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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101화 (101/390)

101화.

루벤의 북쪽 산맥은 마경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이곳저곳 에는 마물들이 출몰하고, 지형은 험 하다. 게다가 햇빛조차 들이치지 않을 정도로 빽떽하게 자라있는 나무 들까지.

"어둡네."

나는 중얼거리며 주위 풍경을 바라봤다.

분명 해는 머리 위에 떠 있는데, 산 내부는 어두컴컴하다. 그만큼 북쪽 산맥은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선을 돌려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겁먹고 있구만.'

병사들은 꽤나 움츠러들어 있었다.

하긴, 다름 아닌 북쪽 산맥이다. 과거 공국군이 건재했을 시절에도 이곳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다 한다. 그만큼 마물의 수가 많았으니 .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번 탐사는 보다 수월할 것이다.

'마물은 대충 처리해뒀는데 말이 야.'

무려 제국 정규군 3개 백인대를 운용해 북쪽 산맥의 마물들을 쓸어 버렸었다. 당연히 마물의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

물론 산맥의 초입 부분만을 토벌 했을 뿐, 깊숙한 곳까지는 토벌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꽤나 많은 마물 들을 처치했다. 탐사 난이도는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을 터.

나는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찾았다.

"마이."

"왜 그런가? 한지훈."

나와 마이사는 말에서 내려 도보 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형이 너무나 험하고 가파르기에, 말로 이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이사에게 말했다.

"아까 전이야기한 대로, 이제 부터 네가 병사들을 지휘해야 해."

"… 알았다. 한지훈."

"좋아. 제대로 병사들을 휘어잡아 보라고. 앞으로 네가 지휘할 녀석들 이니까."

내 말에 마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탐사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마이사의 지휘 경험 축적이었다. 비록 인간을 상대로 한 격렬한 전투가 아니더라도, 수하들을 부리고 명령하는 것 자체가 나름의 경험이 될 터다.

이후 우리들은 계속해 숲 안으로 움직였다.

나는 걸어가는 틈틈이 마이사의 모습을 살폈다. 그녀가 제대로 병력을 다루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녀는 어설펐다.

"마물! 마물이다!"

"으아악! 살려줘! 마물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방패! 방패 들어!"

탐사하는 와중 마물들이 나타났다.

그레이 하운드 다섯 개체. 약 서른 명의 병사들만 있어도 그리 어 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는 하급 마물들이다.

능숙한 지휘관이 있다면 금방 정리할 수 있는 적.

하지만 마이사는 능숙하지 못했다.

"벼, 병사! 마물을 처치해라! 아니! 거기 옆! 옆을 봐!"

갑작스러운 마물의 등장에 냉정을 잃지 않은 것 자체는 칭찬해줘 도마땅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불합격.

마이사의 모습은 확실히 어설펐다.

'목소리는 힘이 없고, 시선은 혼 란스럽고, 지시사항은 추상적인 데 다가, 카리스마 또한 밑바닥.'

사람을 다루는 것이 익숙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지휘는 모자란 것이 많았다.

당황한 목소리, 흔들리는 눈동자, 명확하지 않은 지시, 권위의 부재까 지.

때문에 병사들은 손쉽게 마물을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이었음에도, 우 왕좌왕 하다가 몇몇이 마물의 공격에 당해 부상을 입었다.

"으아악! 베였다!"

"조심해!"

"으윽…"

다행히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마물의 발톱에 피부를 베였다든가, 발을 헛디뎌 바닥을 구 른다든가 하는 자잘한 부상들뿐. 생명이 위험해지는 중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사의 지휘 가 미숙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주도적으로 누군가를 지휘하는 경험이 전무 할 터이니. 원래 그 어떤 일이던지 처음은 모두 어 수룩하지 않은가.

허나 그녀의 어설픈 모습 또한 처음에 불과했다.

"5번 십인대는 전방을 막아라. 6번, 7번 십인대는 각각 좌우로 우 회해 몰아넣어."

