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네놈… 한지훈이군."
적 병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걸 어나 왔다. 놈의 가슴팍에는 백인장 계급장이 부착되어있었다.
바첼부대의 부대장으로 보이는 이. 그가 나를 노려본다.
나는 씩 웃었다.
"나를 아나?"
"검은 머리, 검은 눈. 네놈이 우리 도련님의 목에 검을 찔러 넣는 걸 보았다."
"거점 방어전 때 싸웠던 병사로 군."
거점 방어전 당시. 나는 놈들 백 여 명을 유인하기 위해 한스를 도 발했었다.
한스는 바첼부대와 함께 나를 ?아왔었고, 나는 기어코 놈을 죽이고 포위망을 벗어났었다.
그때 녀석들을 여기서 볼 줄이 야.
스르르릉.
놈들이 하나둘 장검을 꺼내 들었다.
"네놈의 얼굴을 하루라도 잊은 적이 없다. 여기서 죽여주마!"
"글쎄. 항상 나보고 죽여버린다는 놈들이 제일 먼저 죽더라."
나는 단검을 앞으로 겨눴다. 단검의 검신을 따라 푸른색 불꽃이 타오른다.
"가라! 놈을 죽여!"
"오오오오오!"
놈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의 돌격은 무모했다.
나는 단검에 한계 이상의 마나를 밀어 넣으며 읊조렸다.
"뒈져."
콰아아앙!
단검이 터져 나오고, 파편이 앞 으로 쇄도했다. 무수한 수의 파편이 공간을 찢어버린다.
"크아아악!"
"으아아!"
녀석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지면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달려오던 모든 놈들이 바닥에 쓰러진 건 아니었다. 녀석들은 경갑을 착용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나름대로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선두의 몇몇 놈들은 아직 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상황.
'방어구를 제대로 갖춰 입은 적 이라면, 효과가 상당히 떨어지는 군.'
새로운 지식이 늘었다.
나는 장검을 휘둘렀다.
파앙!
경쾌한 파공성이 울리며 검날이 공기를 가른다.
"커헉…!"
놈들 중 하나가 목이 베여 쓰러 졌다. 울컥 치솟는 피. 그 뒤로 달려오는 또 다른 적들.
"죽어라! 한지후우운!"
꽤나 악에 받친 얼굴이다. 하긴, 저 정도 악이 있었으니 공작가 친 위대원이 되었겠지.
그래봤자 허접쓰레기에 불과하지 만.
콰직!
검을 재차 수평으로 휘둘렀다. 적병의 머리통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허공에 붕 떠오른다. 붉은 핏물 이 확 뿜어져 군복을 적셨다.
찝찝하다.
"백인장님! 가세하겠습니다!"
"백인장님을 보호해!"
내 뒤에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튀어나와 전투에 가세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어 녀석들을 제 지했다.
단검을 다시 꺼내든다.
"위험해. 내 앞으로 나서지 마."
단검의 첨단을 앞으로 향하고. 다시 마나를 밀어 넣는다.
화르르륵!
다시금 일렁이는 오러광. 검신이 백색으로 타들어간다.
놈들을 한시라도 빠르게 쓸어버 린 다음, 공작을 잡으러 가야 한다.
시간 낭비할 틈이 없다.
그러니 마나를 아낌없이 소모한다.
콰아아앙!
단검이 터져 나오고, 재차 놈들에게 금속 세례가 쏟아졌다. 이쪽으로 근접해온 놈들이 휘청이며 쓰러 진다.
쯧. 혀를 찼다.
'이제 더 이상 단검이 없다.'
품을 더듬었다. 다른 단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방금 전 단검이 마지막이었던 듯싶다.
가지고 왔던 단검 열 자루를 모두 써버렸다. 이제부터는 장검으로 전투해야 한다.
"빌어먹을 새끼! 괴상한 마법을 쓰다니!"
"가라! 가서 죽여버려!"
"여기서 밀린다면 공작각하께서 위험해진다!"
"목숨 걸고 막아!"
아직 놈들의 수는 수십여 명이 남아있는 상황. 정석적인 전투를 벌 인다면 적게는 수 분, 많게는 십여 분의 시간이 더 지체된다.
그 잠깐의 시간조차 아껴야 한다.
오러를 일으킨다.
화르르르륵!
내 장검을 따라 푸른색 불길이 일어났다.
오러. 모든 걸 절삭해버리는 이 형의 힘.
청염이 이글거리는 검신을 쥐어 들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남아있는 적의 수는 약 오십여 명.
