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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20화 (120/390)

120화.

- 폭렬폭풍, 오백중첩.

나는 제피르를 바라봤다.

그가 마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재차 붉은색 마법진이 떠오르고, 강대한 마나의 파장이 일렁이 기 시작한다.

그리고 제피르는 각혈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붉은색 핏물이 회색 로브를 적셔간다.

나는 그가 각혈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부스터."

마법사든 기사든 잠시나마 한계 이상의 힘을 발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

제피르는 부스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계 이상의 힘을 운용 한 반동으로 저리 각혈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들어 올려 다시금 하늘을 주시했다.

쿠르르르르….

하늘에 붉은색 마법진이 떠올라 중첩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일중첩, 십중첩, 백중첩을 넘어 오백중첩까지. 아주 찰나의 순간 만에 거대 광역마법이 완성되었다.

막 아군의 마법이 완성됨과 동시.

콰르르르르룽!

적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날카로운 얼음송곳의 세례가 지면으로 쏟 아져 내린다.

그 범위가 너무나도 넓다. 만약 저 마법이 그대로 이쪽에 틀어박힌 다면 넉넉잡아 수천, 어쩌면 일만에 달하는 아군 병력이 단번에 쓸려나 갈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들의 마법은 온전히 이쪽을 타격할 수 없었다.

- 발현.

아군 마법사들이 제시간에 맞춰 마법을 발동시켰기 때문에.

콰르르르르릉!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수의 폭렬 구가 지상으로 쇄도해갔다. 붉은색 궤적의 세례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폭렬구가 품은 불길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이쪽으로 내리꽂히는 얼음송곳 세례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정도로.

타오르는 적색 궤적 수천여 개가 적영에 틀어박혔다.

콰르르르르릉!

폭음이 터져 나와 청각을 유린했다. 시뻘건 불길이 일어나 적의 진형을 뒤덮어버린다. 폭발이 일고, 피 안개와 육편무더기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수천, 어쩌면 일만이 넘는 적병 이 순식간에 쓸려나간다.

"… 대단해."

제피르의 분투를 보고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적의 마법은 강력했었다. 무려 오백여 명이 발현한 얼음송곳 세례였다.

하지만 제피르는 부스터를 섭취 한 후, 순식간에 오백중첩 광역마법을 완성해 적에게 투사했다. 적의 얼음송곳 세례는 하강 도중 모조리 녹아내려 이쪽에 도달하지조차 못했다. 무수히 많은 수의 적병이 단숨에 죽어버렸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커헉……"

"쿨럭!"

라브리에 마법사들이 하나둘 각 혈하며 쓰러졌다. 그 수가 무려 십 여 명.

부스터의 반동으로, 마나회로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쓰러진 것이다. 저 피를 토하며 쓰러진 마법사 들은 한동안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리라.

나는 고개 돌려 적영을 바라보며 고뇌한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으려나.'

적에게는 마법사 오백여 명이 있다. 그들은 아직 건재하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마법을 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쪽은 부스터를 운용해 억지로 맞서고 있는 상황.

절대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적의 광역공격을 몇 번이나 막을 수 있을까? 세 번, 어쩌면 네 번. 아니, 두 번조차 막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부스터의 반동 은 치명적이니까.

나는 불안한 눈으로 제피르를 주 시한다.

"끄아아아아!"

"으악! 아아아악!"

카렌 왕국의 병사들이 고통 어린 심음을 토했다.

병사가 불에 타 바닥을 뒹굴다 죽어버렸다. 다른 병사는 후폭풍에 휘말려 내장이 터져 절명했다. 어떤 병사는 파편에 맞아 팔다리가 잘려 나가 바닥을 기었다.

과연,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은 강력했다. 그들의 폭렬마법은 왕국군 의 전열에 적중했고, 너무나도 많은 수의 병사들이 한번에 쓸려나갔다.

쯧. 도나드 글리슨 후작은 나직이 혀를 찬다.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분명 라 브리에 마법전투단의 총원은 일백 명이라고 들었는데 . 오백 중첩이라 니."

"최소한 삼백 이상은 있는 것 같습니다. 각하."

"빌어처먹을…."

보좌관의 말에 도나드는 나직이 욕지거리를 뇌까렸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마법전력은 왕국 측이 훨씬 우세했다.

방금 전 폭렬폭풍 마법은 부스터 를 이용한 일시적인 화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 만무. 도나드와 그의 측근 들은 제국의 마법전력이 예상보다 많다고 오해했다.

