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28화 (128/390)

128화.

"놈들이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 망할!"

도나드 글리슨 후작은 참모들의 보고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꽤 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기사와 마법사들을 불러 중앙을 제대로 지켜내고자했다. 중앙에는 자신을 비롯한 지휘부가 있고, 그들이 위험하다면 이 대규모 병력을 제대로 지휘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력이 이동한 빈틈을 파고 들 듯, 기사와 마법사들을 전진배치 시켰다.

어디까지나 저 천인장 놈이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도록.

콰르르르릉!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지면, 피부를 저릿하게 울리는 충격파.

왕국군 지휘부 앞에서 마법사들 과 기사들이 서로 뒤섞여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나드 후작은 아직 포기 하지 않았다.

"마법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인 우 위를 점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 등장한 적 마법사들 의 수는 고작해야 백여 명. 하지만 이쪽의 마법사는 무려 오백에 달한다.

이 정도면 절대 그리 쉽게 밀리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후작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령관 각하!"

참모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당황이 깊게 녹아든 고함이었다.

그가 정면, 폭렬마법으로 인해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구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놈이, 놈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뭐?!"

후작이 다시금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인다.

두두두두두.

그것은 단 한 명의 인영이었다.

왕국군의 기사용 전투마를 노획 한 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인영. 그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으 며, 눈동자 또한 짙은 암흑색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후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 말도 안 되는…! 마법사 들의 마법 세례를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후작의 눈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지훈이 그들의 지휘부까지 달 려간다.

두두두두두.

말이 질주한다. 이글거리는 화염 들 사이를 누비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앞을 노려봤다.

'저기가 적 지휘부.'

마법사들 너머, 말에 탑승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급 지휘관들 이 보였다.

가운데에 유독 화려한 갑주를 착 용하고 있는 자가 적 사령관일 테고, 주위에 도열해있는 이들은 휘하 의 참모들이리라.

죽여버려야 한다.

"막아! 막아라!"

"놈이 지휘부에 도착하지 못하게 해!"

내 접근에 적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쏘아진 것은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

번쩍! 쿠르르릉!

마나광이 터져 나오고, 다수의 공격 마법이 발현되었다.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공격마법들은 다양했다. 쏟아지는 마탄 세례, 공기를 가르는 얼음화살, 지면을 꿰뚫고 치솟아 오르는 얼음창날까지.

만약 내가 일반적인 기사에 불과 했다면, 저 공격에 순식간에 갈려나 갔으리라.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기사가 아니다.

내게는 집중 스킬이 있다. 저딴 공격 마법을 회피하는 것 따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 후욱."

가속된 시야 속, 숨을 고르며. 이쪽으로 쇄도해오고 있는 마법들을 주시했다.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은 푸른색 마탄 세례.

빙결계 속성이 부여된 시퍼런 마 탄과 얼음화살 수십, 수백 개가 시야를 좀먹듯이 쇄도해온다.

부웅.

말을 타고 달려가며 검을 휘두른다. 내 오러 서린 검날이 기다란 검로를 그리고, 반월 모양 궤적이 그어졌다.

콰르르르릉!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내 몸을 꿰뚫듯이 달려오던 마법들이 순식간에 소멸해간다.

"미친…!"

설마 내가 마법을 지워버릴 줄 몰랐던 것일까. 적 마법사들의 얼굴에 당혹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직 놈들의 마법은 끝나지 않았으니 .

"이것도 막아봐라!"

놈들이 스태프를 다시금 휘저었다.

콰득! 콰지지직!

지면에서 날카로운 얼음창날들이 땅을 갈아엎고 치솟았다. 지면 아래 수맥을 얼려 쏘아낸 얼음창이었다.

피하지 못한다면 나는 전투마와 함께 꿰뚫릴 것이다.

뭐, 피하면 된다.

말의 고삐를 빠르게 돌렸다.

파악!

말이 내지휘를 따르듯, 자유자 재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급선회해 지면의 얼음 창을 회피. 고삐를 당겨 올려 점프. 사선을 그리듯 쇄도해오는 또 다른 얼음창마저 피해버렸다.

마법사들의 경악 어린 눈동자가 더욱 커진다.

이제 놈들의 위치는 거의 코앞.

"마… 막아!"

놈들이 마지막 마법을 발현시켰다. 다만 이번에 발현한 마법은 공격 마법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공기 중의 수분이 응축되고, 얼 려져, 높이 삼사 미터에 달하는 벽 이 갑작스레 놈들의 앞에 세워졌다.

