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유닛-93화 (93/390)

93화.

"자, 결정은 했나?"

다음날 아침. 나는 루벤 마을의 관사로 가, 영주대리 랑스를 만나 대뜸 물었다.

"내 양자가 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갈지 말이야."

양자가 될지 말지 결정하라는 질문.

그에 고민하는 랑스.

녀석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묻는다.

"어째서 저를 양자로 들이시려는 겁니까?"

랑스의 얼굴에는 불신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내심 불쾌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해할만한 일이었으니까.

"뭐. 제국군 군관인 내 양자로 거둬지는 것은 거북하겠지. 내가 소속된 제국군이 너희 아비를 죽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 편이 더 수월하게 영지를 통 치할 수 있으니까. 너희 오스텐트 가문은 대대로 이 지역을 통치해왔 지."

랑스는 이 지역을 오랫동안 통치 한 오스텐트 가문의 자제였다.

덕분에 지역 주민들과 어색함 없이 섞일 수 있고, 이 지역의 사정을 정확하게 꿰고 있다. 더해 마을 의 분위기를 보면 오스텐트 가문은 나름대로 마을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랑스를 내쳐 내고, 영주로 군림한다면?

'반발하겠지. 나는 이 지역 사람 이 아니니까.'

본래 정복자는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내가 마을을 발전시키려고 여러 일들을 벌인다면 분명 잡음이 생길 터.

하지만 오스텐트 가문의 자제인 랑스를 앞에 내세운다면 그런 일은 사라진다.

주민들은 영주가 바뀌고 소속국 가가 바뀌었음에도, 실질적으로 통 치하는 인물은 그대로인 것에 안도 할 것이리라.

"게다가 나는 영지를 챙길 생각 이 그다지 없어. 나는 군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렇다고 영지를 완전히 버려놓을 수도 없고, 딱히 믿음직한 행정관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지는 부가적인 요 소로 다루려 한다. 내 본직은 어디 까지나 군인이다.

내정은 게임 속에서도, 이곳에서 도 자신이 없다.

서툴게 내정을 할 바에, 능력이 검증된 인재를 박아 넣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너는 이미 이곳에서 나 고 자랐지. 게다가 내가 오기 전까 지, 너는 전 영주의 부재 기간 동안 영주대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리고 랑스의 능력은 이미 검증 되어있다.

랑스는 아직 열다섯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도 불구, 영주대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과거부터 받아온 고등교육 덕분일 터다. 아니면 녀석을 보좌하는 행정관료들이 생각보 다 유능한 것일 수도 있고.

아마 둘 다이겠지.

"그래서 네게 영지내정을 맡기려 하는 거다.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영지관리를 놔두고 군직에 집중할 수 있고, 너는 기존의 지위를 유지 하며 영지 밖으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나도 굳이 정말 아버지라고 불 릴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영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을 뿐이야. 네가 아직 성인이 아니 니까, 양자로 들인 것이고."

사실은 그 능력이 대단하기에 양 자로 들인 것이지만.

다 말하고는 랑스를 바라봤다. 녀석은 고민하고 있다.

나는 씩 웃으며 재차 물었다.

"자, 그래서 대답은? 내 양자가 될 건가?"

물론 답은 정해져 있을 터다.

"… 그쪽의 양자가 되겠습니다."

"좋아."

내 양자가 되는 것이, 맨몸으로 영지 밖으로 쫓겨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나는 기특한 마음에 녀석의 머리 를 헝클어트렸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랑스 오스 텐트가 아닌, 랑스 라이젠이다."

"랑스 라이젠…."

랑스는 자신의 새 이름이 낯선 지, 몇 번이나 입에 되뇌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내게 영지에 대 해설명해줬으면 하는데 . 랑스 라이 젠 영주대리."

"그… 알겠습니다."

랑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에서 지도를 가 져왔다.

그리 정밀도가 높은 지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알아보기에는 충분한 정도.

"이건 저희 라이젠 남작령의 지도입니다."

랑스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남작령의 인구수는 팔천이 약간 넘습니다. 그중 절반인 약 사 천 정도가 이곳, 루벤 마을에 살고 있지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인구 팔천. 다른 남작령들 대부분이 인구 일만을 넘어가는 걸 생각하면, 그리 많은 인구수는 아니다.

