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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21화 (121/390)

121화.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굉음이 고막을 두드리고, 발을 딛고 있는 지면과 함께 몸이 하강해간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 스킬이 발동되었다. 시야 속 움직임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 한다.

다행이라고 할까. 성벽이 무너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성벽의 내부가 흙으로 꽉꽉 채워져 있는 덕분이리라.

쿠르르르르 ….

성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흙먼지 가 피어올랐다. 시야가 누런 먼지들 로 가려진다.

콰앙!

검을 휘둘러 시야를 가리는 흙먼 지를 걷어냈다. 그러자 주변의 모습 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염병."

십여 미터에 달했던, 내가 딛고 있던 성벽. 그것은 어느새 삼사 미터에 불과한 야트막한 언덕으로 화해 있었다.

그리고 흙먼지 너머,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성벽이 무너졌다!"

"가라! 요새 안으로 진입해!"

"돌격! 돌격!"

성벽이 무너진 것을 확인한 왕국 군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주위를 확인했다.

무너진 성벽의 폭은 대략 십여 미터 가량. 딛고 있는 지면은 파편 과 흙무더기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언덕.

그리고 이 무너진 성벽을 노리고 적 병력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

"한지훈 천인장님!"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저 위, 성벽 위에서 들려오고 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천인장님! 무사하십니까!"

카일이었다. 녀석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나는 괜찮다! 아펠도른 천인대! 명령을 하달한다!"

고개를 내려 앞을 바라봤다. 적 병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다. 성벽 이 무너진 빈틈을 파고들어 요새 안으로 진입하려 한다.

막아야 한다.

"붕괴한 성벽에 놈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천인대 이곳으로 모여!"

"명령을 받듭니다!"

카일이 화답해 외쳤다. 이제 녀석은 내 명령을 천인대 병사들에게 전파, 이곳으로 병력을 돌릴 것이다.

그때까지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가라! 가!"

"요새 안으로 진입하라!"

"와아아아아!"

적병들이 잔해로 이루어진 오르 막을 타고 달려온다. 시야가 달려오는 놈들에게 뒤덮여 아주 새카맣다.

얼마나 몰려오려는 건지.

"후욱."

숨을 고르며, 검날을 수평으로 뉘었다.

화르륵.

검신을 타고 푸른색 불길이 타오 른다. 청색 마나광이 누런 흙먼지들을 푸른색으로 물들여갔다.

"오, 오러?! 기사가 왜 여기 에…."

마침내 내 앞에 다가온 적병이 경악했다. 나는 검을 크게 휘두른다.

콰르르르릉!

달려오던 적 십여 명이 오러 서린 검날에 베여, 털썩 쓰러졌다. 피 안개가 뿜어졌다.

허나 이쪽으로 달려 들어오는 놈 들의 수는 아직도 많은 상황.

계속해 검을 휘두른다.

콰앙! 쾅! 콰르르릉!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다수의 적들이 핏물을 내뿜으며 털썩털썩 쓰러져갔다.

벌써 몇이나 죽였을까. 시선을 내려 지면을 바라봤다.

내 검날에 베여 쓰러진 왕국군 놈들의 시체가 경사면을 타고 데굴 데굴 굴러간다. 핏물이 잔해무더기를 타고 흐른다.

"기사! 기사가 여기에 있다!"

"계속해 밀어붙여! 놈도 언제까 지나 오러를 유지하진 못한다!"

수십이 넘는 적을 죽였음에도, 아직도 적병들은 꾸역꾸역 밀려들 고 있다.

저들 또한 알고 있다. 내 오러가 계속 유지되진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맞는 말이다.

오러는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를 집어먹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 평기사들은 오러를 5분 이상 유지 하지 못한다. 그만큼의 마나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내 마나량은 65. 기껏해야 전투에 6분 정도 유지하는 것이 고작.

그러니,

"마나. 35포인트 상향."

- 띠링!

마나를 상향시킨다.

['능력치 : 마나'를 35포인트 상향합니다.]

