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편대장 루이그 데비로트. 그가 전투마를 몰고 앞으로 돌진해간다.
돌진하는 그의 시야로 어떤 청년 의 모습이 들어왔다.
검은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가 진 청년.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천인장 계급장을 가슴팍에 달고 있다.
루이그가 검은 머리 장교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저놈.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거지?'
기사가 무려 삼십이다. 그들이 전투마를 몰고 돌격하는 와중이다.
헌데 어째서인지. 놈은 도망치지 않고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죽음을 직감하고 살기를 포기한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저렇게 격렬한 오러를 두르지도, 저 토록 형형한 눈빛을 번들거리고 있지도 않았을 터이니.
'…놈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그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거창을 바라보았다.
두터울 철로 되어있는 기사용 헤 비 랜스. 일반 장검 따위보다 훨씬 커다란, 그야말로 오직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만을 위한 무기다.
평소에는 이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랜스가 믿음직했다. 하지만 지금, 그리 미덥지 않아 보이는 것은 어째서 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놈은 이제 끝이다. 뭘 하려한들, 혼자서 우리들을 막을 수는 없으니 .
루이그가 랜스를 앞으로 겨눈다. 저 검은 머리 장교와의 거리가 지 척.
그가 크게 외쳤다.
"죽어라아아아!"
그의 랜스가 전투마의 가속력을 살려, 앞으로 나아간다.
루이그는 찰나의 순간이면 자신 의 랜스가 저장교 놈의 머리통을 부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기사의 랜스차징은 강력한 공격 이었으니 .
하지만.
"너나 뒈져라."
장교가 그리 읊조렸다. 직후.
콰르르르르릉!
폭음이 울렸다. 마치 폭렬마법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도 커다란 소음이었다.
루이그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드워프제 장검이 오러를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오러가 어린 무수한 검날 파편들이 앞으로 쇄도 해간다.
직후.
콰가가가각!
"끄아아아아!"
"아악! 아아악!"
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던 기사 둘이 낙마해 지면을 굴렀다.
쿠웅! 퍼억!
내 좌우로 기사들의 시체가 스쳐 지나가 지면에 처박혔다.
시체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갑옷은 온통 자잘한 구멍 투성이었다.
검날에 너무나 많은 오러를 밀어 넣었기에, 검날 파편 하나하나에 모두 오러가 부여되어 기사들의 갑옷 까지 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피식 웃었다.
"역시 쓸 만한 기술이야."
마나를 좀 많이 잡아먹긴 하지만 정말 쓸 만한 기술이다. 꽤 많은 마나를 소모한다면 이렇게 일격에 기사들까지 처치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발하기 위해서라면 드워프제 장검 정도는 소모해야 하지만.
고개를 돌려 정면을 주시했다.
"맙소사! 편대장님!"
"제기랄! 저놈이!"
다른 기사들이 뒤이어 이쪽으로 돌진해오고 있다.
저 새끼들까지 죽여버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아무런 무 장이 없는 상황.
고개를 내려 다시금 기사의 시체 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허리춤에는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장검이 잘 메 어져 있었다.
그것을 주워들었다.
- 띠링!
[볼프덴 조병창 2급 장검]
"잠깐 빌린다."
나는 검을 주워들고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옆으로 굴렀다.
"편대장님의 복수다!"
"죽어!"
또 다른 기사들이 내 코앞까지 당도했기에.
카가가가각! 콰지지직!
커다란 철제 랜스 두 개가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지면을 긁고 지나 갔다.
과연 기사라는 것인가. 지면에는 꽤나 깊은 스크래치가 나있다.
확실히 기사 놈들의 랜스 차징은 너무나도 위협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협적인 공격이 라 한들, 맞지 않으면 무용.
"후욱."
숨을 토하며, 다시금 지면을 박 차 도약했다.
콰아아앙!
또 다른 기사의 랜스가 공기를 꿰뚫고 지나갔다.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나는 놈들의 공격을 계속해 피하며,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눈동자 를 굴렸다.
' 전투마.'
방금 전 일부러 기사들만을 죽였다. 전투마에는 파편이 닿지 않도록 각도와 방향을 조율해 검을 터트렸 던 것이다.
놈들이 타고 왔던 전투마는 멀쩡 할 터.
곧 나는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푸르르륵!
주인 잃은 전투마 두 마리가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전투마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달려 가며 입을 열었다.
"내 정보."
- 띠링!
[한지훈][아펠도른 천인장]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하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44]
[민첩 153]
[내구 40]
[체력 34]
[마나 100]
(남은 포인트는 30pt 입니다.)
홀로그램이 떠오름과 동시.
"기마술, 상향."
지체하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가진 기마술 스킬은 고작해야 하급. 하급 기마술로는 기사용 전투마까지 다룰 수 없다.
기마술을 적어도 중급으로 상향 시켜야만 전투마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리라.
- 띠링!