녀석의 설명이 이어진다.

"주 산업은 농업입니다. 영지 수입의 대다수를 농업으로 인한 세금 으로 걷고 있어요."

"식량 산출량은?"

"나름대로 풍족한 편입니다. 아직 까지 식량이 부족해본 적은 없어 요."

"역시. 축복받은 땅 공국령이라 이건가."

구 요한바르첸 공국은 기후가 온 건하고 강수량도 풍족하며, 국토의 대다수가 평야지대였다. 덕분에 면적대비 식량 산출량은 매우 뛰어난 편에 속했다.

그것은 이곳 루벤 지방도 마찬가지인지라, 식량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다른 산업은 어떻지? 공업이라 든가, 아니면 상업이라든가."

"공업은… 이곳 루벤 마을에 대 장간이 하나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닙니다. 좋은 무기를 만들지도 못하고요."

"뭐, 그렇겠지."

루벤 지방에 빈약한 철광석 광산 이 있긴 하지만, 그 품질이 심히 저급이었다고 들었다.

기껏해야 농기구나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리라.

"상업은 시장이 있긴 합니다. 상 단이 왕래하기 때문에요."

"상단은 자주 오나?"

"네. 이곳은 접경지대입니다. 그래서 카렌과 공국 두 나라를 왕래 하는 상단이 꽤 있었지요. 덕분에 물류와 자금은 정체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인데."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건 수월하 겠지.

"영지군의 수는?"

"백여 명 정도입니다."

"더럽게 적네."

"어쩔 수 없습니다. 영지의 소득 이 그리 많지 않아서…."

루벤 지방의 영지군 수는 고작 백여 명에 불과했다.

백 명. 영지를 방어하기엔 턱없 이 적은 수였다.

물론 팔천의 인구에서 상비군이 백여 명이면 그 비율은 1.25%로, 지구의 중세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이 세계는 마물이 활보하는 세계다.

다른 영지는 대부분 인구대비 3%, 마물이 많은 영지의 경우 많 게는 10%에 달하는 상비군을 보유 하기도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고는 재차 물었다.

"마물의 수는? 영지군으로 마물을 상대할 정도는 되나?"

"아슬아슬하게 각 마을을 방위할 정도는 되었습니다만… 요즘에는 마물에 대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최근에는 외곽 쪽 마을 몇 개가 마물에게 당해 사상자가 나왔었습니다."

"공국의 마물 경계망이 붕괴했으 니까. 뭐, 예상했었어."

역시 고작 백 명의 영지군으로는 마물에게서 마을을 지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영지군의 수도 늘려야 한다.

"좋아. 랑스, 앞으로 이 도시를 개발시킬 방향을 알려주지."

나는 그리 말하며 지도를 내려다 봤다.

"이곳 오스텐트 남작령… 아니, 이제는 라이젠 남작령이라 불러야지. 하여튼 라이젠 남작령은 절반은 평야고, 절반은 산악지대지. 가운데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고 말이 야."

내 영지, 라이젠 남작령은 고른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북쪽과 서쪽에는 산맥이 자리 잡고 있고, 동쪽과 남쪽은 평야지대. 그리고 서쪽 카렌 왕국부터 동쪽 구 공국 수도 헤이드니아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강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북쪽을 짚으며 말했다.

"일단, 북쪽산맥을 개발할 거다."

"북쪽 산맥이라니…."

그에 랑스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무어라 말하려 한다. 보나마나 개발 이 힘들다고 할 터.

녀석의 반응을 무시한 채 물었다.

"랑스. 이 지방에 자원이 거의 없다고 했지?"

"… 네. 저희 지방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습니다. 그저 농업으로 먹고 사는, 그런 지방이에요."

"별다른 광물은 발견되지 않았 고?"

"네.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 피, 철광석이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저품질입니다."

"음. 아직 그 광산은 개발되지 않았나 보네. 당연하지만."

"네?"

"뭐.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알려 주지."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일단 숨긴다.

소문이 퍼지면 안 되니까.

"그리고 병사수가 백 명이라고 했지. 무장이 너무 빈약하던데."