"… 맙소사, 오러라니!"
이쪽으로 달려오던 놈들이 경악했다. 양손으로 그립을 쥐었다.
자세를 낮추며, 놈들을 노려봤다.
"네놈, 설마 기사-"
녀석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콰르르릉!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오러가 부여된 검날이 모든 것을 가르며 지나갔다.
놈들이 막기 위해 들어 올린 검 신도, 복부와 가슴팍을 보호하는 경 갑도, 피육을 지탱하는 뼈와 장기 도.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절삭되었다.
철퍽.
바첼 부대원 서너 명이 단 한번 의 검격에 의해 절명했다. 반으로 토막 난 놈들의 시체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말이야."
파앙!
자리에서 도약, 앞으로 뛰어들었다. 놈들의 얼굴이 더욱 가깝게 다 가온다.
내가 기사들처럼 오러를 다루는 것에 경악한 것일까. 놈들의 반응은 한 박자 늦었다.
그 한 박자 만에 내 몸은 녀석들 의 바로 지척까지 접근한 상태.
오러 서린 검날을 크게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검날이 커다란 반월을 그렸다. 그러자 바첼부대원 대여섯이 동시에 베여 쓰러진다.
오러를 막기 위해서는 오직 똑같이 오러를 다루는 기사여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친위대라 한들,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만무. 놈들 중 나를 막아설 수 있는 녀석은 없다.
"마, 망할!"
"기사! 기사였다니!"
녀석들이 절규한다. 그때, 나는 다시금 검을 휘두른다.
제 삼격. 이번에도 횡 베기.
콰르르르릉!
내 검날이 다수의 적병을 참하며 피 안개를 일으킨다. 놈들이 핏물 튀어나가 지하 비밀통로의 벽면에 질척하게 들어붙었다.
"놈은 오러를 다룬다!"
"이길 수 없어! 도망쳐!"
"으아아아아아!"
살아남은 나머지 바첼부대원들이 도주하려 한다.
하지만 놈들의 속도는 너무나도 느려 터졌다. 103에 달한 내 민첩 능력치 덕분에, 녀석들을 따라잡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웠다.
"빠, 빠르다!"
"망할!"
놈들이 도주를 포기하고 맞서 싸우려 하지만.
콰르르릉! 콰앙! 쾅!
내 검날이 녀석들을 난자하는 것 이 더 빨랐다.
푸른색 오러광이 환하게 수차례 번뜩이고, 그 순간 십 수명의 적 병이 반으로 갈려 바닥에 널브러진다.
이제 남아있는 적의 수는 고작 다섯 명뿐.
"도망쳐! 도망-"
마저 처리한다.
콰앙!
다시 달려 나가며 횡으로 검을 그었다. 놈들이 또다시 반으로 갈려 우르르 쓰러진다.
후욱. 오러를 꺼트렸다.
"바첼부대. 이렇게 약했었나."
거점방어전 당시 나와 내 휘하 병사들을 애먹였던 놈들이다.
그때의 나는 놈들을 유인하는 것 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성장했다. 많은 임무를 완수했고, 능력치를 키웠으며, 오러를 각성했다.
더 이상 놈들은 내 상대가 안된다.
백 명이 달려들어도 나 하나 어 쩌지 못할 만큼.
"… 가자. 공작을 잡아야 해."
"아, 알겠습니다! 백인장님!"
나는 마나포션을 들이키며 앞으로 걸어갔다. 멍하니 바라보던 카일 이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그렇게 우리는 비밀통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카일은 달려가며 한지훈의 등을 바라봤다.
한지훈. 자신이 일개 병사였을 적부터 함께했던 자신의 상관. 카일 은 한지훈이 십인장이었을 때부터 쭉 보아왔었다.
그는 강해졌다.
카일이 긴장에 침을 삼켰다.
'혼자서 병사 백여 명을 쓸어버 리다니.'
방금 전. 한지훈은 혼자서 공국 병사 1백 명을 순식간에 처리해버렸다.
일반 공국 병사도 아니었다. 공작가의 친위대인 바첼부대였다.
허접쓰레기인 평범한 공국 놈들 과 다르게 보다 우월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
한지훈은 그런 바첼부대 일개 백인대를, 단 혼자서 쓸어버렸다.
'오러란 게 저토록 강한 것이었 다니.'
단검 두 개를 터트려 돌진해오던 놈들의 기세를 죽였고. 이후 오러를 일으켜 일방적으로 학살해버렸다.
