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105화 (105/390)

105화.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크라그 연대 사냥이 시작되었다.

"각 병력은 내가 미리 지시했던 루트를 따라 기동한다. 질문 있는 백인장?"

"없습니다, 천인장님!"

"좋아. 전사한 녀석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나는 1번부터 8번 백인대의 병사들을 모아 약 팔백여 명의 병사들을 소집했다. 이번 전투에 나설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병사들은 눈동자에는 독기가 선 명하게 어려 있었다. 하기야, 근 일주일 내내 저 야산에서 계속해 소규모 접전을 벌였었다. 그 와중 전 우들이 죽는 걸 여러 번이나 보았을 테고.

죽은 전우들의 복수를 하고 싶으 리라.

"그리고, 가스파르."

나는 시선을 돌려 기사들을 바라 봤다. 번쩍이는 전신갑주를 착용한 이들. 그들에게 지시한다.

"너희들은 내 옆이다. 내지시 없이 행동하지 마라."

"… 알겠습니다. 한지훈 경."

가스파르가 못마땅한 기색을 한 껏 담아 대답한다. 나는 한숨을 내 쉬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옆에서 기사들을 통제해야 한다.'

기사들은 분명 강력한 전력이다. 오러를 다룰 수 있으니 일반 병사들 따위야 상대가 안 될 것이고, 똑같이 오러를 다루는 적 백인장들 과 충분히 맞붙일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들의 편대장인 가스파 르가 노골적으로 내지휘를 이탈하 려 하니 답답할 수밖에.

결심했다.

'만약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합당 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전장에서 지휘권의 확립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 하지만 놈은 계속해 기사들을 제 마음대로 운용하려 하는 상황.

만약 전투 중에 내 통제를 어기려 한다면. 나는 놈을 가차 없이 처형할 것이다.

"각 백인대. 움직인다."

"명령을 받듭니다, 천인장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번 작전은 적 크라드 연대의 소탕. 그에 나는 그동안 여러 준비 를 해왔다. 소규모 교전 시 적들을 사살하는 것보다는 생포했고, 생포 한 포로들을 붙잡아 고문 작업을 통해 놈들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려 했던 것이다.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놈들의 캠프는 서쪽 산맥의 계곡지형.'

고문 작업을 통해 얻은 정보 중 에는 당연히 놈들의 캠프 위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크라그 연대는 서쪽 산맥 계곡지 형에 캠프를 차렸고,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곳을 쳐, 놈들의 지휘관들과 휘하 병력들을 갈아버린다면. 크라 그 연대 소탕작업이 완료된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천인대 전투지휘술. 활성화."

- 띠링!

['스킬 : 천인대 전투지휘술' 이 활성화 됩니다.]

천인대 전투지휘술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내 시야에 미니맵과 부대원 정보창이 떠오른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병력을 이끌고 서쪽 산맥으로 향했다.

곧 전투가 가까워진다.

"연대장님!"

병사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그에 연대장 더스틴 크레이그는 시선을 돌려 병사를 마주했다.

병사는 산맥의 길목들을 경계하는 초병이었다.

그가 급하게 보고한다.

"제국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제국 놈들이라. 아펠도른 놈들인 가?"

"그렇습니다, 연대장님!"

연대장 더스틴은 자리에서 일어 섰다. 그가 병사에게 재차 물었다.

"제국 놈들의 수는?"

"…약 팔백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팔백이라. 소규모 접전 말고 정면전투를 노리는가. 멍청한 놈들. 제발로 사지에 들어오는군."

피식. 더스틴이 웃었다.

아펠도른 천인대의 전투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벌써 십수 차례나 소규모 접전을 벌여왔었으니까.

하지만 그들 크라그 연대는 카렌 왕국 최고 정예 부대였다. 그런 그 들에게 정면 전투를 걸어오려 하다니.

더스틴이 묻는다.

"병사. 자네는 몇 번 백인대 소속이지?"

"4번 백인대입니다. 연대장님."

"좋아. 4번 백인대장에게 전해. 백인대 병력을 이끌고 미리 정해놨 던 장소에 매복하라. 장소는 백인장 이 알고 있을 거다."

"명령을 받듭니다!"

병사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더스틴 연대장은 구석에 세워놨던 검과 방어구를 갖춰 입었다.