[상향에는 35pt가 필요합니다.]

[상향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콰앙!

검을 휘두르며 대답한다. 직후, 내 심장에 청아한 기운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마나.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현하 기 위해, 기사들은 오러를 운용하는데 사용하는 기운.

그것이 내 심장에 자리 잡는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총량 이 더욱 많아진다.

이윽고.

[마나 100]

마나의 상향이 완료되었고.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능력치 : 마나' 가 100을 돌파 했습니다!]

[한계돌파!]

[마나하트-리미터가 '완전히' 해 제되었습니다!]

[마나회로-리미터가 '완전히' 해 제되었습니다!]

[마나감응-리미터가 '완전히' 해 제되었습니다!]

리미터가 해제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이, 심장이, 확연히 바뀌었 음을 체감했다.

피부에 닿는 마나가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심장 속 마나가 보다 격렬하게 타오른다. 검신에 어린 오러 가 더욱 화려한 빛을 머금었다.

마나하트, 마나회로, 마나감응. 마나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여러 기관들의 잠재능력이 완전히 해금 되었다.

나는 강해졌다.

"후욱-."

숨을 내쉬며,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이전에는 결코 발현 할 수 없었던 수준 높은 검격이 발현되었다.

콰르르르르릉!

나를 향해 뛰어오던 적병 스무 명이 가슴과 배가 분리되어 지면을 나뒹굴었다. 피안개가 터져 나오며 놈들의 시체가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무슨..!"

"미친! 스무 명을 단번에 죽이다니!"

"괴물자식!"

적 병사들이 기함했다. 그만큼 방금 전 내가 보여준 무위는 대단했다.

검격 한번에 스무 명 참살이라. 어지간한 기사단장들도 보이기 힘 든 무위다. 그것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능력치 '마나'가 100을 돌파했기 에, 그리고 각종 리미터가 해제되었 기에 가능한 무위.

콰르르르르릉!

재차 검을 휘둘렀다. 또다시 스무 명이 넘는 수의 적병이 피 안개 를 뿜으며 지면에 나자빠진다.

"크윽…!"

"놈이 너무 강합니다!"

"미친. 저런 괴물 놈이 어째서 여기에……"

적들의 기세가 한 꺼풀 꺾이기 시작했다.

그야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십 수명이 죽어 나자빠지니. 겁먹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한숨 돌릴 틈을 얻을 수 있었다.

후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나가 부족해.'

시선을 내려 지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적어도 백은 넘어 보이는 적병들이 죽어 나자빠져 있다.

정말 많은 수의 적병을 처치했다. 하지만 오러를 너무 오래 유지했다. 심장 속 마나가 거의 고갈되 어가고 있다.

놈들이 계속해 달려든다면 마나 가 모자라 쓰러지는 것이 이쪽이었다.

후욱. 훅.

거칠게 숨을 골랐다. 하지만 힘 든 내색은 하지 않는다. 놈들이 이쪽의 상태를 깨닫고 계속해 밀려든 다면 정말 버티기 힘들어지니까.

내가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천인장님!"

우르르르.

내 배후에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쪽을 바라보니, 카일을 비롯한 내 휘하 병사들이었다.

녀석이 감탄한 얼굴로 읊조린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무너진 성벽 의 빈틈을 혼자서 틀어막으시다 니…."

나는 그저 웃어보였다.

채 10분에 불과했지만, 나는 이 무방비한 무너진 성벽의 틈새를 저 수많은 군세들에게서 막아냈다. 아마 장판교의 장비가 따로 없었으리라.

시선을 돌려 다시 왕국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제기랄! 적의 증원이다!"

"혼자 있을 때도 뚫지 못했는데, 적들까지 가세하다니…."

"돌격해! 저곳만 뚫는다면 요새 를 함락할 수 있다!"

전열을 재정비한 적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품속에서 마나포션을 꺼내며 엘락에게 지시했다.

"엘락. 너희가 이곳을 막아라."

"천인장님…!"