"어쩔 수 없습니다. 제대로 무장 시키기엔 돈이 모자라니까요."

"결국 돈이 문제지."

나는 허리춤에서 천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찰그락, 하고 동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금화를 주마."

"금화… 말입니까?"

"일단 500개 주지."

"무슨…."

랑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금화 500개. 상당한 거금이 아닐 수 없다. 제국군 병사 500명의 한 달치 봉금에 상응하는 돈이니.

그마저도 나름대로 봉급을 잘 챙 겨 받는 제국군 병사 기준이다. 공국군이거나 영지군을 기준으로 잡 는다면, 천 명이나 한 달 내내 유 지할 수 있는 금액이다.

물론 무장과 식사는 제한 금액이 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돈인 것은 확실하리라.

"이걸 사용해 일단 병사들을 제대로 무장시켜. 남는 돈은 제대로 보관해두고."

"오백이라니… 제, 제국군 군관은 그렇게 많이 버는 겁니까? 일개 장 교가 그리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 게…."

"뭐. 훈장과 부상을 나름 충실하 게 받아서 말이야."

사실 저 500개의 금화들조차 내 전 재산이 아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금화가 250여 개. 그리고 금성훈장을 두 개나 수훈받으며 각각 200금화를 받았었다.

즉 지금 내 전 재산은 무려 금화 650에 달했다. 여기서 금화 500을 준다 한들, 150금이 남는 것이다.

"이, 이렇게 많은 돈을 주셔도 됩니까? 저희 영지의 세 달치 세수 입니다만…."

"괜찮아. 어차피 나중에 훨씬 커다란 돈으로 돌아오니까."

"네? 그게 무슨…"

"어쨌든, 돈은 해결됐고."

귀찮아진 나는 대화를 끊고, 화제를 돌렸다.

"이 영지는 세금수익이 얼마나 되지? 한 달에."

"그때그때 다릅니다만, 평균을 내 자면 130금화 정도 나옵니다."

"빠듯하네."

130금. 언뜻 많아 보이지만 실은 영지를 굴리는데 턱없이 적은 돈 이다.

상비군 백 명과 하녀 몇 명을 유 지하고, 간간히 영지 시설들을 보수 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

나는 새삼 소년의 옷차림을 바라 봤다.

'역시 검소하게 살았어.'

소년은 남작가문의 유일한 핏줄 이었음에도, 그 복장은 귀족의 것이라기엔 상당히 간소했다.

물론 깔끔한 복장이었지만. 그럼 에도 신분을 생각해보면 검소한 것 이사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전 영주 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인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마을의 분위기는 대충 파악했다.

검소하지만 온화하고도 안정된 마을.

오스텐트 가문은 오랫동안 이마을을 통치하며 선정을 베풀었을 것 이다. 세율은 다른 공작령 영지들에 비해 훨씬 적었을 것이고.

덕분에 주민들은 비교적 사람답 게 살 수 있었겠지.

탐욕스러운 다른 귀족가문들에 비해 훨씬 나은 모습이다.

'뭐. 그래서 결국 영주성조차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겠지만.'

착하면 호구라는 소리는 지구나 여기나 똑같다.

"그리고, 탐사대를 조직해라. 북쪽 산맥을 탐사할 거니까."

"북쪽 산맥이요? 위험합니다."

랑스가 염려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북쪽 산맥에는 마물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예전 공국이 건재했을 때도, 공국군은 차마 북쪽 산맥을 청소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마물은 내가 청소할 거니까."

어차피 요새에 주둔중인 제국군 천인대의 임무중 하나가 주변 마물 제압과 치안 안정이다.

무려 천여 명의 제국군 병사들이다. 마물들 따위 간단하게 밀어버릴 수 있다.

가장 먼저 북쪽 산맥을 정리해야 겠지.

나는 이어 말했다.

"북쪽 산맥 깊숙한 곳에 광맥이 많이 있을 거다. 마물들이 모두 정리된 뒤, 거기를 탐사해 개발해라. 나중에는 광산도 세우고."

"광산이라니… 정말 그곳에 철광 석이 있습니까?"

"뭐. 철광석도 있고."

"… 무언가 다른 자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랑스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대답했다.

"북쪽 산맥에 있는 자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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