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회의가 끝난 뒤. 나는 내 영지 관사로 향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왔다는 연락 때문이었다.
그곳으로 가자 나는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회색망치 드워프 부족의 족장 드루바라고 한다. 반갑소."
드워프였다.
그의 외양을 살폈다.
길게 자라있는 수염은 잘 묶어서 정리되어있다. 키는 땅딸막했고, 팔다리 또한 짧았다.
하지만 그 작은 키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우락부락하고 단단 해 보이는 근육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두터운 바위 같은 체 형이라고 할까.
"반갑다. 드워프 드루바. 나는 이곳 라이젠 남작령의 영주 한지훈 라이젠이라고 한다. 더해 제국군 천 인장 계급을 가지고 있지."
나는 그와 악수했다. 그의 손아 귀 피부는 꽤나 억셌다.
- 띠링!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드루바][회색망치 부족 족장]
역시나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그 말인 즉, 녀석은 내가 기억하는 그 드루바가 맞다는 것일 터.
나와 드루바는 응접실 한켠에 앉 았다. 그가 거두절미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희귀금속을 찾으러 왔다. 그, 광맥이 발견되었다는 말. 정말 사실인가?"
바로 앉자마자 용건이라. 성질이 꽤나 급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미스릴을 비롯한 희귀금속들은 대 장장이들에게 있어 일생에 한번만 이라도 다루고 싶은 재료일 터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렇지. 내 영지의 북쪽 산맥에서 여러 광맥을 발견했다. 개중에는 희귀금속들도 포함되어 있었지."
"으음… 솔직히 믿기지 않소."
그가 신음하듯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 대륙을 뒤져 미스릴을 찾아다녔 소.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미스릴을 발견할 수 없었지. 그만큼 귀한 금속이었으니까."
드루바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드루바의 눈동자 속에서는 절절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만큼 미스릴을 찾는 과정이 순 탄치 않았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와중, 당신의 영지에서 미스릴을 비롯한 여러 희귀광물 이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 희귀광물들을 얻고 싶다. 이건가?"
"그렇소. 엘프들이 말하기를, 당신을 돕는다면 희귀금속을 배분해 준다 하던데."
"맞다. 나는 나를 위해 일하는 장인들에게 금속을 나누어 줄 것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엘프들을 통해서 조건을 걸었다. 희귀금속을 나눠주는 대신, 주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요청들을 들어달라고.
그에 드워프가 대답했다.
"인간인 당신이 우리 드워프들에게 원하는 것이라면,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겠지. 뭐든지 요청만 하시오. 그게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 해 만들어 주지. 미스릴만 준다면 말이오."
"좋아."
보아하니 미스릴을 간절히 원하는 듯싶다. 하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미스릴이니까.
"다만."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나 를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드루바가 요청한다.
"먼저 증거를 보여줬으면 좋겠소 만."
"증거라면?"
"그대의 영지에서 희귀금속이나 온다는 증거 말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속에서 가죽주머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왔다.
드루바는 주머니를 풀어 뒤적거렸다. 곧 그의 손바닥에 손톱만 한 금속 세 개가 올려진다.
드루바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 이건, 오 오오…!"
감탄하는 드루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알 수 있겠지."
"정말, 정말 미스릴이군… 그리고 이건 오리할콘, 이건 아다만티 움…."
드루바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 해간다. 나는 그 꼴을 보고는 하마 터면 웃어버릴 뻔했다. 그만큼 녀석 의 황홀해하는 표정이 썩 웃겼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돌조각을 만 지작거리고는, 아쉽다는 듯 내게 주머니를 돌려줬다.
"확실히 확인했다. 분명 희귀금속들이군."
"그럼 이제 나를 위해서 일할 건가?"
"그렇다. 나 드루바! 그리고 우리 회색망치 부족은 앞으로 그대와 함께 일하겠소."
"좋아."
나는 씩 웃었다.
회색망치 부족. 삼백 명이 약간 넘는 수의 드워프가 소속되어 있는 부족이다.
고작 삼백이라고 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삼백의 드워프란 몹시나 많은 수였다.
'고작 백 명이서, 군단 단위의 병 장기를 모두 충당 할 수 있으니 . 말다했지.'
