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군단장 각하."
오스카는 자신을 부르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른 것은 그의 부관이었다.
부관이 입을 열어 알린다.
"아펠도른 천인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임무 보고라는군요."
"그래. 임무 보고라."
덜컹.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전, 오스카는 아펠도른 천인대에게 어떤 임무를 하달했었다.
다름 아닌 크라그 연대의 수색섬 멸.
그는 비콘을 향해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한 데."
아펠도른 천인대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은, 그가 지시했던 임무에 대한 결과 보고일 것이다.
오스카는 비콘에 다가가 통신을 연결했다. 곧 수정구가 푸른색으로 일렁이며 통신이 연결되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스카다. 한지훈 천인장, 결과 보고인가?"
- 그렇습니다. 군단장 각하.
익숙한 한지훈의 목소리. 그에 오스카는 물었다.
"좋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군 그래, 한지훈. 임무는 어찌 되었 지?"
그는 신변잡기나 다름없는 잡담 조차 하지 않은 채 곧장 용건을 물었다.
크라그 연대. 과거 정복 전쟁 당시 제국군 군관들을 괴롭혔던 정예 부대였다.
그런 크라그 연대를 상대하기 위해 오스카는 한지훈의 아펠도른 천인대에 임무를 부여했다.
한지훈. 그는 자신의 수하들 중 가장 막대한 무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개인의 무력은 기사단장 급에 준하며 그전술적 능력 또한 뛰어난 이.
그렇기에 오스카는 한지훈에게 건 기대가 막대했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다름 아닌 크라그 연대. 분명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리라. 때문에 오스카는 한지훈에게 기대하는 한편, 초조한 마음을 가지지도 했었다.
그만큼 크라그 놈들은 위험한 상대였기 때문에.
곧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희 아펠도른 천인대의 크라 그 연대 사냥경과를 보고합니다.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지훈의 말을 기다린다.
- 크라그 연대는 완벽히 청소되 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군단장 각하. 크라 그 연대의 병사 도합 팔백을 처치 했고, 오십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더해 열 명의 백인장을 처치했으 며…
오스카는 기쁨에 절로 미소가 지 어지는 것조차 잊은 채 한지훈의 말에 집중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크라그 연대의 천인장까지 사 로잡았습니다. 군단장 각하.
"그게 정말인가! 연대장까지 생 포했다고?"
오스카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크라그 연대를 완전히 격파한 것 으로도 모자라, 놈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연대장까지 사로잡다니.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소식을 과거 정복 전쟁 당시 카렌과 전투했던 군관들에게 전한다면, 그들 또한 기뻐할 것이리라.
그만큼 크라그 연대의 악명은 대 단했고. 그런 크라그 연대에게 당했 던 경험을 지닌 군관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 그렇습니다, 군단장 각하. 저희 천인대는 놈들의 연대장인 더스틴 크레이그 연대장을 생포했습니다.
기뻐 미소 짓는 오스카의 표정과 대비되게, 한지훈의 어조는 썩 담담했다. 마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는 듯 건조한 태도.
하지만 그런 한지훈의 담담한 태도조차 호감으로 다가오는 오스카였다.
"잘했다, 한지훈. 정말 잘했어! 설마 그 크라그 연대 놈들을 격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연대장 놈까지 생포할 줄이야…."
오스카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부관을 바라봤다. 그의 부관 또한 이어지는 통신의 내용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크라그 연대. 제국 북부전선의 악몽이라고도 불리던 악랄한 부대다. 그런 놈들이 전면전 와중도 아닌 이런 전초전에서 완전히 격파되 었다니.
오스카는 한지훈과 통신을 계속 이어나갔다.
* * *
'엄청 기뻐하네.'
나는 그리 생각하며 통신을 계속했다.
오스카 군단장에게 방금 전 있던 일을 보고했다.
적 크라그 연대의 완전 격파. 놈 들의 지휘관인 백인장 열 명사살, 더해 연대장 생포까지.
그 모든 것을 들은 오스카는 정말로 기뻐했다.
- 좋아, 한지훈. 자네와 자네의 천인대에게 금일봉을 하사하지.
오죽 기분이 좋았으면 금일봉까 지하사할까.
