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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88화 (88/390)

88화.

콰르르릉!

검신이 공기를 가르며 기다란 반 월을 그었다. 푸른색 검광이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한 사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직후, 퍼어억!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사람의 피육이 터져 나오고,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끄아아아아아!"

헤임스가 커다란 괴성을 내지르 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 나는 검을 휘둘러 놈의 다리를 절삭해 버렸다. 이제 놈의 무릎 아래는 깔끔하게 잘려 사라진 상황.

"끄, 끄으으으으으!"

녀석이 팔을 움직여 기어가려 한다. 나는 기어가는 놈의 등 뒤로 다가가, 검을 역수로 쥐어들었다.

"네놈! 감히!"

"공작 각하!"

기사들이 기겁해 이쪽으로 달려 온다. 하지만 놈들이 도착하는 것보 다, 내가 검을 내리꽂는 게 더 빨 랐다.

푸욱.

오러가 일렁이는 내 검날이 해임 스의 등을 찌르고 들어갔다. 찌른 곳은 정확히 심장. 검신을 비틀어 완전히 장기를 헤집어버린다.

"컥, 커억. 컥…."

놈의 피거품을 내뱉으며 버둥거 리고는, 잠시 후.

덜컥. 놈의 몸이 완전히 정지한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아 회수했다.

뒤를 바라봤다. 나를 향해 쫓아 오던 기사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너희들의 주군은 죽었다."

파앙!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 버렸다. 붉은색 핏물이 공궁 바닥에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공작을 죽여버렸다.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은 없다.

"항복해라. 전쟁은 끝났다."

기사들은 잠시 멍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는, 하나둘 검을 던져 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항복의 제스처였다.

- 띠링! 띠링!

[서브 퀘스트 - '헤임스 요한바 르첸 처치'를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포인트 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정산 포인트 : 20pt]

[추가 정산 포인트 : 20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65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105pt입니다.)

[업적 달성!]

['업적 : 공국전쟁 종결'을 달성 했습니다! 포인트가 수여됩니다.]

[정산 포인트 : Wpt]

(기존 보유 포인트는 105pt입니다.)

(남은 포인트는 115pt입니다.)

전쟁이 끝났다.

공국전쟁이 끝났다.

헤임스 요한바르첸 공작이 죽었다. 모든 공국군은 항복했고, 동원 군은 해체되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 제자리로 복귀했으며, 공국 고위 군관들과 대신들이 하나둘 체포 되어 제국군에게 연행되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제국군이 발걸음을 맞춰 행진했다. 제국의 승전식이자 공국의 패전 식이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쿵 쿵 울리며 도시 외곽부터 중앙 내 성까지 길게 이어졌다.

제국 요한바르첸 총독성. 한때 공궁이라 불리었던 성의 꼭대기에 걸려있던 공국기가 불태워지고, 그 자리를 제국기가 차지했다. 중앙 광장에 걸려있던 공국기 또한 모조리 찢겨나가 불태워졌다. 제국기가 도시 곳곳에 내달린다.

그리고 나는-.

"수고했네. 한지훈 백인장."

나는 제국 총독성의 중앙 알현실. 그곳에서 있었다.

앞을 바라봤다. 옥좌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인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전투를 끝 낼 수 있었다. 모두 자네 덕분이지."

오스카 디 로드게리스. 내가 소속되어 있는 3군단 군단장.

그는 오만한 자세로 옥좌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팍 표정을 찌푸렸다.

"군단장님. 그거 옥좌입니다. 거기에 앉아도 되는 겁니까?"

"별 상관 없지 않나? 어차피 곧 중앙에서 수석행정관 겸 총독이 와 앉을 자리다.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정복자 기분이라도 낼까 한다만.

아, 한지훈. 자네도 한번 옥좌에 앉 아보겠나? 생각보다 쿠션이 딱딱해 착석감이 구리긴 하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오스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공궁… 아니, 지금은 총독성으로 이름이 바뀐 건물의 중앙 알현실이었다. 평소 헤 임스 요한바르첸이 휘하 대신들을 마주했던 공간.

그곳에는 제국 군관들이 들어앉 아 있었다.

3군단장인 오스카 군단장을 필두로, 4군단장, 5군단장, 각 마법단장 과 기사단장들까지.

모두 제국의 인물들이었다.

오스카가 나를 치하했다.

