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비밀이야."
"… 비밀이라니요? 정말 다른 자원들이 있는 게 확실합니까?"
하긴 의심스럽긴 할 거다. 평생을 대대로 살아온 영주집안인 자신 들도 모르는 자원이 북쪽 산맥에 묻혀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블랙 오케스트라에서 보았기에 알고 있다.
북쪽 자원에는 여러 희귀자원이 묻혀있다는 걸.
나는 씨익 웃었다.
"그래. 확실해. 북쪽 산맥에는 여러 자원들이 있다."
북쪽 산맥에 매장되어있는 자원 들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흘러나 온다.
'마나석, 미스릴, 아다만티움, 오리할콘.'
그야말로 희귀자원의 퍼레이드다.
아티팩트의 재료로 사용되는 마나석, 최고급 아티팩트에나 사용되는 미스릴, 고급 병장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아다만티움과 오리할콘 까지.
물론 대량의 희귀금속이 나오지는 않는다. 희귀금속이 괜히 희귀 금속이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영지가 막 대한 수익을 얻고, 대륙 곳곳에 있는 이름 날리는 장인들이 찾아오기 엔 충분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드워프 장인들 까지 몰려오게 되지."
"드워프 말입니까? 그게 무슨…."
"그런게 있어. 어쨌든,"
나는 잠시 랑스를 바라보고는 묻는다.
"병사 무장, 탐사대 조직, 북쪽 산맥 탐사. 할 수 있지?"
"…해보겠습니다."
"좋아."
랑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래 봬도 영주가 없는 기간 동안 훌륭히 영주대리 역할을 해냈던 녀석이다. 내가 맡긴 일들 또한 문제없이 처리해내리라.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참고로 네게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라니요? 다른 자제 분이 있으셨습니까?"
"그래. 너처럼 핏줄이 이어진 건 아니지만. 마이! 들어와라."
나는 마이사를 방안으로 불렀다.
끼익. 문을 열며 등장하는 마이 사의 모습.
"… 어."
랑스의 입이 크게 벌려졌다. 나는 시선을 돌려 마이사를 바라봤다.
마이사는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계급장 없는 제국군 군복을 입고 있고, 허리춤에는 호신용 단검을 차 고 있다. 게다가 머리는 남자처럼 보이도록 자른 상태.
완벽한 남장이다.
하지만 그런 남장 차림임에도 불 구하고 무언가 느껴졌던 것인가. 랑 스가 중얼거린다.
"아름다우시군요…."
"……?"
뭐지? 미친놈인가.
저 모습을 보고 이런 반응이라 니. 조금 당황스러운데.
야심한 밤.
중앙대륙, 엘프의 숲.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세계수. 온 대륙에 자연력과 마나를 공급하고 순환시키는. 이 세상 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영물.
그리고 그 커다란 나무 앞에는 두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이름 없는 별이 영지를 얻었다 고요?"
입을 연 것은 엘프의 여왕, 엘리 스였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세계수를 바라보고 있다.
엘리스의 옆에서 있던 이, 하이 엘프이자 엘븐 가디언인 니디아가 대답했다.
"네. 여왕님. 요정들이 전해오길, 요한바르첸 공국 변경인 루벤이라는 지역에 영지를 얻었다고 해요."
"루벤…."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벤.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지역 이었다. 전생에서 꽤나 중요하게 다 뤄졌던 지역이었으니까.
"루벤에는 여러 희귀자원이 있었 지요. 그리고 남부 대륙의 요충지이 기도 했고요."
전시나리오에서, 루벤은 격전지였다. 그만큼 그 지역이 커다란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루벤에서는 여러 희귀자원이나 왔다.
고품질의 병장기를 만들 수 있는 질 좋은 철광석은 기본.
아티팩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초 재료인 마나석부터, 마나를 증폭 시켜 최상급 아티팩트를 만드는데 쓰이는 미스릴, 그 단단함과 강도가 최고라고 불리는 아다만티움, 경도 와 강도가 출중한데도 그 무게가 천에 비견되는 오리할콘까지.
그야말로 온갖 희귀한 자원이 쏟 아지는 곳이 바로 루벤 지방인 것 이다.
"그래서 한지훈이 루벤 지방을 선택했겠지요."