하긴, 오스카는 정복 전쟁에 참전했던 베테랑 군관이었다 한다. 그 가 전쟁했던 곳이 바로 다름 아닌 카렌 왕국. 당시 오스카는 카렌 왕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이어갔을 것 이고. 그 와중 크라그 연대에게 당 했던 적이 있었으리라.
그만큼 오스카에게 있어 크라그 연대는 오랜 숙적으로 비추어졌을 터. 그가 저토록 기뻐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과거 자신에게 커다란 피해를 안 겼던 부대를 제거한 것이었을 터이 니.
- 그리고. 자네에게 훈장이 나올 것이다.
"훈장 말입니까?"
- 그렇다. 그 크라그 연대를 완전히 격파했으니 . 훈장 정도야 그리 큰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다. 아마 제국 용맹장이나 은성훈장 정도가 나오겠지.
오스카는 퍽 대단하다는 듯이 말 했지만, 사실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훈장이야 이미 많이 받았다. 당장 최상격인 제국 금성훈장을 두 개나 받은 상황인데, 다른 하위격 훈장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뭐, 있으면 좋긴 하지만.
- 아아… 그리고 그 크라그 연대 장이라는 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가?
"그렇습니다, 군단장 각하. 크라 그 연대장의 생명은 아직까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팔다리를 못쓰지만, 적어도 숨은 붙어있다.
- 그렇다면 심문작업을 진행해야 겠지.
"이쪽에서 진행합니까?"
- 아니. 녀석은 연대장이다. 그것 도 카렌 최정예 부대의. 아마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그 고급정보들을 온전히 뽑아내기 위해 마법사 를 운용할 거다.
마법사를 이용한 심문작업. 과거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자주 해본 일 이었다.
당시에는 주로 흑마법사들을 시 켜 정보를 뽑아냈었는데 . 아무래도 일반 백마법사들도 정보추출 작업을 할 수 있나보다.
그가 말한다.
- 지금 자네의 영지에 제피르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어있다고 들었다. 맞는가?
"그렇습니다. 제피르 마법단장께서 저희 영지의 광물자원 조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 좋아. 내가 제피르에게 미리 연락해두지. 제피르가 영지 조사를 마친 뒤, 정보추출 작업에도 참여할 거다.
"알겠습니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잘 해냈다, 한지훈.
그 말을 끝으로, 오스카와의 통신이 끊겼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 덜었네."
당장 영지를 위협하던 크라그 연대를 완전히 삭제시켜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영지를 발전시키는 것뿐.
나는 1번 백인장 엘락에게 물었다.
"엘락. 사로잡았던 연대장 놈의 상태는? 숨은 아직 붙어있지?"
"그렇습니다. 녀석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잘 관리해. 연대장 놈에게서 뽑아낼 정보가 꽤나 많을 테니까."
곧 제피르가 와서 연대장에게서 정보를 추출한다면, 전쟁 전 고급정 보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제피르를 기다린다.
"크라그 연대가 전멸했다고!"
중년인은 그리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외양은 퍽 고풍스러웠다.
짙은 금발. 갈색 눈동자. 허리에는 커다란 대검을 차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갑주는 온갖 장식이 붙 어 화려하게 번쩍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군. 크라그연대가 상대했던 건 네임드 부대도 뭣도 아닌, 그저 요새를 수비하는 일반 보병 천인대라고 들었거늘…."
그는 카렌 왕국 동부군 총사령 관, 도나드 글리슨이었다.
카렌 왕국의 후작위를 가진 귀족 이자, 10만의 대병력을 지휘하는 이.
그의 시선이 자신의 바로 앞, 보고해온 병사에게로 향한다. 병사가 이어 말했다.
"아펠도른 천인대의 지휘관이 오 러를 다룬다 합니다. 사령관 각하."
"오러를 다룬다라. 하지만 크라그연대의 지휘관들 또한 오러를 다뤘을 터인데."
"맞습니다. 하지만 아펠도른 천인 장의 경지가 심상치 않았다고…."
최근, 도나드는 전쟁을 준비하는 와중에 있었다.
제국과의 전쟁이 가깝다. 이미 자신이 소속된 국가인 카렌 왕국을 포함한 4개 국가가 그리 머지않아 제국을 침공할 것이었다.