['스킬 : 기마술(하급)'을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30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직후, 머릿속에 여러 지식들이 파고들어 오기 시작했다.
일반 말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전투생명체인 기사용 전투마를 다 룰 수 있는 방법.
그것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욱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선 어찌 다루어야 하는지.
온전히 알 수 있게 되었다.
- 띠링!
['스킬 : 기마술(하급)' 이 '스킬 : 기마술(중급)'으로 상향되었습니다!]
스킬의 상향이 완료되었다.
나는 계속해 기사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저기 앞에 가만히 서서 투 레질을 하고 있는 전투마를 향해 접근했다.
"크네."
바로 코앞에 도착하자 비로소 그 크기를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군마들은 당나귀처럼 왜소 하게 보일 정도로 커다란 덩치.
하기야 마물과 교배시켜 인위적 으로 크기와 근력을 극대화 시킨 말이다. 그 몸집이 커다란 것은 당 연한 일.
등자를 밟고 녀석의 위로 올라탔다. 그러자 내 시야가 보다 높아진다.
고삐를 쥐었다.
히히히힝!
내가 올라타자. 말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앞발을 높이 들어올리고, 격렬히 몸을 뒤틀었다. 내가 제 주인이 아니라고 뿌리치려 하는 것 이다.
"얌전히 있어라."
나는 고삐를 힘주어 꽉 쥐었다.
이전투마는 지금 내가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다.
사실 자격을 증명하는 방법은 그리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화르르륵!
왼손으로는 고삐를 꽉 쥐고, 오른손으로는 검에 오러를 돋웠다. 검 신에 푸르른 불길이 일며 은은한 청색 마나광이 퍼져나간다.
전투마는 오직 자신이 인정한 강 자만을 제 등에 태운다.
그리고 그 강자들은 기사였다.
오러를 다루는 초인들.
나는 이 녀석에게 내 오러를 보여, 나 또한 강자라는 것을 확실하 게 인식시키고 있다.
"내가 네 주인이다."
이제 이전투마는 내 명령을 따를 것이다.
푸르르륵!
전투마는 금세 얌전해졌다. 방금 전 난동을 부린 것이 마치 거짓이 라는 것처럼.
피식 웃으며 녀석의 갈기를 쓰다 듬었다.
"자, 가자. 기사새끼들을 죽여버 리자고."
파앙!
녀석의 배를 찼다. 전투마가 달리기 시작한다.
"놈이 말에 탔다!"
왕국군 기사 하나가 그리 소리쳤다. 그에 그들의 시선이 제국군 군 관에게로 향한다.
"미친… 저놈, 보병대 군관 맞 나?! 전투마에 타다니!"
그에 경악하는 기사들이었다.
본디 전투마에 타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전투마가 보기에 기준 미달인 약 한 이는 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 기에.
헌데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제국군 장교는 전투마 위에 단번에 올라, 제법 능숙하게 말을 몰고 있다.
그 말은 전투마가 저 제국군 장 교를 제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이야기.
물론 기사들은 그이유를 알고 있다.
"저토록 강한 무력을 지녔던 놈 이다. 전투마가 녀석을 주인으로 인 정한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
저자의 무력은 전투마를 길들이 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만큼 놈이 발했던 오러광은 너무나도 선 명했었으니까.
"제기랄! 땅바닥을 기어 다니던 놈도 잡지 못했었는데, 말에 오르기 까지 하다니."
기사들이 하나둘 경각심을 끌어 올린다.
일개 보병대 장교에 불과했을 적의 녀석조차 너무나 강했다. 검을 폭발시키는 기행을 벌여 단번에 이쪽의 기사 둘을 처치했으니 .
하지만 이제는 기사의 전투마까지 탈취한 상태. 놈의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미지수다.
"… 2번 편대장인 내가 지휘권을 계승하겠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나 당황 하지는 않았다.
기사들은 오랫동안 무를 수련해 오러를 깨우친 강자들. 그렇기에 미 지의 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당황을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다.
"1번 편대는 놈의 뒤를 잡아라. 2번, 3번 편대는 나와 함께 놈의 좌우를 친다."
"알겠습니다, 편대장님!"
2번 편대장, 라비스가 기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 * *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전투분석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적들의, 기사들의 경지를 살폈다.
움직임, 시선 처리, 기마 실력. 더해 전신에 돋운 오러광과, 랜스를 잡은 자세까지. 그 모든 것을 살폈다.
녀석들의 경지를 확인한 후.
"다 조무래기 들이구만."
피식 웃었다.
놈들은 대다수가 평기사였다. 단 두 명 남아있는 편대장들이 간신히 중급 기사에 턱걸이 하는 수준.
간단히 말해, 손쉬운 적이다.
파앙!
말의 배를 박찼다. 그러자 녀석 이 그 우락부락한 뒷다리로 지면을 차며 달려 나간다.
그 속도와 기세가 정말 심상치 않다.
