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띠링!
갑작스레 귓가를 때리는 알림음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암흑색 공간. 오직 어둠만이 내 시야를 그득 채우고 있다.
쯧 혀를 찼다.
"또 여기인가."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진입했을 때, 그리고 갈레이 요새 공방전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왔던 그 적막한 공간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이 적막한 공간 한켠에,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블랙 오케스트라]
이 개같은 게임의 이름.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 띠링!
[시나리오 챕터 2를 완료했습니다.]
[중간 정산을 시작합니다.]
[유저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나리오 챕터 2를 완료했다는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내가 모든 능력치의 리미터를 해제한 것이 챕터 2의 완료 조건인 듯했다.
"…하여튼. 정말 기분 나쁜 공간 이란 말이야."
그리 중얼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있는 것이라고는 홀로그램이 발 하는 은은한 빛과, 띠링거리는 알림 음 뿐. 그 외에는 무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정말 기괴한 공간이다.
이런 괴상한 공간에 자주 온다면 정신이 어떻게 돼버릴 것만 같다.
- 띠링!
다시금 울리는 알림음.
[유저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유저 ID : 한지훈][제국 천인장]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중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50]
[민첩 153]
[내구 50]
[체력 50]
[마나 100]
(남은 포인트는 28pt 입니다.)
[보유 업적]
- 백인장- 대적자 NPC 처치(1) - 가장 먼저 성벽을 오르다.
- 오러 각성…
[달성 퀘스트]
- 척후조 퇴각전- 고지대 정찰- 고지대 거점 점령전- 고지대 거점 방어전…
내 정보창, 그리고 보유 업적과 달성 퀘스트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피식 웃었다.
"확실히 강해지긴 했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승 한 능력치들.
스킬을 높였다. 능력치를 상향시켰다. 포인트를 모았다.
시나리오를 진행했다.
시선을 내려 보유 업적과 달성 퀘스트들을 확인했다.
"… 정말 많이도 굴렀어."
업적창과 퀘스트창의 길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무척 길었다.
그만큼 내가 해낸 일이 많다는 이야기.
잠시 그것을 살펴보고 있자니,
- 띠링!
알림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변화했다.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보상을 수여합니다.]
[목록에서 선택해 주십시오.]
[1. 포인트 100pt]
[2. 세계수의 수액(상당히 희석 됨)]
[3. 2등급 비밀 정보]
[4. 선택하지 않음.]
떠오르는 것은 보상을 선택하라는 문구.
이번에도 지체없이 요구해본다.
"집에 보내줘."
[목록에 없는 보상입니다.]
[목록에서 선택해 주십시오.]
"난이도 낮춰줘."
[목록에 없는 보상입니다.]
"뭐, 기대도 안했지만."
혀를 차고는, 보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1. 포인트 100pt]
"100포인트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번 선택지, 100포인트.
갈레이 공방전 당시, 시스템은 챕터 완료 보상으로 50포인트를 제안했었다.
지금 떠올라있는 1번 보상 100포 인트는 그때보다 무려 두 배에 달 하는 보상이다.
물론,
"패스."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다.
100포인트. 객관적으로 봐도 절대 낮은 수준의 보상은 아니다. 적어도 서브 퀘스트 세네 개는 완료 해야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니.
저 100포인트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당장 중급 검술을 상급으로 상향 시킬 수도 있고, 마나에 막대한 투자를 해 더욱 안정적인 전투를 벌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챕터를 완수할 때밖에 올 수 없다. 외부에서 임무 를 수행하며 얻을 수 있는 포인트 를 취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눈동자를 굴려, 다음 선택지를 확인했다.
[2. 세계수의 수액 (상당히 희석 됨)]
"…세계수의 수액."
귀물이다. 그것도 내가 지니고 있는 '극도로' 희석된 세계수의 수액이 아닌. 보다 품질이 좋은 '상당히' 희석된 세계수의 수액이다.
세계수의 수액은 그 어떤 부상이 던 순식간에 치유해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더해 품질이 늘어났 으니 더욱 많은 능력치를 얻을 수 있을 터.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계수의 수액. 귀하긴 하지만 언젠가 얻을 수 있겠지."
지금 나는 엘프와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 보다 더 높은 품질의 세계수 수액을 얻을 수 있을 터.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3. 2등급 비밀 정보]
2등급 비밀 정보.
피식 웃었다.
"역시 정보만 한 게 없지."
B등급 비밀 정보를 얻어 마이사 슈베츠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높은 2등급 정보라. 보다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나는 주저 없이 2등급 비밀 정보 를 선택했다.
[2등급 비밀 정보]
[유저가 모르는 정보를 랜덤 해 금합니다.]
[2등급 정보에 한해 개방됩니다.]
[보상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 띠링!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2등급 비밀 정보를 얻었다. 이제 이 괴상한 공간 밖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사이.
- 띠링!
재차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다시 금 홀로그램이 일변한다. 그리고 나 는,
"… 망할."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훌륭합니다! 정규 시나리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난이도를 상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이도 : 악몽(Nightmare)]
[상향 난이도 : 광기(Lunatic)]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난이도 상향에 대한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기 때문에.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다.
'거절.' 과거 갈레이 공성전 직후의 내가 그렇듯이 거절할 것이다. 수락할 이유 따위는 결코 있지 않으니까.
나는 손을 움직여 홀로그램의 거절 버튼을 터치하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섬뜩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이전에 난이도 상향을 거절 한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다행히도 거부가 가능했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난이도 상향을 거절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니겠지."
시스템 관리자가 난이도의 상향을 더 이상 미루지 않을 것이다. 놈은 그렇게 유한 녀석이 아니니까.
