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평기사 열 명. 그리고 중급 기사 한 명이다.
숫자는 적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 기사가 무려 열한 명이 니 최소한 일개 백인대쯤이야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다.
적 중급 기사 정도로 보이는 백인장 따위,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망할! 당했다!"
"저 백인장이 너무 강합니다!"
"물러나! 물러나!"
기사들이 당하고 있다. 시선을 돌려 적 백인장의 모습을 살폈다.
확실히 놈, 크라그 연대의 백인 장은 강했다. 녀석은 푸른색 불길이 일렁이는 검날을 휘둘렀고, 그때마 다 공기가 터져나가는 굉음과 함께 날카로운 검격이 발현되었다.
그리고 놈을 상대하는 기사들 으-
* * *
"으아아악!"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적 백인장이 잘 싸우는 것도 있지만, 그이상으로 기사새끼들이 무 능한데."
솔직히, 내심 가스파르의 무력을 기대했었다. 그는 저래 봬도 기사였 으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헌데 실망이다. 가스파르는 무려 열 명의 평기사들과 함께 전투에 임하고 있음에도, 적 백인장을 제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콰앙!
"커허억!"
평기사 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 졌다. 그의 복부 장갑은 찌그러져 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보아하니 내장을 다친 것 같다. 평기사가 경련하며 품속에서 포션 병을 꺼내들었다.
"빌어먹을-!"
부하가 당한 것을 확인한 가스파 르가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푸른색 오러가 일렁이는, 나름대로 강력 한 공격이었으나.
그의 검격은 적 백인장의 몸을 베지 못했다. 적 백인장이 고개를 숙여 피해버린 것이다.
피식 웃었다.
'전투 경험 부족이네.'
보아하니 가스파르는 중급 기사 만큼의 마나량을 지니고 있지만, 전투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시선은 번잡했고, 공격에는 망설 임이 가득했으며. 무엇보다도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느려 터졌다.
때문에 상대인 크라그 연대의 백인장 또한 똑같은 중급의 경지임에도 불구. 가스파르는 좀처럼 녀석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혀를 차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스파르. 비켜라."
"후욱, 훅, 후욱! 한지훈 경! 놈 은 오러를 다룹니다! 그쪽은 상대 할 수 없…."
"방해되니까 비키라고."
나는 검날에 오러를 발현시켰다.
화르르륵!
검신을 타고 푸르른 불길이 타오 른다. 청색 오러광이 은은히 주위를 밝혀갔다.
"뭣… 오, 오러!"
역시. 가스파르는 내가 오러를 다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검날을 들어올렸다.
"너. 잠깐 지켜봤는데, 더럽게 못 싸우더라."
가스파르는 이를 갈 뿐, 무어라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들까지 동원해 합공을 펼쳤음에도, 중급 기사 급의 경 지를 이룬 적 백인장 하나 제압하지 못했으니 .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강렬한 파공성. 섬뜩하게 빛나는 청색 검광. 내 검날은 순식간에 공간을 양단하며 적 백인장에게로 짓 쳐들었다.
그에 경악해 두 눈을 크게 뜨는 놈.
녀석은 오러가 일렁이는 검을 들어 올려 방어하려 했지만, 내 검날을 막지는 못했다.
서걱.
"끄아아아악!"
녀석이 제 어깨를 잡고 나뒹굴었다. 뒤이어 후드득, 하는 핏물 떨어 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녀석의 오른팔.
방금 전 나는 검을 휘둘러, 놈의 오른팔을 완전히 절단해버렸다.
"꾜으! 으으으으!"
오른팔을 잃은 녀석은 왼손으로 검을 바꿔 쥐었다. 한쪽 팔을 잃었 음에도, 고통을 이겨내며 여전히 전투의지를 불태우다니. 대단한 투기 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한쪽 팔을 잃은 녀석에게 전투 능력이 있을 리 만무.
나는 놈의 팔을 걷어차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직후, 퍼억!
재차 다리를 움직여 녀석의 턱을 발로 걷어차 제압했다. 놈의 머리가 휙 돌아간다.
"한지훈 경… 오러, 오러를 다루다니… 기사도 아니면서 어떻게…."
가스파르가 얼빠진 얼굴로 그리 중얼거린다.
피식.