"나는 마나를 회복하고 다시 가 세하지."

그들을 지나쳐 뒤쪽으로 갔다. 마나포션을 개봉하고, 바로 넘겨 삼 켰다.

"후우…."

조금씩 심장에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성벽을 바라봤다.

"뚫어! 성벽을 통과해라! 요새를 점령해!"

"막아!"

"한 놈도 지나가게 하지 마라!"

왕국군 놈들이 달려들고, 제국군 이 막는다. 치열한 접점이 이어졌다.

하지만 무너진 성벽 사이는 그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덕분에 직접 투사되는 적의 병력은 천인대 수준으로도 여유롭게 막을 수 있는 상황.

나는 마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 며 그들을 주시한다.

그때였다.

콰르르르르르르!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피부를 진동시킬 정도로 정말 거대한 소음 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염병할 투석기."

재차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또 다른 성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우지끈, 쿠르릉 하는 소음 과 함께 흙먼지가 두텁게 피어오른다.

"와아아아아!"

무너진 성벽, 피어오른 흙먼지 너머 적의 함성이 들려온다.

직감했다.

"정말 엿 된 것 같은데."

적이 공성탑에서, 사다리차를 기어올라, 그리고 무너진 성벽 사이에서 밀려 들어오고 있다.

놈들이 하나둘 요새 안으로 진입 해온다.

"군단장 각하!"

덜컹!

한 장교가 임시사령부 안으로 들 이닥쳤다. 군단 참모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장교였다.

그가 다급한 얼굴로 고한다.

"서쪽 성벽이 밀렸습니다! 적병 들이 이쪽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 으음."

병사의 보고를 들은 오스카 군단 장이 표정을 찌푸린다.

사실, 아펠도른 요새는 잘 버텼다. 정말 잘 버텼다. 저 수많은 병력을 여태까지 막아냈으니 .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사다리차가 놓였고, 공성탑이 성벽에 붙었다. 더해 성벽의 몇몇 구역 이 무너져 내린 상황.

놈들이 여러 경로를 타고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군단장 각하! 몸을 피하십시오!"

그에 참모가 오스카에게 요청했다.

오스카 군단장이 참모를 바라본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곧 놈들이 이곳까지 밀려들 것 입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각하! 각하께서라도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군단장께서 잘못되신 다면, 저희 군단은…!"

참모가 절박한 얼굴로 고한다.

군단장 오스카. 확실히 그는 이 군단의 머리였다. 그가 이곳에서 죽 는다면 지휘체계에 혼란이 일 터.

결국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몸을 피하지. 참모들은 서류를 처분해다오. 사령부를 옮긴다."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모들 이하나둘 서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기밀 서류들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군단장 각하."

참모가 오스카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가 몸을 피할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렇게, 군단장 오스카가 막 몸을 피하려고 할 때였다.

- 오스카 단장! 오스카 단장!

비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베르겐?"

목소리는 분명 볼로냐 기사단의 단장 베르겐의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 오오! 다행히 아직까지 요새는 건재하나 보군!

"그것도 거의 끝이야. 베르겐. 서쪽 성벽이 뚫려버렸어. 놈들이 요새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방금 기밀 문서를 파기했고, 이제 막 사령부를 철수하려 하는 참이다."

- 하하하하!

오스카의 말에 베르겐이 웃었다. 그에 오스카는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웃나, 베르겐."

- 오스카. 정말 기밀문서를 파기 했나?

"그래."

- 이거 참 안타까운 일이군. 헛 수고를 해버렸어. 서류를 복구하려 면 나중에 애 좀 쓰겠군.

"그게 무슨 소리지?"

저벅, 오스카가 걸어 비콘으로 다가갔다. 푸른색으로 번들거리는 비콘에서 베르겐의 말이 이어진다.

- 지금 놈들의 측면과 배후는 거의 붕괴되었다, 오스카. 자네는 몸을 피할 필요가 없어. 곧 이전투 가 우리의 승리로 끝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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