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한지훈 천인장.
이해를 못한 것일까. 오스카의 의아한 듯한 말이 수정구 너머로 흘러나온다.
나는 이어 말한다.
"군단장 각하. 저는 이곳 영지군을 이끌고 산맥을 탐사했고, 그 와 중 여러 자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그 미스릴 같은 희귀 광물들이 자네의 영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비슷합니다."
정확히는 '있을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이미 내 손에 들려있다.
실없는 농담이라 여긴 것일까. 수정구 너머에서 너털웃음소리가 들려온다.
- 그럴 리 없지 않나, 한지훈 천 인장. 미스릴, 오리할콘, 아다만티 움 셋 모두 대장장이들이 꿈의 금속이라 부르는 귀물들이네. 조그마 한 조각 하나만 있어도 대저택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야. 그런 것들이 흔하다면 그리 비싸겠는가?
"못 믿으시는 것 같군요."
- 당연하지.
하긴 오스카가 내 말을 믿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희귀광물이 괜히 희귀광물인가. 그만큼 찾기 힘들기 때문에 희귀광 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찾은 것 또한 사실.
나는 자신 있게 요청했다.
"군단장 각하. 그렇다면 조사관을 파견해 주시지요."
- …한지훈 천인장.
"미스릴, 오리할콘, 아다만티움. 지금 왼손에 들려있습니다."
- 농담도 정도껏 하게.
내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은 것일까. 그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나는 이어 말했다.
"군단장 각하. 이미 저는 루벤 북쪽 산맥을 탐색했고, 그 와중 철 광석과 마나석, 그리고 미스릴을 비롯한 여러 희귀자원이 매장되어있 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그게 사실인가? 믿기 힘들군…
"명백한 사실입니다. 제가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조사관을 파견하면 바로 들 킬 텐데요."
수정구 너머 오스카가 침묵한다. 고민하는 기색.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 좋아. 조사관을 파견하지. 마법사를 움직여 초장거리 도약 마법을 실시하겠다.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할 걸세.
"감사합니다, 군단장 각하."
-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라네. 한지훈 천인장.
통신이 종료되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통신수정구를 잘 갈무리했다.
"좋아. 이제 영지를 키우는 것만 이 남았나."
루벤 마을. 본래라면 여러 광산 들이 세워지는 것은 몇 년 뒤, 서부대륙과의 전쟁 중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본래 시나리오보다 도 훨씬 일찍 루벤 마을을 찾아내개발시키려 한다.
본래 시나리오보다도 훨씬 빠른 발전.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전 시나리오보다도, 훨씬 커다란 영지를 만들 수 있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군. 한지훈 백인장. 아니, 이제는 천인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다음날 아침. 익숙한 얼굴을 한 마법사가 영지에 찾아왔다.
두터운 회색 로브. 로브에는 붉은색 문양이 박혀있었고, 후드 안쪽 으로 드러나는 것은 기껏해야 중년 인으로 보일 법한 얼굴.
"제피르 군단장 각하. 각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라브리에 전투마법단의 단장 제피르. 그가 직접 이자리에 온 것 이다.
사실 제피르가 직접을 줄은 몰 랐다. 조사관을 파견한다기에 초장 거리 도약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 하나, 그리고 행정 군관 하나 가 올 줄 알았었는데 .
어째서인지 단장인 제피르가 직접 내 영지로 왔다. 그에 그가 말을 잇는다.
"한지훈. 나도 마법사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마법사라는 인종 은 아티팩트에 꽤나 민감하지."
"그 말씀은…."
"자네 영지에서 마나석이 나왔다 고 하지 않나. 그 품질이 궁금해서 말이다."
마법사들이 다루는 도구들 대부분이 바로 아티팩트였다.
걸치고 있는 로브, 왼손에 쥔 연 산보조구, 오른손에 쥔 스태프까지. 그 모든 것이 여러 재료들을 투입 해 만든 아티팩트들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에게 있어 아티팩트란 전사의 무기와도 비견 되는 것.