나는 녀석을 비웃으며 피 묻은 검날을 들어올렸다.
"설마, 편대장 정도 되는 이가 다른 사람이 오러 유저란 것도 못알아볼 줄이야. 이거 기사 실격인 데?"
가스파르가 분한 표정을 짓는다.
오러 유저라는 것을 간파하는 것. 사실 고작해야 중급 기사 수준에서는 힘든 일이긴했다.
오러 유저란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마나의 잔향을 감지해야 했고, 마나 의 잔향을 감지하려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마나감응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마나감응을 갖 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급의 경지 에는 달해야 한다.
고작 중급에 불과한 가스파르에게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기사인 이 가 눈앞의 오러 유저를 못 알아봤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는 입 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는 검날로 적 백인장의 복부를 찔렀다.
푸욱.
"끄윽! 끄으으으!"
녀석이 고통에 버둥거린다. 나는 검날을 비틀어 적 백인장의 복부 장기를 난자했다.
잠시 후. 놈은 온몸을 비틀며 경련하더니 축 늘어졌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낸다.
"가스파르. 넌 보아하니 실전 경험도 거의 없는 애송이 같더군."
"쓸모없는 녀석. 그딴 실력으로 독자 행동 운운했던 건가?"
시선을 돌려 가스파르를 바라봤다. 녀석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나는 유유히 발걸음을 옮겨 녀석을 지나쳤다.
* * *
"연대장님!"
펄럭! 병사들이 허겁지겁 천막 안으로 처들어 온다. 그들을 바라본 크라그 연대의 연대장, 더스틴 크레 이그는 표정을 굳혔다.
"자네들, 몰골이…."
천막 안으로 들어온 병사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이곳저곳에 자상을 입어 피를 흘 려댔고, 갈색 군복은 핏물과 흙먼지에 물들어 선홍색으로 변해있다. 더해 그들의 얼굴에 자리한 진한 피로감까지.
병사들이 더스틴 연대장에게 고 한다.
"완패입니다! 저희 4번 백인대는 사실상 전멸했습니다…!"
"전멸?! 그게 무슨…."
더스틴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병사의 말이 이어졌다.
"적 지휘관이 우군의 매복을 알 아차렸습니다."
"매복을 알아차렸다고?"
"그렇습니다. 제국군이 저희들의 앞까지 왔을 때, 적 지휘관은 부대를 나눠 우리의 퇴로를 틀어막았습니다. 적 지휘관이 이쪽의 매복을 알아차리고 병력을 지휘한 것이 틀 림없습니다."
"… 놈이 알아차릴 만큼 매복을 허술하게 했던 것인가?"
"아닙니다! 매복 상태는 완벽했습니다!"
만신창이인 병사의 말에, 연대장 더스틴은 침묵했다.
그는 턱을 괴고 생각한다.
'매복을 알아차리다니… 힘든 일 일 터인데.'
더스틴은 크라그 연대의 연대장으로서 오랜 기간 부대를 지휘해왔다.
그렇기에 그는 휘하 병사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크라그 연대는 분명 그 명성에 걸맞은 정예다. 당연히 병사들의 매 복 실력 또한 뛰어나기에, 미리 매 복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터인데.
적 지휘관은 이쪽의 매복을 알아 차린 것으로도 모자라, 병력을 운용 포위해 전멸시키기까지했다.
그가 이를 갈았다.
'역시. 아펠도른 지휘관의 실력이 대단하다.'
이미 적 지휘관의 능력을 어느 정도 체감한 그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제대로 한번 붙어봐야겠지."
그가 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운 용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의 검신을 타고 푸른색 불길이 치솟는다. 선명한 오러광이 주위를 은은히 밝힌다.
연대장인 더스틴 또한 오러를 다 루는 이. 그가 우묵한 눈으로 읊조렸다.
"인정하지. 놈의 전술은 내 그것을 압도한다."
이미 소규모 국지전 당시부터 느 꼈던 감상이었다.
놈은 항상 이쪽의 침투로를 한발 앞서 읽었고, 그곳에 병력을 배치해 아군을 하나하나 처치해갔다.
더해 지금에 와서는 이쪽의 매복 까지 미리 간파해 포위사냥 해버렸 으니 .
그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전술은 몰라도, 개인의 무력은 이쪽이 압도할 터."