"알겠습니다, 아가씨!"

"10번 궁병대가 활 공격을 가한 직후, 한번에 밀어붙인다. 궁병대, 일제사격 준비!"

"일제사격 준비!"

그녀는 점차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넓은 시야?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 높은 수준의 지략?

아니. 아니다.

넓은 시야는 척후병들이나 가져 야 할 능력이다.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과 높은 수준의 지략 또한 장군보다는 참모가 지녀야 할 자질이다.

물론 그것들 또한 장군이 가져야 할 덕목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차순위에 불과한 것 들 뿐.

지휘관이 가져야할 제일 중요한 자질은 카리스마다.

"… 지금이다. 궁병대, 일제사격!"

- 피잉! 핑! 피잉!

"마물이 쓰러졌다. 5번부터 7번 십인대까지, 돌격해!"

위에 선 이라면 카리스마를 지녀야 한다.

카리스마가 없다면 휘하 병사들은 상관의 자질에 의문을 가질 것 이다. 의문은 통솔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통솔의 붕괴는 전투력 저하 를 초래한다.

반면 카리스마 있는 지휘관이 부대를 지휘한다면, 부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통솔과 전투 능력을 잃 지 않고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마이사는 카리스마를 지 니고 있었다.

"밀어 붙여! 마물을 포위해라!"

"명령을 받듭니다, 아가씨!"

카리스마.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 자면 권위(權威). 다른 사람들이 명령에 따르게 하는 힘.

이 카리스마는 여러 요소가 모여 만들어진다.

목소리에 담긴 힘, 또렷한 눈동자, 내면의 포부, 단호한 손짓, 흔들림 없는 시선 등. 사람이 내보이는 여러 신호가 기세를 만들고, 이 기세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긴다.

그것이 바로 카리스마다.

"모두 정리되었으면 마물의 부산물을 채취한 후 이동한다. 거기, 병사!"

"네! 아가씨."

"다친 병사들의 수는?"

"방금 전 전투에서는 없었습니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마이사의 기 세는 상당히 고고했다.

푸른색 눈동자는 한 점 흔들림 없이 앞을 주시했다. 목소리에는 웅 흔한 기세가 담겼다. 손짓은 부드러 우면서도 단호했고, 시선 또한 날카 로웠다.

병사들을 지휘하며 점차 새어 나오는 그녀의 본래 분위기. 나는 과거 딱한번 본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같네.'

처음 내가 그녀의 신분을 간파했을 당시. 마이사는 단번에 기세를 바꾸며 왕족의 기개를 보였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때 당시와 비슷했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에 망설임은 없었고, 강렬한 기세는 자연스레 주위 병사들에게 영향을 끼쳐 명령에 따르게했다.

저것이 바로 왕족의 핏줄이라는 것이리라.

"이 정도는 해줘야 내가 기억하는 마이사 슈베츠지."

고작 반나절 정도 병사를 다룬 것에 불과할 터인데도, 그녀는 벌써 부터 병사들을 장악하고 수월하게 지휘하고 있다.

분명 그녀의 가녀린 외양 때문에, 적은 나이 때문에, 그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병사들을 지휘하는데 여러 악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가 가진 카리스마 를 내보여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이다.

피식 웃었다.

"제대로 키워봐야겠어."

마이사에게는 앞으로 영지군을 맡길 생각이다. 그리고 영지군의 규모는 영지가 발전하면 할수록, 보다 커질 터.

마이사는 추후 막대한 수의 병력을 다루는 장군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 산맥 안으로 진입 해갔다.

산맥 안으로 가면 갈수록 지형은 험난해졌고, 나타나는 마물의 수는 많았다.

콰직.

내 앞에서 있던 병사가 창을 내 질러 마물을 처치했다.

방금 전 튀어나온 마물은 블러디 울프. 늑대 형인 주제에 '하운드'이 명을 가진 잡몹들과 달리, 흑마나에 침식된 진짜배기 마물이다.