"한지훈 백인장. 정말 자네가 잘 해줬어. 그 비밀통로를 어떻게 찾은 건진 모르겠다만 그곳을 통해 공궁 내성까지 들어가 공작을 처치하다 니. 대단하다는 말밖엔 안 나오는 군."

"제가 좀 대단합니다."

"망할 놈. 이젠 나도 좀 편하게 느껴진다 이거냐?"

나는 씩 웃었다.

염병할 전쟁이 끝났다. 기분이 후련하다.

"자,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 전후 처리가 남아있지."

그가 말하며 병사를 호출했다. 그에 병사가 커다란 판때기를 들고 알현실 안으로 들어왔다.

판때기에는 지도가 걸려있었다. 공국령 전체를 기록한 전략지도다.

오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공국군은 이 시간부로 해체한다."

그가 펜을 들어 올려 지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으로 표시되어있던 공국군 배치 표시들 위로 X자 표시가 가 차 없이 그어진다.

"제국으로 향하는 도로를 건설할 것이고,"

파란색 실선이 그어진다. 제국 수도로 향하는 도로망이었다.

이곳 공국 수도였던 헤이드니아에서부터 제국 수도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도로가 건설될 것이다. 나름 대로 대규모 공사이리라.

"중앙에서 행정관들을 파견될 것 이며, 총독이 부임해 대리통치 할 것이다."

공국 귀족들은 모조리 체포 혹은 처형되리라. 만약 살아남는다 한들 작위를 잃고 모든 재산을 빼앗겨, 평민 출신으로 떨어지리라.

이미 이 국가는 제국의 것이 되었다.

문득 나는 궁금해 물었다.

"군단장 각하."

"뭔가, 한지훈."

"왜 이걸 제게 설명해주시는 겁 니까?"

나는 재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다들 장성급인 단장들밖에 없다. 나름대로 고위군관이라 할 수 있는 천인장조차 전무한 상황.

헌데 고작 백인장인 내가 이자리에 있다. 이런 대화는 그들끼리 있을 때 해도 좋을 터.

하지만 오스카는 내게 들으라는 듯이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손수 지도에 직접 표시까지 해가며 말이다.

내 물음에, 그가 싱긋 웃으며 답 한다.

"자네가 이전쟁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지."

"주인공이라 하시면."

"한지훈. 자네는 이전쟁의 처음 부터 끝까지, 줄곧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유저이니까.

모든 사건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국의 침략의도를 가장 먼저 파악한 것도, 놈들의 침공에 가장 먼저 조우한 것도, 요새 공성전과 도시 공방전까지. 온갖 중요 전투의 중요한 국면에는 항상 네가 서 있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공국전쟁 대다수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문득 어떤 예감이 들더군."

그가 펜을 내려놓고, 나를 지그 시 바라봤다.

"한지훈. 자네는 언젠가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공국처럼 작은 국가가 아닌, 드넓은 영역의 군대를 호령하게 되겠지."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 깟 백인장, 천인장 계급에서 놀 생각이 없다.

천인장을 넘어서 군단장, 군단장을 넘어서 야전군 사령관. 야전군 사령관을 넘어서 집단군 사령관, 국 방성 장관….

그리고 제국 황제까지.

계속해 계단을 오를 것이다. 끝없이 오를 것이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질 때까지.

이 게임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

"내가 전후처리 과정을 일개 백인장인 자네에게 직접 설명하는 건… 일종의 예습이다. 언젠가 자네 도 해야 할 일이니."

그는 그리 말하고는 잠시 침묵한다.

잠시 후. 오스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지훈 백인장. 사관학교 입교 제안, 잘 생각해봤나?"

공국수도 전투 전, 오스카는 나 에게 물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관학교에 갈 생각이 있냐고.

그때 나는 생각해 보겠다 답했었다. 지금은 그에 대한 답을 할 때 이다.

오스카의 말이 이어진다.

"한지훈. 확실히 자네의 전술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가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꼬나물었다.

화륵. 연초에 불이 붙는다.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실, 자네가 사관학교에 가서 배울 것은 그리 많지 않겠지. 개인 의무력은 이미 기사를 능가하고, 전술적 능력 또한 실전에서 단련되 었으니 . 듣기로는 기마술 또한 수준 급이라 하던가? 정말 배울 게 없어 보이는군."

"허면 어째서 사관학교 입교를 추천하신 겁니까?"

"인맥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가 연기를 뿜었다. 매캐한 연기가 공기에 희석되어 사라진다.