허나 그렇다 한들, 언제까지나 눈앞의 홀로그램을 바라보고만 있올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이를 악물며. 홀로그램의 '거절'버튼을 터치했다.
- 띠링!
[유저의 '격'이상향된 것을 확인 했습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난이도가 변경됩니다.]
[적용 난이도 : 광기 (Lunatic)]
"개같은."
으득, 이를 갈았다.
미리 예상은 했었지만. 기분이 엿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난이도 상향이라니.
그런 내 반응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듯,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홀로그램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이벤트 로그를 작성합니다.]
[전장의 안개가 증가합니다.]
[시나리오 불확실성이 증가합니다.]
[무작위 변수가 추가됩니다.]
나는 새로이 떠오르는 홀로그램 들을 노려봤다.
똑똑히 기억해두겠다는 듯이.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음의 연속과 함께 문자열이 갱신되어간다.
[적대 NPC의 잠재력이 추가 상승합니다.]
[우호 NPC 의 잠재력이 추가 하락합니다.]
[유저 보정이 하향 조정됩니다.]
[대적자 NPC 보정이 '대폭' 상향 조정됩니다.]
[추가 시나리오 무작위 이벤트를 생성합니다.]
[시스템 관리자의 시나리오 개입을 '대폭' 허용합니다.]
마침내 홀로그램의 갱신이 끝나는 그 순간.
- 띠링!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적용 난이도 : 광기(Lunatic)]
[광기의 세계에 어서오세요.]
[시나리오-챕터 -3]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시야가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 * *
"… 훈! 한지훈 천인장!"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에 나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면 이곳저곳에 쓰러져있는 적의 시체들. 내 발아래 꿈틀거리고 있는 적 최고사령관. 그리고 반으로 잘려 널브러져있는 놈들의 대장기 까지.
나는 전장, 그것도 적의 중심부 한복판에서 있었다.
"한지훈 천인장. 자네 어디 아픈 가? 우두커니 서 있던데 말이다."
고개를 돌려 내게 말 걸어온 이 를 바라봤다.
"베르겐 단장 각하."
그는 다름 아닌 볼로냐 기사단의 단장 베르겐이었다.
피식. 그가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뭐, 하여튼 무사히 놈들의 참모 부를 제압했군 그래. 그리고 적 최고사령관도 사로잡았고 말이야."
베르겐의 눈길이 향한 것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적 최고사령관 도나 드 글라슨 후작이었다.
문득 그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자네도 참 손속이 가 차 없구만. 보는 내가 다 안쓰럽군."
베르겐의 말에, 나는 그저 어깨 를 으쓱였다.
확실히 적 최고사령관의 몰골은 절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양팔이 잘리고, 다리의 아킬레스건이 끊어 져 버렸으니 .
도나드 후작의 모습을 살폈다.
"개같은… 제국… 새끼들…!"
녀석은 많은 피를 흘려 창백해진 얼굴로 그리 뇌까리고 있었다.
과다출혈이 염려된다.
귀한 정보를 지니고 있을 포로다. 죽게 할 수는 없다.
나는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들었다.
"이런, 죽으면 안 되지. 치료해주 마."
"개새끼!"
녀석의 욕지거리를 무시하며 입가에 포션을 흘려 넣었다. 이제 녀석은 죽지 않으리라.
내가 그렇게 도나드 후작을 치료 하고 있을 때,
"수고했다. 한지훈 천인장."
베르겐이 그리 말했다.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 덕분에 이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적의 본영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보인다.
"왕국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적의 우익이 완전히 붕괴되었 다! 중앙을 몰아붙여!"
제국의 병사들이, 기사들이 적을 향해 몰아치고 있다. 그들은 격전을 치렀음에도 사기가 충만했고, 기세 를 유지한 채 왕국군을 죽여 나가 고 있다.
반면 왕국군은 모든 지휘체계가 박살나 통제를 완전히 상실한 상황.
더해, 콰르르르릉!
그들에게는 마법전력이 없었다. 제피르 단장이 이끄는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이 전장을 쓸고 있었다.
폭렬폭풍 세례가 빗발치고, 무수 히 많은 폭발이 일었다. 굉음이 일 며 먼지구름이 훅 치솟는다.
"끄아아아아아!"
"아악! 아아악!"
"마법이다! 도망쳐!"
마법전력이 없는 왕국군은 그저 마법사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폭발이 일 때마다 병사들이 우르르 죽어갔고, 굉음과 비명소리가 전장을 쿵쿵 울렸다.
내가 그 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한지훈 천인장. 거기 있는가?
품속 통신수정구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군단장 오스카의 목소리였다.
나는 통신을 받았다.
"아펠도른 천인대장 한지훈, 여기 있습니다. 군단장 각하."
- 그래. 수고했다 한지훈. 자네 덕분에 예상보다 적은 피해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후욱-. 하는 소음이 뒤이어 들려 왔다. 아마도 오스카가 연초 연기를 내뱉는 소리이리라.
- 일단 요새로 돌아오게. 자네에 게 호출이 들어와서 말이다.
"호출이라 하신다면. 어디서 저를 부른 겁니까?"
- 황궁.
황궁이라니.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황궁에서 호출이다. 황제 폐하 께서 한지훈, 자네를 직접 부르셨 어. 네 전공을 눈여겨보신 것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언젠가는 황제가 이쪽을 주시하리라 생각했었다. 나는 계속 해 전공을 쌓아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목을 끄는 것은 당 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예상보다도 빨리 황제가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군단장 정도는 되어야 황제와 접촉할 수 있다 여겼는데 .
나는 씨익 미소 지었다.
'뭐, 내게는 좋은 일이지만.'
때마침 황실과 제국의 지원이 필요한 시기였다. 황제와 만나는 것은 내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리라.
나는 황제와 만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