그가 옆에서 있는 부관에게 지시했다.

"전 병력에게 무장하라 전파해라.

손님을 맞아줘야지."

그가 천막 밖으로 나선다.

병사들을 이끌고 산길을 타고 오르는 와중, 나는 시선을 돌려 뒤따 라오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모두 팔백여 명의 대군. 그동안 내가 지휘했던 부대 규모 중 가장 커다란 규모였다.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쯤이면 크라그 새끼들이 우리의 접근을 알아챘겠지."

이번에 나는 은밀한 기동을 포기했다. 전투에 동원하는 병사들의 수 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팔백 명. 아무리 울창한 숲속이 라 하나, 이 정도로 많은 수의 병력을 데리고 움직인다면 들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크라그 놈들 또한 멍청하지 않다. 분명 캠프 시야가 좋은 곳곳에 미리 경계병들을 세워놨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 접근한다 한들, 이쪽의 움직임이 계속해 놈들에게 전해지겠지.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은 정면 돌파였다. 거릴 것 없이, 그대로 전 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산길을 타고 올랐 을까.

"천인장님! 저기, 놈들의 초병입 니다!"

1번 백인장 엘락이 내게 보고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엘락이 가리 킨 방향을 바라봤다.

갈색 군복을 입은 보병 약 십여 명. 이 주위를 미리 감시하고 있던 놈들의 경계병들이리라.

들켰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녀석 들은 빠른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이 탈해 후방으로 달아났다.

"놈들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추격 할까요?"

엘락의 물음. 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추격하기는 힘들 거다. 그냥 무시한 채 전진한다."

"… 하지만, 놈들을 놓친다면 이쪽 의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어. 팔백이나 움직이 는데 놈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그냥 현재 상태를 유 지한 채, 그대로 행군한다."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우리는 계속해 병력을 이끌고 앞 으로 향했다.

행군하는 와중 나는 주변을 유심 히 살폈다. 그러자 여러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발자국들. 나무들에는 알아볼 수 없는 도형들 이 검으로 새겨져 있고, 곳곳의 수 풀에는 부자연스러운 비틀림이 자리해있다.

피식 웃었다.

"크라그 새끼들. 머리 좀 굴렸는데 ."

"천인장님?"

"부대, 정지!"

나는 그리 외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에 내 뒤를 따라오던 모든 부대원들이 제자리에서 멈춘다.

시선을 돌려 백인장들에게 지시했다.

"엘락, 맷, 크리스토퍼, 드웨인. 너희 1번부터 4번 백인대에게 임무 를 하달한다."

1번 백인장 맷부터 4번 백인장드웨인까지. 그들이 내 얼굴을 주시 한다.

나는 손을 뻗어 앞에 자리해있는 지형들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저기, 저기에 크라 그 새끼들이 매복해 있을 거다. 숫자는 모두 합해 백여 명 정도로 보이는데 . 너희들이 우회기동 해 놈들 의 퇴로를 틀어막아라."

"… 정말입니까, 천인장님? 놈들이 매복해 있는 게 확실합니까?!"

백인장들의 놀란 시선이 내 얼굴에 틀어박혔다.

그야 놀랄 수밖에 없다. 잘 행군하고 있는 와중 갑작스레 매복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크라그 놈들은 저곳에 매복해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저곳, 저 수풀지형들은 매복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수풀이 우거지고 음영이 드리워져 매복이 쉬우며, 습격 후 퇴각하기에도 용이한 곳. 만약 내가 크라그 연대장이었다면 저곳에 병사들을 배치해 불의의 일격을 노리리라.

더해, 놈들이 매복한 흔적들을 찾아냈다.

나무 기둥에 티 안 나게 새겨진 여러 문양들.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수풀. 그리고 급히 매복하느냐 미처 지우지 못한 건지, 이곳저곳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까지.

나는 재차 지시한다.

"어서 가! 놈들의 퇴로를 틀어막 아!"

"… 명령을 받듭니다!"

1번부터 4번 백인장까지. 그들이 제각각 병력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내려 시야 속 미니맵을 주시한다.

약 사백여 개의 푸른 점이 왼쪽 과 오른쪽으로 펼쳐져 우회해 움직 인다. 직후 그들은 내가 지시한 곳 의 뒤까지 다가가고, 붉은색 점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들켰다!"