드워프의 생산능력을 전 종족 제일이었다. 녀석들은 무언가를 만들 고 수리하는 것에는 그야말로 천부 적인 재능을 지녔다.
커다란 교량이나 높다란 성채 부터, 작디작은 장신구들까지. 그들의 손재주는 섬세했고, 근력은 강대했 으며, 공학적인 지식 또한 풍부했다.
그야말로 대륙에서 둘째가면서 러울 기술자들. 그것이 바로 드워프 란 종족인 것이다.
"좋아, 드루바. 당신과 회색망치 부족을 환영한다."
나는 웃으며 재차 악수했다. 문득 드루바가 물었다.
"그럼 우리 드워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지? 광산개발? 토지정리? 아, 보아하니 그대의 영지에는 영주성조차 없더군. 영주성 이라도 건설해 줄까?"
마침내 미스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몸이 달은 것일까. 녀석이 의욕을 보인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 요새를 좀 지어줬으면 하는데 ."
제국 공병대 소속 공병, 루비안. 그는 행군하는 와중 투덜거렸다.
"미친 거 아니냐? 이주일 안에 요새를 지으라니."
"뭐. 상부도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그런 그의 투덜거림에 동료 공병 이 맞받았다.
루비안은 제국 공병단 소속이었다. 평소 보급로를 위한 도로를 깔거나, 요새를 증축하거나, 공성병기 를 만들던 이들.
그들 공병단 수천여 명은 아펠도른 요새 인근 공터를 향해 행군하는 중이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요새 축 성. 그것도 고작 이주일 안에 하라 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주일이면 목책 세우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야. 그런데 석재 요새 를 지으라니? 나 원 참."
"까라면 까야지."
"아니!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 땅은 언제 갈고, 요새를 쌓는 석재는 어디서 구하 며…."
루비안의 말은 합당했다.
무려 수천의 공병들을 투입했다 고 하나. 이주일 만에 요새를 축성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요새란 것은 고작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규모에 맞는 노동력과 그에 상응하는 물자를 소모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헌데 이주일 안에 요새를 축성하 라니.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짓는 간이 요새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봐 도 무리인 일이었다.
그렇게 루비안과 그 동료 공병들 이불만을 토로하며 행군해갈 때였다.
"…야. 저기 뭐냐?"
"뭐가."
"저기.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 있잖아."
문득 한 공병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에 루비안이 시선을 돌려 동료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상한 무언가가 보인다.
"… 뭐지, 고블린인가?"
꽤나 먼 거리였기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키가 꽤나 작아 보인다.
자신의 허리까지 올까 싶은, 몹시작은 키를 가진 아인종들. 그에 병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고블린 새끼들이 나타나다니. 이 근방 천인대는 뭘 하는 거야? 저딴 저급한 마물들이 활보하다니."
"일단 무장 챙겨. 제압하고 움직여야 해."
"전투 준비!"
공병대장이 소리치고, 병사들이 하나둘 병장기를 준비했다.
그들 공병의 주 임무는 시설의 설치와 보수였지만, 그렇다 한들 그 들 또한 군인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전투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삼백 여 명의 인영은 그 키를 보아 고블 린으로 추청되는 상황. 그에 전투를 준비하는 제국 공병대였다.
허나 잠시 후.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저것들, 고블린이 아니야!"
"… 설마. 드워프인가."
"그럴 리가!"
그들의 가까이에 다가온 이들은 고블린이 아니었다.
작달만한 키를 가졌다는 것은 고 블린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덩 치는 고블린처럼 왜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작은 키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무지막지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전신을 뒤덮은 것만 같은 우락부 락한 근육. 기다란 턱수염. 부리부 리한 외양까지.
분명 이야기로나 들었던 드워프 들이었다.
"맙소사. 드워프가 이곳에 왜…."
병사들은 그저 신기하다는 눈으로 드워프들의 행진을 바라봤다.
드워프. 사실 엘프와 달리 인간 의 영역에서도 간간히 보이곤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장인이었고, 그렇기에 다양한 기술과 양식을 접하 기 위해 인간의 영역 여러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런 드워프들이 있는 곳은 제국이나 왕국의 조병창, 혹은 황실 직속 공방들 같은, 정말 중요한 장소들밖에 없을 터인데.
