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사로잡은 적 척후병 십인장을 데리고 요새로 복귀했다. 요새 안에는 작전을 나갔던 다른 십인대원들도 많았다.
"적 척후병 둘을 사로잡았습니다."
"저희 십인대도 하나를 생포했습니다."
"7번 십인대에서는…."
아군이 사로잡은 적 척후병들의 수가 무려 일곱에 달했다. 꽤나 많은 수였다.
나는 병사들에게 묻는다.
"예상보다 생포한 적의 수가 꽤 많은데. 그럼 오늘밤 움직였던 적 척후병들의 규모가 몇 명인 거지?"
"다섯 개 십인대로 추정됩니다."
"다섯 개라고? 미친놈들. 정찰을 아주 이 잡듯이 하고 있군."
야심한 밤을 틈타 5개 십인대를 척후로 보냈다. 도합 50여 명. 언뜻 적은 수지만, 단 한번의 정찰에 동원한 수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수였다.
추측했다.
"녀석들. 역시 침공 전 정찰 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천인장님. 침공이라 하신다 면…."
"카렌 왕국군이 제국에 침공해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단 하루 만에 5개 십인대와 조우했다. 그것도 여러 침투로를 통해 제각기 말이다.
단번에 이 정도 척후병들을 보내다니. 비정상적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만큼 놈들이 정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일 터.
나는 엘락에게 물었다.
"엘락. 사로잡은 놈들 중 십인장 이상 계급인 녀석들은?"
"천인장께서 붙잡으신 한 명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십인장들은 워낙 재빨라서 말입니다."
"그러냐."
척후병 놈들의 재빠른 움직임을 보건데, 확실히 잡기 힘들었을 거다. 하물며 그런 놈들 중 십인장인 녀석이라면 더더욱 잡기 힘들었겠지.
문득 나는 엘락에게 물었다.
"엘락. 이번 작전으로 부상당하거 나 전사한 병사들의 수는?"
"… 그게."
머뭇. 엘락이 주저한다. 나는 재 촉했다.
"어서."
"전사 열. 중상 셋입니다."
"… 염병할."
역시 적 척후병들은 노련했다. 분명 기습당한 것은 놈들이었고, 매 복한 것은 이쪽이었으며, 심지어 숫자 또한 우리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무려 열셋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백여 명이 오십 명을 덮쳐 열셋의손실. 절대적은 수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사로잡은 십인장을 심문하겠다.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엘락이 휘하 병사들에게 지시해 심문 준비를 시작한다.
고상하게 말해 심문이지, 실상은 고문이다.
'고문이라.'
사실 별로 꺼려지지는 않는다.
사람이 매일같이 죽어가는 곳이 전장이다. 하물며 놈들은 내부하들을 죽였다.
놈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꺼려 서는 안된다.
잠시 후. 고문 준비가 완료되었다.
"놔라! 이 개자식들!"
붙잡힌 적 척후조 십인장이 고함을 빽빽 내질러댔다. 녀석의 몸은 의자에 묶여 고정된 상태.
나는 천천히 걸어 녀석에게 다가간다. 녀석이 입을 열었다.
"… 염병할 제국새끼들."
놈의 얼굴을 살폈다.
나이는 30대 정도 되었을까. 언 뜻 인자한 인상을 가진 갈색 머리의 사내다.
나는 그의 바로 앞 의자에 걸터 앉아 묻는다.
"당신. 이름은?"
"내가 순순히 알려줄 것 같나?"
"알려주는 게 좋을 텐데. 그쪽이 편히 지내려면 말이야."
놈이 이쪽을 노려본다. 나는 무시하고 재차 물었다.
"당장 오늘 조우한 너희 카렌의 척후조만 5개다. 네놈들, 뭘 꾸미고 있지?"
사실 이미 알고 있다. 시나리오에서 보았으니까.
카렌 왕국은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놈들이 척후조를 운용하는 것은 침공 전 전투장소의 사전 파악이었고.
하지만 그걸 놈들이 순순히 말해 줄 수는 없을 터.
"퉤!"
녀석이 침을 뱉었다. 내 군복 가슴팍에 피 섞인 가래침이 묻는다.
"… 굳이 힘든 길로 가려고 하는 군."
나는 주먹으로 녀석의 턱을 가격했다.
퍼억! 둔탁한 소음. 의자가 충격에 흔들리고, 놈의 고개가 확 돌아 간다.
"크, 허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주먹질이었 을까. 녀석이 신음한다.
다시 한번 가격했다.
퍽!
재차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녀석의 턱. 이가 부러진 것인지, 놈 이 입에서 피를 줄줄 흘려댔다.