그런 마법사가 새로운 마나석 광맥이 발견되었다는데 관심을 가지 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제피르 가 직접 온 것이리라.
"일단 증거품부터 보지."
"여기 있습니다, 단장 각하."
나는 제피르에게 가지고 온 광물들을 보여줬다.
마나석, 미스릴, 오리할콘과 아다 만티움.
제피르는 그 광물들 하나하나에 마나를 흘려 넣었고, 곧 그의 눈동자에 감탄이 어린다.
"확실히… 맞군. 한지훈, 이걸 어디서 얻었다고 했지?"
"북쪽 산맥 중간에 자리해있는 기다란 협곡입니다. 그곳에 가면 이런 것들이 길가에 널려있죠."
"그게 정말인가? 발굴 작업을 하지 않고 지표면에 그대로 놓여있었 다고?"
"정말입니다."
제피르가 턱을 괴고 말한다.
"이 정도 물건이 지표면에 굴러 다닐 정도라… 그렇다면 본격적인 광맥을 찾는다면, 꽤 많은 수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역시 마법사 아니라고 할까. 제피르는 내가 건넨 마나석을 손에 쥐고 굴려대고 있다. 물어보니 꽤나 보기 드물 정도로 순도 높은 마나 석이라고 한다.
"역시. 직접 가서 살펴봐야겠군. 한지훈, 그 협곡의 위치를 알려다오. "
"알겠습니다, 단장 각하."
나는 품속에 지도를 한 장 꺼내 제피르에게 내밀었다. 탐사 와중 작성했던 지도였다.
"여기, 붉은색 잉크로 표지된 지점이 바로 저 광물들을 발견한 곳 입니다."
"그렇군. 금방 다녀오지."
"탐사대에 속해있었던 병사 몇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길잡이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해낼 겁니다."
"배려 고맙네."
잠시 후 제피르는 병사들을 이끌 고 관사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마법사. 도약 마법을 다룰 것이니, 아마 내가 알려준 위치까지 가는데 하루면 충분하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이로서 루벤 마을은 버려 지지 않겠지."
제피르가 직접 협곡까지 간 뒤, 그곳에 매장되어있는 자원들을 확인한다면. 제국군은 절대 루벤 지방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그야 전 략자원과 고부가가치 자원이 잠들 어있는 이 황금 같은 땅을 어떻게 버린단 말이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이제 나도 부자인가."
제국에 보고했으니 , 곧 이 영지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게 될 것 이다. 그렇다면 이딴 영주성조차 없는 가난한 생활은 금방 끝나리라.
나는 마나통신 수정구를 집어 들어 요새와 통신했다.
"한지훈 천인장이다."
- 아, 천인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은 잘 처리되셨습니까?
"그래. 지금 조사관으로 오신 제피르 단장 각하께 정보를 넘겼다."
- 허어… 조사관으로 제피르 단장 각하께서 오신 겁니까? 그런 거 물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만.
"나도 좀 의외였어."
새삼 요즘 오스카, 베르겐, 제피르 등 단장 계급들과 자주 독대하 기에 까먹는 것 같지만. 그들은 고위의 계급을 가진 까마득한 상관들 이다. 본래라면 고작 천인장인 나 따위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이들 이 아니다.
물론 내가 활약한 덕분에 나름대 로 친분을 쌓았던 것이지만.
나는 이어 물었다.
"엘락. 기사들은 왔나?"
- 네, 기사들께서는 방금 요새에 도착해 짐을 풀고 계십니다.
"좋아. 곧 그리로 가지. 적당히 점심이나 대접하고 있어."
-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기다리 고 있겠습니다.
나는 말을 타고 요새로 향했다.
이제 크라그 연대 새끼들을 쳐 죽여버릴 때다.
"반갑습니다, 한지훈 경. 가스파 르 월럿이라고 합니다. 해리스 기사단의 편대장을 맡고 있지요."