"퇴로가 막히기 전에 도망쳐라!"

"캠프로 복귀해!"

매복이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카 렌의 병사들. 갈색 군복을 입은 녀석들이 수풀 속에서 우수수 일어났다. 놈들은 재빨리 움직여 캠프 방향으로 도주하려 한다.

하지만 놈들이 움직이는 것은 늦었다.

"각 백인대 궁수는 모두 화살공격. 자율사격이다."

활 공격 지시. 그에 휘하 병사들 중 활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하나 둘 시위에 화살을 걸어 쏘아대기 시작했다.

피잉! 핑! 피잉!

화살 세례가 쏟아지고, 갈색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간다.

그럼에도 놈들은 달려 나가 퇴로 를 향해 뛰어간다. 하지만 이미 녀석들의 퇴로는 완전히 막힌 상태.

나는 지시한다.

"활 공격 중지! 근접 전투병 돌진! 5번부터 8번 백인대는 앞으로 돌격한다!"

"돌진! 돌진!"

"카렌 놈들을 죽여버려라!"

내 명령에 백인장들이 복창하고, 백인장들의 복창을 십인장들이 전 파한다. 우리 군이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크라그 놈들은 앞도, 뒤도 막힌 상태.

놈들은 양면에서 짓쳐들어오는 내부하들의 공격에 마주했다.

"뒈져라, 카렌 새끼들아!"

"죽여! 죽여버려!"

"도망치게 놔두지 마!"

제국군 병사들이 그들을 도륙하 기 시작했다.

무려 팔백의 병력이다. 크라그 놈들은 본래 의도했던 습격과 이탈을 해볼 틈도 없이, 퇴로가 막혀 고립되어버렸다.

놈들이 제아무리 정예라 한들, 상대가 될 턱이 없다.

"커억…."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살려…."

놈들이 우수수 죽어나갔다. 나 또한 검을 휘둘러 적병을 하나씩 처치하기 시작했다.

파앙!

파공성과 함께 푸른색 검광이 길 게 이어졌다. 그에 목이 떨어져나가 붕 떠오르는 적병의 머리.

핏물이 묻어 번들거리는 검을 휘 두르며, 크게 외쳤다.

"백인장! 백인장을 찾아라!"

이곳에 매복해있는 적 병력의 수는 약 백여 명. 당연히, 그들을 지휘하는 백인장이 있을 것이다.

놈을 죽여야 한다.

나는 계속해 검을 휘두르며 적 백인장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잠시 후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콰르르릉!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폭음. 분명 오러로 검격을 강화했기에 일어 날 수 있는 굉음이다.

시선을 돌려 소음이 일어난 곳을 바라봤다.

"적 백인장'입니다!"

"오러! 오러를 다룬다! 물러나!"

"으아아아악!"

적들 중 하나가 오러 서린 검날을 휘두르고 있다. 그가 검격을 가 할 때마다 푸른색 검광이 번뜩였고, 강렬한 굉음이 공기를 울린다.

확실히, 놈은 기사 급의 무력을 지녔다. 저 정도라면 최소한 중급 기사 정도는 될까.

나는 피식 웃고는, 바로 옆을 바라봤다.

"가스파르. 너희들이 나설 때다."

내 휘하 병사들의 무력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바로 옆에 있는 기사들의 전투력은 아직 미지수.

녀석들을 적 백인장과 맞붙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사들이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쓰레기들인지, 아니 면 나름의 쓸모가 있는 녀석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리라.

내지시에 가스파르가 자신만만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 기사들이 저 백인장을 처치하지요. 지켜보십시 오, 한지훈 경."

철컥, 철컹, 철그럭!

가스파르가 이끄는 기사 편대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기마 상태는 아니었다. 이곳은 험난한 산악 지형이기에, 말을 몰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리프! 알키우드! 놈의 배후를 노 려라!"

"오오오오!"

편대장 가스파르가 지휘하고, 그 의 휘하 평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 며 산을 타고 오른다. 직후 그들은 오러를 운용해 검날에 푸른색 불꽃을 휘감았고, 적 백인장을 노리고 검날을 내지른다.

그리고 직후.

나는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 새끼들, 왜 이렇게 약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