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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유닛-83화 (83/390)

83화.

"제국 놈들이 코앞까지 왔다."

헤임스 요한바르첸이 옥좌 위에서 그리 말했다.

그의 시선이 알현실 안에 자리해 있는 대신들에게 향한다.

대신들의 수는 더욱 적어져 있었다.

그의 눈가에 불쾌함의 감정이 올라왔다.

"믿을 녀석 하나 없군…."

전쟁 전만 하더라도, 항상 자신 에게 온갖 아부를 하던 이들이었다.

헌데 몰락이 가까워지자 하나둘 사라지더니, 수도 공방전이 얼마 안 남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공국 고위대신들이 사라져버렸다.

후욱. 그는 한숨을 내쉬며 옥좌에 몸을 묻었다.

"군사대신."

"하명하십시오, 공작 각하."

헤임스의 눈이 군사대신에게 향했다.

자신에게 총동원령을 간언했던 이. 그는 이제 몇 안 남은 대신들 중 하나였다.

공작이 말한다.

"병력의 상태는?"

"1만의 공국군과, 10만의 동원군을 확보했습니다."

"기사는? 그리고 흑마법사들의 지원은?"

"기사는 약 일백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흑마법사 측에서는… 암흑 기사 백과 흑마법사 십여 명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지원이 생각보다 적군."

헤임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 워졌다.

사실, 헤임스는 흑마법사들 측에서 보다 많은 지원을 해오리라 예상했었다. 수도가 함락당 할 위기. 그렇기에 보다 많은 지원을 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원은 예상 외로 적었다.

고작 암흑기사 백, 그리고 흑마법사 십여 명에 불과한 지원이라니.

게다가.

"크라함과 한스는 어디 갔지?"

"그게…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공작 각하."

"으음…."

헤임스는 순간 직감했다.

한스와 크라함, 그리고 흑마법사 세력은 사실상 공국을 포기했다. 자신의 유일한 동맹인 그들조차 공국을 버린 것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패배가 예정되어있는 전쟁이다. 굳이 암흑기사와 흑마법사들을 더욱 지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 포기할 순 없다."

헤임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가 시선을 돌려 공국 지도를 바라봤다.

가장 가운데에 있는 것은 이곳, 공국 수도 헤이드니아. 공국 최대 규모의 도시이자 수도다.

"수도 헤이드니아를 사수한다."

버티고 버틸 것이다. 제국 놈들 이제 풀에 지쳐 철군할 때까지.

그의 눈동자에는 집념이 일렁였다.

'제국 놈들만 몰아낸다면.'

제국은 강국이다. 정복 전쟁 이전에는 다수의 국가가 모여 탄생한 거대 열강이었고, 정복 전쟁 이후에는 대륙의 패권을 장악했다.

하물며, 십 년간의 안정기를 거 쳐 내실을 다진 그들은 더욱 강성 해져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발악 할 것이다.

그는 아직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도시 내부에서 저항하라. 이곳은 제국이 아니다. 놈들 또한 기다란 병참선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부담될 터."

단순 전투로 제국군을 몰아내는 것은 공국으로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공국령 깊숙이 진입한 제국군은 강력했다.

하지만 버티고 버틴다면. 민간인 들마저 끌어들여 항전해 놈들에게 피해를 강요한다면. 그리하여 제국에서도 전쟁에 부담을 느낄 정도가 된다면.

놈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소모전으로 끌어들인다."

공작은 그리 지시했다.

공국 수도 헤이드니아 공방전이 곧이다.

제국군은 계속해 진군, 어느덧 공국의 수도인 헤이드니아에 도착했다.

나는 헤이드니아의 모습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더럽게 커다란 도시네."

무려 인구수가 수십만에 이른다 한다. 과연 한국가의 수도라는 것 일까.

그에 카일이 씩 웃었다.

"백인장님. 고작 공국 수도 도시 인데 말입니다. 저 정도면 그렇게 큰 편은 아닙니다."

"인구 수십만이 큰 편이 아니라 고?"

"뭐. 대도시이긴 합니다만. 제가 이래 봬도 제국 수도 출신이지 말 입니다. 제국 수도는 저것보다 훨씬 큽니다."

"흐으음…."

나는 카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현실 지구의 중세 유럽에서 수십만이라는 인구수를 가진 도시는 정말 드물었다. 중세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파리의 인구수가 20만을 넘지 않았?고, 런던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겉보기로는 중세 유럽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많은 듯했다.