하지만 고작 주먹질에 입을 열 놈이 아니다.
나는 녀석의 손가락을 쥐었다.
"오늘 너희들에게 죽은 내부하 가 무려 열 명이다."
중상자까지 포함하면 열 셋이다.
고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손가락을 꺾어버린다.
우드드드득.
"끄으으으으!"
녀석이 몸을 비틀며 신음한다. 나는 놈의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갔다.
우득, 우지직. 손가락이 꺾여 관 절이 비틀릴 때마다 놈이 고통에 발작하듯 신음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녀석의 하나씩 손가락을 부숴갈 때.
"천인장님."
휘하 병사가 나를 불렀다.
병사를 바라봤다. 녀석이 내게 요청한다.
"고문 작업. 제가 직접 하게 해 주십시오."
"… 왜지?"
"오늘 작전에서 마틴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틴은 제 동기였습니다."
전사한 이와 꽤 돈독한 전우애를 다졌던 것인지, 녀석의 얼굴에는 진 한복수심이 떠올라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는 적십인장이 있다. 자신의 전우를 죽인 놈과 같은 군복을 입고 있는.
복수하고 싶겠지. 눈앞의 갈색 군복을 입은 카렌 왕국의 십인장에 게 고통을 주고 싶겠지. 이해한다.
이해하니, 수락했다.
"… 그래. 그럼 네가 이 녀석을 심문해라."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내가 직접 고문해도 되지만, 저 복수심에 타오르는 병사가 직접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으리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서며, 한마디 남겼다.
"죽이지는 말고."
"…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과 함께 문 이 닫힌다. 직후.
- 끄아아아! 으으, 으아아아아아!
적 십인장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밤, 저 카렌 왕국의 십인장 은 내내 고문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에 못 이겨 정보를 털어내 겠지.
나는 발걸음을 옮겨 천인장 숙소 로 향한다.
"정보를 뽑아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엘락이 와 보고했다.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적 십인장이 고문을 이기지 못 하고 정보를 불었습니다. 천인장님 의 예상대로, 카렌 왕국에서는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겠지."
이미 예상했던 바다. 하지만 아직 엘락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척후병 놈들의 부대 가 어딘지 알아냈습니다."
"그래?"
놈들의 몸놀림을 보았을 때, 꽤 나 네임드 부대였을 것이다.
그런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놈들은 크라그 연대 소속이었습니다."
"크라그… 크라그라."
솔직히 모르는 부대다. 그런 내 기색을 읽은 것일까. 엘락의 말이 이어진다.
"카렌 왕국의 최정예 부대로 유명한 놈들입니다."
"어떤 면으로 유명하지?"
"제국 정복 전쟁 당시, 유격전을 펼치던 부대입니다. 크라그 연대라 하면 이를 가는 북부군 장성 분들 이 꽤 많을 겁니다."
엘락의 설명에 따르면, 크라그 연대는 유격전과 척후 활동을 전문 으로 하는 최정예 부대라 한다.
녀석들이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정복 전쟁 당시 활동들 때문.
놈들은 민간인으로 위장해 제국 군 병사들과 교전하기도 했고, 보급 선을 끊고 약탈하기도 했으며, 심지 어제국 영지에 스며들어 반란을 선동하기도 했다 한다.
그야말로 온갖 비정규전의 전문가들이라고 할까.
설명을 듣고는 납득했다.
"거 빡칠 만하네."
고위 지휘관들이 빡칠 만한 짓을 주로했다.
사실 지휘관들이 가장 대응하기 힘든 것이 저런 유격전과 후방교란 종류였다. 차라리 적들이 응집되어 있다면 똑같이 군을 몰고 가 단번에 승패를 가를 수 있지만, 유격을 통한 지연전이라면 오랫동안 자잘 한 피해를 받게 된다.
그런 피해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전체적인 작전에 차질이 생길 것이 고. 결국 공세종말점이 앞당겨진다.
놈들을 기억하는 장성들이 꽤 증 오할만할 터.
"뭐. 나름대로 뼈대 있는 부대라는 건가."
정복 전쟁 당시에도 활동했던 부대다. 아마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으리라.
나는 엘락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게 유명한 크라그 연대 놈 들이 이 루벤 지방을 탐색하고 있다면, 놈들이 개수작을 걸어올 거라 확신해도 되는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크라그 연대는 카렌 왕국에서도 애지중지하는 최정예 부대입니다. 그런 놈들을 이곳에 보냈다는 건…."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봐야겠지."