그 모든 것에 소요된 시간이 고작 몇 분 남짓.
모두 한지훈이 오러를 다루는 덕분이었다.
오러를 운용해 단검을 폭발시켰고, 무지막지한 절삭력으로 적병을 베어버렸다.
그만큼 오러의 힘은 강력했다.
카일은 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나도 오러를 다룬다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카일과 한지훈. 그 둘의 시작점 은 그리다르지 않았다.
둘 다 평민이었고, 제국의 병사였다. 비록 복무기간의 차이 때문에 십인장으로 먼저 진급한 것은 한지훈이었지만 카일은 스스로 자신이 뒤떨어지는 인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예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지훈이 여러 임무를 완수하고 오러를 각성 한지금, 카일로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있다.
혼자서 백인대를 전멸시키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 기사."
카일은 한지훈의 전투를 보며 느 꼈다.
자신도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한지훈 백인장처럼 오러를 각성해, 저 토록 대단한 무력을 지니게 되고 싶다고.
카일은 한지훈의 뒤를 따른다.
* * *
"출구다!"
나는 그리 외쳤다.
기다란 비밀통로의 끝이 보인다. 나는 계속해 달려 출구 밖으로 나 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공궁 안인가"
공궁 안. 커다란 홀의 모습.
다소 호화로운 경관이었다.
천정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 려있고, 바닥에는 기다란 붉은 카펫 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 카펫을 따라 도망치는 녀석의 뒤통수.
"헤임스."
헤임스 요한바르첸. 공국의 군주.
놈은 다수의 기사들에게 보호받 으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제국군이다! 제국군이 쳐들어왔 다!"
"놈을 막아!"
기사가 우리를 발견하고 외쳤다. 그러자 홀 이곳저곳에서 공국군 병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망할! 흑마법사! 흑마법사다!"
흑마법사들 십여 명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색 로브를 뒤집어 쓴 이들. 우리를 쓸어버릴 마법을 준비하는 것일까. 놈들이 스태프를 치켜든 채 마법을 준비한다.
잠시 후, 놈들의 마법이 발현된 다면 나와 내 휘하 백인대는 단숨에 쓸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역시 나올 줄 알았다. 개새끼들."
공작의 주위에 흑마법사가 없으 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놈들을 사냥하기 위한 아티팩트를 미리 준비했다.
[메모리 크리스탈(폭렬폭풍)]
폭렬폭풍 마법이 저장된 메모리 크리스탈.
나는 그것을 흑마법사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콰르르르르릉!
화려한 붉은색 섬광이 수차례 번 뜩임과 동시, 다수의 폭발이 일었다. 강렬한 폭음이 고막을 유린하고 후폭풍이 군복을 흔들었다.
- 크아아아아!
- 아악! 끄아아아아!
흑마법사들이 폭발에 휘말려 날 아갔다. 놈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아 우성 쳤다.
불은 정화의 기운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화염 계열 마법은 흑마법사에게 치명적이다.
게다가 내 메모리 크리스탈에 마법을 부여해준 이는 다름 아닌 제피르. 고격의 마법사가 직접 부여한 마법이다. 놈들로서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단숨에 죽지는 않는다.
'화력이 부족해.' 메모리 크리스탈의 한계 때문이다. 마법을 부여해준 이가 아무리 그 제피르라 한들 그 힘을 크리스 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다. 그에 마법의 힘이 상당히 열화된 상황.
허나 괜찮다.
[메모리 크리스탈(폭렬폭풍)]
가져온 수정구의 수는 무려 다섯 개였다. 방금 전 하나를 사용했으니 아직도 네 개나 남아있다.
그것들을 차례로 던져버린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흑마법사들이 녹아나갔다. 놈들은 수정구에 부여된 폭렬폭풍 마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렇게 내가 막 흑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을 때였다.
"제기랄, 흑마법사들이 당했다!"
"저놈은 마법사인가?!"
"각하께서 무사히 피신하실 수 있도록, 뒤를 맡아라!"
철컹, 철그럭, 철컥!
홀 안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수가 퍽이나 많다.
일반 병사들의 수는 백이 훨씬 넘는다. 기사는… 대충 열 명 정도 인가.
부관에게 지시했다.
"엘락. 백인대 지휘권한을 네게 주겠다. 네가 백인대를 지휘해 저 잡병들을 상대해라. 나는 기사들을 처치하고 공작새끼를 잡으러 가지."
"… 알겠습니다, 백인장님!"
파앙!
나는 공작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