도시의 인구수가 내가 알던 것보 다 훨씬 많다든가. 교통과 상업이 중세 유럽보다 훨씬 진보했다든가.

나는 그걸 마법의 발달 덕분이라 추측할 뿐이다.

"그나저나. 저기를 점령하기만 하면 이전쟁이 끝나는 것이로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점령하고, 공작의모가지를 따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지만."

카일과 대화하며 손아귀 위에 들 린 지도를 바라봤다. 천인장 그레드 에게서 받은 작전 지도였다.

그것을 보면 아군의 계획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한 포위압박이구만."

북쪽에서 3군단이, 동쪽에서 4군단이, 서쪽에서 5군단이 밀고 들어 온다. 그렇게 세 방향으로 몰아친 군대가 점차 조여들어 포위망을 형성. 공국 수도 중앙에 있는 공궁까 지진격해 차지한다.

작전이라 할 것도 없다.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 도시의 모습을 바라봤다.

"헤임스 요한바르첸."

공국의 공왕이자 공작, 공국의 수장인 놈을 잡는다면 이전쟁이 끝난다.

이어 중얼거렸다.

"한스 요한바르첸, 그리고 크라 함."

한스 요한바르첸. 헤임스 공작의 아들이자 게임 속 내 대작자였던 이.

크라함. 게임 속 내 아군이었으나, 지금은 무언가 꾸미고 있는 이.

놈들이 있을까?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녀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한스는 공국의 후계자. 자기가 물려받아야 하는 국가가 패망할 위기를 앞둔 상태에서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 니까.

하지만 어째서인가, 내 가슴은 놈들이 저곳에 없다 말하고 있다.

표정을 찌푸렸다.

"뭘 꾸미는 거냐."

나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도시 방향을 바라본다.

* * *

우리 3군단은 4, 5군단을 초월해 진군. 공국 수도 헤이드니아의 북쪽에 자리 잡아 군영을 폈다.

사실 위험한 기동이었다. 행군 중인 군대는 기습에 취약하다. 때문에 만약 우리 군이 이동하는 와중 공국에서 영격했다면 나름의 피해 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도시 안에 처박혀서 가만히 웅크렸다.

그이유를 오스카 군단장은 이렇게 추측했다.

"이미 공국군은 습격기동할 정도 로 훈련된 병력이 거의 없다는 것 이겠지. 눈앞에 무방비하게 행군하는 , 탐스러운 먹이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오스카 군단장이 말하길, 공국군 에게 더 이상 훈련된 병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의 병사가 갓 징집된 신병들이거나 동원된 민간인이었고, 현장을 지휘할 십인장 이나 백인장 등 간부들은 거의 다 쓸려나갔다고.

하긴, 개전 이후 줄곧 일방적으로 당해오던 공국군이다. 장교, 병사 할 것 없이 부족하겠지.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오스카 군단장 각하."

"왜 그러나, 한지훈 백인장."

"제게 찾아온 용무가 어떻게 되 십니까?"

지금 오스카 군단장은 내 백인장 막사에 들러, 어울리지 않게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전장 한가운데서 술도 담배도 아닌 차라니. 이 얼마나 고상하고도 사치스러운 취미란 말인가.

달그락.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네 차를 싫어하는가 보군. 기 껏 가져와줬더니 예의상 입 한번 대고 말았어."

"제가 차를 즐길 정도로 고상한 사람은 아닌지라."

그 풍족한 현실 지구에 있을 때 도 차는 거의 입에 안 대던 나다. 마셨던 기호음료라 해봤자 탄산음 료와 믹스커피가 고작.

그런 내가 이런 판타지 세상 속 차를 마시고 다닐 리 없다. 게다가 귀족층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눈 튀어나올 정도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한 걸까.

"한지훈. 자네가 귀족계층을 싫어 하는 건 잘 알고 있네. 그래서 내가 권한 차에 이리 거북해 하는 것 이겠지."

뭔가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사실, 귀족에 대한 반감은 꽤나 희석된 상태다. 당장 나만 해도 이전쟁이 끝난다면 남작위를 받기로 되어있지 않은가.

더해 오스카를 비롯해 괜찮은 귀족 군관들을 몇 만나 친분을 다졌다. 그래서 나는 모든 귀족이 쓰레기는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동안 여러 귀족 지휘관 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건 알 고 있네. 자네가 귀족들을 싫어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동안 내가 보여준 모습 들이 문제였다.

