 읽었다.
'…수상한 점은 없다.'
황실 기사들은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뿐, 눈빛과 행동에 별다른 불온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저벅.
다시 한 발자국 걸어가며, 눈동자를 굴려 다른 이들을 살핀다.
'하인들, 그리고 악단.'
하인들은 음식과 술을 나르고 있고, 악단은 연주에 여념이 없다.
저들 또한 수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묵 묵히 수행하고 있을 뿐.
저벅, 다시금 눈동자를 굴려, 다른 이들을 주시한다.
' 귀족들.'
연회에 참석한 고위 귀족들. 그 들의 모습을 살폈다.
저들의 눈동자 속에 일렁이는 감정들은 다양했다.
친황파 귀족들은 우호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다. 이쪽을 주시하는 그 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드리 워져 있다.
중립파 귀족들은 그저 호기심, 혹은 경계를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자리에 등장한 나를 적대 할지, 혹은 접근해 이익을 얻을지 고심하는 모습.
그리고 귀족파.
놈들은 지금 게딘 알키온을 중심 으로 모여 있다. 그들의 얼굴 또한 훑어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골칫거리를 볼 때의 그것. 짜증과 적대가 한껏 어려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유일하게 그런 짜증 어린 시선을 하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
'게딘.'
게딘 알키온. 내게 군납계약을 빼앗겨 커다란 엿을 먹은 이.
귀족우월주의 귀족들 중, 오직 게딘만은 내게 분노나 경계의 눈빛을 발하지 않고 있다.
그저….
'비웃고 있어?'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을 뿐.
확실하다. 녀석의 입가에 어린 감정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마치 함 정에 빠진 어리석은 인물을 주시하는 것처럼.
어째서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인 가. 분명 녀석은 이쪽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을 터인데.
확신했다.
'놈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놈이 비웃는 이유. 분명 제 음모 가 제대로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내가 당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기에 내비친 미소이리라.
저벅, 저벅, 저벅.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집중 스킬이 해 제되어 시야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 온다.
내가 막 연회장 일층에 발을 내 딛자, 하나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분이 그, 제국 영웅 한지훈 라이젠 백작…."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하지."
"대단하네요. 일개 평민으로 시작 해, 벌써 백작이라니…."
"십 년 만에 제국 영웅훈장까지 수훈받은 인물이다. 필시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겠지."
그들의 말소리를 흘리며 연회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귀족들이 하나 둘 접근해온다.
"저는 동부 제이만 백작령을 다 스리는 불리그 제이만 백작이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지훈 경."
"레벤 마이스티라고 합니다. 궁중 의 행정업무를 맡고 있지요. 과분하 게도 궁중백 작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본인은 필리간 오르단테라 하네. 후작위를 가지고 있지. 승작을 축하하네, 한지훈 라이젠 경."
나는 그들을 적당히 상대했다. 이쪽의 이름과 작위를 밝히고 얼굴을 익힌다.
접근해온 귀족들은 모두가 친황 파 귀족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치레를 받는 와 중에도, 온 신경을 다른 곳에 집중했다.
'게딘 알키온.'
놈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때문에 나는 잠시도 녀석을 시야 속에서 놓치지 않았다.
관찰한다. 수상한 기색을 찾는다. 무엇을 행동할지 예상한다.
'뭘 노리는 거냐.'
시스템 관리자가 개입했다는 홀로그램이 떠오른 이상, 분명 무언가 일이 생길 것이다.
때문에 긴장을 풀지 않는다. 이 변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껏 감각을 끌어올린다.
"저는 서부 헬림 자작령을 운영 하는…."
염병!
이 귀족들은 왜 이렇게 귀찮게 들러붙는지. 게딘을 살피는 와중에도 계속 신경이 분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딘을 주시한다. 놈이 무언가 수상한 기색을 보이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잠시 후.
게딘이 수정구를 꺼내들고 누군 가와 통신하기 시작했다. 직후 허둥 지둥 이 연회장을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
직감했다.
'붙잡아야 한다.'
놈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 순순 히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하니.
"잠시 실례."
나는 대화하던 귀족들을 벗어나, 게딘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게딘 알키온!"
막 연회장 밖으로 벗어나려 했던 게딘을 불렀다. 그에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 한지훈."
떨떠름해 하는 놈의 얼굴.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잠깐 대화를 했으면 하는데 ."
"무슨 일이지?"
"우리 사이에는 풀어야 하는 일 이 있지 않나."
사실 대화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예감이 들었다.
놈이 순순히 이 연회장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내가 붙잡자 녀석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너 같은 비천한 놈과는 대화할 거리가 없다만."
"그러지 마시고."
저벅.
게딘이 빠져나가려 하고, 나는 발걸음을 옮겨 연회장 출구를 가로막았다. 녀석이 표정을 와락 찌푸린다.
"네놈. 뭘 하자는 거냐?"
