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내 몸이 앞으로 향한다. 내리막을 내려 달리며 몸을 가속시켰다. 놈들에게 접근할수록 적 왕국군의 모습이 점차 커다랗게 보인다.
파악!
발을 딛고, 지면을 밀어낼 때마다 훅훅 배경의 모습이 뒤로 밀려 났다. 그만큼 지금 내가 내달리는 속도는 몹시나 빨랐다.
과장 조금 보태서 공기의 벽이 느껴진다고 할 정도.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그만큼 민첨 153의 위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아직이다.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이 활성화 됩니다.]
집중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에 사고가 가속되며, 시야 속 보이는 적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 한다.
그 가속된 사고 속. 고뇌한다.
어떻게 움직여야, 단숨에 적 연 대장 놈을 제압해버릴 수 있을지.
- 띠링!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이 활성화 됩니다.]
전투분석 스킬 또한 활성화 되었다. 대량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 오기 시작한다.
시야 속 보이는 적 병사들의 배치. 전투 중인 놈들의 시선. 적 연 대장의 위치와 움직임까지.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더욱 효율적으로 적 지휘관을 제압할 수 있는지. 최적의 경로와 방법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나는 전투분석이 도출한 경로를 따라 달려갔다.
"뭣 천인장…!"
"어떻게 이곳에…!"
한창 전투 중이던 왕국의 병사들 이, 달려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여겼던 방향에서, 갑자기 내가 등장해 달려들고 있으니까.
뛰어가는 와중 검을 휘둘렀다. 파앙!
"커억…."
피슉 하는 분출음과 함께 적 병사가 쓰러진다. 녀석의 목에서는 붉은색 핏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놈이 지면에 완전히 드러눕기도 전에 다른 병사들을 베었다.
파앙, 파직, 푸욱.
달려가며 세 명의 왕국군은 단숨에 처치해버렸다.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는 마치 기병의 그것처럼 무시무시했다. 때문에 정예인 크라그 놈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놈들의 목을 베고, 복부를 쑤시 며, 계속해 연대장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덧 십여 명의 병사를 베어 넘긴 나는 적 연대장의 지척까지 접근한 상태.
"후욱."
숨을 한껏 내뱉으며, 검날을 회전시켰다.
가속된 시야 속, 연대장 놈을 살 폈다.
녀석은 앞에 있는 제국군 병사들을 신경 쓰고 있었기에, 미처 이쪽 의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당연하다. 자신의 뒤를 다른 병사들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뒤를 경계한단 말인가.
달려가는 와중 오러를 일으킨다.
화르르륵.
검신을 타고 푸르른 불길이 일렁였다. 청색 오러광이 번들거리며 은 은한 빛을 발한다. 강렬한 기세가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러를 느낀 것일까.
"무슨…!"
연대장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쪽으로 발견해, 경악해 크게 떠지는 눈.
놀랐겠지.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저 멀리서 달 려와 순식간에 자신의 배후를 차지 할만한 적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 테니까.
검을 휘두른다.
콰르르릉!
오러가 담겼기에, 강렬한 파공성 이 일었다.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 와 함께 내 검날이 놈의 오른팔로 짓쳐들어간다.
녀석은 검을 들어 올려 막아내려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음에도 기민한 반응이다.
하지만, 놈은 내 공격을 막을 수 없을 터다.
내 민첩은 녀석의 그것을 아득히 압도하니까.
서걱.
"아아아악!"
적 연대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 핏물이 치솟으며 기다란 고깃덩이가 바닥을 굴렀다. 놈의 오 른팔이다.
녀석의 오른팔이 깔끔하게 절삭되었다. 팔꿈치부터 완전하게 잘려, 한쪽 팔이 아예 사라져 있는 것이다.
나직이 중얼거린다.
"죽일 수는 없지."
다름 아닌 크라그 연대의 연대장 이다. 네임드 부대, 침공군의 첨병에서는 정예부대의 최고지휘관인 이. 분명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
때문에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놈을 생포해 심문한다면 꽤 괜찮은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니까.
"후욱."
재차 한 호흡 내쉬며 검을 휘둘 렀다.