어마무시한 가속력. 말이 말발굽을 지면에 디딜 때마다 쿵 소리가 울렸고, 그와 함께 커다란 진동과 가속이 내 몸을 뒤흔든다.
"하하."
문득 실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 왔다. 전투마의 속력이 기대 이상이 었기에.
이토록 빠르게 움직이다니. 정말 대단하다.
"놈을 포위하라!"
"1번 편대! 놈의 뒤로 붙어! 2번, 3번 편대! 정면에서 막는다!"
"가라!"
하지만 기사용 전투마에 탑승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쪽을 추격하는 기사들 또한 전투마를 몰고 있다.
"포위라. 귀여운 짓을."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닐 때는 오직 피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똑같이 전투마에 탑승한 지금이라면, 놈들을 쳐 죽여버릴 수 있다.
두두두두두!
말이 달린다. 녀석의 갈기와 투 구 밖으로 삐져나온 내 앞머리가 맞바람에 날려 휘날린다.
' 왼쪽.'
고삐를 왼쪽으로 당겼다. 그에 획 돌아가는 말의 진로.
내 왼편에는 적 기사 몇이 달려 오고 있었다.
"흐읍!"
내가 이토록 급작스럽게 선회할 줄 몰랐던 것일까. 측면에서 접근해 오고 있던 적 기사가 일순 당혹성을 내뱉었다.
녀석의 얼빵한 얼굴을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릉!
푸른색 검광이 번뜩였다. 파공성 과 함께, 살을 베고 뼈를 부수는 감각이 검의 손잡이를 타고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퍼억!
적 기사의 머리가 투구 째로 날 아올라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나직이 읊조렸다.
"일단 한 명."
아직 스물일곱 명 남았다.
* * *
"놈을… 놈을 잡아라!"
2번 편대장, 라비스가 발악하듯 외쳤다. 하지만 그에 화답하는 기사 들은 없었다.
"편대장님! 엘빈이 당했습니다!"
"맙소사…! 놈이 내게 붙었다! 살 려, 살려줘!"
"으아아아악!"
휘하 기사들은 제목숨을 보전하 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라비스는 제국 장교의 모습을 눈 으로 ?으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기마 실력이…'
그의 기마술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육중한 전투마를 제 수족처럼 부렸다.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무게중심을 맞췄다. 고뻬를 빠르게 움직여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곳저곳에서 급선회를 하며 예상외의 방향으로 움직였으니 .
게다가 더더욱 두려운 것은….
"3번 편대장, 라킬이 당했습니다!"
"망할! 접근하지 못하게 해!"
"막아! 막아!"
기마술에 이어 검술 실력까지 이쪽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놈이 말을 몰고 기사들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파공성이 터져 나오고, 시퍼런 검광이 번뜩였다. 기사의 목이 잘려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직후 머리 잃은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는 붉은색 혈액.
놈은 너무나도 손쉽게 기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문득 라비스는 시선을 내려 랜스 를 쥔 손을 바라봤다. 무언가 이질 감을 느꼈기 때문에.
부르르르.
그의 손은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마치 수전증에 걸린 것 마냥.
라비스는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고 있다.
'…공포.'
지금 그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저 제국군 장교의 무력에 위축되 었기에.
들고 있는 랜스가 무겁게 느껴졌다. 뒤통수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공포에 경직되어 점차 굳어져간다.
'이길 수 없다. 그냥, 도망치는 게….'
라비스의 고개가 점차 힘없이 떨 궈지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갈등은 찰나에 불과했다.
까드득!
라비스가 자신의 입술을 짓씹었다. 그의 턱선을 따라 가느다란 핏물 한줄기가 이어진다.
"기사된 이로서, 눈앞의 적을 놔 두고 도망칠 수는 없지."
입술을 씹은 고통 덕분에, 공포 를 간신히 떨쳐낼 수 있었다.
그가 독기 어린 눈동자를 굴려 검은머리 장교의 모습을 노려봤다.
"놈은 혼자다."
잊으면 안된다. 녀석은 혼자다.
"하지만 이쪽의 기사는 아직 스물이 남아있으니 ."
내리깔았던 시선을 다시 들어올렸다. 오러를 발현한다. 기사용 철 제 렌스가 다시금 푸른색 오러광을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
그는 기세를 다시 끌어올린다.
"나를 따라라! 녀석은 그간의 격 전으로 지쳤을 것이다! 계속 몰아 붙인다!"
비로소 공포를 뿌리친 라비스가 말을 박찼다. 그의 전투마가 보다 빠르게 가속하고, 저 검은 머리 군 관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죽여버린다!'
놈을 죽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전사한 부하 기사들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라비스가 그리 결심하고, 놈을 향해 돌진해갈 때.
놈과 눈이 마주쳤다.
라비스는 간신히 가라앉혔던 공포가 다시금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우묵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직후.
콰르르릉!
푸른색 궤적이 쇄도해오고, 그의 목이 절단되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한지훈 천인장이 왕국 기사들을 처치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