빙계 속성 방어 마법 중 하나, 얼음벽. 녀석들은 얼음벽을 세워 내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그래봤자다. 이쪽에는 전투마가 있다. 저딴 얼음벽 따위, 넘어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뛰어."

말의 배를 차 앞으로 더욱 가속 하고, 타이밍에 맞춰 고삐를 높이 당겼다. 그러자,

콰앙!

크게 도약하는 전투마. 녀석은 그 강력한 각력을 살려 지면을 박 차 높이 떠올랐다.

허공에서 고개를 내려 마법사들 의 모습을 살폈다. 놈들은 여전히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피식 웃었다. 녀석들의 표정이 퍽 웃겼기 때문에.

나직이 읊조렸다.

"밟아."

상승이 끝나고, 전투마는 얼음벽을 뛰어넘어 건너편에 착지했다.

꽤나 거친 착지였다.

쿠웅! 퍼억!

"끄아아아악!"

전투마의 말발굽이 마법사들의 머리통을 부수며 지면에 내리꽂혔다. 피가 퍽 튀어 오른다.

"좋아. 잘했어."

기특한 마음에 전투마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녀석이 기분 좋게 투레 질을 한다.

"도, 도망쳐라!"

"기사들을 불러!"

마법사들이 배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뚜벅이에 불과하니.

전투마의 속력을 피할 수는 없다.

두두두두두.

말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들의 등짝을 베어나가며 전진해갔다.

파앙! 서걱, 콰직.

마법사 셋이 내 검날에 베여 쓰 러진다. 그들이 피묻은 로브자락을 나풀거리며 나자빠진다. 나는 계속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간다.

"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전투마를 모는 것.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맞바람은 시원했고, 시야는 높아 서 탁 트여있으며, 무엇보다도 높은 곳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참하는 것 이 편리했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전투마나 하나쯤 얻어 볼까."

이 정도 전공이면 전투마 하나쯤 은 하사받을 수 있으리라.

가로막는 병사들을 치어가며, 계속해 적 지휘부를 향해 달려갔다. 저기 적 사령관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검날을 들어올렸다.

"… 맙소사."

도나드 후작은 망연자실한 얼굴 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 정면에 한 명의 인영 이 말에 탄 채 달려오고 있다.

검은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청년. 청년은 제국군 천인장 계 급장을 가슴팍에 달고 있다.

스르릉. 후작은 검을 뽑아들었다.

"제기랄…!"

후작은 자신의 보검에 오러를 둘 러 전투를 준비했다.

"저놈은 뭐냐?! 일개 보병대 장 교가 그토록 강력한 무력을 지녔고, 더해 그 기마술은 대체…!"

후작은 멀찍이서 저 청년의 무위 를 지켜보았다. 때문에 그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기사 삼십을 단신으로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저 커다란 전투마를 몰아 마법사들의 마법 세례마저 무 사히 돌파했다.

절대 평범한 군관이 아니리라.

문득, 후작은 어떤 소문을 떠을렸다.

"… 설마. 제국의 악마."

제국의 악마. 공국전쟁 당시, 요 한바르첸 공국에서 카렌 왕국으로 망명해온 장교들이 퍼트린 소문이었다.

제국에는 악마 같은 평민 출신 장교가 있다고.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지녔으며. 그 출신에 걸맞지 않는 강대한 무력으로 주변의 적을 무참 히 살해한다 한다.

"검은 머리, 검은색 눈."

그리고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는 적 지휘관 놈도 검은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그래.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저 전장에 떠돌아다니는 흔한 괴담이라 여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민 출신에 불과한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 무력을 가지는 것은 본래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저자의 무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작은 확신했다. 소문은 진짜였다고. 제국의 악마는 실존했다 고 말이다.

분명 강하다. 저 두터운 종심을 꿰뚫고, 기사와 마법사들까지 헤쳐 서 이곳까지 당도한 이다. 평범한 기사 따위는 가볍게 압도하는 무력을 지녔을 터.

허나 후작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 또한 오러의 길을 걷는 이!"

화르르륵!

도나드 후작의 검신이 푸르게 타 오르기 시작했다. 선명한 오러광이 일렁이고, 패도적인 기세가 주위로 뻗어나간다.

그가 검을 곧추세웠다.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

'뭐래.' 나는 그리 생각하며 말을 몰았다.