콰앙!
검날이 낭창거리며 움직여 깔끔 한 반월을 그렸다. 직후 서걱, 하는 절삭음과 함께 핏물이 치솟는다.
내가 벤 것은 다름 아닌 놈의 무릎이었다.
"끄으으으!"
적 연대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일이…!'
더스틴 크레이그. 크레그 연대의 연대장. 그는 무릎이 베여 힘없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가 시선을 들어 올려 자신을 벤 적의 모습을 살폈다.
검은색 머리.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많이 쳐줘야 이십 대중반쯤 될까. 자신의 아들이 딱 저 정도 나이 대다.
헌데 저 청년은 몹시 젊은 나이 였음에도, 그 경지가 무시무시했다.
저토록 깔끔하고도 민첩한 검격 이라니. 그는 오랜 기간 전장을 굴 렀던 엘리트 군관이자 최상급의 격을 지녔던 기사였지만. 눈앞의 청년 처럼 날카로운 검격은 본 적도 없었다.
털썩.
"크아아악!"
연대장의 몸이 바닥을 구른다. 그는 입을 벌려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큼 놈에게 당한 부상은 고통스 러웠고, 치명적이었다.
오른팔을 잃었다. 왼 다리의 무릎인대를 베였다.
순간, 그는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오소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놈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
분명, 그의 뒤에는 제국군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배치 해뒀던 예비대 병사들뿐이었을 터.
헌데 어떻게 이자리에 놈이 있는 것인가.
그의 시야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더해 주위의 경계 또한 늦추지 않았다. 저 눈앞의 천인장이 전장에 등장했다면, 분명 자신이 금방 알아 챘을 터인데.
하지만 더스틴은 녀석이 자신의 바로 배후까지 다가와, 오러를 운용 할 때서야 놈?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적 지휘관의 등장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더스틴이 고개를 억지로 들어올 려, 청년을, 그리고 청년의 뒤에 자리해있는 참상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재차 경악이 어린다.
"설마, 저 멀리서, 달려온 것이라 고…?!"
청년의 뒤에는 드문드문 자신의 수하 병사들이 죽어 쓰러져있었다.
그들 모두가 순식간에 당한 것인 지. 쓰러져 있는 병사들 중 절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마지막 숨을 들이켜 고 있을 뿐.
그 말인 즉 정말 단숨에, 저 멀리서 순식간에 달려와 뒤의 병사들을 베고 죽이며, 자신의 배후까지 접근했다는 소리가 된다.
"맙소사…."
연대장이 허탈한 눈으로 천인장을 바라본다.
적 천인장, 검은 머리의 사내는 검을 들어 올려 더스틴의 몸을 향 해 검날을 내리찍었다.
푸욱.
날카로운 검날이 그의 반대편 다리를 쑤신다.
"크아아아!"
더스틴은 고통에 비명 질렀다.
적 연대장이 비명 지른다. 나는 놈의 다리에 박힌 내 검신을 비틀 어, 놈의 다리근육을 헤집었다.
녀석은 이래 봬도 오러를 다룬다. 제대로 팔다리를 망가뜨려야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서걱.
검날로 그나마 멀쩡했던 왼팔의 인대마저 끊어버렸다. 이제 이 녀석 은 설사 오러를 운용한다 한들, 검을 쥐기는커녕 두 발로 일어설 수 조차 없게 되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 러보았다.
"연대장님! 맙소사…!"
"저놈! 언제 여기까지!"
"적 천인장이다!"
내 주변을 카렌 왕국군이 둘러싸 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눈동자에는. 경악과 놀람이 그득했다.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시 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며 십 수명의 적 병사들을 베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연대장을 완전히 제압해버 리기도 했으니까.
나는 씨익 웃었다.
"크라그 연대장 생포."
꽤 괜찮은 전공이다. 그것도 그 정예라 이름 높던 크라그 연대의 연대장이니 자랑할 만한 전공이 될 수 있을 터.
어쩌면 훈장도 하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백인장 놈들을 사냥 해야 하는데 ."
아직 놈들에게는 백인장이 남아 있다.