만약 한지훈이 정말 이름 없는 별이었다면, 루벤지방의 가치를 잊을 리 없다. 그만큼 남부 전체에서 손꼽힐 정도로 중요했던 곳이니.
엘리스는 니디아에게 묻는다.
"니디아. 니디아는 한지훈과 잠깐 이나마 같이 했었죠."
니디아는 굴라덴 공략전 당시 한지훈과 함께 행동했었다.
고작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니디아가 보기에 한지훈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한지훈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니디아의 안목은 출중했으니까.
그에 니디아가 대답한다.
"한지훈의 어떤 면을 말씀드릴까 요? 여왕님."
"음… 일단 성격부터 알려주세 요."
"한지훈의 성격은, 글쎄요? 무뚝 뚝하다고 해야 하나요?"
니디아는 기억 속 한지훈을 떠올렸다.
한지훈의 성격은 그리 활기차지 않았다. 항상 시니컬한 말투로 입을 열었고, 몸짓 또한 신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을 아꼈었 죠."
그러나 한지훈의 성격이 마냥 차 가웠던 것은 아니었다.
부하를 아꼈고, 굴라덴의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잠입 작전을 수행했었다. 더해 흑마법사 들에 대한 증오도 가지고 있었다.
니디아의 말에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제 기억과는 조금 다르네요."
엘리스는 천천히 한지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현생에 대한 기억은 아니었다.
이전 시나리오의 기억. 과거 전 생의 기억이었다.
"이름 없는 별… 한지훈은, 냉혹 한 학살자이자, 철저한 정복자였어 요."
그녀는 기억한다.
제국을 손에 넣고, 계속해 군대 를 일으켜. 무수한 인간과 이인종들을 죽여 가던 한지훈의 모습을.
"그자는 한 줌의 땅을 얻기 위해 서 학살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한지훈은 점령한 도시에 가치가 없다면 무참히 파괴했었다. 수천의 인구가 살고 있는 마을을 불태웠고, 수만의 인구가 자리 잡은 도시에 폭격마법을 퍼부었다.
"인의를 저버린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고."
제국 황제 한지훈의 가장 강력한 동맹은 다름 아닌 흑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소비해 마법을 발현했다.
수천 명의 인간을 제물로 바쳐 대규모 파괴마법을 운용했다. 수만 의 인명을 소모해 광역 저주마법을 부리기도했다. 수십만의 인구를 소모해 언데드로 이루어진 대규모 군대를 운용하기도했다.
"세계수를 타락시키기도 했죠."
한지훈의 군홧발에 짓밟힌 것은 인간의 영역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기어코 흑마법사와 제국군을 이끌고 와, 엘프의 영역을 침공했다. 엘프들을 학살하며 중앙대륙 의 중심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수천의 흑마법사들을 운 용해 세계수를 타락시켰다.
"세상이 멸망했어요."
세계수가 타락한 이상 대륙에 미래는 없었다.
세상은 멸망했고. 그녀는 마지막 남은 세계수의 힘을 빌려 기억을 가진 채, 새로운 시나리오인 '이곳' 으로 넘어왔다.
미래를 본 대가로 두 눈을 바쳐 서.
"그런 한지훈이 사람을 아낀다 니… 솔직히."
엘리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내려깔렸기 때문에.
"믿기 힘든 일이에요."
"여왕님…."
"하지만, 니디아의 말을 믿어야겠 죠."
엘리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림자는 사라지고, 다시금 온화한 기색 이 떠올라있다.
엘리스가 말한다.
"확실히 이번 시나리오는 이전과 달라요."
엘리스가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어둑한 밤하늘. 반짝 이는 빛들이 그녀의 시야에 자리한다.
"광기의 힘이 이전보다도 빠르게 강해졌고,"
그녀의 눈이 달을 바라본다. 달은 이시기 그녀의 기억보다도 좀 더 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름 없는 별은 광기에서 멀어 졌죠."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행보였다.
과거, 이름 없는 별은 광기를 의미하는 달과 정복의 별에 가까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복의 별에 가까이 접근하면서도 광기와는 오히려 더욱 멀어졌으니 .
"니 디아."
"네. 여왕님."
니디아가 고개를 숙인다. 무언가 명령할 것이라 여겼기에.