나는 병사들과 함께한답시고 베 르겐의 영입제안을 걷어찼으며, 기사와 대련을 벌였고, 여러 귀족 지휘관과 마찰을 빚었었다.

때문에 오스카는 내가 귀족을 혐 오하고 있다 여기고 있다.

"허나 자네는 곧 귀족이 된다네. 그러니 우리 귀족의 문화에도 익숙해 져야하지. 자, 한번 마셔보지 않 겠나?"

"… 알겠습니다. 군단장 각하."

나는 그의 권유에 찻잔을 들어 올려 마셨다.

솔직히, 그리 맛있진 않다. 차라리 현대 지구에서 마셨던 싸구려 홍차티백이 더 맛있던 것 같다.

"그래. 한지훈 백인장. 내가 찾아 온 이유를 물었었지."

오스카가 천천히 운을 뗐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경청한다.

그가 씩 웃었다.

"제피르가 재밌는 말을 하더군. 공작을 노리고 있다 하던데."

"벌써 들으셨군요."

하긴, 제피르도 오스카도 둘 다 단장 계급이다. 서로 만나 대화할 일이 많을 터이니.

"자신은 있는 건가? 그레드에게 자율 작전권까지 받아갔더군."

"확실하게 성공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가."

오스카는 무어라 말하지 않고 그저 나를 주시했다. 내 표정을 읽겠다는 듯이.

문득 그가 제안했다.

"한지훈. 이전쟁이 끝난 뒤. 사 관학교에 가볼 생각은 없나?"

다음날 아침.

전군은 공국 수도 포위망을 완성, 진군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리고 하나둘 세워지는 붉은색 전진 신호기들.

내가 포함된 3군단이 진격을 시작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주위 병사들에게 고했다.

"미리 전파했다시피, 우리 백인대는 군단에서 떨어져 단독기동 한다. 카일! 에시!"

"네! 백인장님."

"너희 1번, 2번 십인대는 내 좌 측을 맡는다. 아드레이! 파웰!"

"여기 있습니다, 백인장님."

"3, 4번 십인대는 우측을 맡고. 나머지 5번부터 10번 십인대는 예비대다. 손실이 생기면서로 위치를 바꾸며 전진해라."

"명령을 받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휘하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병사들의 사기는 충만했다.

이미 공국의 전의는 밑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게다가 공국의 수도만 점령한다면 이전쟁이 끝날 것이니.

사기가 높지 않다면 이상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도시가 보인다.

공국 수도 헤이드니아.

쯧. 혀를 찼다.

"영격해오지 않는 것 같은데."

이미 병력이 충분히 도시를 향해 접근했음에도 놈들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아마도 도시에서 항전하려는 것 이겠지.

추측해본다.

'회전보다는 지연전을 노리는 건가.'

충분히 합당한 추측이다.

사실, 공국은 이미 전쟁에 쓸 법 한 병력을 죄 다 잃은 상태. 제대로 훈련받아본 군인들이 드물다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교하게 진형을 유지하며 싸우는 회전은 쉽지 않은 선택이니. 차라리 도시에서 버티는 소모전을 노리리라.

저벅, 저벅, 철그럭, 철컥.

병사들이 계속해 걸어 앞으로 향 한다. 도시의 모습이 점차 크게 보 인다. 저 멀리 작게 보였던 건물들 이 점점 다가오고, 그와 함께 병사들의 눈에서 긴장이 올라오기 시작 한다.

나는 씩 웃으며 허리춤을 매만졌다.

"도시 제압전은 처음인데 말이 야."

항상 평야지대나 산악지형에서나 싸워왔지. 이렇게 시가전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는다.

"뭐. 나름대로 대비해왔으니 ."

품속을 더듬었다. 그곳에 내가 미리 준비해놓은 물건들이 손에 잡 혔다.

싸구려 단검 열 자루. 그리고 마법이 장전된 메모리 크리스탈과 마나포션들까지.

이 정도가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거다.

나와 병사들이 계속해 도시를 향 해 진군한다. 어느덧 우리 군이 도시 외곽에 도착하고, 건물들 사이 대로를 통해 나아가는 순간.

"적 발견!"

우리는 적과 조우했다.

병사가 이어 보고한다.

"적의 수는… 약 삼백여 명으로 보입니다."

백인대와 마주친 적의 수는 무려 삼백. 우리의 세배에 달하는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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