더스틴은 부대의 정예도를 자신했다.
크라그 연대는 정복 전쟁 시절 부터 이름을 날렸던 최정예 부대다. 더해 그들을 지휘하는 각 백인장들 또한 오러를 다루는 기사 급 강자 들.
고작 일개 보병 천인대에게 패배 할 리 없을 터다.
"부관. 전 병력에게 전투 준비를 전파하라."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부관이 천막 밖으로 뛰어간다. 그는 오러가 일렁이는 검날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제대로 상대해주지."
더스틴은 최상급 기사의 경지를 이미 이룬 상태였다.
그가 기사가 되지 않고, 부대에 남아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대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크라그 연대. 과거 정복 전쟁 당시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
그는 이미 정복 전쟁의 경험 덕분에, 과거보다도 더욱 높은 수준의 경지에 올라있다.
"아펠도른 천인장. 네놈을 죽여버 린다."
그는 천천히 걸어 천막 밖으로 향한다.
"더 이상 매복은 안 보이는군."
나는 계속해 행군하며 그리 중얼거렸다.
매복을 들켰던 것이 꽤나 충격적 이었던 것일까. 여러 매복에 유리한 지형들을 지나쳤음에도, 놈들의 병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픽 웃었다.
"하긴. 적 지휘관도 빡대가리는 아닐 테니까."
이미 한번 매복을 실패해 백인대를 잃은 크라그 연대다. 당연히, 똑같은 짓을 해서 병력을 갉아 먹 히는 선택을 하진 않을 터.
놈들은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상대하려 할 것이다.
나는 품속에 넣어놨던 지도를 꺼내들었다. 꾸준한 정찰로 만들어진 꽤 정밀도 높은 전술지도였다.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놈들은 큰 한 방을 노리려 하겠지."
애초 정예도가 높은 크라그 연대다. 매복과 급습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이상, 정면 대결구도를 노리리라.
그리고 정면대결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는 것이 필수.
나는 잠시 지도를 바라보고는,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크라그 새끼들은 이곳에서 우리 를 기다릴 거다."
내가 짚은 장소는 가파른 계곡 지형이었다.
작은 물길이 흐르고, 울퉁불퉁한바위들로 이루어진 지형. 그곳의 고 지대를 선점한다면 방어측이 유리 하게 전투를 이끌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나는 놈, 크라그 연대 지휘관 놈 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다.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수많은 전투를 지휘했던 나였다. 적 지휘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 따위, 쉬운 일이다.
그리고 적 지휘관의 행동을 예측 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자, 백인장들. 모두 주목해라."
주위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내 옆에 열 명의 백인장들이 모여 든다.
그들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부대를 세 개로 나눈다. 1번 부터 4번 백인대가 A그룹. 1번 백인장 엘락이 지휘한다. 5번부터 8번 백인대가 B그룹. B그룹은 5번 백인 장인 노먼이 지휘해. 너희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기동해 양면에서 크 라그 새끼들을 친다."
천인대를 둘로 쪼갰다. 각각 사 백 명으로 이루어진 병력.
나는 이 병력들을 따로 운용할 생각이다.
문득 엘락이 물었다.
"천인장님. 질문 있습니다만."
"뭔가, 엘락."
"방금 전부대를 셋으로 나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그룹은 두 개입니다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분명 나는 부대를 세 개로 나눈 다했다. 하지만 정작 만들어진 그룹은 A, B. 단 두 개에 불과하니.
나는 이어 말했다.
"C그룹은 나, 그리고 이 떨거지 기사 열한 명. 도합 열두 명의 오러 유저들이다."
가스파르의 실력이 쓰레기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일반 병사들보다는 더욱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터.
쓰기에 따라 유용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씨익 웃었다.
"내가 포함된 c그룹은 적 지휘관을 칠 것이다. 너희들이 적 부대를 쳐 시선을 끌어줘야 해. 그래야 수 월하게 적 지휘관 새끼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전투의 제 1목표는 언제나 지휘관이다. 지휘관이 붕괴된다면, 그 어떤 부대라 한들 통솔을 잃고 전투력이 반감된다.
나는 놈들의 지휘관들을 처치할 셈이다.
"이제 크라그 연대 새끼들을 갈 아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