때문에 도나드는 다수의 정예부 대를 운용. 여러 접경지대를 주기적 으로 정찰하며, 침공 전 정보를 얻 고 있었다.
헌데 그 정예부대들 중 하나인 크라그 연대가 전멸했다 한다.
그가 눈가를 찌푸렸다.
"곤란하군. 크라그 연대가 맡았던 루벤 지방은 총독령으로 향하는 가장 큰길목이다. 헌데 장악에 실패 했다니…."
루벤 지방은 가장 유력한 침공로 중 하나였다.
카렌 왕국이 제국을 치는 군대는 크게 두 개였다.
하나는 요한바르첸 총독령으로 향하는 동부군 4개 군단, 약 8만여 명. 다른 하나는 제국 본토로 향하는 남부군 6개 군단, 12만여 명.
도합 20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 이, 제국과 그 식민지인 요한바르첸 총독령을 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천인대 하나가 완전 격파될 줄 이야.
그것도 정예 중에 정예라고 불리는 크라그 연대를.
"…뼈아픈 손실이군."
고작 10만의 대군세 중 천 명에 불과한 손실이라 여길 수도 있다. 허나 크라그 연대의 가치는 그 숫자보다도 질에 있었다.
동부군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크라그 연 대였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베테랑 이었으며, 심지어 지휘관들은 오러 까지 운용했다.
그런 크라그 연대가 격파당하다 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집무실 한켠에 걸려있는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에는 요한바르첸 총독령, 루벤 지방에 붉은색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다.
카렌 왕국의 침공로를 표시해둔 화살표였다.
그는 지도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비록 크라그 연대가 전멸하고, 침공 전 루벤 지방을 장악하지 못 했다만. 그렇다고 루벤 지방을 포기 할 수는 없다."
루벤 지방은 가장 수월하게 왕국 군이 진입할 수 있는 접경지대 지방이다. 비록 크라그 연대를 잃었으 나, 그럼에도 진군해야 한다.
그가 지시한다.
"이주일 뒤 침공이다. 전 군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침공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그리 머지않아 10만에 달하는 군대가 루벤 지방으로 향할 것이다.
그는 우묵한 눈으로 지도를 바라 보았다.
마침내 광물자원 조사를 마친 제피르가 요새로 찾아왔다.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제피르 마법단장 각하. 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끝내고 왔지."
제피르는 언제나처럼 연초를 입에 꼬나문 상태였다. 그가 연기를 내뿜으며 의자에 앉는다.
문득 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자네, 알고서 이 영지를 선택한 건가?"
나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제피르는 내가 알려준 지역으로 가 광물을 탐색했다. 그리고 당연히 여러 철광석과 마나석, 그리고 다수 의 희귀광물들을 발견했을 터.
"확실히, 정말 다양한 자원이 잠 들어 있더군. 축하하네 한지훈. 이제 자네의 영지는 발전하겠지."
후욱. 그가 연초 연기를 뿜었다. 내 집무실에 매캐한 연기가 일렁인다.
그가 나와 눈동자를 마주치며 말 한다.
"한지훈. 자네가 바라던 대로, 제국 국방성에서는 방어 전략을 수정 하기로 결정했다."
"그 말씀은…."
"카렌 왕국의 침공에 대비해, 이곳 루벤 지방에 방어선을 펼친다는 거다. 그 자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국방성의 승인이 떨어진 듯했다. 이로써 나는 영지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더해 막대한 양의 매장자원을 기 반으로 영지 또한 보다 크게 키울 수 있겠지.
"그나저나, 한지훈 천인장."
치이익. 그가 연초를 손으로 비 벼 끄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연대장을 생포했다지. 그 크라그 놈들의 연대장을 말이야."
"그렇습니다. 마법단장 각하."
"국방성에서 내게 심문작업을 지시하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스카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다. 제피르가 연대장의 심문을 담당하게 되었다고했다.
그가 내게 요청한다.
"놈이 있는 곳까지 날 안내해주 게. 녀석의 머리에서 정보를 끄집어 내야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마법단 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피르를 안내했다.
이제 연대장의 머리통을 열어 정보를 끄집어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