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10화 (110/390)

110화.

"전투보고."

"보고 드립니다, 천인장님. 1번 부터 8번 백인대까지, 총원 802. 그중 약 백오십이 전사했고, 사십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살한 적의 수는?"

"적 육백을 사살했고, 오십의 포 로를 붙잡았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그 연대 놈들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놈들의 최고지휘관인 연대 장을 생포했고, 부관을 비롯한 백인 장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으며, 휘하 병사들 또한 대다수를 처치했다.

이제 크라그 연대는 완전히 사라 졌다 보아도 좋을 터다.

나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전장을 정리하지. 아군 전사자들은 잘 수습하고, 사살한 적의 시체 들은 구덩이를 파서 묻어버려라."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승이었다. 이쪽의 손실은 전사 자 백오십, 중상 약 사십. 도합 이 백여 명에 불과하다. 반면 적은 칠 백에 달하는 수가 죽어나갔다.

1: 3의 교전비. 더해 상대했던 적 이 그 명성 높은 크라그 연대였으니 . 대승이라 칭하기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전투였다.

하지만 이쪽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사자들."

시선을 돌려, 전장 한가운데에 하나둘 모이는 시체들을 바라봤다.

전투 와중 죽어나간 제국군 병사들. 그들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란 거. 참 지랄 맞을 짓 이야."

사실 처음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그 충격이 덜해지고 있다.

적병을 죽일 때마다 살인의 죄악 감이 사라지고, 그저 방해물을 없애 버린다는 무감각한 감상이 그 자리 를 차지했다. 비릿한 혈향과 전투의 고함소리가 점차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이렇게 전사자들을 바라볼 때면. 속에서 무 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문득 카일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백인장님. 전쟁이란 정말 잔인 한 짓 같습니다.

- 칼로 베고, 창으로 꿰뚫고, 불에 태워버리고.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려합니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닙니까?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이 세상 속에서 여러 관계를 맺은 지금, 그 말이 보다 깊은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은 단순히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지닌 모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블랙 오케스트라.

그저 게임이라 여겼었다. 그래픽 이 뛰어나고, 극한으로 사실적이었 던 게임.

하지만 만약 그것이 게임이 아니었고, 만약 초월적인 무언가로 인해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 던 것일까.

"… 염병."

기분이 칙칙해진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내가 몇 걸음 걸어가던 그때였다.

"천인장님."

전장을 정리하던 카일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의 얼굴에는 감탄과 존경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천인장님 께서 활약하신 덕분에, 저희가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녀석이 그리 말했다. 나는 픽 읏 고는 카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휘하 병사들 중 백이 넘는 수 가죽어버렸다. 하지만 나머지 병사들을 살릴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바로 뛰며 위협적인 적들을 처치한 덕분이다.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 전투에서 이겼어."

지금은 칙칙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기뻐하자.

나는 전장을 정리한 후, 요새로 복귀를 명령했다.

병사들이 서쪽 산맥에서 내려왔다. 그들의 표정에는 기쁨과 안도가 어려 있었다.

크라그 연대. 과연 강적이었다. 놈들은 만만찮은 정예였고, 개개인 이 뛰어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해 지휘관인 백인장 이상 급들은 모두 오러를 다루기까지.

하지만 아펠도른 천인대는 승리했다. 그렇기에 비록 백이 넘는 병사들이 전사했음에도, 분위기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가 요새로 복귀하는 와중이었다.

"천인장님."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중급 기사 가스파르였다.

녀석의 태도는 처음 만났을 때의 불온한 기색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아예 눈동자 가득 존경의 감정 이 담겨있는 것을 보아, 마음속 깊숙이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모양.

씩 웃었다.

'그나마 개선의지는 있네.'

자신의 잘못을 뇌우치지 않는 미 련한 놈들이 천지다.

가스파르의 첫인상은 영 별로였 지만, 점차 나아지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가스파르 편대장."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 입니다."

그는 흘깃 시선을 돌려 내 옆에서있는 엘락을 바라봤다.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

"엘락. 잠시 천인대를 점검해줘."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엘락이 눈치껏 빠져주고, 나는 가스파르에게 물었다.

"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 지? 사죄라도 하려는 건가?"

"그, 그건 죄송했습니다."

가스파르가 시선을 바닥으로 처 박는다. 저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한 일이었을 터다.

그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더니, 내게 말해왔다.

"한지훈 천인장님께 꼭 알려드려 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내게 알려줄 일이라. 그게 뭐 지?"

"제가 처음부터 천인장님과 대립 하려 했던 이유입니다."

이유? 그리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저 전공을 욕심냈었다는 추측을 했을 뿐.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한지훈 천인장님께선, 알키온 후 작가라는 가문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알키온 후작가라…."

왠지모르게 귀에 익은 가문명이다. 나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했고, 곧 한명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케니 알키온.'

내가 베르겐의 내기대련에 응했 던 상대 기사. 당시 백인장이었던 나를 얕잡아보고 모욕했던 녀석이다.

케니는 당시 대련에서 나에게 무 참히 패배해, 결국 볼로냐 기사단에서 쫓겨났다고 들었다.

헌데 그이름이 여기서 왜 나온 단 말인가?

가스파르의 말이 이어진다.

"사실, 저는 알키온 후작가의 가 주, 게딘 알키온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지?"

