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한지훈 님."
내가 요정을 통해 마일루를 부르 자, 녀석은 고작 반나절 만에 영지에 도착했다.
다른 지방에 상행을 나가있던 상황이라고 들었었는데, 몹시 빠른 속도였다. 아마도 마법을 이용해 움직 인 듯싶다.
녀석을 집무실 안으로 들이고는 곧장 물었다.
"마일루. 요정에게서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알키온 후작가 와 마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게 어딜 봐서 마찰이냐? 놈들 이 일방적으로 개수작을 걸어온 거지."
알키온은 재무성의 고위 인사를 움직여 내 영지를 등쳐먹으러했다. 오직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말이다.
녀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알키온 놈의 수작질 때문에, 다른 상단들과는 거래를 트 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너희들과 거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 마일루 상단과 말입니까?"
다른 상단들이라면 알키온 후작 가의 압력 때문에 거래를 하기 힘 들겠지만, 마일루의 상단은 주로 마법사들을 상대로 거래한다했다. 그리고 본디 마법사란 족속은 정치적인 것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일루 상단이라면 알키온의 압력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너희 마일루 상단. 규모가 어떻게 되지?"
"규모라…."
그는 턱을 괴며 고민하고는, 대답했다.
"사실상단의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진 않지요. 저희는 마법 아이템과 아티팩트들을 전문으로 유통하니 말입니다."
사실 마일루 상단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상단주인 마일루가 직접 마차를 끌고 전쟁터에 종군하 는데 그 규모가 클 리 없지 않은 가.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희의 자본규모는 꽤나 큰 편이지요."
마일루가 주로 다루는 물건은 마법 아이템 및 아티팩트 등이다.
눈알이 빠져나올 정도로 비싼 물건을 다루는 마일루의 상단이었다. 때문에 녀석의 상단규모 자체는 작 을지언정, 굴리는 돈은 꽤나 많다 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 물었다.
"너희 마일루 상단이 북쪽 산맥의광물자원을 유통해줬으면 하는데 . 가능하나?"
"흐으음…광물, 광물자원이라…."
마일루는 잠시 고민했다.
물론 내 영지에 잠들어있는 광물 자원은 그 가치가 결코 낮지 않았다. 순도 높은 철광석과 마나석, 더 해 각종 희귀금속들까지. 그 어떤 상단으로 가던 환영할 만한 거래품 목이었으니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광물'자원'이었지, 완제품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일루는 어디까지나 완제품을 유통하는 상인.
"힘들 것 같군요. 자원유통은 꽤 나 커다란 상단 아니라면 힘들 겁 니다. 저희는 아직 대장간들까지는 거래처를 뚫어놓지 않았으니 말입 니다."
"역시 그런가."
"뭐, 희귀금속이라면 저희도 유통 할 만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철광 석과 마나석을 포기하기는 힘들겠 지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반쯤 예상하던 일이었다. 알키온 후작가의 압력은 둘째 치고, 마일루의 상단은 재료까지 유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큰 규모의 상 단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완제품을 만들면 될 일 이다.
"마일루. 너희 엘프들은 드워프와 의 관계가 어떻게 되지?"
"드워프…말입니까? 그리 관계가 좋지는 않습니다만…."
"연락은 할 수 있지?"
"네. 연락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요."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드워프 부족들과 연락해줬으면 하는데 ."
드워프. 작은 키와 덥수룩한 털을 가진 이인종.
정말 유용한 종족이 아닐 수 없다.
개체 하나하나가 장인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대장장이이자 기술자들이다. 그들이 있다면 영지의 발전은 물론. 전쟁 준비도 보다 수월 하게 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부족을 이곳, 라이 젠 남작령 내에 불러들일 셈이다.
"드워프들에게 알려. 이곳 루벤 지방에 각종 희귀자원이 잠들어있다고. 그렇다면 녀석들을 이 영지에 정착시킬 수 있겠지."
나는 내 영지에 드워프들을 유치 하려 한다.
"족장! 족장!"
쿵쿵쿵! 한 키 작은 난쟁이가 발 소리를 쿵쿵 울리며 동굴 안을 달렸다.
땅딸막한 키에 작은 덩치. 하지만 그의 몸에는 온통 근육이 우락 부락하게 잡혀있었다.
그는 회색망치 부족의 부족원 드워프, 데브였다.
데브는 계속해 발소리를 울리며 달려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동굴 깊숙한 곳. 이 부족의 족장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족자앙!"
쿵! 그가 거칠게 동굴 속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갈색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또 다른 드워프가 보인다.
방안으로 들이닥친 데브가 입을 열어 외쳤다.
"드루바 족장! 소식 들었슴까?"
"소식? 무슨 소식 말이냐."
드루바라 불린 난쟁이가 고개를 들어올려, 말 건 자신의 부족원을 바라봤다.
회색망치 부족의 족장 드루바. 그는 이곳 삼백여 명의 드워프들을 통솔하는 족장이었다.
그의 물음에 부족원 데브가 대답했다.
"희귀금속 광맥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희귀금속 광맥이라. 무슨 광맥이 지?"
드루바는 시선을 돌려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그의 앞에는 기다란 장검이 자리해 있었다.
부족의 족장인 그가 심혈을 기울 여 만든 아티팩트 보검이었다. 하지만 검은 아직 미완의 상태였다.
그가 검날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미스릴, 아다만티움, 오리할콘!"
"… 그래서. 그 희귀금속들 중 무슨 광맥이 발견되었는데 ."
"모두 다!"
드루바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족원을 바라봤다. 그의 눈가가 찌푸 려진다.
"희귀금속 광맥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군."