크라그 연대의 백인장들은 모두 오러를 다룬다 들었다. 그 말인 즉, 내가 처치해야만 한다는 소리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냈다. 붉은색 액체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적 연대장의 몸 위로 후드 득 떨어졌다.
검신을 곧추세웠다.
"그나저나 가스파르 녀석. 엄청 느리네."
시선을 돌려 내가 달려왔던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왕국군 놈들 너머,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러를 풀풀 풍기며 이쪽으로 달 려오는 가스파르와 그의 수하 기사 들.
느린 속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병사 십 수명을 베고, 연대장마저 완벽히 제압해 생포할 동안 겨우 도착한 것이 고작이라니.
아니. 놈들이 느린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빠른 것이었지만.
잠시 후. 녀석들이 내지척까지 달려와 적 병사들을 베어 넘겼다. 그들이 다가오고, 나는 녀석들에게 알렸다.
"가스파르. 적 연대장을 생포했다."
달려오는 와중 본 것인가. 녀석 이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항상 사사건건 내게 대립각을 세웠던 해리스 기사단의 편대장 중급 기사 가스파르 월럿.
녀석의 얼굴에는 더 이상 반발심 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방금 전 내 모습에 감화되기라도 한 것인지 미약한 존경의 빛마저 띄고 있다.
귀여운 녀석.
녀석에게 지시한다.
"가스파르. 너희는 이 연대장을 회수하고, 일반 병사들을 상대해라."
"알겠습니다!"
평기사 하나가 쓰러진 적 연대장을 들쳐 업었다. 기껏 제압한 적 연대장이다. 난전의 와중 죽게 만들 수는 없으리라.
재차 오러를 끌어올리며 나직이 알렸다.
"나는 이제 적 백인장들을 사냥 하겠다."
가장 위협적이던 적 연대장을 완전히 제압했다. 이제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적은 백인장 놈들밖에 남 지 않은 상황.
놈들을 처치한다면 이전투를 훨씬 유리하게 이어갈 수 있다.
파앙!
나는 자리에서 도약해, 또 다른 적을 향해 달려갔다.
' 대단했다.'
가스파르는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방금 전. 그는 아펠도른 천인장 한지훈의 진정한 무력을 보았다.
그의 무력을 너무나도 강렬했다.
내리막길을 내려 달려가며 몸을 가속, 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여 적의 진형 한가운데로 파고들었을 뿐만 아니라, 가로막는 적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기며 적 연대장에 게까지 당도했다.
직후 보였던 것은 중급인 그의 경지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 고민첩한 검격.
순식간이었다.
분명 크라그 연대의 지휘관은 강 대한 무력을 가진 이였다. 검날에서 일렁이는 오러광은 선명했고, 주위 로 뻗어나가는 기세는 강렬했다.
하지만 그토록 강한 적 연대장 을, 한지훈은 단 두 호흡 만에 완전히 제압해버렸다.
"… 제기랄."
가스파르는 자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수 치의 감정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저런 괴물에게 대들었던 건지!"
파앙!
그가 검을 휘둘렀다. 그에 왕국 군 병사 하나가 오러 서린 검날에 의해 완전히 반으로 절식되어 쓰러 진다.
가스파르는 기사다. 비록 실전경 험이 많지 않아 전장에서의 무위는 동격의 기사에 비해 모자라다 하나. 그럼에도 오러를 다루는 기사였다.
일반 병사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파앙!
푸른색 오러광이 일렁이는 검날 이 또 다른 왕국군 병사의 목을 베었다. 녀석이 쓰러지고 핏물이 비산 한다.
그는 계속해 검을 휘둘러 적을 처치해가며, 내심 결심했다.
'역시. 모조리 털어놔야겠어.'
자신이 한지훈 천인장을 대립했 던 이유. 그이유를 말해 용서를 구할 셈이다. 그만큼 한지훈 천인장 이 보여줬던 무력이 대단했었으니까.
기사는 무를 숭상하는 이들. 그것은 가스파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전투가 끝난 뒤 한지훈에 게 굴복해, 자신이 받았던 은밀한 제안을 고백하고 사죄하려 한다.
전투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