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자네의 백작위 수여식과 영웅훈 장수훈은 내일, 저기 황궁 앞 대 광장에서 진행할 것이다."
황제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어딘 가를 가리켰다. 나 또한 시선을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황궁 앞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는 제국 의 정복 전쟁 승전비와 초대 황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아무래도 내 훈장수여식 겸 작위 수여식은 저기 광장에서 진행하려 하는 듯했다.
"… 작위 수여식이라."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작위를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서 백작위를 수여받는단 말인 가.
내심 생각했다.
'그만큼 이번 전쟁이 힘들단 이야기겠지.'
나를 영웅으로 만들려 하는 것. 사기 진작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일환이다.
하지만 작위까지 수여해줄 정도다. 게다가 그 일정 또한 당장 내일이라니.
그만큼 제국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뜻했다.
'급히 사기를 올려야 하겠지.'
루벤 방면을 제외한 모든 전선에서 패퇴를 거듭한다고 들었다. 당연히 사기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터.
무언가 좋은 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루벤 방면에서의 승전과 내 작위수여식이리라.
아마 내 승작은 마나통신을 타고 제국 전역에 퍼지겠지.
"한지훈 천인장."
황제가 문득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그가 묻는다.
"자네는 제국의 영웅이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는가?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지."
아르테니아 황제의 말에, 속으로 미소를 억눌렀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황제의 지지. 그리고 그의 전폭 적인 지원.
제국의 영웅이 된 덕분에 황제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요청한다.
"황제 폐하. 드릴 말씀이…."
게딘 알키온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을 것 같다.
* * *
"한지훈의 승작이 결정되었다 고?"
"그렇습니다. 게딘 님. 제국 황제 가 오늘 정례회의에서 한지훈의 백작위로의 승작과, 제국 영웅훈장 수 여를 결정했습니다."
엑시포드 루비에 재무성 차관의 말에, 게딘 알키온 후작은 쯧 혀를 찼다.
"그 버러지가 계속해 성장하는군. 제 주제파악도 하지 못하고 말이 야."
한지훈. 거슬리는 놈이 아닐 수 없다. 평민 출신에서 잠재력 높은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 전장에서 하나둘 전공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후작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봤자다. 놈의 세력은 보잘 것 없으니 ."
게딘의 세력은 강대했다.
일리아 상단으로 일군 막대한 금력. 금화를 아낌없이 퍼부어 제국 황실 깊숙이 밀어 넣은 자신의 수 족들. 더해 그를 지지하는 상위 귀족들까지.
반면 한지훈은 귀족이라 하나 남작위에 불과했으며, 가진 세력은 거의 전무한 수준. 그와 친분을 나눈 이들은 중앙에서 먼 군관귀족들밖에 없었다.
재력에서도, 정치력에서도 후작의 그것이 한지훈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
별다른 장애물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거슬리기에 제대로 밟아 치워버리고 싶을 뿐.
"평민은 평민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말이다."
피식. 게딘은 비웃음을 흘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엑시포드. 내가 지시 했던 일들은 잘 처리했는가?"
게딘이 묻는 것은 황실 고위 대신들의 포섭.
그에 엑시포드가 대답한다.
"국방성 장관은 포섭했습니다. 다만 재무성 장관은 아직입니다."
"그렇군."
게딘 알키온 후작은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확보해 독점했으며, 더해 소유하고 있는 조 병창을 벌써부터 가동시켜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전쟁 중에 알키온 후작가는 정말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리라.
그렇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똑똑똑.
"후작 각하. 제국 국방성에서 연락입니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그의 하인이 방안으로 들어 선다.
하인이 한 장의 편지를 넘겼다.
"여기. 국방성 장관의 전문입니다."
"그래. 드디어 군납계약이 체결됐 나 보군. 수고했다, 엑시포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딘 님."
엑시포드가 고개를 숙이고, 후작 은 하인이 건넨 편지를 받아 읽는다.
잠시 후.
"이, 이건… 무슨…?!"
후작은 경악해 눈을 크게 떴다.
"카디르! 카디르 국방성 장관!"
게딘 알키온 후작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제국 국방성 건물 안을 가로질렀다.
그가 찾는 것은 카디르 국방성 장관. 그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고위귀족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덜컹! 게딘 알키온이 집무실 문을 거칠게 열어 재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책상 위에 앉아있던 카디르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쿵. 게딘이 거칠게 편지를 그의 책상 위에 내리꽂았다.
"내 뇌물은 받아 처먹고 뒤통수 를 치겠다는 건가, 카디르!"
"목소리 낮추게 게딘. 내게 뇌물을 줬다고 아주 소문을 내려 하는 군."
카디르 국방성 장관이 후 한숨을 내쉬었다.
"게딘. 자네가 화난 것도 이해는 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디르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바라봤다.
그것은 황제의 직인이 선명하게 박힌 황실의 문서였다.
문서에 적힌 내용은 단순했다.
'일리아 조병창의 군납 계약을 파기함.'
일리아 조병창은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조병창이었다. 제국 군인들 삼 분지 일에게 무기를 보급하는곳.
그 일리아 조병창의 군납계약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 그 말인 즉, 게딘 후작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는 말이었다.
카디르 국방성장관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작작 해먹어야 하지 않았나. 게딘. 이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네. 자네 때문에 이쪽도 정말 곤란한 상황이야."
"그게 무슨 개소리…."
"먼저 이걸 보지."
카디르가 서랍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게딘의 눈동자가 커진다.
"황실 감찰관들이 두고 간 서류다."
카디르가 꺼내든 서류는 황제의 직속기관, 감찰성에서 나온 서류였다.
게딘이 그것을 받아 읽는다. 카 디르가 혀를 쯧쯧 찼다.
