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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17화 (117/390)

117화.

마침내 요새가 완공되었다. 나는 요새의 성벽 위에서 주변을 내려다 봤다.

분명 그리 훌륭한 요새는 아니었다.

내부 부대시설은 전무. 성문은 단 하나 뚫려있으며, 성벽의 높이 또한 10여 미터에 불과하다. 게다가 내부에 주둔할 수 있는 병력은 아무리 많이 쑤셔 넣어봐야 고작 일만 안팎.

절대 흡족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건 차라리 요새라기보다는, 높이 10미터짜리 정사각형 돌담이 라고 형용해야 할 정도로 투박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주일 만에 지은 거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합격점이지."

그야말로 기적적인 결과였다. 수천 명의 제국 공병대원들과 수백의 드워프들이 밤낮없이 일한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

내가 그렇게 요새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여기 있었구려, 한지훈."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시선을 돌려 말을 걸어온 이를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회색망치 부족의 족장, 드워프 드루바였다.

"어떤가. 이 정도면 나름대로 합격 이지 않나?"

"그래. 합격이야. 그동안 수고했어."

나는 미소 지으며 드워프 녀석을 바라봤다. 그에 녀석 또한 뿌듯한지 씩 웃어보였다.

저 녀석이 없었다면, 단기간에 요새를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했으리라.

내심 결정했다.

'미스릴 좀 잘 챙겨줘야겠어.'

저 드워프들이 이토록 열심히 일 한 이유는 희귀광물 때문이었다. 그 야 이주일 동안 죽어라 일한다면 염원하던 미스릴을 얻을 수 있으니 , 열심히 할 수밖에.

그리고 나는 부하의 노력에는 배 신하지 않는 상관이다. 추후 녀석이 만족할 정도로 보답하리라.

"그렇군. 그럼 나는 부족원들을 데리고 물러나겠다. 더 이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것 같으니 ."

"그래.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미스릴은 제대로 챙겨주지."

"고맙다, 한지훈. 이제 우리는 광산지역으로 가 그곳을 개발하고 있겠다."

"그래."

드루바가 휘하 드워프 부족원들을 이끌고 영지 방향으로 떠나간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곧 전쟁이네."

벌써 예정된 침공일이 코앞이다.

제국 곳곳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북부에서는 카렌 왕국군이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동부에서는 람셀의 군단 단위 병력이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서부에서는 트웨인 기병대가 매일같이 전투기동을 행하고 있다.

남부 해안가에서는 코르자카 공 화국의 함대가 연안까지 모습을 드 러냈다.

하나하나가 전운을 고조시키는 대규모 군사 도발. 이미 일반 민중 들까지 전쟁이 가까워졌음을 체감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곧 대전쟁이 일어나겠지."

제국은 4개 국가와의 총력전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물론 제국은 승리할 것이다. 오르페우스 제국은 100만 상비군을 보유한, 남부 대륙의 패권을 움켜진 강대국.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미 정복 전쟁 당시 질리도록 경험을 축적했기에 그 들은 노련하게 대처할 터.

하지만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동쪽 지평선을 바라봤다. 그러자 여러 깃발들이 보 인다.

"3군단, 4군단, 5군단."

북부 3개 군단이 이곳, 루벤 지방에 도착했다. 무려 6만에 달하는 거대 인파가 길게 이어지고, 보급마차의 행렬이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정말 많은 수의 인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전쟁으로 목숨을 잃을 것 이다.

후욱. 한숨을 내쉬었다.

"내부하들은 몇 명이나 살아남 으려나."

떠올리는 것은 내가 지휘하고 있는 부하들.

막 이 세상에 떨어질 때부터 같이했던 카일과 아르덴부터, 중간에 합류한 엘락, 그리고 지금은 천인대 가 되어 새로이 받아들인 또 다른 병사들까지.

나는 천인장이 되었다. 보살펴야 할 목숨이 많아졌다.

보다 커다래진 책임감. 그 육중 한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문득 피식, 하고 비틀린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이게 정말 게임이었다면 좋을 텐데."

