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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90화 (90/390)

90화.

"다음으로. 작위를 수여하겠다."

나는 미리 들었던 대로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기사 서임식과 달리, 작위 수여 식은 오직 황제나 혹은 황가의 인물들밖에 할 수 없다. 귀족 작위란 대대로 황제를 섬기겠다는 충성의 증표였기 때문이다.

"한지훈. 제국 평민. 그대에게 위대하고도 고귀하신 황제 폐하의 동의 아래 남작위의 지위를 수여한다."

그녀가 또 다른 나무상자를 열더 니, 기다란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라이젠. 그것이나 아르테니아 가이나스 비 오르페우스가 너에게 내리는 가문명이다. 황제에게 충성 하고, 황실에 봉사하며, 제국의 발전에 기여하라. 아르테니아 가이나 스 비 오르페우스 황제 폐하 대리, 신시아 비 오르페우스."

와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광장에서 터져 나왔다. 훈장 수여식 때는 박수 소리에 그쳤던 것과 상반된 반응이었다.

물론 이유는 알고 있다. 평민인 내가 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기 절대다수가 평민인 저들로서는 내가 귀족이 된 것에 일종의 대리만 족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나는 멍하니 생각한다.

'근데 나이미 성씨 있는데 .'

내 이름 한지훈의 '한'이 바로 내 성씨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나는 성씨가 없고, 이름이 한지훈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긴 평민이었으니 그게 당연하 지만.

그러니 앞으로 내 풀네임은 한지훈 라이젠이 된다. 엄청 기괴한 이름이다.

"일어나라 한지훈 라이젠."

신시아도 어감이 이상하단 것을 알아차린 걸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 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나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그것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귀족 증서였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부터 귀족이다. 곧 영지도 하사될 거다."

신시아가 잠시 나를 바라본다.

"원하는 영지는 있는가?"

"아직 없습니다. 총독 각하."

"그래. 나중에 총독성으로 오게. 가급적 원하는 위치의 남작령을 줄 테니,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훈장 수여식 겸 작위 수여식이 끝났다.

"축하하네, 한지훈. 아니. 이제 부터는 한지훈 경이라고 불러야겠군."

"아,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십 쇼."

"한지훈 경."

"맙소사."

그레드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 를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이라는 존칭은 평민이 귀족을 부를 때, 혹은 동격의 귀족들끼리 격식을 차리며 말할 때 붙이는 호칭이다.

나는 그 경이라는 호칭이 거북했다. 뭔가 재수 없지 않은가.

그레드가 씩 웃었다.

"자, 이제 훈장도 받았으니 다음 차례로 넘어가야지."

"다음 차례라니. 또 할 게 있습 니까?"

"자네 진급식이 남아있지 않나."

그레드가 그리 말하며 나를 이끌었다.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총독성 옆, 군관들 이사령부로 사용하고 있는 커다란 저택이다. 그곳 안으로 들어섰다.

저택 깊숙이 들어가자. 안에는 익숙한 인물이 자리해 있었다.

"어서 오게, 한지훈. 훈장 수여식 은 잘 하고 왔는가."

"오스카 군단장 각하."

자리에 있는 것은 오스카 군단장 이었다. 나는 경례하고,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여 내 경례를 받았다.

그가 지시한다.

"자, 이쪽으로 와서 서게. 그리고, 부관!"

"네. 군단장 각하."

"그걸 가져오게."

부관이 고급스러운 상자를 들고 왔다. 그는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들었다.

계급장과 약장, 그리고 증서였다.

오스카가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자네의 진급이 국방성에서 통과되었다."

"그 말씀은."

"이제부터 자네는 천인장 계급장을 달게 되었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인장. 천 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계급이다. 현대 한국군으로 따지면 중령 내지 대령과 비슷한, 영관 급 계급.

나는 그에게 물었다.

