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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27화 (127/390)

127화.

"…'그릇'이성장했군."

어둑한 동굴 안. 한 마법사가 그리 중얼거렸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 어 쓴 흑마법사, 크라함이었다.

그의 입가에 질척한 미소가 드리 워졌다.

"예정보다도 빠른 성장이로다."

그는 진심으로 기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하던 그릇의 성장이 점차 빨라지고 있으니 .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한스."

한스 요한바르첸.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이. 그는 어둑한 동굴 한켠에 부복해 있었다.

크라함의 부름에 한스가 고개 숙여 대답한다.

"네. 크라함 님."

"너는 한지훈에게 복수를 원하고 있지."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가 흉흉한 붉은빛을 머금었다.

"그렇습니다. 놈을 제 손으로 죽 이고 싶습니다."

한스의 대답에 크라함은 만족스 레 웃었다. 아직도 그의 복수심이 가라앉지 않았기에.

그가 나직이 고했다.

"광기의 시대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크라함 님. 그 말씀은."

"한지훈과 싸울 때가 그리 머지 않다는 뜻이다."

크라함이 한스를 내려다본다.

"한스. 이전에도 네게 알려줬지만 너는 대적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한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두 쌍의 붉은색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피식. 크라함이 나직이 웃는다.

"물론, 네가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어디까지나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

놀랍게도, 크라함은 한스가 한지훈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그에 한스의 얼굴이 굳는다.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스."

저벅, 저벅. 크라함이 동굴을 걸 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놈, 한지훈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 패배하지 않지. 운명이, 초월적인 법칙이 한지훈을 비호하고 있다.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너는 결코 놈을 이길 수 없으니 ."

으드득. 한스가 이를 갈았다.

크라함이 한스의 패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그이전에도 간간이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크라함 님. 그렇다면, 어째서 제 게 한지훈과 싸우라 명하시는 겁니까."

그에 한스는 의문을 가졌다.

크라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계속해 한지훈에게 패배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크라함은 자신 에게 한지훈과 싸울 것을 지시하는 것인가.

그에 크라함이 질척한 미소를 지 으며 말한다.

"그건…."

크라함의 목소리가 어둑한 동굴을 울린다.

* * *

내 몸이 진화한 것을 느꼈다.

근육은 강대한 힘을 품었다. 근 골은 더욱 단단해졌으며, 호흡은 보다 깊어졌다.

"후읍-."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러자 보다 향상된 심폐기능이, 많은 산소를 흡수했다.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 한다. 정신이 청아하게 가다듬어졌다.

콰드드득.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전완 근이 팽창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이 일어 음영을 드리웠다. 검의 손잡이 가 과한 압력에 삐걱거리는 소음을 울린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단해."

그것은 보다 발전한 신체 능력에 대한 감탄.

전능감이 치솟는다. 지금이라면 그 무슨 일이든지, 아주 손쉽게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예를 들자면, 적 사령관 처치라 든지.

시선을 들어 올려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아까 전 떠올랐던, 무수 히 많은 수의 홀로그램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앞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주시한다.

[유저가 모든 1차 리미터를 해제 했습니다!]

['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격이 상승했다라."

솔직히 저 홀로그램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격의 상승이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전투가 먼저지."

저 문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좋으리라.

지금은 전투에 집중할 때.

나는 말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검을 꽉 움켜쥐었다. 시선을 앞 으로 두고 몸을 낮췄다.

적 대장기의 모습이 점차 가까워 진다.

저곳에 적 사령관이 있을 것이다. 놈을 죽인다면 이 지랄 맞은 전투가 끝난다.

내가 그렇게 놈들의 지휘부를 향 해 돌진해갈 때였다.

두두두두두두!

측면 방향에서 웅장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커다란 소음. 그에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기사들."

왕국의 기사들이 두터운 흙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그 수가 퍽이나 많다.

최소한 수백, 어쩌면 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수.

쯧, 혀를 찼다.

"염병할 놈들."

놈들의 종심을 돌파해가며, 이제 곧 지휘부를 치려는 순간이다. 헌데 지금 와서 저토록 많은 기사들이 등장하다니.

물론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다.

"놈들도 지금쯤 내가 지휘부를 노린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지휘부에 당도한다면, 사령관을 비롯한 참모들의 머리가 날아 간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쪽 의 접근을 저지하고 싶었겠지.

후욱. 숨을 한껏 내쉬었다.

"뭐, 해봐야지."

기마술에는 자신이 있다. 더해 지금 나는 전투마를 몰고 있으니 . 놈들이 접근한다 한들, 최소한 적 참모진의 지휘를 교란시킬 수는 있을 터.

화르르륵!

오러를 돋웠다.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기세를 한껏 끌어올린다.

저기사들의 추격을 뿌리치며 적 지휘부 놈들을 교란시킬 생각이다.

그렇게 한다면, 아군이 보다 수 월하게 전투에 승리할 수 있을 터.

내가 그렇게 전투의지를 돋우고 있을 때였다.

두두두두두.

갑작스레, 또 다른 말발굽 소리 가 들려왔다. 방금 전 나타났던 왕국군 기사들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씨익. 그쪽을 바라본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베르겐."

베르겐 단장이 이끄는 볼로냐 기사단들이, 왕국 기사들을 추격해 밀 고 들어 오고 있다.

멀찍이서 베르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또한 내가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베르겐이 검을 높 게 들어 올려 신호를 보낸다.

