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24화 (124/390)

124화.

"말도 안 되는군."

도나드 글리슨 후작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는 말 위에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가장 선두에 위치한 동부 1군단과 2군단의 모습.

카렌 왕국 동부 제 1, 2군단. 각각 2만의 정병들로 이루어진 군단이다. 침공군의 가장 선두에 선 이 들이자,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앞서 가던 이들.

그들의 진형이 치명적으로 흔들 리고 있다.

"적 보병대들이 계속해 이곳으로 파고듭니다."

"… 정말, 말도 안 돼."

진형을 흔드는 것은 다름 아닌 제국군들. 그 수가 아무리 많아봤자 다 합쳐 1만이 될까 싶은 녀석들이다.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적 보병들이, 무려 4만의 대군세를 뚫고 이쪽으로 계속해 달려오고 있다.

도나드 글리슨 후작은 그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아직 거리 가 너무나도 멀기에 그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예사롭 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기에는 충분 한 거리.

"저 선도부대가 문제군."

특히나 가장 앞에서 돌진하는 수백의 병사들.

저들이 문제였다.

놈들이 왕국군 천인대 사이로 파고들어 균열을 만들고, 뒤따라온 후 속 부대들이 그 균열을 넓히며 전 진해온다. 고작 수백의 병사들이 약 일만의 후속 부대를 선도하는 모양 새.

후작은 직감했다.

"놈들을 제압해야 한다."

저 선도부대를 제압하지 않는다 면, 놈들은 기어이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길을 뚫을 것이리라. 그만큼 저자들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부관. 지금 내게 붙은 호위기사 가 몇 명이지?"

"세 개 편대입니다. 사령관 각하."

세 개 편대면 삼십 명의 기사가 주위에서 대기 중이라는 소리다.

왕국의 다른 기사들은 모두 외곽에서 전투 중이기에, 지금 당장 투 입할 수 있는 기사들은 후작의 호 위로 붙어있던 삼십여 명이 고작.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병사 수백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도나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사들을 운용하지. 저기, 이쪽으로 달려드는 제국 놈들. 놈들의 선두 부대를 제압하라. 저놈들만 제 압한다면 이쪽으로 돌파하는 기세 가죽을 터이니."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령관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만……"

"괜찮다. 나도 오러의 길을 걷는 이. 내 몸 하나는 스스로 건사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기사 들에게 전파하겠습니다."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콘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삼십의 기사들에게 지시해, 저 부대 를 제압하도록 할 것이다.

후작이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향 한다.

"저 부대 지휘관 놈. 능력이 범 상치 않군."

꽤나 먼 거리이지만. 유독 강렬 한 무위를 보이는 이가 보인다. 아마도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이.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 이 왕국의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에 후속 부대가 파고들어 완전히 격파. 제국군이 이쪽으로 전진해온다.

제국군이 이곳까지 파고든 것은 모두 다 저지휘관 놈의 솜씨 때문이리라.

"놈을 죽여야 한다."

도나드 글리슨 후작이 한지훈을 주시한다.

달려가며 주위를 둘러본다. 시야 속 여러 광경들이 펼쳐진다.

눈가에 독기를 품고 이쪽으로 창을 들이미는 왕국군 창병,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 바닥에 널브 러져 있는 시체들과, 그것들을 바라 보며 겁에 질려있는 신병들까지.

그 모든 것들을 눈에 담고, 놈들 의 위치와 배치를 기억해둔다.

나는 크게 외쳤다.

"천인대! 좌측으로 돌아! 왼쪽으로 파고든다!"

눈앞의 놈들은 척 보기에도 정예다.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야 한다.

"명령을 따릅니다!"

내가 지시하고, 백인장들이 복창 한다. 그들이 내지시를 병사들에게 전파한다.

그리고 병력은 왼쪽으로 선회. 바로 앞에서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던 적 천인대를 우회해, 다른 적 천인대 방향으로 파고든다.

물론 우리가 선회해간 왼쪽 방향에도 적 병력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맙소사! 이쪽으로 온다!"

"어째서 이쪽으로…!"

"살려줘!"

놈들이 오합지졸인 것이 눈에 보였다.

눈동자는 겁에 질려있고, 시선은 혼란스럽다. 더해 바들바들 떨리는 창날까지.

왕국군이든 제국군이든 각 부대 의사기와 가진 정예도가 저마다 달랐다.

때문에 나는 항상 전투에 진입한다면, 적의 아군의 면면을 최대한 자세하게 살폈었다.

놈들의 부대 중 약해보이는 놈들 이어디에 있는지. 어떤 부대가 취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보다 수월하게 적을 쳐부술 수 있으니까.

"다 죽여!"