"헌데 바로 천인장입니까? 원래 라면 천인대 부관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백인장의 바로 다음 계급은 천인대 부관이다. 천인장은 그다음 계 급이다.

헌데 지금 나는 천인장으로 진급 할 것이라 한다. 그에 오스카가 대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2계급 특진인 거다. 그만큼 자네가 세워온 전공이 꽤나 대단해서 말이다."

"… 그렇군요."

오스카가 약장을 들어올려 내 가슴팍에 달아줬다. 천인장 약장이다.

"천인장으로 진급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군단장 각하."

뒤이어 오스카가 천인장 계급장을 꺼내 내 정복 옷깃에 박아 넣었다. 금속 계급장이 반짝이며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참. 신기하군그래, 한지훈. 자네 가 고작 몇 달 전만 해도 십인장이 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저도 그렇습니다."

오스카가 단검을 꺼내 내게 건넸다. 단검에는 천인장 계급 문양이 음각으로 박혀져있다.

"제국군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진급 속도로군."

그가 웃으며 그리 말했다.

생각해보면 내 진급 속도는 비정 상적이었다. 고작 두 달 만에 십인 장에서 백인장을 넘어, 천인장에 도달하다니.

두 달이면 현대 한국군 기준으로 훈련소 입소한 뒤, 이등병 계급장을 달 만한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 헌데 나는 고작 두 달 만에 분대장이라 할 수 있는 십인장에서, 중령 내지 대령이라 할 수 있는 천인장에 도달했다.

"자네 소속은 여전히 북부 제 3군단 소속이다."

"천인대 이름은 정해졌습니까?"

"아니. 아직이다. 자네가 배치될 요새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만약 주둔할 요새가 정해진 다면, 그 요새 이름을 딴 천인대가 되겠지. 파트라헴 천인대처럼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인대 이름을 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단순히 번호만 붙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주둔지 이름으로 천인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보통 요새를 지키는 천인대가 별도의 이름을 받는다.

"한지훈."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제스처.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 았다.

"자네는 지금부터 천인장이네. 그동안 수고했네."

나는 천인장이 되었다.

* * *

오랜만에 편하게 쉬었다.

훈장 수여식, 작위 수여식, 진급 식을 모두 마친 나는 휘하 병사들을 모아 회식을 진행했다.

돈은 많았다. 훈장 수훈 부상으로 받은 금화가 무려 수백에 달했 으니 . 병사들을 먹일 돈은 충분했다.

그렇게 한창 회식을 한 뒤,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 한지훈."

숙소에는 마이사가 있었다.

그녀가 내 모습을 바라봤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정확히 정복의 왼쪽 가슴팍.

내 가슴팍에는 훈장 두 개와, 여러 약장들, 그리고 천인장 계급장이 박혀있다.

그녀가 믿기지 않다는 듯 웃었다.

"정말… 천인장이 되었구나, 한지훈."

"그래. 천인장이 됐다. 그리고 덤 으로 훈장도 두 개 받아왔지."

나는 장난스럽게 내 왼쪽 가슴팍을 툭툭 쳤다. 그곳에는 금색 훈장 두 개가 자랑스레 매달려있다.

금성훈장. 군 고위직으로 직행하는 하이패스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침대에 가 걸터앉았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뭐가."

"그렇게 빠르게 진급하는 게 말이다."

마이사는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 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철없는 꼬맹이지만. 녀석은 왕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진급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하물며 평민 출신인 나라면 더더욱.

그녀의 얼굴에서는 흐뭇하다는 표정이 지어져 있다.

"그렇다면 한지훈. 너는 이제부터 귀족인가?"

"그래."

나는 품속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신시아에게 받은 남작위 증명서, 그리고 오스카에게 받은 천인장 증명서와 단검들까지.

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나는 이제부터 귀족이야."

그동안 해온 고생들을 조금이나 마 보답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서류를 살펴보던 마이사가 문득 물었다.