녀석이 무어라 떠들며 기세를 끌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상급. 잘 쳐줘야 최상급 초 입에 불과한 수준.

그리 강해보이지는 않는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생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본래라면 단칼에 죽여버릴 생각 이었다. 하지만 생포해서 고급 정보 를 뽑아낸다면, 더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

지금 내 능력치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막대해졌다.

모든 능력치가 50을 넘어 리미터를 전부 해제했다. 근육은 강한 힘을 품었고, 근골은 더욱 단단해졌다. 더해 이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체력과 심폐기능까지.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 터.

두두두두두.

말을 몰고 달려간다. 녀석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 교차하는 그때.

놈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콰앙!

파공성을 울리며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검날. 내 검은 공기를 가르고, 녀석의 오른팔을 간단히 절삭했다.

퍼억!

"끄아아아아악!"

적 사령관의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잘려나갔다. 붉은색 핏물이 지면에 후드득 떨어져 내리고, 검을 쥔 오른팔이 바닥에 철퍽 주저앉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낙마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말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하나 남은 왼손으로 고삐를 꽉 쥐어 버티고 있다.

"사령관님!"

"네놈…!"

내가 적 사령관의 팔을 베고 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다른 군관들이 제 상관을 지키기 위해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살펴보니 모두 참모 계급장을 달 고 있는 녀석들.

그리 강력한 적은 아니다. 쓸어 버리자.

콰앙! 콰르르릉!

검을 휘둘렀다. 검날이 사선으로, 수직으로 움직이며 공기를 갈랐다. 그럴 때마다 푸른색 검광이 번뜩이고, 검로를 따라 선명한 오러광이 번쩍였다.

퍼억! 콰직.

내게 달려들었던 적 참모들이 목 이 베여, 몸통이 잘려 간단하게 죽 어나갔다. 놈들이 핏물을 흘리며 하나둘 말에서 떨어져 지면을 구른다.

내게 달려드는 놈들을 모조리 처 치한 뒤, 고삐를 돌려 선회. 다시금 적 사령관을 향해 달려간다.

"사령관님! 피하십시오! 제가 시간을 벌겠…!"

적 참모장으로 보이는 이가 사령관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녀석 또한 처치한다.

파앙!

횡으로 검날을 그었다. 그러자 뒤이어 서걱, 하고 들려오는 미약한 절삭음.

"커헉…!"

내 검날이 녀석의 목을 베었다. 참모장은 자신의 모가지에서 뿜어 져 나오는 핏물을 억지로 틀어막으 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 만무.

철퍼덕!

녀석은 힘없이 낙마,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사령관을 보호할 수 있는 이는 이 주위에 없게 되었다.

"크윽…."

적 사령관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놈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녀석의 눈동자 속에 떠올라있는 감정은 공포, 경악, 그리고 절망. 녀석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있다.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검을 들어 올려, 녀석에게 겨눴다. 검날 끝에서는 적들을 베어 묻 었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팔다리 한두 개쯤은 잘리겠 지만.

검을 휘둘렀다.

퍼억!

"끄으으으으!"

적 사령관의 왼팔마저 잘려나갔다. 놈은 이제 말의 고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

털썩!

녀석이 말에서 낙마해 지면을 굴 렀다. 나 또한 말에서 내려, 녀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다시 검을 휘두른다. 놈'이 도망 칠 수 없도록, 완전히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서걱, 콰직!

"끄아아아아아!"

놈의 왼쪽, 오른쪽 다리의 아킬 레스건을 끊어버렸다. 그에 재차 비명을 내지르는 적 사령관.

주위를 둘러보았다.

콰르르르릉!

주변은 완전한 난전 상태. 마법사들이 전투하고, 기사들이 몰아치 고 있다. 그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적 병사들의 무리.

그리고 바닥에 죽어 널브러져 있는 적 참모진들.

이로써 놈들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나는 놈들의 지휘소에 커다랗게 서 있는 대장기에 다가가, 그 깃대 를 베어버렸다. 대장기가 힘없이 떨 어져 지면을 구른다.

놈들의 지휘부가 완전히 붕괴되 었다는 신호였다.

그러자,

- 띠링! 띠링!

[업적 달성!]

['업적 : 단신돌파'를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8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18pt입니다.)

[업적 달성!]

['업적 : 격의 상승(1)'을 달성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정산 포인트 : 1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18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28pt입니다.)

업적 안내창이 떠오르고,

- 띠링!

[시나리오 챕터 2를 완료했습니다.]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내 시야가 암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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