지면을 달리며 돌진했다. 적 창 병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창날을 들 이밀지만 공포에 의해 그 속도가 퍽 느리다.

간단하게 파고들어 목을 베어버렸다.

파앙! 서걱.

시원한 파공성, 붉게 치솟는 적 병의 혈액.

"커헉…."

그리고 단말마를 흘리며 주저앉는 왕국군 병사.

내가 난입하자 다른 병사들이 뒤 따라 녀석들의 전열을 쳐부수며 파고든다.

간단하게 적의 전열을 분쇄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인다.

'대장기'

동부군 총사령관 대장기가 우뚝서 있다. 저기에 적 사령관이 있으 리라.

고개를 주억였다.

"거의 다 왔어."

적 사령관이 자리해있는 본영이 코앞이다. 저기까지 가 놈을 처치하 거나, 혹은 위협한다면 놈은 제대로 된 지휘를 내리지 못해 진형이 붕 괴되리라.

내가 적 대장기의 위치를 눈여겨 보고 있을 때였다.

"천인장님…!"

아르덴이 나를 호출했다. 녀석을 바라보니 어딘가를 멍하니 주시하고 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적 기사들입니다!"

"기사?"

시선을 돌려, 아르덴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곳에 는…

두두두두두!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적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슬슬 기사새끼들이 나타날 때가 되긴 했지."

적 지휘관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파고든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터였다.

기사를 동원하리란 생각이야 진 즉에 했었다.

나는 주위 병사들에게 고했다.

"기사는 내가 상대하겠다. 맷 마 이어스! 네가 천인대를 지휘해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호흡했다.

폐부에 혈향 섞인 비릿한 공기가 그득 차며,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기사는 나 혼자서 처치하지. 너는 계속해 병력을 운용해 앞으로 전진해라."

"천인장님! 적 기사가 삼십입니 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에 화들짝 놀라 말리는 맷과 카일. 그들의 눈동자에는 염려와 걱정의 감정이 떠올라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발걸음을 옮기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화르륵, 하는 작열음과 함께 검신에 푸른색 불길이 일렁였다. 청색 마나광이 은은히 피어오른다.

"기사 삼십 마리쯤이야. 간단히 쳐부술 수 있으니까."

나는 병력을 뒤로한 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를 죽여버리러.

"적이지만, 정말 대단한 놈들이 군."

기사 편대장, 루이그 데비로트. 그는 전투마 위에서 앞의 혼돈을 바라본다.

그의 시야에는 퍽 이색적인 광경 이 펼쳐져 있다.

일만에 달하는 제국군이 왕국군 의 전열을 가르며 밀고 들어온다.

일만. 그들이 무려 사만에 달하는 군대 사이로 파고들어 전진해간다.

허나 그 일만에 불과한 병력의 가장 앞에 선 이들은, 고작해야 수백에 불과했다.

고작 수백이서 가로막는 왕국군을 물리치고, 진형을 돌파해가며 일 만의 진군을 선도하고 있다.

가히 영웅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지."

화르르륵.

루이그의 손아귀에 들린 철제 헤 비 랜스가 불길을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적에게로 향한다.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

놈은 제 아군들에게서 벗어나, 오러를 줄기차게 피워대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그의 오러광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난생 처음 보는 선명한 오러광. 루이그의 상관인 기사단장조차 저 토록 선명한 오러를 발현하지는 못했다.

명백한 강자.

"하긴. 그 정도로 강하니까 이곳 까지 파고들었던 것이겠지."

루이그는 그리 읊조리며 투구의 바이저를 닫았다.

철컹, 하고 내려가는 바이저. 그 바이저의 틈 사이로 루이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형형히 빛난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우리를 이 기진 못할 거다."

이쪽의 전력은 전투마에 탑승한 기사 삼십. 반면 놈은 제 아군과 떨어져 혼자에 불과하니.

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선발대 놈들을 제압한다. 먼저 저기, 혼자서 달려오는 천인장 놈 부터 처치하지."

루이그는 랜스를 들어올렸다.

"기사 편대, 돌진 준비."

"돌진 준비! 돌진 준비!"

철컥, 철그럭.

기사들이 하나둘 돌진을 준비하 기 시작했다. 오러를 돋우고, 철제 랜스를 들어 올렸다. 투구 바이저를 내렸다. 기사단의 깃발을 드높이 들어 올렸다.

그가 랜스에 오러를 돋우며 외친다.

"돌진! 저 건방진 놈을 갈아버려 라!"

"오오오오오오!"

기사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오는군. 기사 놈들."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시선을 정면에 두었다.

이곳저곳에서 허둥거리며 길을 비키는 왕국군 병사들. 그리고 그 너머, 전투마에 탑승한 채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적 기사들이 보인다.

그 수가 약 삼십여 명.