"철의 순도를 많이 낮췄더군. 게다가 쓰인 철도 하품이었어. 뇌물을 받은 내가 하기에도 우스운 말이다 만, 이건 정말 심했네. 게딘."
게딘은 보다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기준 이하의 물건을 제국군에 납품하려했다. 하급 철괴를 사용하고, 그 순도조차 낮춰. 저품질의 무기를 양산했던 것이다.
"이, 이걸 어떻게…."
게딘의 얼굴에 아연한 기색이 얼렸다.
그가 저품질의 무기를 납품하려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허나 이것은 자신의 측근들이나 알고 있는 사실. 게다가 군납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검사관까지 매수해 철저히 숨겼던 일이었다.
헌데 제국 황실 감찰성에서 어떻게 안 것인지, 자신의 부정행위를 적발.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게딘의 눈가에 당혹이 어린다.
- 어때? 유용한 정보였지?
"그래. 정말 유용했어."
나는 요정의 말에 씨익 미소 지었다.
황궁에 오기 전, 나는 요정들에게 알키온 가문의 약점을 조사해달 라 부탁했었다.
사실, 별 기대는 안 했었다. 요정 들의 조사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게딘 알키온은 고위 귀족, 더 해 막대한 재화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 그리 큰 타격을 줄법한 정보를 얻을 순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정들의 조사 능력은 내 예상을 상회했다.
"군납비리, 물자 독점 및 시세조 작. 더해 뇌물수수까지. 탐관오리의 훌륭한 표본이야."
당장 얻은 정보들을 모조리 터트 릴 수는 없었다. 아직 장부나 서류 등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군납비리는 제대로 찌를 수 있었다. 그건 납품예정이었던 병 장기를 조사하게만 언질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러게 양심적으로 살았어야지."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게딘 후 작은 전쟁 중 무기소요에 대비해 조병창을 잠시도 쉬지 않고 가동했 다고 한다. 당연히 막대한 양의 무기를 미리 만들어 냈을 터.
하지만 그 무기들이 쓰레기로 전 락했다. 군납되지 않은 군용품이란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법이니까.
녀석은 정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영지의 재정이 한동안 휘청일 터.
뭐, 워낙 풍부한 자금력을 갖추 고 있던 녀석이기 때문에 녀석의 가문 자체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타격을 주는 것에는 성공했으니 . 기분이 좋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미소 짓고 있을 때였다.
덜컹!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내 방안 으로 쳐들어왔다.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팍 표정을 찌푸렸다.
"누구지? 황궁의 숙소에 쳐들어 오다니, 꽤나 무례한데."
"네놈이 한지훈인가?"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저 커다란 덩치에 갈색 머리, 그리고 오만이 질척하게 묻어있는 이 목구비는. 분명….
"아, 케니. 그 모자란 녀석의 아 비 되는 사람인가?"
"내 신분을 알면서도 그딴 말투인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한지훈 남작."
케니 알키온과 외모가 몹시 비슷했다. 녀석이 한 이십 년 삭으면 저런 얼굴이 될까 싶을 정도로.
저자는 분명 케닌의 아비, 게딘 알키온이리라.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가 표정을 와그작 일그러트리 고는, 나를 노려봤다.
"네놈. 어떻게 알아낸 거지?"
"뭘?"
"우리 일리아 조병창의 무기품질이 떨어진다는 사실, 어떻게 알아냈 냐는 말이다."
녀석의 말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정보가 새어나갔다.'
내가 황제에게 일리아 조병창을 조사해 달라 부탁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화하는 당사자였던 나와 황제, 그리고 황제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 들, 더해 차와 음식을 나르던 시녀 몇.
도합 열 명이 채 안 되는 인원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헌데 고작 반나절 만에, 저기 게딘 알키온은 내가 황제에게 했던 말을 알고 찾아왔다.
그 말인 즉,
'게딘의 눈과 귀가 황실의 인간 들에게도 뻗어있다는 소리겠지.'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조 차 게딘의 입김이 닿고 있다.
쯧 혀를 찼다.
'쥐새끼들이 있다니.'
네 국가가 침공해온 힘겨운 시기다. 이럴 때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게딘과 그 끄나풀들은 제국을 좀먹고 있으니 .
내가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게딘이 말을 이었다.
"네놈. 지금은 내게 손해를 입혔 다고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건 무슨 말이지?"
"내일리아 조병창은 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조병창이다."
그가 표정을 바꿔 씨익 웃는다. 재수 없는, 질척한 웃음이었다.
대련 직전 케니의 낯짝이 딱 저 랬는데 .
"우리 일리아 조병창 없이 전쟁 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황실에서는 무기 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내일리 아 조병창과 다시 군납 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거다."
애석하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전쟁은 막대한 물자를 소모한다. 그리고 그 소모물자 중에는 병 장기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 .
그리고 일리아 조병창은 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조병창. 일리아 조병창 없이는 정상적인 전쟁 능력을 갖추기 힘들다.
"글쎄. 과연 그럴까."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이야기.
이미 상황은 바뀌었다.
"언제까지 일리아 조병창이 제국 최대 조병창 자리를 지킬 것이라 생각하나?"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조병 창이 생겨났기 때문에.
"… 그건 무슨 소리이지. 놈."
"이런 이야기다."
나는 피식 웃으며 품속에서 어떤 서류를 꺼내 들었다. 황제의 직인이 선명히 박힌 계약서였다.
이죽 웃는다.
"네가 진행하던 계약은 내가 먹 게 되었다."
"?.?뭐?"
나는 서류를 팔랑 흔들었다. 녀석을 놀리는 듯이.
"네 영지에 드워프들 없지?"
나는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