"좋아. 전투 방침을 변경한다."

때문에 도나드 후작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아군 마법사들은 적을 타격하는 것보다는, 적의 마법을 무효화 시키는 것에 주력하라."

계속해 마법을 투사한다면 적 제국 마법사들을 완전히 몰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후작은 마법전력을 방어로 돌렸다.

부스터의 존재를 몰랐기에 내린 잘못된 결정.

그가 이어지시했다.

"1열부터 5열까지 전진. 그리고 공성무기를 운용하라."

"명령을 따릅니다, 사령관 각하!"

쿠르르르르…

대기 중이던 온갖 공성병기가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력을 성벽 위로 올려 보내는 사다리차와 공성탑, 그리고 성문을 부수는 충차와, 성벽 그 자체를 무 너뜨리는 투석기까지.

다수의 공성무기가 움직여 적의 요새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왕국군의 군대가 앞으로 향한다.

"마법공격이 더 이상 없는데 ."

나는 적영을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폭렬폭풍 마법이 적에게 틀어박 힌 이후. 새로운 마법공격이 쇄도해 오지 않았다.

분명 놈들의 마법전력이 이쪽을 훨씬 압도하고 있는데도 마법사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니.

추측해본다.

"이쪽의 마법전력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방금 전, 적은 대규모 마법을 운 용해 이쪽을 타격하려했다. 하지만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분투로 놈 들의 공격은 무효화 되었고. 오히려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에 놈들은 제국 측의 마법전력 이 만만치 않다고 여기고 있을 것 이다. 때문에 마법전력을 일단 아끼 고 있는 것일 터고.

좋은 오해였다. 덕분에 아군 마법사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 .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적이 공성무기를 운용합니다!"

어떤 병사가 그리 소리쳤다. 그에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겨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인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왕국군 병사들. 놈들이 공성무기까지 동원 해 이쪽으로 밀고 들어온다.

공성병기의 수는 꽤나 많았다.

공성탑, 사다리차, 방벽차, 충차. 그리고….

"투석기 공격이다! 조심해!"

투석기까지.

부우우웅. 콰앙!

커다란 바위가 날아와 내가 서 있는 성벽을 두들겼다. 쿠웅 하는 소리가 울리고, 병사들의 비명소리 가 뒤를 이었다.

다행히 성벽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커다란 바위를 날려대는 투석기라 한들, 단번에 튼튼 한 석재 성벽을 부술 수는 없는 법 이다.

하지만 그것도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우우웅. 쿠웅! 쿵!

바위가 계속해 날아와 성벽을 두 들겼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성벽 이 조금씩 깨져나간다.

물론 아군 마법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공성무기부터 제거한다."

제피르가 턱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그리 읊조렸다.

그가 성벽 위에 올라, 마법을 발현한다.

"폭렬폭풍."

화륵, 화르르륵!

제피르의 배후에서 폭렬구 수십 여 개가 생성되었다. 그가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발현."

붉은색 궤적 수십여 개가 허공을 가르고, 투석기가 있는 곳에 틀어박 혔다.

콰르르릉!

다수의 폭발이 일고, 투석기와 그것을 운용하던 병사 수십여 명이 단번에 쓸려나갔다.

다른 마법사들 또한 마법을 발현. 공성무기를 제거해가기 시작했다.

콰앙! 콰르르릉!

궤적이 그어질 때마다 폭발이 일 고 공성무기가 쓰러졌다. 성문을 노리고 달려가던 충차가 무너졌다. 공성탑이 와르르 쓰러져 내부에 자리 해있던 수십의 병사들이 깔려 죽었다. 사다리차가 불에 타 쓰러진다.

하지만 공성병기를 모조리 파괴 할 수는 없었다.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공성탑과 사다리차들이 하나둘 성벽에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조심해!"

부우웅, 쿠웅!

투석기에서 쏘아진 바위가 재차 내 바로 앞의 성벽을 때렸다. 커다란 굉음이 울리고, 지면이 흔들렸다.

나는 이를 갈았다.

"염병할 놈들."

저 개같은 투석기만 어떻게 했으 면 좋으련만.

시선을 앞에 두었다.

어느새 다가온 것일까. 커다란 공성탑이 내가 서 있는 성벽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곧 저 공성탑이 성벽에 완전히 붙을 것이고, 내부의 병력을 성벽 위로 토해내리라.

나는 크게 외쳤다.