"글쎄. 그쪽이야말로 뭘 꾸미고 있는 거지'?"
"그건 무슨 개소리…."
저벅.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놈 의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네놈! 더 이상의 무례는 좌시하지 않겠다! 어서 비켜라!"
"이야기 좀 하자는 게 어째서 무 례인지. 그렇게 따지면 내 숙소로 쳐들어왔던 그쪽이 더 무례했다만."
게딘의 얼굴을 바라봤다.
놈의 표정에는 언뜻 분노로 일그 러져있지만, 나는 녀석의 표정 속에 자리해있는 초조를 읽을 수 있었다.
한번 떠본다.
"곧 이자리가 위험해지니 도망 치려 하는 건가?"
"뭣..!"
"맞나보네."
나는 게딘의 멱살을 덥석 쥐어 잡았다.
"네놈! 지금 이게 무얼 하는 짓…."
"게딘 알키온!"
쿠웅.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놈이 버둥거린다.
"거기! 무슨 일입니까!"
철그럭, 철컥.
연회장 곳곳에 배치되어있던 황 실 기사들이 하나둘 달려왔다. 갑작 스레 생긴 소란에 반응한 모양.
무시하고 게딘을 계속 추궁한다.
"게딘 알키온.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이렇게 하고도 순순히 넘어갈 수 있다 여기나, 한지훈!"
"글쎄. 그건 모르겠고."
나는 놈의 멱살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크혹…!"
게딘의 버둥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본래 오러를 다룰 줄 알았던 것인가, 놈의 신체가 점차 강화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렇다 한들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리는 만무.
"나는 통신을 받자마자 급히 이곳에서 벗어나려했다. 방금 전 받았던 통신이 뭐였지? 어째서 그리 급히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던 거지?"
"놔라…!"
"대답을 먼저 하시지."
시선을 돌려, 내 주위를 바라봤다.
황실 기사들이 다가와 어찌해야 할지 살피고 있다. 그 기사들 뒤로 는, 귀족들이 이 소란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오?!"
"제국 영웅훈장을 받았다고 이런 무례가 용서되리라 생각하는 건가!"
"역시 비천한 평민 출신이라 그런지 행동거지가 아주 막돼먹었군."
"게딘 님을 놔라, 놈!"
그리고 이곳까지 달려와 성토하는 귀족파 귀족들까지.
쯧 혀를 찼다.
'개같은.'
언제까지 놈을 붙잡아둘 수는 없다.
사실 지금 상황만 보자면 내가 미친놈이다. 대뜸 연회장 밖으로 나 가려는 귀족 하나를 붙잡고, 쓰러트 려 윽박지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직감이 알리고 있다. 이자식, 게딘을 이 연회장 밖으로 보내면 안된다고. 그렇다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고 말이다.
때문에 나는 주위의 소란에도 불 구, 게딘을 붙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지훈 경. 무슨 일이지?"
누군가가 다가왔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황제 아르테니아였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갑작스레 소란이 일었군. 한지훈 경. 이상황을 설명해주겠나?"
"폐하."
나는 잠시 어찌 설명해야할지 고민했다.
내가 이 소란을 벌이는 이유.
관리자가 시나리오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나는 게딘이 무언가 음모 를 꾸민다고 직감, 녀석을 붙잡고 있다.
하지만 이걸 어찌 설명한단 말인 가.
때문에 나는 침묵한다. 그저 게 딘을 붙잡고 녀석을 노려본다.
"한지훈."
다시 황제가 한 발자국 더 다가온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그 손 놓게. 추후 대화로 푸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렇습니까."
게딘이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황제의 말까지 거역해가며 녀석을 붙잡기는 곤란하다.
그에 나는 놈의 멱살을 쥔 손에 힘을 풀려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쿠르르르르…!
갑작스레 굉음이 울렸기 때문에.
"… 뭐지?"
"지진이라도 난 건가?"
귀족들이 두런두런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실 기사들은 표정을 굳혔다.
저들은 이 소음의 정체를 알고 있을 터이니.
피식 웃었다.
"게딘. 네놈,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았던 건가."
방금 전 소음은 마법사, 그것도 흑마법사의 흑마법 발현음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중후한 소음이 라면, 적어도 백중첩은 될 정도로 강렬한 마법이리라.
"허, 허억, 헉!"
게딘을 바라보니,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동자를 사정없이 떨고 있었다. 이미 빠져나가기 늦었 다는 걸 깨달았을 터.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려 황제에게 고한다.
"황제 폐하."
"… 뭔가, 한지훈 경."
"몸을 낮추십시오. 아니,"
게딘을 내버려두고 황제에게 다 가간다.
그를 보호하듯이 앞에 섰다.
"제 뒤에 있으십시오.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한지훈 경? 뭘 하려는…."
황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과과과과과광!
광역마법에 의해, 연회장의 한쪽 벽면이 완전히 터져나갔기에.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