내가 했던 게임 블랙 오케스트 라.

나는 수십, 수백만의 병력을 지휘했었다. 막대한 인간과 이인종을 죽이고, 희생시켰다. 적아 할 것 없이 대량의 목숨을 갈아 넣었다. 영토를 정복했다.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그저 모니터 너머였기에, 단순한 게임이라 여겼기에 행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 세상 속으로 들어온 지금.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과거 시나리오에서 엘리스는 나 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여왕 엘리스는 이전 시나리오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한다. 그리고 이전 시나리오의 나는, 즉 플레이어 일 적의 나는. 그야말로 학살마나 다름없었다.

그야 직간접적으로 세는 것이 두 려워질 정도로 많은 인간들을 죽여 버렸?으니 .

아마 엘리스는 나를 냉혹하고도 잔인한 인간으로 보지 않을까.

"이번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려 나."

플레이어였을 적의 나는 정복을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하는 잔혹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직접 이 세상에 들어온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 하고 있다.

흑마법사와 대적하고 있으며, 엘프와 드워프를 받아들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고민하며 성벽 위를 서성였다.

어둑한 밤, 울창한 숲 속.

두 명의 인영이 대지 위에서 있다.

두 인영은 암흑색 로브를 뒤집어 쓴 노인과, 그를 보좌하듯 서 있는 전신갑주를 착용한 청년이었다.

"한스 요한바르첸."

먼저 입을 연 것은 암흑색 로브 를 뒤집어 쓴 노인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소름끼치는 붉은색 안광을 머금고 있었다.

크라함. 흑마법 학파 불라바아의 종주. 그가 붉은색 눈동자를 돌려 눈앞의 청년을 바라본다.

그에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응답했다.

"네. 크라함 님."

"한지훈을 죽이고 싶느냐."

크라함의 말에 한스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마치 긍정하는 듯이.

클클클, 크라함이 낮은 웃음을 흘린다.

"그래. 네 맘도 이해는 한다. 복 수하고 싶겠지. 녀석의 목을 꿰뚫고 비틀어 당했던 치욕을 그대로 되갚아주고 싶겠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크라함이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완전한 검은색으로 물든 숲 속. 울창한 나무들 위로, 커다랗게 떠오른 달밤이 자리해있다.

달밤은 은은한 빛을 지면에 흩뿌 리고 있다.

그가 달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말 한다.

"한지훈의 '그릇'이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다."

"그 '그릇'이 완전히 성장하는 때 가 언제입니까. 크라함 님."

"그건 아무도 모르지. 놈이 하기에 달린 것이니."

크라함의 말에 한스는 입술을 짓 씹었다. 그의 붉은색으로 물든 눈동자에는 깊은 분노가 일렁이고 있다.

그에 크라함이 달래듯 말한다.

"오오, 한스. 걱정하지 마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 ."

크라함은 한스를 바라본다. 정확히는 한스가 휘감은 기운을.

그가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한지훈은 이전 시나리오보다도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기연을 얻어가며 말이다."

크라함은 한지훈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그는 흑마법 학파 불라바 아의 종주이자, 전생에 초월의 격을 달성했던 이. 일개 인간의 운명을 읽는 것 따위 손쉬운 일이다.

크라함이 다시금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입가에 질척한 미소가 드 리워졌다.

"한지훈은 전생의 적이었던 엘프 와 손을 잡았고, 드워프를 받아들였 지."

전의 시나리오에서 엘프와 드워프는 한지훈을 대적했기에 모든 것을 잃었었다. 영토를 빼앗겼고, 세력은 소멸되었으며, 세상 그 자체마저 파괴당했다.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과거와 달랐다.

전생의 적이었던 엘프와 드워프는 한지훈의 아군이 되어 그를 돕 고 있다.

"반면 전생의 동맹이었던 나는, 녀석과 대적하고 있으니 ."

엘프와 드워프가 전생의 적이었 다면, 크라함은 전생의 아군이었다. 그는 한지훈의 옆에서 수많은 전쟁을 보좌했고. 그 와중 막대한 격을 얻어 초월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달랐다.