"아펠도른 천인대, 전투 준비!"

스룽, 스르릉. 철컥.

병사들이 검과 창을 들어올렸다. 그들이 곧 이쪽에 당도할 적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공성탑이 성벽에 완전히 붙었다. 직후 공성탑의 문짝이 열리고, 다리 가 놓여졌다.

"놈들이 온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려!"

병사들이 악을 내질렀다. 공성탑 안에 있는 적병들의 모습이 시야에 잡힌다.

나는 검날을 곧추세웠다.

"와라."

내가 그리 읊조림과 동시.

"와아아아아!"

"제국 놈들을 죽여버려라!"

"카렌을 위하여 !"

공성탑에서 왕국 놈들이 뛰쳐나 왔다. 놈들이 작달막한 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우르르 뛰어내린다.

그리고 나는 검을 휘둘렀다.

파앙!

막 뛰쳐나와 성벽 위에 착지한왕국군 병사의 목을 베었다. 녀석이 핏물을 뿜으며 픽 쓰러진다.

쿠웅. 진각을 밟으며 한 발자국 전진. 검날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파앙! 하고 터져 나오는 파공성. 반 월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검날.

서걱.

또 다른 적병의 옆구리가 베였다. 놈이 경렬하며 주저앉았다.

"염병할 공성탑!"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위를 둘 러보았다. 적들이 우글우글하다.

공성탑은 사다리차와 달리 한번에 다수의 병력을 뱉어낸다. 때문에 벌써 적병 십 수명이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상황.

나는 오러를 돋웠다.

화르륵.

검신을 타고 오르는 푸른색 불 길. 청아한 기운을 머금은 검날을 수평으로 누이고,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킨다.

"오러! 놈은 오러를 다룬다!"

"기사가 왜 이곳에…!"

경악하는 왕국의 병사들.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검날이 커다란 청색 궤적을 그렸다. 오러 서린 검날은 적을 경갑과 무기째로 절삭했고, 적병 일곱이 단숨에 반으로 잘려 바닥에 무너져 내린다.

철퍽, 챙그랑!

시체와 무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러를 꺼트리고, 눈앞의 적들을 도륙해갔다. 계속해 왕국군 이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오고, 공성탑에서 우르르 밀려나온다.

적들이 더럽게 많다. 보이는 족 족 죽여버렸다.

"천인장! 천인장이다!"

"저놈을 죽이면 훈장을 받을 수…."

내 계급장을 보고는 전공 욕심이 난 걸까. 적병 다수가 이쪽으로 달 려왔다.

베어버린다.

서걱, 콰직. 퍼억.

병사 서넛이 목에서, 허리에서 피를 쏟으며 무너졌다. 놈들의 시체 를 밟으며 전진.

"성벽을 장악해야 한다! 다 죽여 버려!"

시체무더기들 너머, 적 지휘관이 보였다. 계급장을 보아하니 백인장.

파악. 나는 지면을 박차고 놈을 향해 달려갔다. 녀석이 시선을 돌려 나를 발견한다.

"감히!"

놈이 검날을 휘둘러 나를 처치하 고자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오러조 차다루지 못하는 허접쓰레기. 고개를 숙여 놈의 검격을 가볍게 피하 며, 안쪽으로 파고들어갔다.

푸욱.

"꺽…."

검날을 놈의 복부, 경갑의 접합 부를 노려 밀어 넣었다. 녀석이 믿기지 않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야, 그 자그마한 틈새를 노리고 찔러 들어올 줄은 몰랐겠지.

검날을 주욱 그었다. 갑옷의 접 합부를 따라 녀석의 상처가 쩌억 벌어진다.

"컥, 커허, 커…."

놈이 바들바들 경련하며 털썩 주 저앉았다. 나는 검을 회수,

"백인장님! 염병할, 제국군 새끼 가!"

이쪽을 노리고 달려오는 적을 향 해 휘둘렀다.

서걱.

내 검날이 손쉽게 놈의 모가지를 절단한다. 놈의 핏물이 내 군복과 경갑을 적셔간다.

후욱, 후욱.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직까지 성벽은 기적적으로 방어 하고 있는 상황.

그때였다.

부우우웅. 쿠웅!

바위가 날아와 성벽을 때렸다.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성벽이 들썩 인다.

기우뚱, 몸이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지면 자체 가 기울어진 것이다.

직감했다.

'성벽이 무너진다.'

내가 그리 생각한 직후.

콰르르르르르!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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