솔직히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었 지만. 크라그 연대라는 놈들의 소속을 알아낸 건 나름의 수확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상부에 보고하지."
"알겠습니다, 천인장님."
나는 비콘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곧 통신이 연결된다.
* * *
"심상치 않군."
제국 북부 제 3군단의 군단장,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후작. 그는 표정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자리 한지도를 바라봤다.
그가 바라보는 지도는 요한바르 첸 총독국 전역을 표현한 대형 전 략지도였다.
그의 눈동자가 지도의 접경지대 곳곳으로 향한다.
"소규모 국지전이 계속해 벌어지고 있다."
오스카는 여러 연락을 접경지대 각지에서 접하고 있었다. 카렌 왕국 과의 소규모 국지전이 다수 일어나 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물론 국지전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제국은 과거 정복 전쟁으로 인해 국경을 접한 타국들과 그다지 우호 적이지 않았으며, 때문에 다른 국가 들의 군사도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작은 접전은 국경을 접한 지역이라 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빈도수가 최근 들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십인대 단위 국지전뿐만 아니라, 백인대 규모 국지전까지 이토록 자주 일어나고 있다니."
그가 바라보고 있는 지도에는 이곳저곳이 붉게 하이라이트 표시되어 있었다. 교전이 일어난 장소들이었다.
그 표시가 꽤나 많다.
오스카는 연초를 꼬나 물며 읊조 린다.
"역시. 심상치 않아."
그는 이미 국방성에서 정보를 들었기에 제국과 국경을 접한 타국들 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카렌 왕국은 요한바르첸 총독국을 향해 계속해 척후 활동을 시도 하고 있다.
트웨인 왕국은 기병까지 움직여 가며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람셀 또한 마찬가지. 그들은 아예 요새 바로 앞까지 진출하고는 퇴각하기도했다.
코르자카는 조용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의심스럽다. 마치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갑작스레 잠잠해졌으니까.
그의 찌푸린 눈이 지도를 훑는다.
"… 이쪽의 준비태세를 파악하려는 것만 같단 말이지."
아슬아슬하게 백인대 규모로만 이쪽을 도발하고 있다. 마치 제국의 역량을 시험이라도 한다는 듯이.
후욱. 오스카가 연기를 뱉었다. 어둑한 방안에 뿌연 연기가 퍼부 어진다.
"대규모 전쟁인가."
오스카는 대규모 전쟁을 직감했다. 과거 정복 전쟁보다도 더욱 거대한 전쟁을.
카렌, 람셀, 트웨인, 코르자카. 제국과 국경을 접한 대부분의 나라들 이 쳐들어오리라.
제국은 강하다. 허나 적국인 그 들은 다수다.
아마도 힘든 전쟁이 되겠지.
오스카가 재차 연초 연기를 흡입 할 때였다.
"군단장 각하!"
덜컹. 그의 집무실로 한 명의 인물이 들어왔다. 오스카의 참모들 중 하나였다.
난입한 참모가 고한다.
"라이젠 남작령, 포트 아펠도른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보고라. 무슨 보고지? 또 소규모 접전을 벌였다는 보고인가?"
"그렇습니다."
역시나.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규모 국지전 보고야, 이미 아펠도른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어진 참모의 말에, 오스카는 재차 표정을 와락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펠도른 천인장 한지훈 이 고하길… 그들이 상대했던 부대 가 크라그 연대였다고 합니다."
"… 크라그? 내가 아는 그 크라그 맞나?"
"맞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후욱. 오스카가 연기를 내뿜는다.
"그 염병할 개새끼들이 다시 활동한다고?"
오스카 또한 정복 전쟁을 경험한 군관이었다. 그는 본래 천인장이었 으나, 전쟁 당시 여러 공훈을 세워 군단장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가 정복 전쟁 당시 천 인장이었을 적, 가장 많이 싸웠던 적이 바로 크라그 연대였다.
크라그 연대. 카렌 왕국에서 정예병만을 모아 만든 일천 명 규모 의 경보병 연대.
놈들은 보급행렬을 습격했으며, 제국군으로 위장해 후방을 교란하 기도 했고, 아군의 행군을 방해하기 도했다.
결정적인 전투 없이 항상 치고 빠지는 비열한 녀석들. 놈들에게 죽 은 그의 부하들의 수가 무려 수백을 넘는다.
그런 크라그 연대가 하필이면, 지금 활동하고 있다니.
심상치 않다.
오스카는 잠시 표정을 굳히고는, 결정했다.
"일단, 내가 직접 한지훈의 말을 들어보지."
오스카는 성큼성큼 걸어 집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통신 비콘이 있는 참모 회의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