"한지훈. 영지는 정해졌나?"

"영지는 아직. 하지만 생각해둔 곳은 몇 군데 있어."

신시아가 말하길, 가급적 내가 원하는 영지를 준다고했다. 전쟁영 웅인 나를 배려하는 것이라 하던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종이 와 펜을 꺼내 들었다. 마이사가 내 모습을 바라본다.

"갑자기 뭐해?"

"지도 그려."

나는 펜을 종이 위에 대고 거침 없이 그었다. 조금씩 지형지물이 그 려진다.

높고 낮은 산맥, 길게 이어진 강, 탁 트인 평지와, 매장되어있는 여러 지하자원들까지. 그것들을 하나씩 그려가며 기억을 되살린다.

어디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지 형이 어떠하고, 주변 환경은 어떤 지.

그렇게 한참 동안 기억을 쥐어짜 내자 곧 꽤나 많은 정보들이 담긴 지도가 만들어졌다.

"… 이건."

마이사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우두커니 지도를 바라보던 그녀가, 놀란 얼굴로 내게 묻는다.

"한지훈! 이 정보들은 어떻게 얻 은 건가?!"

그녀가 경악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만큼 내가 만든 지도는 겉보기에는 꽤나 엉성했지만, 담겨있는 정보는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나는 씩 웃었다.

"뭐. 내 기억력도 아직까진 쓸 만하네."

이미 블랙 오케스트라의 엔딩을 본 나다. 그리고 공국령은 게임의 초중반 주 전장이었던 곳. 덕분에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다.

어디에 어떤 자원이 매장되어있고, 지형은 어떠하며, 어떤 영지가 추후 발전하게 되는지.

손가락으로 지도의 지역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기억을 떠올려본다.

'식량, 사치품, 철광석, 마나석, 마물자원, 유적, 던전….'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그곳이 제일 낫겠지."

여러 가지 후보지들이 있지만, 지금 제일 좋은 영지가 어디인지 떠올랐다. 그곳이라면 내 영향력을 키우기 몹시 유리할 것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지를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총독성으로 가 신시아 총독을 알현했다.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신시아는 옥좌에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왔군, 한지훈 백인장. 아, 이제는 천인장이군 그래."

신시아가 웃으며 내 가슴팍에 자리해있는 계급장을 바라봤다. 내 계 급장은 천인장으로 교체되어있다.

그녀가 손짓하고, 나는 경례하며 앞으로 걸어가 섰다.

"이제 그대가 받을 영지를 정해 야겠지. 한지훈. 어디를 원하는가? 그대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가급적 그곳으로 주지."

그녀가 시선을 돌려 알현실 한켠에 걸려있는 지도를 바라봤다.

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의 위치를 하나하나 짚어갔다.

"나는 알리벤이나 빈포르티 남작 령을 추천하지. 제국과 비교적 가깝고, 나름대로 상업이 발전한 지역이다. 특히나 빈포르티는 철광석 광산 이 있어 꽤나 좋은 영지지."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공국 지도를 훑었다.

알리벤, 빈포르티. 둘 다 아는 곳 이다.

저 둘은 나중에 전쟁으로 개박살 나는 영지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흐음… 그렇다면 혹시 민사스를 원하는가? 이곳도 좋은 영지지. 식량 산출량이 면적에 비해 매우 뛰어나다. 인구수도 남작령 중에서는 나름대로 많은 편이지."

민사스는 나중에 반란이 일어나 내부에서 쪼개지는 곳이다. 나는 다시금 거절했다.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한다.

"그럼 그대가 원하는 영지는 어디인가? 참고로 말하지만, 중규모 이상의 도시가 있는 곳은 안된다.

그곳들은 모두 추후 황실 직할령이 되어 행정관이 파견될 곳이니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손을 뻗어, 지도의 한 구역을 가리켰다.

"저는 이곳을 원합니다."

"… 진심인가.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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