"한지훈 라이젠. 아펠도른 천인대 이다."
나는 요새에 가자마자 기사들을 마주했다.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번쩍거리는 전신갑주. 몸에서는 은은히 마나의 잔향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들의 경지를 예상해본다.
'중급 기사 하나. 그리고 평기사 열인가.'
스스로를 가스파르라고 밝힌 편대장은 중급의 경지에 달한 것으로 보였고, 그의 수하들은 평기사들로 보였다.
기사단의 편대장은 열 명의 기사 들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이였다. 어찌 보면 보병대 십인장과 비슷하지 만. 원체 기사라는 인종이 고급직종 이다 보니 그대우는 백인장 수준 이었다.
내심 안도했다.
'지휘권 염려는 덜었다.'
편대장 기사는 그대우가 백인장 수준. 반면 나는 천인장이다. 현장 지휘권을 간섭할 만한 여지가 없다.
나는 그와 악수하고는, 시선을 돌려 지도를 바라봤다.
"먼저 우리의 임무를 확인하지. 이번 임무에서 상대할 적은 크라그 연대…."
"잠깐, 한지훈 경.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요청이라.
낌새가 불길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는 말을 잇는다.
"저희 기사들은 독자 행동했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이지? 가스파 르 편대장."
나는 와락 표정을 구겼다. 그만큼 방금 전 녀석이 한 요청은 불쾌 한 것이었기에.
가스파르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익숙한 기색이 느껴졌었다. 그것은 과거 갈렌이, 그리고 케니가 보여줬 던 눈빛과 비슷했다.
상대방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눈동자.
녀석이 입을 열어 지껄인다.
"한지훈 천인장께선, 천인대장으로 진급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 죠. 당연히 저희 기사들과 움직여본 경험이 적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지휘 경험이 일천한 만큼 저희 기사들의 특성을 모를 것이 분명합니다. 부대 운용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지요. 그러니 보다 편하 게, 천인대와 기사편대가 독자 행동 한다면 더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개소리다. 놈의 눈동자에는 분명 탐욕이 자리해있다.
나는 잠시 추측했고, 곧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크라그 연대.'
크라그 연대는 그 악명이 자자한정예부대다. 놈들을 제압한다면 괘 그럴듯한 전공이 될 터.
놈은 그전공을 욕심내고 있으리라. 크라그 연대를 제압했다는 전공을 저들끼리 독식하기 위해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허가할 수 없는데 . 가스파 르 편대장."
"흐음… 어째서입니까?"
"반대로 묻지. 자네, 그렇게까지 해서 전공을 쌓고 싶나?"
"무슨 망발을!"
놈이 한껏 기세를 끌어올리며 버럭 소리 지른다. 하지만 코웃음이 나올 뿐이다.
'중급 기사 주제에.'
나는 이미 상급 기사 다수를 죽 여버렸고, 비록 약소국이라 하나 공국 일개 기사단의 단장까지 베어 죽였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가스파르는 고작해야 중급에 불과한 수준. 저렇게 분노하며 마나를 돋워봐야 가소 로울 뿐이다.
뭐. 저놈들은 내가 오러 유저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해 리스 기사단은 공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 소문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터.
나는 피식 웃으며 재차 지시했다.
"개기지 말고, 명령에 따라라. 가스파르 편대장.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상부에 보고하지."
"… 한지훈 천인장.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명령 불 복종은 처형이다."
"제기랄!"
녀석이 이를 갈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실 녀석이 저렇게까지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어디서 내가 평민 출신이라는 걸 주워들은 것 같은데.'
비록 지금은 남작위를 받았지만, 내 본래 출신은 평민이었다. 그렇기에 저리 우습게 여기고 불쾌한 요청을 하는 것이리라.
분명 저놈은 내지휘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행동하려 할 터. 그렇다면 전투에 차질이 빗어질 것이다.
쯧 혀를 찼다.
'제발 사고만 안 쳤으면 하는데 .'
이거, 생각보다 일이 귀찮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