"그나저나 전투마라."

사실 퍽 불리한 상황이었다.

놈들은 전투마에 탑승한 상태. 그리고 기사용 전투마란, 일반 말보 다도 훨씬 흉악한 생명체다.

마물과의 교배로 만들어진, 오직 기사들만이 다룰 수 있는 전투 생명체.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각력을 지녔고, 온몸이 흉악한 근육으로 뒤덮 여 있다.

무방비하게 접근했다가는 저 전투마의 말발굽에 차여 몸이 부서지 거나, 랜스에 꿰뚫려 피와 내장을 지면에 흩뿌리게 되리라.

하지만.

"전투마 따위, 뺏어 타면 되지."

없다면 뺏으면 된다.

두두두두두.

적 기사 삼십이 달려온다. 그들 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자 흙먼지 가 일어나고, 말발굽 소리가 공기를 쿵쿵 울려댔다.

후욱. 숨을 들이쉬며 전신을 긴장시켰다. 심장이 쿵쾅이며 혈류가 맥동한다. 시야가 좁아졌다.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시야 속 움직임들이 느려지고, 사고가 가속되어간다.

물론, 아직 스킬의 활성화는 끝나지 않았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전투분석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놈들의 움직임을, 시선과 손짓을 보고 가속된 두뇌가 스킬의 힘을 빌 려 다음 행동을 예상한다.

놈들의 진로를 읽었다.

쯧 혀를 찼다.

"저 미친놈들. 제 아군을 밟아가 며 달려들 생각이야."

나와 기사들 사이에는 왕국군 부대가 자리해있다. 가로막는 왕국군 병사들을 우회해 이쪽으로 돌진한 다면 그 속도가 많이 줄어들 터이 니.

제 아군들을 밟아가면서 일직선 으로 달려 들으리라.

시선을 내려 내 손아귀에 들린 장검을 바라봤다.

[드워프제 장검]

베르겐과의 내기 덕분에 얻었던 장검이다. 하지만 그것의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이가 나가 있고, 검 신이 미약하게 휘어있으며, 핏물까지 질척하게 들러붙어 있다.

이 검으로 얼마나 많은 적을 베 었을까.

이제는 놓아줄 때다.

픽 웃으며 검날을 쓸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나는 오러를 한계까지 검신에 밀 어 넣었다.

화르르르르륵!

검날이 진동하고,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검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오러가 흘러 들어갔기 에. 검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다.

시선을 들어 올려 다시금 정면을 바라봤다.

놈들이 전투마에 탄 채 이쪽으로 밀려 들어온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놈들과의 거리는 약 오십 보.

"기사! 기사들이다!"

"말에 치인다! 피해!"

왕국군들이 허둥지둥 좌우로 도망친다. 그리고 기사 놈들은 병사들 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퍼억! 콰지직! 쾅!

"끄아아아악!"

"어째서! 우리는 아군이다!"

"살려, 살려…!"

전투마들의 말발굽에, 왕국군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그들이 말에 치어 날아가 지면을 나뒹군다. 충격 음과 비명이 청각을 두드렸다.

"불쌍하네."

불쌍하지 않을 수 없다. 적도 아닌 아군 기사의 말발굽에 치여 죽 어버리다니.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후욱."

숨을 내쉬며 전신의 근육을 긴장 시켰다. 심장이 쿵쾅였다. 머리에 피가 쏠려 귀가 뜨거워진다.

감각이 더더욱 날카롭게 갈려진다.

남은 거리 삼십 보.

"끄아아아아!"

전투마에 치인 적 병사 하나가 이곳까지 날아왔다. 고개 숙여 피했다.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병사는 퍼억, 하고 지면에 처박혔다.

무시하고 자세를 다졌다.

허리를 낮추고 다리 간격을 벌렸다. 시선은 정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검날을 앞으로 향한다.

콰직, 콰드득.

내가 들고 있는 드워프제 장검. 그것의 검날에 점차 금이 가며 붕 과 조짐을 보인다.

남은 거리. 열 보.

"제국군 새끼!"

"죽여버려!"

두두두두두.

기사들이 달려든다. 그들이 오러 가 일렁이는 랜스를 앞으로 내밀며, 내 시야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제 거리는 코앞.

"죽어라아아아!"

가장 선두의 녀석이 랜스를 겨누 며 쇄도해왔다.

나직이 읊조렸다.

"너나 뒈져라."

더욱 많은 마나를 검에 밀어 넣었다. 시퍼렇게 타오르던 검날이 한계 이상의 오러를 받아들여 백열한다. 그리고….

콰르르르르릉!

검날이 터져나갔다. 무수히 잘게 쪼개진 검날 파편들이, 쇄도해오던 기사들에게 내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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