엘리스가 싱긋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한지훈을 우리 엘프의 아군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한지훈. 전시나리오의 정복자. 세상을 멸망시킨 이.
하지만 그의 행보가 달라졌다.
때문에 엘리스는 도박을 걸어보 고자 한다.
"한지훈의 영지 루벤. 그곳을 지원한다면, 이름 없는 별이 우리를 도와줄지도 몰라요."
한지훈은 분명 전세상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에서 그 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엘프 여왕 엘리스는 기대해본다.
"이번 세상에서는. 한지훈이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 원할지도 모르죠."
그녀의 미소가 달빛을 받아 은은 히 빛났다.
- 천인장님. 잘 들리십니까?
"그래. 잘 들려."
나는 수정구를 손에 쥔 채 그리 말했다.
드디어 요새에 비콘이 설치되었고, 마나통신망이 이어졌다.
손아귀에 들린 주먹만 한 수정구 를 바라봤다.
"마나통신구라."
천인장급에게 지급되는 통신 아티팩트다. 비콘의 중개하에 마나를 이어 통신하는 아티팩트.
과거 갈레이 야습 당시, 군단장 오스카가 내 앞에서 사용했던 물건.
피식 웃었다.
"이제야 천인장이 된 듯한 기분 이 드는데 ."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을 때도, 천인장 단검을 받았을 때도, 가슴팍에 천인장 계급장이 달렸을 때도 솔직히 별 체감은 안 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내 손아귀에 마나 통신구가 들리고 나니. 이제야 좀 천인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수정구를 들고 지시한다.
"엘락. 지금 요새 상황 보고해."
- 이상 없습니다, 천인장님. 요새 복구 작업은 순조롭고, 부대시설 또한 대부분 기능을 복구했습니다. 지금은 주변 정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도 제작은?"
- 완성에 근접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삼일 정도면 산맥 지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내가 영지에서 빈둥거리는 요 며칠 사이, 요새는 바뻤다.
방치되어 노후화되었던 요새가 수리되었다. 내부의 건물들을 보수 했으며, 천인대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군영까지 건설했다 한다.
뿐만 아니었다.
요새 주변을 비롯한 산맥 인근의 지도까지 제작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삼 일 뒤에는 꽤나 정밀한 전술 지도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역시 제국군은 유능해."
만약 공국군이었다면 이토록 빠르게 일을 완수하지 못했으리라.
내심 안도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카렌 왕국이 침공해오기 전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겠어."
곧 협상?동맹의 침공이 있을 것이었다.
카렌 왕국, 람셀 왕국, 트웨인 왕국, 그리고 코르자카 공화국의 대규모 침공.
4개 전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 들은 제국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 요한바르 첸 총독령에서 주로 마주치는 적들은 다름 아닌 카렌 왕국의 병사들.
놈들은 서쪽 접경지대를 통해 적 지 않은 수가 쏟아져 올 것이다.
"놈들을 막기 위해서는 요새랑 지도가 필요하지."
수적인 불리함을 해소할 수 있는 튼튼한 요새. 그리고 정보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술지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 모든 준비를 끝마쳐 야 하리라.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정보."
- 띠링!
오랜만에 홀로그램을 꺼내본다.
[한지훈][아펠도른 천인대장]
[스킬 : 백인대 전투지휘술]
[스킬 : 제국 검술(중급)]
[스킬 : 기마술(하급)]
[스킬 : 투창(입문)]
[스킬 : 은신술(하급)]
[엑스트라 스킬 : 집중]
[엑스트라 스킬 : 전투분석]
[근력 44]
[민첩 103]
[내구 38]
[체력 32]
[마나 50]
(남은 포인트는 115pt 입니다.)
참 많이도 발전했다.
능력치를 키웠고, 스킬을 상향시켰으며, 포인트까지 여유롭게 모아 뒀다.
남은 포인트는 무려 115pt.
고민해본다.
"능력치를 상향하는데 사용할까, 아니면 천인대 전투지휘술을 올릴 까."
천인장이 되었다. 병력을 정밀하 게 다루기 위해서는 천인대 전투지 휘술이 필요하다.
허나 그렇다고 능력치 상향까지 포기하기엔 아까운 노릇.
나는 잠시 고민하고는,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