"후욱, 혹…!"

병사들이 하나둘 긴장을 끌어올 린다.

북쪽 산맥 안쪽으로 진입하자 점차 수준 높은 마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녀석들은 재빠르며 강력했고, 덕분에 병사들 중부상당하는 이들 이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살피던 마이사가 지시한다.

"오늘은… 이만하지. 캠프를 설치 해라. 이곳에서 야영하겠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병사들이 재빨리 움직여 천막을 치고 불을 피운다. 나는 마이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 하했다.

"잘했다, 마이. 생각보다 사람 다 루는 게 능숙하던데?"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정말이야. 빈말 아니야."

오늘 마이사가 보여준 모습은 내 생각보다 뛰어났다. 설마 반나절 만에 병사들을 완전히 장악할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마이. 저길 봐라."

나는 병사들이 천막을 치고 야영을 준비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에 그녀의 시선이 병사들에게로 향한다.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 병사들이 너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 고작 반나절 만에 부하들 의 신뢰를 산 거지.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거야."

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녀 또한 병사들을 지휘하며 무언 가 느낀 게 있을 터다.

나는 말을 이었다.

"병사들을 따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의 덕목이 야. 너는 그 그것을 만족했고."

"… 그런가."

"마이. 나는 언젠가 너를 사관학 교에 보낼 생각이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나를 올려다 본다. 진심이냐는 듯이.

나는 거릴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잖아. 너는 내 참모가 될 거라고."

"그렇지."

"그리고 참모가 되기 위해서는, 사관학교를 수료해야 해."

그녀를 굳이 내 양녀로 받아들인 두 번째 이유였다.

마이사에게 귀족 신분을 주고, 사관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사실, 언제까지나 영지군만을 맡 긴다면 사관학교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재능이라면 굳이 교육 따위를 하지 않는다 한들,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곧 전란의 시기가 닥쳐온다.

협상동맹의 침공 이후에는 서대륙 유목민족과 상인연합의 대이동 이, 그 뒤에는 동대륙 연방의 남대륙 침공이 있다.

수십, 수백만이 우습게 갈려나가는 시기가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내가 주로 다루게 될 것은 영지군이 아닌 제국군일 터.

그때 마이사가 제국군 군관이 되어 나를 보좌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자인데. 사관학 교를 갈 수 있나? 사관학교는 귀족 가 남자들만 가지 않나."

"아니. 여자가 사관학교에 입교한 전례는 네 생각보다 많아. 그리고 너를 보낼 나름의 방법도 있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

사관학교 생도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라 하지만. 역대 수료자들 중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명문 군관가문에서는 여성 이라 한들 적정나이가 된다면 사관 학교로 보내기도 했고, 황가 또한 남자여자를 가리지 않고 일정 나이 가 차면 제국 수도 사관학교로 보 냈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이사를 사관학 교로 보낼 셈이다. 그녀는 여성임에 도, 그 성별을 뛰어넘을 정도로 막 대한 군략의 재능이 있으니까.

아마 사관학교를 간다면, 무리 없이 수석을 차지하겠지. 그만큼 그녀의 재능은 뛰어나니까.

"그런가. 사관학교라…."

"뭐. 아직은 먼 이야기야. 이 영지가 안정화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 리니까. 그동안은 네가 영지군을 책임져야겠지."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재차 두드리 고는, 천천히 걸어 캠프 밖 숲을 향해 걸어갔다.

"한지훈. 어딜 가나?"

갑작스레 군영 밖으로 향하자 궁 금한 것일까. 마이사가 내게 묻는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생리현상 처리를 좀."

"… 화장실인가. 알았다."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계속 걸어 캠프 밖 숲속으로 향했다.

물론 방금 전 말은 거짓말이었다. 내가 군영 밖으로 나온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 한 후. 나직이 읊조렸다.

"나와라. 벌레들아."

- 이 씨! 누가 벌레들이야!

내 말에 요정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니디아가 내게 붙여뒀던 요정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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