희귀금속은 괜히 희귀금속이 아니다. 그만큼 희소한 자원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미스릴, 오리할콘, 아다만티움. 셋 다 몹시 비싼 값어치를 지닌 광 물들이다. 대장장이들에게는 꿈의 금속이라 불리며, 상인들에게는 유 통하기만 한다면 막대한 재화를 얻을 수 있는 귀한 광물들.
그런 광물들이 단번에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니. 차마 믿기 힘든 일이다.
그에 데브가 외쳤다.
"정말임다! 남대륙 인간의 영역에서 커다란 광맥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희귀금속들도 잠들어 있다 고 들었습니다!"
"어디서 들은 소문이지?"
"그게…."
족장의 물음에, 데브는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꺼리는 기색. 드루바가 지그시 바라보자 결국 그는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가 알려줬슴다."
"엘프? 하! 그 젓가락같이 빼쩍 마른 놈들의 말을 믿는 거냐? 괜히 기대했군."
드루바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금 자신의 장검을 매만졌다. 그에 부족원 데브가 발끈했다.
"하지만, 그 엘프들이 정말이라고 장담했단 말입니다! 엘프가 재수 없는 건 맞지만. 어지간해서 거짓말 하지는 않잖슴까. 한번 믿어 봐도 좋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드루바는 단호한 얼굴로 데브의 말을 부정했다.
사실, 엘프와 드워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서로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드워프는 엘프를 향해 젓가락이 라거나, 고귀한 척하는 재수 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 했고. 엘프는 드워프를 땅 파먹고 사는 난쟁이 놈들이라며 비웃었다.
그렇게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두 이인종이니. 족장 드루바가 엘프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에 부족원 데브가 말한다.
"하지만 족장, 족장도 그 아티팩트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금속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드루바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장검을 바라봤다.
꽤나 고급스러운 장검이었다. 검 날의 광택은 유려했고, 이곳저곳에 장식되어있는 양각과 음각은 섬세했다. 더해 검신의 혈조를 중심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복잡 괴괴한 마나 회로까지.
그것은 분명 명검이었다.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족장이 그 검 하나에만 몇 년을 매달린 겁니까? 이제 슬슬 완성해 야 합니다. 미스릴만 있으면 완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말 필요한 자원인 여러 희귀금 속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다만티움과 마나석은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한 끝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스릴만은 도무지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드루바의 아티팩트는 검을 만들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미완의 상태.
데브가 말한다.
"밑져야 본전이지 않습니까. 그 광맥이 있다는 곳에 한번 찾아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슴다."
"밑져야 본전이라."
족장 드루바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이미 자신의 역작을 완성하기 위해 소비 한 시간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무려 수년. 그는 수년 동안 새로운 작품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오직 재료인 미스릴을 찾아 헤맸었다.
"그래. 확실히 네 말대로다. 밑져 야 본전이지. 이렇게 앉아있을 바에 한번 가서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드루바다. 만약 엘프의 말이 거짓이라 한 들. 지금까지 버렸던 시간에 비한다 면 그리 큰 손해도 아닐 것이다.
만약 엘프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 할 나위 없는 일이었고.
드루바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부 대륙이라고 했지."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장검을 만지작거린다.
회색망치 부족의 족장 드루바. 그는 남부 대륙행을 결심했다.
"별로 반응이 좋지는 않네요. 온 다는 부족이 없어요."
마일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쯧 혀를 찼다.
"너희 엘프들이 얼마나 드워프와 사이가 안 좋았으면, 온다는 드워프 부족이 하나도 없냐? 제대로 전한 거 맞아?"
"네. 소식은 제대로 전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저희 엘프와 드워프의 사이가 나쁜 건 하루이틀이 아니니까요."
녀석의 말대로 엘프와 드워프 사이가 나쁜 것은 꽤나 유명했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모욕을 일삼을 정도라 하니.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까짓 땅 파먹고 사는 난쟁이 놈들이 없어도, 인간 대장장이들을 수배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드워프가 훨씬 나은데."
내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인간 대장장이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한들, 드워프의 기술을 따라갈 수는 없다.
미스릴을 비롯한 희귀금속들은 그 가치가 너무나도 막대했다.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가급적 인간 대 장장이보다는 드워프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래야 보다 더 나은 품질의 아티팩트들을 얻을 수 있을 테 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온 다는 드워프 부족은 없었고, 영지는 당장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는 나중에 영입해야 하나……"
영지가 더 발전하고, 내 영지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면. 그때쯤이면 드워프들도 오겠지.
그리 생각하며 드워프 영입을 미 루려 할 때였다.
"아…! 잠시만요, 한지훈 님.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마일루가 그리 말하며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역시나 통신용 수정구였다.
과연 돈 많은 상인이라는 것인 가. 녀석 또한 저 비싼 통신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었다.
잠시 통신하던 마일루가 떨떠름 한 기색으로 알려왔다.
"저, 한지훈 님?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만."
"무슨 소식이지?"
내가 묻고, 마일루가 대답한다.
"중앙 대륙의 드워프 부족 하나 가 이곳으로 오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저희 엘프들이 녀석들을 마법으로 이동시키는 중이죠."
"그래? 다행이네. 어디 부족이 지? 부족 구성원들의 숫자는?"
나는 기뻐 미소 지었다.
고작 한 개 부족에 불과하다만. 그 한 개 부족에 소속된 드워프의 수가 적다면 수십, 많다면 백 단위 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드워프들만 있어도 광산을 개발하고 아티팩트를 생산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마일루가 이어 말한다.
"회색망치 부족이라는 곳입니다. 구성원 수는 삼백 명이 약간 넘고, 드루바라는 늙은 드워프가 족장으로 있는 곳이죠."
"잠깐만, 회색망치 부족이라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부족의 이름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