그런 드워프들이 이 아무것도 없는 오지에 무려 삼백여 명이나 나타났다.
제국군 병사들이 그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너희들이 공병대인가?"
드워프 중 하나가 접근해 입을 열었다. 병사들은 그 드워프의 모습을 살폈다.
자리해있는 드워프들 중 가장 덥 수룩한 수염을 가진 이였다. 그는 허리춤에 걸린 작업대를 덜렁거리며 코앞까지 걸어와 제국군 병사들에게 고한다.
"내 이름은 드루바! 회색망치 드워프 부족의 족장이자, 너희들을 감독하게 된 드워프다."
"드워프가 감독한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걸 봐라."
드루바는 품속에서 서류 두 장을 꺼내 병사들에게 보여줬다. 병사는 서류를 받아 공병대장에게 건냈고, 공병대장은 서류를 확인하고는 허 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게 무슨…."
"서류를 보면 알겠지만, 그대들을 지휘하라는 그쪽 대장의 명령이다."
드루바가 내민 서류는 공병대 임시 감독관 임명서류였다. 그 말인 즉, 이 요새 축성 작업에 한해 드워프가 그들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드워프 드루바가 크게 외쳤다.
"자! 꾸물댈 시간이 없다! 빠릿빠 릿하게 움직인다!"
제국군 공병대원들과 드워프들이 공사를 시작했다.
* * *
"상상도 못했어. 한지훈 천인장. 설마 그 드워프를 끌어들일 줄이야."
"놀라셨습니까?"
"놀라다마다! 요새 건설현장에 가보니 드워프 삼백이 공병대원들 과 함께 요새를 축성하고 있는데 . 놀라지 않고 배기나?"
"뭐. 희귀광물을 미끼로 끌어들였습니다. 덕분에 간신히 시간에 맞줄 수 있을 것 같군요."
나는 오스카 군단장과 함께 요새 건설현장을 둘러보았다. 절로 만족 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요새가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몹시 빨랐다.
"땅을 고르는데 하루, 석재를 잘라오는데 사흘. 정말 미친 속도 로군…."
지금 이 요새 터전에는 무수히 많은 석재가 널려있었다. 드워프들 이 서쪽 산맥 암석지대에서 잘라 날라온 석재들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조금씩 성벽 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드워프들, 일정말 잘하는군."
오스카가 그리 중얼거리며 건설 현장 한켠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창 작업을 진행 중인 드워프들이 보였다.
드워프들이 커다란 석재를 질질 끌고 왔다. 그것을 다른 드워프들이 아티팩트인 여러 공구들로 슥슥 잘 라 다듬어내고, 그것을 둘이서 옮겨 성벽을 쌓아갔다.
자기 덩치만 한 석재를 둘이서 가볍게 옮겨 쌓아간다니. 마치 레고 를 조립하는 것처럼 손쉬워 보인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공병대원들을 바라본다면.
"염병! 돌 제대로 다듬으라고!"
"아니, 이걸 어떻게 쌓습니까?"
정말 힘든 일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드워프 또한 한계까지 움직여 요새를 축성하는 것이었다.
단 이주일만에 요새를 만들라는 것. 평범한 일반 공병들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드워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
"물론 요새를 최대한 단순하게 지은 덕분도 있지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말했다.
사실 지금 짓고 있는 요새는 그리 튼튼하지 않았다. 벽은 그리 두 텁지 않았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대규모 병력이 주둔할 수도 없으며, 성벽의 높이 또한 십여 미터에 불과한 수준. 게다가 내부 부대 시설은 만들 시간이 없어 천막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말 그대로, 당장 급하기에 최대한 간결하게 만든 요새.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요새를 만들 수 있었다.
"야전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요새에서 전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법이니까요."
아무리 최대한 간단하게 지은 요새라지만 그럼에도 요새다. 일반 야전과 비교해 방어력에서는 천지차 이일 터.
나는 싱긋 웃었다.
"이 정도면 카렌 왕국 놈들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점차 요새의 성벽이 올라간다.
카렌 왕국의 침공이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