"게딘 알키온 후작이 연락해 제 게 제안하더군요. 한지훈의 천인대 와 함께 작전을 펼칠 때, 전선을 이탈하라고. 크라그 연대 공략에 참여하지 말라고요."

"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인 즉, 가스파르는 게딘 알 키온 후작의 명령에 의해 일부러 나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어이가 없어서 절로 너털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니, 알키온 후작가가 왜 나 를…."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한 건 사실입니다. 자신 의 말 대로만 한다면 나름의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조했었지요."

그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를 꺼내들었다. 꽤나 고풍스럽게 꾸 며진 편지였다.

가스파르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한번 읽어보십시오, 천인장님."

나는 녀석이 건넨 편지를 받아 읽어보았다. 그의 말대로, 게딘 알 키온 후작이 직접 보낸 편지인 듯했다.

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이거 진짜 미친놈인데."

편지의 내용은 꽤 단순했다.

게딘 알키온은 가스파르 편대장 에게 한지훈의 작전을 방해해, 크라 그 연대 소탕을 하지 못하게 지시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자신이 힘을 써 편대장 자리에서 전대장 자리로 올려주겠다고.

욕지거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 게딘 알키온이라는 놈은 왜 나를 방해하는 것인가.

물론, 그이유는 알고 있다.

나는 과거 베르겐 기사단장이 했 던 말을 떠올렸다.

- 알키온 후작가를 조심해라.

- 한지훈. 자네는 케니를 이겼다.

- 너무 압도적으로, 마치 가지고 노는 것처럼 이겨버렸어. 악감정을 가지겠지.

알키온 후작가가 내게 무언가 수 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그의 말.

그 개수작이 바로 가스파르의 회 유인 듯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미친놈들."

그저 대련이었고, 그저 케니가 너무 약해빠졌을 뿐이었다.

헌데 그것에 악감정을 가지고 내 게 이따위 개수작이나 걸어오다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나는 가스파르를 노려봤다.

"알키온 후작가는 그러려니 하는데 . 너는 뭐냐? 기사란 새끼가 제국을 위해 분골쇄신할망정, 아군을 방해하려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기사냐?"

"그…."

면목이 없다는 듯, 가스파르가 다시금 시선을 땅바닥으로 처박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편지를 돌려 줬다.

"뭐, 됐다. 이미지나간 일이니까."

보아하니 반성하는 것 같은데, 더 몰아붙일 필요는 없으리라. 게다가 결국 사고도 안쳤고.

나는 걸어가며 생각했다.

'알키온 후작가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명문가문이 라 들었다. 방대한 재산과 윤택한 영지, 그리고 막대한 정치적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고.

쯧 혀를 찼다.

"귀찮은 놈들."

전쟁대비에 온 역량을 집중해도 시원찮을 시기다. 헌데 명문가문의 가주라는 놈'0]

일개 천인장에게 악 감정을 가지고 수작질이나 해오고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뭐. 그래봤자지."

저들은 나를 우습게 보고 있을 것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비록 귀족이 되었다 하나, 내 작위는 남작에 불과하다. 게다가 가진 영지 또한 결코 윤택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식민지 변방 영지 루벤이 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곧 루벤 지방이 발전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 그래."

루벤 지방은 앞으로 급격히 발전 할 것이다. 그러면 알키온 후작가문 따위,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로 내 세력이 불어나리라.

나는 요새를 향해 갔다.

"천인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이끄는 제국군 병력이 보무도 당당하게 요새로 들어섰다. 그러자 요새를 지키고 있던 9번, 10번 백인장들이 나와 맞이한다.

그들이 감탄한 눈으로 이쪽을 주 시한다.

"포로도 많이 잡았군요. 대충 오십은 돼 보이는데…."

"항복한 병사들이 많았나 봅니다."

우리 제국군은 크라그 연대의 병사 오십을 생포해왔다. 도주하다 다 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녀석이거 나, 혹은 항복한 놈들이었다.

나는 씩 웃었다.

"어디 병사들뿐이냐."

"오… 혹시 적 장교도 생포하셨 습니까?"

"자, 저길 봐라."

나는 손가락으로 후열에 포박된 채 들려오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백인장들의 눈이 커진다.

"저 계급장, 연대장 계급장 아닙 니까?!"

"맙소사! 크라그 연대의 최고지 휘관을 생포하시다니. 대단합니다."

그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크라그 연대. 정복 전쟁 시절에 도 유명했던 부대다. 헌데 나는 그런 네임드 부대를 격파한 것으로도 모자라, 놈들의 지휘관마저 생포해 왔다.

나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포로들 다 구금하고, 특히 저 연대장은 잘 관리해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명령을 받듭니다!"

병사들이 포로를 이송해갔다. 나는 그들 중 한 명, 병사에게 들쳐 메어 끌려가는 적 연대장을 바라봤다.

"…개자식! 네놈! 죽여버리겠다!"

연대장은 끌려가며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별다른 위협은 되지 않는다.

놈은 오른팔과 왼다리가 잘렸으 며, 더해 다른 사지의 힘줄마저 끊 어 놨다. 아무리 마나를 회복해 오 러를 발현한다 한들, 몸통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이제 보고해야지."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니 , 오스카 군단장에게 보고할 차례다.

꽤나 괜찮은 전공을 세웠다. 그의반응이 퍽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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