나 또한 검을 들어 그의 신호에 화답했다.

"적 기사들은 베르겐 단장이 막 아주겠지."

언뜻 보아도 제국군 기사들의 수 가 왕국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아마 저 왕국군 기사 놈들은 제국 기사들을 상대하느냐 이쪽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계속해 말을 몰고 달려 나 갔다. 대장기의 위치는 어느새 지 척.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놈들을 죽여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나를 가로막고자 하는 것은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번쩍! 번쩍!

푸른색 마나광을 번뜩이며 수십, 수백의 인영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 내기 시작했다.

으득. 이를 갈았다.

"마법사새끼들까지 오다니."

그들은 다름 아닌 왕국의 전투마법사들이었다.

그 수가 대단히 많다.

왕국군에 종군한 전투마법사 오 백. 그들이 하나둘 단거리 도약마법을 발현해, 사령부 앞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나 하나만을 막기 위해서.

"… 이건 방법이 없는데 ."

솔직히, 마법사까지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을 경계하느 라 절대 위치를 벗어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

"그만큼 내가 두려웠다는 건가."

마법사들까지 움직일 정도라. 적 사령관은 그만큼 내가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놈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극대화 된 나라고 한들, 놈들을 돌파할 자신은 없었다.

그만큼 마법사 오백이라는 전력 은 무지막지했으니 .

결국 나는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 퇴각한다."

무모하게 저 마법사들 사이를 돌파해 적 지휘부를 노린다 한들. 여러 공격 마법의 세례에 당해 벌집 이 될 뿐이다.

아쉽지만 적 사령관을 처치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포기는 아직 이른 듯했다.

번쩍!

내 바로 지척에서 푸른색 마나광 이번쩍였다. 분명 그것은 단거리 도약 마법이었다.

재빨리 검을 휘둘러 베어버리려했다. 적 마법사의 등장이라 여겼으므로.

하지만 내 옆에 등장한 것은 적 마법사가 아니었다.

"애송이. 건방지군, 검 치워라."

"…제피르 단장 각하?!"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제피르였다.

그가 피식 웃고는, 품속에서 연 초를 꺼내들었다.

"한지훈 천인장. 네 녀석도 참 독한 놈이야. 기어코 여기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 어쩐 일이십니까?"

제피르를 보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 아펠도른 요새 성벽 위에서 적 마법사들을 견제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헌데 그는 지금 내 앞에 나타나, 저토록 오만한 얼굴로 연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후욱-.

제피르가 회색 연개를 내뿜으며 말한다.

"네놈을 에스코트 해주려고 왔다. 한지훈 천인장."

그가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오백의 적전투마법사들.

씨익. 제피르가 웃었다.

"그리고, 저쪽수만 믿고 덤비는 건방진 놈들도 밟아버려야 하고 말이다."

제피르가 스태프를 들어올린다.

화륵! 화르륵!

그의 배후에 폭렬구가 하나둘 생 성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제피르. 분명 강자다. 그는 정복 전쟁에서 활약했던 전쟁영웅이자, 드높은 마법의 경지를 세운 위대한 인물이었으니 .

허나 그렇다 한들 지금 그는 혼자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제피르라 한들, 저토록 많은 수의 전투마법사 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터인데.

그런 내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번쩍! 번쩍! 번쩍!

제피르의 배후에서 마나광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것 또한 단거리 도약 마법이리라.

그의 배후에 라브리에 전투마법 단의 마법사 백여 명이 등장해 도 열한다.

-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제피르가 마나 어린 음성을 발한다. 그의 목소리에 맞춰, 배후의 마법사들이 하나둘 기세를 끌어올리 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마나의 파동음이 울린다. 푸른색 마나광이 번들거리며 피어올랐다.

저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마법사들은 제각기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합동해서 발현하는 광역 중첩마 법이 아닌, 개개인이 발하는 공격 마법들.

마법사들끼리의 난전에서나 사용 할법한 마법들이다.

- 놈들을 짓밟아버려라.

그가 지시한 직후.

콰앙! 콰르르릉!

난전이 시작되었다.

마법사들이 저마다 발현할 수 있는 공격마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화염구를 날려댔고, 어떤 이는 불길이 일렁이는 화살 세례를 쏘아대기도했다.

상대편 마법사들도 하나둘 공격 마법을 발현했다. 얼음송곳이 쏘아 지고, 지면에서 얼음창날이 솟구친다.

전투하는 마법사들 중, 가장 강력한 무위를 보이는 것은 단연 제피르였다.

콰르르르르룽!

그가 지팡이를 내리긋자 수십 개 의 폭렬구가 앞으로 날아가 지면을 터트렸다. 폭발이 일고 충격파가 대 지를 뒤흔든다.

"저 마법사 전력은 우리가 맡지."

제피르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 본다.

"어서 가라, 한지훈 천인장. 길을 열어주마!"

제피르가 다시금 폭렬폭풍 마법을 발현했다.

콰르르르릉!

폭발이 일고, 불길이 지면을 달 군다. 매캐한 연기가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 후폭풍이 후욱 밀려와 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제피르 단장 각하."

지금 제피르는 내가 적 지휘부를 쓸어버릴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주 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반드시, 적 지휘부를 쓸어버리겠습니다."

나는 전투마의 배를 박찼다.

두두두두두.

말이 질주해가기 시작했다. 이글 거리는 화염들 사이를 누비고,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헤치며, 앞 으로 나아간다.

이제 적 사령관의 목을 벨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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