"군대는 제국의 가장 큰 집단이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하나의 집단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네. 그리고 그 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반드시 필요하지."

"인맥이라."

그의 말은 그럴듯했다.

인맥. 성공하기 위한 요인 중 하나.

그는 그것을 얻기 위해 사관학교 를 추천하고 있다.

"내가 추천장을 써주지. 제국 수도 사관학교에 입교하는 건 문제 없을 걸세."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분명 떠올라있는 감정은 명백한 호감.

싱긋. 나는 웃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오스카 군단 장 각하."

"허어. 사관학교에는 가지 않을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솔직히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 사관학교에 가 인맥을 쌓으라니.

하지만 시간낭비다.

"저는 인맥 따위에 기대지 않고 위로 올라갈 자신이 있습니다."

공국전쟁은 시나리오의 초반부에 불과하다. 곧 잠깐의 휴식기 이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카렌, 람셀, 트웨인, 코르자카. 협 상동맹의 침공.

연방 공화국을 필두로 한 동대륙 세력의 정복 전쟁.

서부 유목집단과 상인연합의 음 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흑마법사 세력의 활동까지.

전공을 세울 기회는 많다. 아주 넘쳐날 정도로 말이다.

사관학교 따위 전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 그렇군."

내 눈을 지그시 마주하던 오스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 어."

오스카가 다시 옥좌로 돌아가 앉 는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제국 역사상 최초로 평민 신분으로서 금성훈장을, 그것도 두 개나 받는 인재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 금성훈장과 작위는 언제 수여받습니까?"

"총독께서 오신다면 수여해주실 것이다."

총독. 식민지를 대리통치하는 인물을 말한다.

나는 재차 물었다.

"이곳으로 부임해오는 총독. 혹시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사실 이미 누가 총독으로 오는지 알고 있다. 역시나 게임 속에서 경험해봤으니까.

오스카가 입술을 열어 대답한다.

"신시아 비 오르페우스 전하. 황제 폐하의 여동생이시자, 제국의 제 2위 계승권자이신 분이지."

* * *

도로 위를 마차가 달렸다. 꽤나 커다란 마차였다.

무려 여덞 마리의 말이 이끄는 팔두 마차. 마차는 온통 하얀색으로 도금되어있고, 그 위에는 커다란 깃발이 달려 맞바람에 펄럭였다.

깃발에 자리해있는 것은 제국 황실의 문양.

마차 안에 있는 이는 황실의 인물이었다.

"요한바르첸 공국."

마차 안에 있던 여인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마차의 차창 밖을 바라봤다.

평탄한 지대가 보인다. 시야는 넓었고, 쭉 뻗어진 지평선은 시원함을 느끼게했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구 공국령의 총독직이라. 적어도 답답한 황궁보다는 훨씬 낫겠지."

그녀는 그리 중얼거리며 손에 들 린 서류를 내려다봤다.

황제의 인장이 박혀있는 명령서 류. 그곳에는 자신을 요한바르첸 식 민지를 대리통치하는 총독으로 임 명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신시아 비 오르페우스.

제국 황제인 아르테니아의 여동생이자, 제국 제 2위 계승권자의 지위를 가진 여인이었다.

신시아는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상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옆에는 나름대로 꽤 고급스러운 나무상자 여러 개가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그중 유독 고급스러운 나무상자 하나를 열어보았다.

달칵.

열리는 나무상자. 안에는 황금색 으로 번쩍이는 쇳조각이 들어있다.

그녀는 금성훈장을 집어 들어 만 지작거린다.

"그나저나, 참 신기한 일이야. 평 민이 금성 무공훈장을 받다니."

신시아의 황금색 눈동자가 훈장 으로 향한다. 훈장은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화려하게 빛났다.

그녀가 중얼거린다.

"한지혼이라. 어떤 인물인지 궁금 한데."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민 출신 으로서 금성훈장을 수여받는 인물, 한지훈.

그녀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공을 세워 왔고, 마지막에는 공국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헤임스까지 처치했다 하던가.

그녀의 시선이 다시 돌려져 차창 밖으로 향한다.

여전히 자리해있는 경관은 확 트 인 지평선. 그리고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따라오는 황실 기사단의 단원 들.

그녀는 중얼거린다.

"한번 만나봐야지."

신시아 비 오르페우스. 구 공국 령의 신임 총독. 그녀는 제국 요한 바르첸 총독성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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