지금의 한지훈과 크라함은 명백한 대적 관계였다.

과거의 동맹은 적이 되었고, 과거의 적은 동맹이 된 상황.

과거와 현재의 엇갈림.

"재미있군."

크라함이 재차 웃는다. 그가 고 고히 떠오른 거대한 달을 바라보며 읊조린다.

"기다려라, 한스. 아직 때가 아니다. 달이 더욱 커다란 힘을 머금고, 광기의 세계가 도래할 때. 그때가 바로 네가 나설 때다."

크라함의 말에 한스는 고개를 숙 인다.

흑마법사의 세력은 광기의 시대 를 기다린다.

"기병 정찰부대에서 정보가 들어 왔다. 카렌 왕국 놈들이 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스카가 입을 열어 그리 말했다.

지금 나는 아펠도른 요새 내부 회의실에서 군단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놈들의 병력은 4개 군단, 약 8만여 명이다. 빠르면 이틀 뒤, 늦으면 사흘 뒤 놈들이 쳐들어올 거다. 대비해야만 하지."

나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회의에 참석해있는 군관들의 모습이 보인다.

보병대 천인장, 기병 연대장, 군단 참모들의 모습.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긴장에 굳어있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무려 8만의 왕국군이 루벤 방향으로 쳐들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스카가 지휘봉으로 지도를 짚었다.

"먼저, 우리의 역할을 알려주겠다. 우리 북부 제 3군단의 임무는 바로 요새의 사수다. 아펠도른과 아 델 요새.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아펠도른 요새는 기존에 있던 요새였고, 아델 요새는 이번에 드워프 들이 만든 간이 요새를 뜻했다.

오스카가 다시금 지도를 주시했다. 내가 만들었던 전술지도를 보완 하고 개량한, 더욱 정밀해진 대형 전술지도였다.

그가 지휘봉으로 지도를 재차 짚 으며 고한다.

"아펠도른 요새와 아델 요새에서 적의 주력군을 묶어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머지 4, 5군단이 좌우에서 전진. 적의 측면과 배후를 쳐 제압한다."

간단하게 말해 망치와 모루였다.

요새 두 개를 지키는 우리 3군단 이모루 역할. 나머지 4군단과 5군단이 망치 역할이었다.

지금 행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략이다.

비록 요새를 하나 더 축성했다 하나, 그래봤자 중형 요새에 불과하다. 평시 주둔하는 것은 천인대 규모가 끝이요, 무리해서 병력을 꽉꽉 채워 넣는다 한들 1만이 끝이었다. 요새가 두 개이니 도합 2만의 병력을 집어넣는 것이 고작.

나머지 병력은 적극적으로 운용 해적을 섬멸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한 군관이 질문했다.

"군단장 각하. 아군 기사들의 수 가 어떻게 됩니까?"

"기사는 약 이천여 명이 동원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3군단에 배치된 기사는 없지. 기사들은 모두 회전에 동원될 것이니."

"그렇다면 요새에는 마법사들이 배치됩니까?"

"그렇다. 요새들에는 마법사들이 배치된다. 아펠도른 요새에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아델 요새에 셰르베 야전투마법단이 배치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 제피르가 이끄는 마법학파. 그들의 화력은 믿을만하다.

더해 셰르베야 전투마법단이라… 라브리에 전투마법단보다는 한 끗발 달리지만, 그들 또한 정복 전쟁 당시 활약했던 명성 높은 전투마법 단이다. 큰 전력이 아닐 수 없다.

탁! 오스카가 지휘봉을 내려놓으 며 말했다.

"좋아. 이제 병력을 배치하고 전투에 대비한다. 다들 긴장하게. 우리 요새가 적 주력군을 붙들지 못 한다면, 나머지 주력군들도 적의 군 세에 휩쓸려 소멸할 거다. 반드시, 요새를 사수해야 한다."

오스카의 브리핑이 끝남과 동시.

?띠링!

[서브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

[아펠도른 요새를 사수하라.]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이번에는 요새 방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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